#61
수월하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형우 일행은 근처의 카페까지 이동했다. 카페의 앞에서, 연수와 의재가 형우에게 인사를 했다.
“그럼 우리는 가 볼게요.”
“잠깐만요.”
가려던 둘을 잡은 지원이었다.
“두 분 혹시, 장르소설에는 관심 없으세요?”
“장르소설이요?”
“네. 아무래도 제가 발굴도 하고 있다 보니까. 혹시 나중에 생각 있으시면 연락해 주세요.”
지원은 품에서 명함을 꺼내 하나씩 내밀었다.
“생각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내가 먼저 연락해야지.”
“유치하게 굴 거예요?”
명함을 받아든 후, 의재와 연수는 지하철역을 향해 티격태격하며 걸어갔다.
“영업 열심이시네요.”
“기껏 문창과에 왔잖아요. 하나라도 캐 가야지. 형우 님도 괜찮으시면, 문창과에서 장르소설 관심 있다는 사람 있으면 저한테 알려 주세요. 꼭!”
장르소설 쓰는 사람이라. 한 사람이 생각나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인간을 소개해 줄 수는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카페에 들어갔다. 잠시 후 커피 두 잔이 테이블 위에 나란히 놓였다.
“웹툰이 나왔다고요?”
“그렇긴 한데… 이게 뭐라고 해야 할지….”
그 자신감 넘치는 지원이 저런 모습이라니, 대체 어떻길래? 그런 의문이 저절로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전설의 보안관>의 웹툰 샘플을 보는 순간 바로 해소됐다.
안 좋은 쪽으로.
“…이게 뭐예요?”
“면목이 없어요.”
초고본을 보는 형우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만화 속 헤럴드는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고 헤픈 표정을 지으며 혀를 헤, 내밀고 있었다.
“헤럴드는 하드보일드한 캐릭터인데요… 농담을 좀 하는, 그러니까, 그, 미국 탐정 소설에 나오는 ‘필립 말로’ 같은….”
“…일단 계속 보세요.”
베아트리체는 더 가관이었다. 원작에서는 갈색 단발 머리였던 것이 갑자기 허리까지 오는 긴 금발로 변했다. 게다가 머리 위에는 촌스러운 노란색 머리띠까지 차고 있었다.
“아니, 황야의 현상금 사냥꾼이 이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다니면 총 맞아 죽어요.”
“…그렇겠죠.”
“그리고 데포르메는 왜 이리 많이 했어요?”
완전히 극화체를 바란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5등신의 SD캐릭터를 바랐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만약 제목을 가리고 본다면, 서부극이 아니라 아동만화라고 착각할 만한 그림체였다. 연출도 비슷했다.
“머리 때리면 혹 나오는 거, 이거 완전 20년 전 연출이잖아요. 게다가 원작에도 없는 화장실 개그는 왜 들어간 건지 모르겠고, 쌍코피는 대체 왜 흘리는지 모르겠고, 이 시점에서 베아트리체는 헤럴드를 자기 돈줄로 보는데 왜 만나자마자 얼굴을 붉히며 눈이 하트 모양이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웹툰에 대한 불만을 쏘다 보니 절로 숨이 헉헉거렸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게 남았다.
“…에이전트 제로 머리는 왜 이리 커요? 몸보다 머리가 더 크잖아요?”
“하아.”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저번에 보여준 건 이렇지 않았잖아요?”
완성되기 전, 형우도 러프 몇 개를 받기는 했다. 그때만 해도 형우는 꽤 만족스럽다고 생각했다.
“…만화가가 중간에 바뀌었거든요.”
지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저도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에요.”
* * *
문화 컨텐츠를 만드는 업계에는 종종 내부사정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그러니까, 작품 외적인 것들 때문에 작품 안쪽이 붕괴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돈 때문에 작품이 망가지는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의 작품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 대표적인 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본래 당시 일본의 젊은 신예 감독인 호쇼다 마모루가 제작을 총괄했었다.
하지만 당시 지브리의 모회사는 신예 감독인 호쇼다 마모루보다는 유명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제작을 총괄하는 것이 더 흥행에 도움이 될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제작중이던 애니메이션의 감독을 교체했다. 심지어 미야자키 감독조차 이 결정을 탐탁지 않아 했다고 했다.
이미 반쯤 만들어 놓은 작품의 감독을 바꾼 탓에 작품의 메시지는 중구난방이 되었고 결말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다. 개봉 후 ‘지브리 최악의 영화’라는 소리까지 들어버렸으니 말 다 했다.
<전설의 보안관>의 웹툰에 벌어졌던 일도 그 사이즈만 다를 뿐, 크게 보면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벌어졌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르문학부서랑 아동만화부서 사이에 조율이 잘 안 됐어요. 사내 파벌 문제 때문에요.”
지원의 설명에 의하면, C&N에는 두 개의 파벌이 있었다. 회장의 젊은 아들을 필두로 한 ‘부회장파’와,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C&N을 이끌어 온 사장을 주축으로 한 ‘사장파’라고 했다.
“아동만화부서는 완전히 부회장파에요.”
“장르문학부서는요?”
“그게 좀 애매해요. 전 편집장님 계실 때만 해도 사장파였는데, 공판석 편집장님이 부회장파 인물이라서….”
애초에 공판석처럼 정치력이 만땅인 사람을 편집부에 앉혀놓은 것도 부회장의 입김이 가득 들어간 인사라고 했다.
“하지만, 공판석은 결국에 부서 안에서 인망을 얻지 못했어요. 음, 반쯤은 형우 작가님 덕이죠.”
형우와의 부정계약 사건 덕에, 공판석은 부서 내에서 영향력을 꽤 많이 잃어버렸다. 그래서 부회장이 수를 쓴 것이다.
“협박이나 마찬가지죠. 이번 프로젝트 성공하고 싶으면 부회장파로 들어와라.”
정확히는 장르소설부서가 아닌 지원에 대한 압박이었다. 부회장은 지원이 신입 때부터 그녀의 능력을 눈여겨보고 포섭하려고 애써왔으니.
“그러니까, 저 때문이에요.”
“…부회장이라면서요, 그럼 회장이 있을 거 아녜요. 그걸 눈 뜨고 봐요?”
회장이 있긴 하지만, 눈을 뜨고 있지는 않았다.
지금도 아마 중환자실에서 코에 호스를 꽂고 있을 것이다.
“회장님이 건재하셨으면 애초에 파벌 같은 게 생길 수가 없어요. 사내 정치가 있다는 건, 회사를 휘어잡을 카리스마가 없다는 뜻이니까요.”
꽤나 드라마스러운 설정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형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질색했다.
“솔직히 사내 정치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회사 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다 망하는 거잖아요. 회사란 거, 이익집단 아니에요?”
회사가 이익집단이라는 형우의 말은 반만 맞았다.
회사에서 말하는 ‘이익’은 단순히 자본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적자를 내서라도 라이벌을 무너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잖아요.”
형우의 입가가 굳었다. 솔직히 사내정치 이야기는 별로 관심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았다.
문제는 웹툰이었다.
“이 웹툰을 낼 수는 없잖아요. 방법이 없을까요? 우리가 새로 웹툰 작가를 구한다거나?”
“그러면 계약이 이중 계약, 삼중 계약이 돼서 시간이 엄청 걸릴 거예요. 이미 플랫폼에는 연재일정이 잡혔으니까요.”
문화 컨텐츠 사업이라는 건, 글만 잘 쓰고 그림만 잘 그린다고 다 성공하는 게 아니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었다면 모든 성공한 웹소설은 죄다 웹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뭣보다 돈과 이익구조가 얽힌 게 가장 컸다. 다중 계약의 문제였다.
웹소설의 경우에는, 계약 대상이 총 3개다.
소설가와, 출판사와, 플랫폼.
계약이란 건 각 대상 사이에 선을 잇는 일이다. 대상이 세 개라면 계약은 세 개면 충분하다.
하지만, 웹툰화의 경우에는 계약 대상이 훨씬 늘어난다. 만화가와 만화 출판사가 추가되는 것이다.
3개의 대상을 잇기 위해서는 세 개의 선이면 충분하지만, 5개의 대상을 모두 잇기 위해서는 10개의 선이 필요한 법이다. 최대한 간략화하더라도 5개에서 6개의 계약은 필수적으로 얽히게 된다. 이런 계약은 단시일 내로 해결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지금으로서 가능한 시나리오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지원이 사장파를 버리고 부회장파에 들어간다.
그러면 부회장 측에서 제대로 된 만화가를 지원해 줄 테고, 시일 내로 웹툰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경우, 회사에서 지원의 입지는 좁아지게 된다. 어쩌면 배신자라고 손가락질당할지도 모른다.
그 다음 둘째, 그냥 이 머리 큰 에이전트 제로를 그대로 웹툰화시키는 것이다.
웹툰은 무조건 망하겠지만, 지원은 여전히 사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지킬 수 있게 된다.
‘…왜 자꾸 내 주변에만 일이 터지지.’
형우는 짜증난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가짜 계약때는 편집장이랑 한판 붙고, 그 다음에는 기성 작가랑 한 판 붙고, 기성 작가도 모자라 문단 교수랑도 한 판 붙고, 이제는 웹툰에 얽힌 사내 정치까지 얽혔다.
‘웹소설 작가가 이렇게 스펙타클한 직업이었나.’
너무 혼란스러워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일단은 집에 가서 생각좀 해 볼게요.”
형우가 거친 손짓으로 책상 위에 놓인 원고를 가방 속에 쑤셔 넣었다.
“…매니저님도 혹시 소식 있으면 바로 전해 주세요.”
“알겠어요, 형우 작가님.”
“그리고, 편집자님. 괜히….”
“네?”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대로 카페에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뒤를 힐끗 봤다. 거리에 나와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는 지원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힘들 때만 피운다고 했었는데, 지금이 그 순간인 모양이었다.
‘저 때문에 괜히 편집자님한테 안 좋은 선택은 하지 마세요.’
카페에 나오기 직전, 하려다가 멈춘 말이었다. 말을 끝마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말은 곧, 자신의 작품을 희생시키겠다는 뜻과 다름없었으므로.
‘씨발. 기분 좆같네.’
나쁜 짓은 하나도 안 했는데 죄인이 된 듯한 찝찝한 느낌이었다.
* * *
그 시각 C&N에선 회의가 한창이었다.
“다들 모였나?”
공판석이 회의실에 들어오며 물었다. 윤진이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서 수석이 안 왔습니다.”
“아, 서 매니저는 오늘 미팅 보냈어. 웹툰 초고 나왔잖아. 그 외에는 없는 사람 없지?”
공판석은 자리에 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운이 정말로 좋았지.’
보통은 편집장이 웹툰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되는 게 맞겠지만,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공판석이 아니라 수석 편집자인 서지원이었다. 지원과의 내기에서 패배한 것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그게 참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부회장이 웹툰 프로젝트를 갖고 사내 정치를 시도할 줄이야.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거지.’
만약 프로젝트가 실패한다고 해도, 그 책임은 온전히 지원이 모두 지게 된다.
라인을 바꿔 타고 배신자 소리를 듣거나, 혹은 프로젝트 실패 책임을 모두 덤터기쓰고 몰락하거나.
‘뭐,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
그 정도로 생각을 정리한 뒤, 공판석은 회의실에 모여 있는 직원들 쪽으로 눈을 돌렸다.
“웹툰 말고도 우리 할 일은 많잖아? 뭔지 알지? C&N 장르소설 공모전.”
“네.”
“그거, 내가 담당할 거야. 일이 많다 보니까 나는 공모전에 집중하고 서 매니저가 웹툰 총괄하기로 했어. 다들 체계 안 얽히게 조심해.”
“넵.”
편집부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시작이니까,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드라고.”
“옙!”
“구호 한번 외치고 가자고.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와신상담 새옹지마, 장르소설 편집부 파이팅!”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와신상담 새옹지마, 장르소설 편집부 파이팅!”
공판석이 선창하자, 편집부 직원들이 후창했다.
‘…구호 겁나 구리네.’
공판석을 제외한 편집부의 모든 직원은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만약 이 모습을 누가 봤다면 수치심에 죽어버렸을 것이다.
* * *
“에휴.”
형우는 잔 가득히 소주를 따랐다. 요즘 일이 좀 잘 풀린다 싶었는데, 갑자기 엄한 데서 막혔다.
웹툰이 망해도 사실, 소설은 그렇게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그저 소설은 진짜 좋은데 웹툰은 진짜 아니네요. 그 정도의 평가로 끝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웹툰이 실패하면 안 되는 이유는 세 가지나 있다.
일단 웹툰에 의한 저작권 수익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저런 퀄리티의 웹툰을 돈 주고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언제 어디서나, 돈은 늘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두 번째. 앞으로 영영 <전설의 보안관>은 웹툰이 될 기회를 잃게 된다. 어떤 만화가도 웹툰화 됐다가 망한 작품을 다시 웹툰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한 작품의 2차 창작 라인 하나가 그대로 유실되는 거다.
거기까지가 물질적인 이유였고, 사실 제일 큰 이유는 세 번째였다.
“남의 작품을 가져다가 뭐 하는 짓이야?”
형우는 자신이 피땀 흘려 쓴 작품이 고작 사내 정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꿀꺽, 꿀꺽.
소주 한 병이 순식간에 비었다.
“뺘악?”
참치가 그런 형우의 옆에서 고개를 갸웃 꺾었다.
“뭐야, 참치. 나 위로해 주는 거야?”
“뺘악…!”
“휴대폰 위에 앉아 있으면 안 돼. 거기에 똥이라도 싸면 큰일 난단 말이야.”
“…형우 너 지금 뭐라는 거야?”
“거기서 똥 싸면 안 된다… 응?”
뭔가 위화감을 느낀 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방에 있는 건 분명, 참치와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방금 자신에게 말을 건 것은……
“뭐, 뭐, 뭐야. 참치! 네가 말한 거야?”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당황한 형우의 앞에서, 참치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날개를 살짝 펼쳤다.
“…참치가 아니라 의재다,”
“참치, 너도 이름이 의재였어?”
만난 지 6개월 만에 알게 되는 진실이었다.
그러고 보니 목소리도 좀 비슷하게 들렸다.
“미안해, 참치야, 아니, 의재야! 나는 네 이름이 의재인 것도 모르고.”
“아니, 갑자기 전화해서 뭔 헛소리야?”
“전화라니, 무슨 전화… 아.”
술이 깨고 나니 상황 파악이 됐다.
목소리는 참치의 부리가 아니라, 참치가 깔고 앉은 휴대폰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휴대폰 위에서 놀던 참치가 우연히 의재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아.”
순식간에 부끄러워졌다.
수화기 너머로 피식, 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정신 좀 차렸냐?”
“어. 미안, 지금 조금 취해서 그랬나 봐.”
“취했다고? 지금 술 먹냐?”
의재가 반색했다.
“잘 됐다, 자식. 나도 술 땡기던 참인데. 같이 한 잔 하자.”
“어라.”
그 말은 좀 이상하게 들렸다.
“의재 너 오늘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새끼, 눈치 없기는. 잘렸어, 이 자식아.”
“아.”
안 좋은 일도 전염이 되는 건가,
입맛이 씁쓸해진 형우가 쯧,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