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왜 이렇게 된 거지?’
공태준은 당황스러운 시선으로 천병옥을 바라봤다. 천병옥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이 쓴 소설인 <네 사람의 머리>에 대한 질문을 해 왔다.
“…자네의 소설에서 보자면,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을 주된 테마로 삼고 있지. 그렇다면, 자네는 이 소설을 쓸 때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연결 지점을 무엇으로 봤는가?”
“…그것이.”
“그래, 모를 수도 있겠지. 그렇다면 다시 묻겠네. 죽음과 사랑을 연결할 때, 이 소설에서는 의도적으로 두 개의 하강하는 이미지를 넣었지. 그 이미지가 무엇인가?”
“어… 주인공이 학교에 갈 때 타는 육교입니다.”
“틀렸네.”
천병옥이 <네 사람의 머리>의 한 지점을 정확히 짚었다.
“육교는 하강의 장면이 아니라, 하강하기 위해 올라서는 과정에 더 가깝지. 자네의 소설에서 하강을 표현한 부분은 중간의 인형 뽑기 장면과, 주인공이 화단의 토마토를 향해 이빨을 던지는 부분이라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일세. 이 소설에서는 의도적으로 자음 하나를 돌려 씀으로서 리듬감을 형성했지. 그 자음이 무엇인가?”
“니은입니다.”
“비읍이라네.”
천병옥은 실망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므로.
천병옥의 손끝이 테이블을 톡톡, 건드렸다.
“이래도 이 소설이 자네가 쓴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나.”
더 이상 속이고 뭐고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태준은 몸에 밴 대로, 오히려 당당하게 나갔다.
“다른 작가들의 도움을 받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습니까?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하신 건 교수님입니다.”
천병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맞는 말이지.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야. 하지만 말야,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다네. 태준 학생, 소설의 삼요소가 뭐지?”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 입니다.”
지금까지는 한숨이 안 나왔는데, 그 대답에는 한숨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건 구성의 3요소지. 현대소설의 3요소는 주제, 구성, 문체라네.”
등단까지 한 한국대학교의 문창과 4학년생이 이것조차 모르다니. 그런 표정으로 천병옥은 눈앞에 앉은 공태준을 바라봤다.
“인물, 사건, 배경으로 구체화되는 소설의 구성이란 곧 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건을 배열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주제는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사상을 뜻하며, 문체는 문장에 나타난 개성을 말하지. 그럼 묻겠네. 이것들 중 자네의 것이 대체 어디에 있지?”
천병옥의 질문은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타나토스와 에로스의 병치라는 작품의 주제에 대해 질문했고,
두 번째로는 작가가 의도적으로 구성한 하강 장면에 대해 질문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문체에 대해 물었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은… 신정호 작가의 것인가.”
“시, 신정호요?”
“하강 장면의 묘사는 윤태길 작가겠지. 그리고 같은 자음을 계속해서 나열하는 건 정미 작가의 솜씨야. 그 세 명한테 도움을 받았나?”
공태준의 동공이 흔들렸다.
‘…어떻게?’
지금까지 꽁꽁 숨겼다. 심지어, 자신을 도와준 세 명의 작가조차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저번보다 훨씬 좋아졌군. 구성과 필체를 잡았어. 하지만 여전히 주제의식이 좀 아쉽군. 이 정도는 내가 조금 도와주지.’
신정호 작가의 말이었고,
‘와, 저번이랑 다르게 완전 괜찮아졌잖아? 주제의 식이랑 필체가 완전 다른 사람 같은데? 그런데 여전히 구성은 좀 그저 그러네요. 여기서 하강 장면을 넣는 건 어떨까?’
윤태호 작가의 제안이었으며,
‘주제랑 구성은 완벽해져서 돌아왔네요.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은 건가? 그건 그렇다고 쳐도 여전히 필체는 좀 아쉬워요. 여기서 ㅂ을 많이 쓰면….’
정미 작가의 도움이었다.
공태준은 세 작가 사이를 오가며 그들까지도 완벽하게 속였다.
하지만, 천병옥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소설가가 다른 소설가의 소설을 알아보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그들의 직업은 어디까지나 읽는 게 아니라 쓰는 거였으니까.
하지만 평론가는 다르다. 읽는 게 평론가의 직업이고, 천병옥은 그런 평론가중에서도 실력적으로는 정상에 가까운 인물이다.
<네 사람의 머리>에서 느껴지는 다른 작가들의 흔적을 캐치하는 거야,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이 아니지. 귀 학생은 심지어 그 조합조차 똑바로 해내지 못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세 명의 작가를 오간 것이 실수였다. 세 작가의 스타일이 너무 달랐다.
장동건의 눈에, 브래드 피트의 코에, 아리아나 그란데의 입을 붙인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실험주의적 작품이라 하기에는 기발함이 부족하고, 일반적인 작품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기괴하군 그러니까 이건.”
졸작이다.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았다.
작품이라는 건, 노력의 결과로서 만들어 낸 창작물에만 붙일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작품이 아니다.”
그것이 <네 사람의 머리>에 대한 천병옥의 최종적인 평가였다.
동시에, 수상자를 결정하는 자리에서 끊임없이 공태준의 이름이 나왔던 이유이기도 했다.
“…이 죄를 물어 자네를 교내 징계위원회에 회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네.”
유서 깊은 학교의 행사에 똥물을 끼얹은 격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몇몇 교수들의 반대로 징계위원회는 회부하지 않도록 결정났네.”
공태준이 예뻐서는 아니고, 그의 부모가 상당한 재력가인 탓이었다.
“하지만 자네, <네 사람의 머리>를 교내 문학상에만 낸 게 아니었더군.”
공태준의 얼굴이 굳었다.
문창과의 전공필수과목인 ‘소설창작심화’ 시간.
공태준은 <네 사람의 머리>를 2학기 중간고사 과제물로 제출했다.
“징계는 피했지만… 중간고사에서 표절 작품을 인정해 줄 수야 없지.”
중간고사 과제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 말은 곧 F학점이라는 뜻이고, 전공필수과목이 F라는 것은 이번 학기에도 졸업은 물 건너 갔다는 뜻이었다.
“교수님!”
“그만.”
매달리는 공태준을 천병옥이 제지했다.
더 이상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하는 이유가 아니라 시간 문제였다.
“자네와의 상담 시간인 30분은 이미 지났네.”
천병옥은 시간에 철처한 남자였다.
* * *
“김형우 어딨어?”
강의실에 돌아오자마자, 공태준은 김형우를 찾았다. 형우는 강의실 뒤쪽에서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참이었다.
“이 개새끼!”
공태준은 머리끝까지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김형우에게 다가가 그대로 형우의 멱살을 쥐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툭-
그대로 형우가, 공태준의 팔목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강의실입니다, 선배. 적당히 하시죠.”
방학 내내 운동을 한 보람이 있었다. 공태준이 팔을 빼려고 했지만, 아무리 힘을 줘도 팔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팔을 잡힌 꼴사나운 모습으로, 공태준은 형우에게 울분을 토해냈다.
“너, 너 때문이야! 내가 학교를 못 다니게 된 건, 다 너 때문이라고!”
“난 또, 무슨 이야기라고.”
형우가 그런 공태준을 대놓고 비웃었다.
“저도 저번 학기에 선배 때문에 휴학했잖아요. 잊었어요?”
“이 자식이…!”
“선배도 휴학한 김에 저처럼 소설이라도 써 보는 건 어때요?”
형우가 싱글거리며 공태준의 팔을 놔 줬다.
덤벼 볼 테면 덤벼 봐라,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공태준은 자기보다 센 사람한테는 절대 싸움을 걸지 않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이 개새끼, 두고 봐. 내가 완전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그러시던가요.”
형우가 피식 웃었다.
* * *
“와, 진짜 통쾌하네.”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다!”
하굣길. 형우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연수와 의재는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공태준 그 새끼, 언젠가 한번 손봐주려고 했는데. 나대다가 F학점이라니, 꼴 좋다!”
“제 무덤을 제가 판 거지.”
“그럼 올해에도 졸업 못 하는 거예요? 나라면 차라리 올해 휴학하고 내년에 다시 학점 채우겠다.”
“그거 못 한다더라. 이미 휴학기간 다 썼대.”
“그럼 졸업도 못 하는데 학교는 다녀야 하는 거에요? 우와, 불쌍해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수의 표정에서는 단 한치의 측은지심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평소 행실을 잘했어야지.’
만약 공태준의 행실이 평소에 올바랐다면, 한다은 교수님이나 천병옥 교수님도 어떻게 졸업만큼은 할 수 있게 해줬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녀석은 평소에도 행실이 나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지는 스타일이랄까.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가는 공태준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형우는 가슴이 간질거리는 걸 느꼈다.
“…연수야.”
“왜요, 선배?”
“옛날 소설 보면 그런 말 많이 나오잖아. 복수는 덧없고 슬픈 거라고.”
“지금 덧없고 슬퍼요?”
“…아니.”
형우는 왜 옛날 사람들이 복수가 덧없다고 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치사한 놈들이라 그렇다.
좋은 거 지들만 하려고.
“복수란 거… 허망하지 않아.”
“그럼요?”
“존나 통쾌해.”
가슴속에 간질거리는 것은 곧 웃음이 되어 형우의 입가에 걸렸다. 에이 뭐야, 그렇게 말하며 연수가 형우와 의재의 팔짱을 툭 꼈다.
“그럼 선배님들! 오늘 날도 좋은데 삼겹살에 소주 어떠신가요? 공태준 엿 먹인 기념에, 형우 선배 입상한 기념 해서?”
“아, 미안. 나 오늘도 일이 있어서.”
먼저 거절한 건 의재였다. 연수가 볼멘소리를 냈다.
“대체 무슨 일인데 맨날 먼저 가요?”
“미안해, 나중에 내가 한턱 쏠게.”
“무슨 일인지라도 말해주던가.”
“나중에, 기회 되면.”
“…으으, 알겠어요. 그러면 형우 선배는요?”
연수는 기대감 넘치는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오늘 약속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요?”
“저기.”
형우가 교문 앞쪽을 가리켰다. 교문 앞에는 정장이 잘 어울리는 여성 한 명이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수의 눈이 길게 찢어졌다.
“…누구예요?”
“누구긴 누구야. 내 매니저지. 매니저님!”
“아, 형우 작가님!”
형우가 먼저 아는 체를 하자, 멀리서 지원이 종종거리며 뛰어왔다. 양손 가득히 뭔가를 들고 있었다.
“이건 또 뭐예요?”
“이번에 교내에서 상 받으셨다면서요. 출판사에서 드리는 선물이에요. 한번 뜯어 보실래요?”
뜯어보자, 안에는 형형색색의 후드티 몇 벌이 나왔다.
“다섯 개 샀으니까, 요일별로 다르게 입고 다녀요.”
“흐흐, 꼭 그럴게요. 고맙습니다.”
“고맙긴, 뭘요…. 아 그나저나.”
어색하게 웃던 지원이 갑자기 말을 돌렸다.
“뒤에 계신 분들 소개 안 해주실 거예요?”
지원이 말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형우의 뒤에서 어색하게 서 있는 의재와 연수였다.
출판사 직원 입장에서 보자면 문창과생이란 예비 작가들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지원이 눈독을 들이는 것도 당연했다.
“이쪽은 연수랑 의재. 문창과 다니는 애들이에요. 연수야. 이쪽은 서지원 매니저님. 내 담당이셔.”
“안녕하세요. 서연수예요.”
“안녕하세요, 서의재입니다.”
“반가워요. 서지원이에요.”
악수를 나눈 지원은 잠깐 의재와 연수를 번갈아 보며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두 분 남매세요?”
“제가 얘랑요?”
“제가 선배랑요?”
둘의 반응은 똑같았다.
“…아닌가 보네요.”
“대체 왜 그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을…?”
“두 분이 성씨가 같기에, 혹시나 해서요.”
“매니저님도 서씨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어, 그게… 두 분이 좀 닮은 듯도 해서.”
““아니거든요!””
둘이 또 동시에 대답했다. 이 정도면 남매로 착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 같았다. 연수와 의재가 싸울 듯해, 형우가 재빨리 흐름을 끊었다.
“그나저나 매니저님. 뵙자고 한 이유가 있을까요? 선물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아, 선물은 겸사겸사고요. 사실은 <전설의 보안관> 웹툰 초고가 나왔거든요.”
웹툰화가 결정된 지 거의 3개월 만의 성과.
분명 좋은 일이었지만, 지원의 표정은 그와는 정 반대로, 별로 기뻐 보이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나요?”
“그게 사실은요.”
형우의 질문에, 지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뭔가가 꼬인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