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멍애 : 와, 전보 완결하자마자 벌써 신작 ㄷㄷ
하꼬인생 : 이번에도 재미 미쳤다!
성유물 : 믿고 보는 참새치!
댓글창을 모니터링하던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입에 흡족한 미소를 떠올렸다.
“…역시, 난 사람은 난 사람이라니까.”
형우가 쓴 <아이언 타이거>는 고작 10화 만에 달피아의 무료 순위권에 올렸다.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5화 만에 선작 3천을 찍더니, 10화 때 벌써 선작 5천을 넘었던 것이다. 편집장인 공판석이 소리를 빽 질렀다.
“서 수석! 김형우 작가한테 선물 보냈어?”
“네, 보냈습니다!”
“그런데 왜 계약이 아직이야?”
“유료화 타이밍에 맞춰 계약하겠다는데요?”
일단은 성공했지만 계속 성공할지는 지켜봐야 안다는 것이 형우의 의견이었다. 지원은 그게 지나친 겸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계약 놓치면 서 수석이나 나나 시말서 쓰는 거야. 알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지원은 다시 모니터 속으로 눈을 돌렸다.
“헌터물이라….”
지원은 며칠 전 형우를 만난 것을 떠올렸다. 평소에 자주 가는 곱창집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생각해둔 게 없다고 했는데, 갑작스럽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며 연락이 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신작은 히어로물로 갈 생각입니다.”
“…히어로물이요?”
잠시 생각해보던 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서부극을 계속 쓰시는 건 어때요?”
지원이 생각하기에, 작가라고 모든 종류의 글에 능통한 것은 아니었다.
전문가물 전문 작가가 있고, 아카데미물 전문 작가가 있으며, 레이드물 전문 작가가 있다. 그런 작가들은 계속해서 한 장르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발라드 가수가 발라드만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스토리는 좋아요. 그러니까, 스토리는 유지하되 배경을 서부로 하는 건 어떻겠냐는 말씀이에요.”
“안 됩니다.”
형우가 일언지하에 고개를 저었다. 거절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서부극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라면, 히어로물은 미증유의 재난과 인간 사이의 갈등이 주된 테마가 된다.
“…소설의 모티브는 아버지거든요.”
형우의 아버지는 인간이 아니라 재난과 싸웠다.
간암이라는, 미증유의 재난 말이다.
“그 안에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투병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생각하며 쓴 소설입니다.”
그러니까 히어로물이여야 한다.
그 이야기까지 듣자, 지원은 뭣도 모르고 형우에게 소설의 배경을 바꾸라고 조언했던 자신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을 잘못한 것 같네요.”
하지만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고, 소설에 대한 감평은 또 다른 문제였다.
“그래도 히어로물은 지나치게 마이너한 장르에요. 미국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말인데, 혹시 한국식 히어로물을 써 볼 생각은 없으세요?”
“한국식 히어로물이요?”
“레이드물, 그러니까 헌터물 말하는 겁니다.”
미증유의 재난을 상대로, 여러 가지 스킬을 가진 헌터들이 맞서는 활극을 다룬 메이저 장르다.
“헌터물이라….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요?”
형우도 그 의견에는 반대 의사를 표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재난과 인간이라는 구도였지, 한국식이든 미국식이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지원의 조언을 들은 형우는 원래 미국식 히어로물로 기획했던 를 한국식 히어로물인 헌터물로 고쳐냈다.
그 과정에서 웹소설스럽지 않은 제목도 손을 좀 봤다.
“제목은 정해둔 게 있나요?”
지원의 질문에,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이언 타이거>요.”
“<아이언 타이거>라….”
쇠 철鐵에 범 호虎, 아버지인 철호의 이름을 영어로 바꾼 거였다.
“으음, <아이언 타이거>라….”
첫 질을 연재하는 작가라면 제목에서 이른바 ‘어그로’를 끌어야겠지만, <전설의 보안관>을 성공적으로 연재한 만큼 오히려 단순한 제목이 좋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기억하기도 쉽고, 안에 담긴 의미도 좋았다.
“완전 마음에 드네요. 작가님, 그걸로 가시죠.”
지원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원이 흡족한 표정으로 형우에게 잔을 건넸다.
아쉽게도 일이 바빴던 터라, 술이 아니라 사이다였다.
“신작 기념으로 언제 술이나 한잔할까요? 내일 저 시간 비는데….”
“내일은 좀 힘들 것 같아요. 학교 가는 날이거든요.”
형우가 아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 * *
다음 날, 형우는 개운한 몸을 이끌고 학교에 도착했다.
‘…오늘이 한국 대학교 문학상 발표날이지.’
약간의 긴장감을 느끼며 강의실에 들어가려는 형우의 발걸음이 멈칫했다.
“…태준 선배, 학교에 형우 선배랑 천병옥 교수님 관련해서 헛소문 퍼트린 거, 선배죠?”
강의실 안쪽에서 들려오는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 때문이었다.
익숙한 이유는 그 목소리의 주인이 형우의 친한 후배인 서연수라서 그런 것이고, 익숙하지 않은 이유는.
“진짜 무슨 열등감 있어요? 형우 선배한테 대체 왜 그래요?”
연수의 목소리가 여태껏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을 정도로 싸늘하고 날이 바짝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소문을 퍼트렸다고?”
연수의 말을 들은 공태준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섰다.
“말 함부로 하지 마, 후배 주제에. 네가 남자였으면 이미 주먹 날아갔으니까.”
공태준의 육체는 약하지 않았다.
여름에 바캉스에서 헌팅을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헬스장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태준이 연수에게 싸움을 건다면 승률을 10%도 장담하지 못할 것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연수는 운동, 그것도 격투기를 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공태준은 아무리 그래도 학교에서 자신을 패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엘리트 체육인을 진짜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지, 쉬지 않고 입을 나불거렸다.
“증거라도 있어? 내가 그 소문을 퍼트렸다는 증거 말야.”
“한국 대학교 리더 행사 때, 선배랑 천병옥 교수님이랑 같이 있는 걸 봤거든요?”
“유명한 평론가를 우연히 만난 김에 잠깐 인사를 나눈 것뿐인데, 그게 그렇게 책잡힐 일인가?”
연수가 아무리 쏘아붙여도 공태준은 슉슉 피해 나갔다. 이렇게 아예 뻔뻔하게 나와 버리니, 오히려 당황한 쪽은 연수였다.
“그리고 뭐? 열등감? 내가, 김형우한테? 허.”
그 기세를 몰아, 공태준은 억지를 계속 이어나갔다.
“순문학에 자신이 없으니 장르문학 쪽으로 도망친 놈한테 열등감이라니 나를 너무 물로 보는 거 아냐?”
“도망이라고요?”
사뭇 도발적인 단어선정에 연수가 반발했다.
“그게 왜 도망이에요?”
“그게 도망이 아니면 뭔데?”
공태준이 연수를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비웃음을 지었다.
“재능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쉽고 돈 잘 벌리는 분야로 튄 거지. 아니, 오히려 주제 파악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
자신의 가족은 부자다. 그것도 출판계에서 한가락 하고 있는 커다란 부자다.
거기에 자신은 등단도 했다. 비록 돈만 주면 누구나 등단시켜 주는 데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순문학에 등 돌리지 않고 등단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열등감을 가져. 오히려 녀석이 나한테 열등감을 가진다면 모를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연수야.”
연수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더 이상 말도 안 나왔다.
가끔 그런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한 변명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 공태준이 딱 그랬다.
공태준은 정말로, 자신이 형우보다 훨씬 더 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념도, 아집도 아니다. 그냥, 저 사람의 세계에서는 저게 진실인 것이고, 그러니 이 이상 말해 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거다.
“할 말 다 떨어졌나 본데.”
그리고 공태준은, 자신의 앞에서 입을 헤 벌리고 있는 연수를 보고 참으로 편리하게, ‘자신의 논리에 패배해서 반박을 하지 못한다.’라고 판단했다.
“아, 그리고 소문이라고 하니까 생각난 건데…. 김형우 그 녀석, 결국 한국대학교 단편 문학상 제출했다더라?”
“…네?”
“조교님한테 들었거든. 녀석도 진짜 멍청하지. 그냥 장르문학이나 얌전히 쓰면 될 걸, 왜 자진해서 쪽을 당하려고 할까?”
“저기요, 말이 너무…!”
“됐어.”
연수가 참지 못하고 공태준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그걸 제지한 건 형우였다.
“오호, 대박 작가님 오셨군.”
공태준이 비아냥거렸지만, 그냥 무시했다.
그대로 흥분한 연수를 끌고 나와 강의실 뒤쪽에 자리를 잡았다.
“심호흡 다섯 번 해.”
“후하, 후하, 후하, 후하, 후하.”
“물 좀 마셔.”
“꼴깍꼴깍…….”
“좀 진정됐어?”
“……네, 그런 것 같아요.”
화가 많이 난 연수가 천천히 숨을 골랐다. 형우가 그런 연수를 보고 씩 웃었다.
“저런 말 신경 쓰지 마. 공태준 성격 알잖아. 앞에서 욱하면 신나서 더 지랄하는 거.”
“그건 알지만… 그래도 화나잖아요.”
“흐음. 이걸 보면 화 좀 풀리려나? 아직까지는 비밀이긴 한데….”
형우는 주위를 살짝 둘러보더니,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연수에게 보여줬다.
“이건?”
연수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조교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문창과 4학년 김형우 학생 한국대학교 단편문학상 대상입니다. 조교실로 계좌번호 보내주세요.]
공태준의 도발에도 형우가 줄곧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이겼다는 걸 아니까.”
“허억.”
연수의 입이 왕- 하고 벌어졌다.
형우가 재빨리 검지를 들어 올렸다.
“쉿. 학교에서 발표할 때까지는 비밀이야. 그리고 또….”
형우가 사악한 표정으로, 공태준을 곁눈질했다.
“형우 그 자식, 지가 뭐라도 된줄 안다니까. 뭐 그 시답잖은 웹소설 좀 썼다고 순문학이 만만해 보였나?”
“이번에 광탈하면 정신 좀 차리지 않을까요?”
공태준은 이미 자신이 이겼다고 확신하며, 패거리를 모아두고 열심히 형우의 뒷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가 남몰래 씩 웃었다.
“이왕 떨어트릴 거, 높은 데에서 떨어트리는 게 더 재밌잖아.”
* * *
세 시간 후, 공보가 붙었다.
제44회 한국대학교 단편문학상 수상자.
대상 : 김 형우(문창과 4학년)
공태준이 이빨을 으득, 하고 씹었다.
* * *
“이건… 이건 말도 안 됩니다!”
최근에 만들어진 문창과의 두 번째 교수실에서, 공태준이 큰 소리를 냈다.
“말이 안 된다니.”
이번 학기부터 문창과의 교수로 임용된 천병옥이 다리를 턱 꼰 채로 공태준을 응시했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이건 순문학이 아니지 않습니까?”
공태준이 손에 쥐고 흔드는 건, 오늘 점심쯤에 공개된 형우의 소설이었다.
<영웅과 나>
며칠 전, 코피를 흘리며 형우가 썼던 소설은 한 편이 아니라 두 편이었다.
장편인 <아이언 타이거>와, 단편인 <영웅과 나>.
장편인 <아이언 타이거>가 병에 걸린 남자가 아들을 위해 힘을 얻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의 헌터물이었다면, 단편인 <영웅과 나>는 오히려 아버지보다 아들에게 좀 더 초점을 맞춘 작품이었다.
투병 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깨어나길 바라는 한 소년이, 아버지가 히어로가 되는 내용의 소설을 쓴다는 것이 주된 플롯이었다.
형우는 <아이언 타이거>를 장르소설 플랫폼에 연재했고, <영웅과 나>를 교내 단편 문학상에 냈다. 공태준은 그 부분에 딴지를 걸었다.
“…제가 대상이 아니라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이런 글이 대상이라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도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건 기껏해야 장르소설의 프롤로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습니까?”
“…내가 모집 요강을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천병옥은 서랍을 뒤져, 한국대학교 단편문학상의 개요를 꺼내 들었다.
“…내가 읽은 모집요강에는 오로지 좋은 소설만을 뽑는다고 쓰여 있는데. 귀 학생은 혼자 다른 모집 요강을 받은 모양이군.”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그저 좋은 글을 뽑겠다는 뜻이었다. 공태준이 반발했다.
“좋은 글이라는 게 순문학 아닙니까?”
“내가 뭘 가르치는지 잊은 모양이군.”
천병옥이 교수실에 놓인 프린트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장르문학의 이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장르소설이 나쁜 것이라면, 그걸 가르치는 나는 정말 상종도 할 수 없는 사람일 테지. 귀 학생은, 나더러 나쁜 것을 가르치는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그 말을 들은 공태준의 입이 앙다물어졌다.
여기서 말을 잘못했다가는, 진짜로 교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게 될 수가 있다. 상대는 문단의 미친개 천병옥. 더 이상 가는 건 위험하다.
“그러면, 다른 질문을 하겠습니다.”
공태준은 대신 다른 부분을 공략했다.
“제 소설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이 소설보다 못할 리가 없습니다. 분명 뭔가 착오가….”
“자기 소설에 대한 확신이 가득하군.”
천병옥이 비꼬듯이 그렇게 말했다.
“자네의 소설이라. 분명 <네 사람의 머리>라는 작품이었지. 기억이 나.”
공모전의 결과에 대해 토론할 때, 교수들의 입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었던 작품은 두 개였다.
“하나는 형우 학생이 쓴 <영웅과 나>였고, 다른 하나는 자네가 쓴 <네 사람의 머리>였네.”
“그 말은…!”
그 이야기를 들은 공태준이 반색했다.
“제 작품도 그만큼 뛰어나다는 이야기입니까? 아깝게 김형우 녀석에게 졌다, 그런 말씀이시죠?”
“아니.”
천병옥이 단호하게 말했다.
“거의 만장일치로 대상은 <영웅과 나>였어. 자네는 다른 까닭으로 이름이 나왔지. 마침 찾아왔으니 묻고 싶군. 공태준 학생.”
“…네?”
“이 소설, 자네가 쓴 게 정녕 맞는가?”
공태준은 조금 뜨끔했지만, 양심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물론입니다,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