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다음 날, 학교에는 형우가 한국대학교 단편문학상에 도전한다는 소문이 쭉 퍼졌다.
“모타(모두의타임)에도 그걸로 난리던데.”
“장르소설 쓰던 사람이 갑자기 순문학 쓸 수 있을까? 너무 욕심 아냐?”
“둘 다 똑같이 글이잖아.”
“에이, 축구랑 농구가 둘 다 공으로 한다고 같은 운동이냐?”
학교 안에는 온통 그 이야기로 가득했다. 공태준은 그 분위기를 보며 흡족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슬쩍, 몰래 휴대폰을 확인했다.
익명
[야ㅋㅋ 문창과에 김형우라고 있지? 장르소설 쓰는 애. 걔 이번에 한국대학교 문학상 낸다더라. 지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익명
[이 참에 털리면 표정 볼만 할 듯 ㅋㅋ다시는 얼굴 못 들고 다니겠지?]
익명1 : 이거 보고 도망치는 거 아님?
익명3 : ㅋㅋㅋㅋ그럼 웃기긴 할 듯.
익명4 : 런형우 ㅋㅋㅋ
어제, 돈가스집에서 형우와 한다은의 이야기를 엿들은 공태준은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인 모두의 타임에 그 소문을 쫙 퍼트렸다.
물론 형우는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좋게 봐줘야 가능하면 해 보겠지만 힘들 것 같습니다- 정도의 뉘앙스였지만, 공태준은 악의적으로 소문을 부풀렸다.
‘안 내면 도망쳤다고 소문내면 되고, 만약 내면….’
그대로 짓밟아주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며, 공태준은 자신의 휴대폰을 바라봤다.
‘…이거라면 무조건 이길 수 있다.’
그렇게 확신하며, 공태준은 방학 내내 쓴 소설을 내려다봤다. 그냥 소설이 아니다. 무려 세 명의 현직 작가에게 첨삭을 받은 소설이었다.
‘…그 사람들 뒤 닦느라 고생 좀 했지.’
정확히는 자신이 아니라 엄마가 고생했다.
출판업계에 영향력을 고루 행사하는 공태준의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너무나도 사랑했다. 이기고 싶다는 한마디 때문에, 은퇴한 작가를 세 명이나 수소문해 줄 정도로 말이다.
‘아무리 봐도 진짜 잘 썼단 말야. 역시 나는 천재가 분명하다니까.’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의 문장이 사라지고, 자신이 구상한 스토리도 희박해졌지만, 공태준은 그 소설을 자신의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세 명의 작가에게 첨삭을 받은 소설.
거기에,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기간.
‘이건 무조건 이기지.’
일주일 뒤 자신의 바닥을 드러내며 이불을 뻥뻥 걷어찰 형우의 모습을 상상하며, 공태준은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 * *
“…그런데 형우 선배는 왜 안 오는 거야? 연수, 너는 뭐 좀 알아?”
그렇게 묻는 것은 연수의 동기인 구태희였다. 연수가 태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형우 선배 안 온대.”
“…뭐야? 땡땡이야?”
“땡땡이는 아니고. 선취업 후학점 제도인가? 그거 써서 가는 거야. 글 관련해서 생각할 게 있다면서 고향 좀 다녀온다고 하더라고.”
“고향에 가서 작품을 구상한다고?”
구태희가 입을 헤, 하고 벌렸다.
“…헤밍웨이야 뭐야? 완전 멋있잖아?”
* * *
같은 시간, 형우의 고향집.
퍼벙- 펑!
“생일 축하하오, 누님.”
“생신 축하드려요, 어머니!”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는 갑자기 눈앞에서 터진 폭죽에 적잖게 놀랐지만, 놀란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시끄럽게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생일이잖아요?”
능청스럽게 대답한 형우가 윤아의 옆에 딱, 붙었다.
“생일이라, 벌써 그렇게 됐니?”
요즘 하도 농사일이 바빴던 탓에, 윤아는 오늘이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고맙구나.”
“케이크도 사 왔어요. 드세요.”
고풍스러운 글씨로, ‘생일 축하합니다!’ 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케이크는 한 달전에 예약해야 한다는 강남의 유명 파티시에가 만든 수제품이었다.
“…뭘 이런 것까지.”
“한번 드셔 보세요. 좋은 거예요.”
“잠깐, 잠깐. 그냥 먹는 게 아니지.”
그렇게 핀잔을 준 민준은 그대로 생크림을 콕, 하고 찍어 윤아의 코에 슥 발랐다.
“…뭐 하는 짓이니?”
“누님, 그, 그게….”
“푸흡!”
웃음을 터트린 건 형우였다. 코에 생크림을 바른 채로 엄한 표정을 짓는 어머니가 웃겨서였다.
“…이것들이?”
그렇게 말하며, 어머니는 다섯 손가락에 생크림을 발라서, 민준의 얼굴을 쓱, 하고 문질렀다.
“으윽.”
되로 주고 말로 받은 민준 삼촌이 그런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마치 군대의 위장 크림을 바른 것 같은 모습이라,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아 맞다. 엄마, 선물도 있어요.”
“…선물?”
“여기요.”
형우는 가방을 뒤져서 팜플렛 하나를 꺼냈다. 고향 근처에 있는, 유명한 3성급 휴양지의 광고다.
“예약해 뒀어요. 오늘은 일하지 말고, 가서 편하게 쉬어요.”
그 모습을 본 윤아가 역정을 냈다.
“또 시키지도 않은 짓을, 그게 얼만데!”
“출판사 이름으로 예약해서 싸게 했어요. 대신 취소는 안 된대요.”
취소가 안 된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짠돌이인 어머니는 절대 가지 않으려 할 거였다.
“…일을 안 하면 농작물은 혼자 자란다니?”
“옆집 춘희 할머니한테 이미 부탁드렸어요.”
형우가 사온 녹용과 홍삼을 잔뜩 받아든 춘희 할머니는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틀이든 삼일이든 밭일은 얼마든지 맡기라고 했다.
“그러니까 엄마, 놀러 갔다 와요.”
“너랑 나랑 민준이랑 셋이서 말이냐?”
“에이. 셋이라뇨.”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방은 두 개만 예약해 뒀어요. 엄마랑 민준 삼촌, 둘만 가는 거예요. 저는 일이 좀 바빠서요.”
“…둘만 가라고?”
윤아가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듯이 형우를 바라봤다. 형우가 씨익 웃었다.
“솔직히 민준 삼촌 많이 좋아하잖아요?”
“…그, 그게 무슨 소리냐?”
형우의 직접적인 말을 들은 윤아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당황하는 걸 보니까 맞네.”
“…아니야, 뭔가 오해가….”
“오해는 무슨 오해에요. 둘이 좋아하는 거, 옆집 춘희 할머니도 알걸요?”
“그, 그 정도인가….”
어색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걸 보니, 정말로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은 둘이 다녀 오는 거로 해요.”
전부터 계획해 왔던 일이었다.
오래전에 아버지를 잃고, 자신을 키우기 위해 홀로 애써왔던 어머니를 보며 형우는 늘 가슴이 아팠다.
“솔직히, 저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너무 좋아요. 하지만, 민준 삼촌도 그만큼 좋아요. 민준 삼촌이라면 분명 어머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예요. 그렇죠, 삼촌?”
형우가 민준을 바라보고 싱긋 웃었다. 민준은 얼굴이 새빨간 채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철호 형님 보기 민망해서 말은 안 했지만, 솔직히 누님이 좋소. 나중에 죽어서 철호 형님 만나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 몇 대 맞겠소.”
익살스러운 말이었지만, 어머니는 웃는 대신 소녀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민준이, 너는 젊은 애가 왜 그러냐? 더 좋은 여자 만나서 결혼할 수 있어. 괜히 나 같은 것보단….”
“누님이 어때서요? 예쁘기만 하구만.”
민준이 조심스럽게 윤아의 손을 잡았다.
‘삼촌도 꽤 하네.’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어머니를 보며, 형우가 콧잔등을 쓱, 문질렀다.
* * *
“…아버지, 어머니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민준의 차를 타고 떠나는 둘을 보면서, 형우는 하늘을 보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왠지 코가 시큰해졌다.
“흐응, 일단 첫 번째 일은 해결됐고….”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손바닥을 툭툭 쳤다. 어머니의 생일 이벤트는 이곳에 온 커다란 이유 중 하나이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만 온 것은 아니었다.
‘차기작도 생각해야 하고, 한국 대학교 문학상도 있어.’
소재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형우는 천천히 고향의 땅을 걸었다. 첫 작품도 이곳에서 나왔으니, 두 번째 작품도 어쩌면 얻을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에서였다.
“뺘아악, 뺘악!”
그런 형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참치는 광활한 자연을 본 것이 오랜만이라 기쁘다는 듯 하늘을 보며 우짖고는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갔다.
“야, 참치야! 천천히 가!”
“뺘아악!”
마치 쫓아오라는 듯 날아간 참치와 도착한 곳은 한 허름한 창고 앞이었다.
“…이런 게 우리 마을에 있었나?”
“뺘악!”
그렇게 중얼거리는 사이 참치는 외벽에 난 구멍을 통해 그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어어? 참치야?”
“뺘아악!”
창고 안에서 참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걸 어쩐다.”
결국 창고에 들어가기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일단 자물쇠가 하나 걸려 있기는 했다.
“잠긴지 엄청 오래됐나 보네.”
자물쇠가 잔뜩 녹슬어 있는 걸 보니, 아무도 들어가지 않은 지 꽤 오래된 폐창고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한 형우는 그대로 바닥에서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들었다.
“끄응, 차!”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여 나뭇가지에 체중을 실어 내리쳤다. 녹슨 자물쇠는 순식간에 티딩- 하는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대로 몇 번 걷어차니 문은 바로 꽈당, 소리를 내며 열렸다.
“콜록, 콜록!”
바닥에서 뿜어져 오르는 연기를 보며 형우는 재빨리 코를 가렸다. 먼지가 사이로 창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고장 난 농기구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포대, 버려진 가구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즐비해 있었다. 버려진 창고가 아니라, 버려진 것들을 넣어놓은 창고인 것 같았다.
뭐, 절대 열어볼 일이 없다는 점에서 별 차이는 없었지만.
“뺘악! 뺘악!”
그리고 참치는, 창고 구석에 위치한 플라스틱 상자 위에 앉아서 부리를 콕콕콕 찧고 있었다.
“뺘아아악!”
마치 이 상자 빨리 열어! 라고 하는 것 같았다.
“…이게 뭐야?”
형우는 상자 위에 앉은 먼지를 손바닥으로 슥, 닦아냈다. 그 모습을 본 후에야 참치는 다시 형우의 어깨 위로 퍼드득 날아갔다.
“…헉.”
형우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먼지 너머로 보드마카로 적은 글씨가 보였다. 반쯤 휘발되어 있었지만, 어떻게 읽을 수는 있었다.
H, E, R, O. 라는 제목이 적힌 종이 노트. 상자 안에는 그런 노트가 다섯 권 정도 들어 있었다.
“이게 여기에 있었구나.”
형우는 그 노트를 알았다. 아니, 애초에 잊을 수가 없는 흔적들이었다.
아픈 아버지가 즐거워하기를 바라며, 아픈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기를 꿈꾸며, 중학생이었던 자신이 처음으로 썼던 소설이었으니 말이다.
스르륵-
형우는 조심스럽게 노트 한 권을 집어서 폈다. 그 안에는 빼뚤빼뚤한 손글씨가 빼곡했다.
[…김철호는 히어로였다. 김철호의 능력은 아주 강했다. 바닥을 발로 차면 하늘을 날 수 있었고, 눈에서는 레이저가 나왔다….]
[하지만, 김철호가 처음부터 강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약했다. 다른 사람보다도 약했다. 김철호는 원래 병에 걸려 누워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슈퍼 의사가 만든 슈퍼 수술 덕분에 강해졌다.]
소설을 읽던 형우가 자기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슈퍼 수술이 뭐야, 슈퍼 수술이….”
중학생치고도 상당히 빈약한 어휘가 아닌가.
그대로 다음 권을 펼쳐들었다.
[김철호가 깨어난 날, 나사에서는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김철호는 자신이 운석을 잘 부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일단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을 부쉈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조금 무너트렸다.]
“…그걸 대체 왜 부숴?”
1권에 비하자면 어휘력이 조금 더 나아졌지만, 전개가 상당히 웃겼다.
[김철호가 만든 백신 덕분에 백혈병이 나은 소녀는 빙그레 웃었다.]
3권에서는 비행 청소년을 때려잡은 뒤 백신을 만들어 사람들을 암세포로부터 해방시켰다.
[사람들은 백신으로는 암을 치료할 수 없다고 했지만, 김철호가 만든 백신은 그걸 가능하게 했다. 백신 개발에 만유인력과 암흑에너지 공식을 더한 성과였다.]
…4권을 쓸 때는 아마 암세포는 백신이랑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 같다. 그래서 이상한 설정이 좀 붙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권인 5권.
[그렇게 김철호는 운석을 부수고 세상을 구해냈다. 사람들은 슈퍼 영웅의 탄생을 축하하며 김철호를 세계대통령으로 추대했다.]
아팠던 김철호가 영웅이 되어, 떨어지는 운석을 상대로 세상을 구해내는 결말까지,
형우가 추억하는 그대로의 이야기였다.
“약간 부끄럽네.”
그렇게 웃으면서, 노트를 접으려는 순간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슈퍼 영웅 김철호에게는 김형우라는 슈퍼 아들이 있었다.]
결말의 뒤쪽에 적혀 있는 처음 보는 문장.
삐뚤빼뚤하지 않은, 정갈한 글씨체는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니다.
[만약 슈퍼 아들이 없었다면, 김철호는 절대 슈퍼 영웅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슈퍼 영웅 김철호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백악관으로 떠나기 전, 슈퍼 아들 김형우에게 속삭였다.]
자신도 모르는 에필로그를 보는 형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주륵 흘렀다.
[네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아들아.]
중학생 때부터 대학교까지 10년.
10년을 건너서 온 아버지의 부탁을 바라보며.
“네, 아빠.”
먼지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눈물을 닦으며 약속은 지킨 게 맞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P.S 그런데 오타가 너무 많구나. 내 이름이 한 페이지에 한 오십 개는 들어가 있는 것 같아 – 슈퍼 영웅 김철호가.
마지막의 익살스러운 추신을 보며, 형우는 피식 웃었다.
“울면서 웃으면 엉덩이에 뿔 난다던데.”
형우는 그 소설을 소중하게 다시 상자에 담았다. 그대로 꼭 끌어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소재, 찾았다.’
병마에 시달리다가 일어났던 영웅과, 그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몽글몽글 자라났다.
그 이후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대로 소설을 들고 온 뒤 집에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주륵,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으며, 형우는 흡족하게 웃었다. 노트북 위에는 새로운 소설 한 편이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