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한국대학교 문학 공모전.
형우가 1학년 때부터 늘 도전했지만, 늘 아쉽게 놓쳤던 상이었다.
“등단은 아니지만, 여기에 당선된다면 너도 문단에서 나름의 대접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다.”
잠깐 생각한 뒤, 형우가 대답했다.
“…저도 생각 같아서는 하고 싶지만, 최근에 일이 좀 바빠서요. 새 작품을 쓰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솔직히 말해서 교내 공모전이 탐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때가 나빴다.
지금 형우에게 가장 급한 것은 <전설의 보안관>의 마무리와, 그 이후의 차기작을 구상하는 일이다. 교내 공모전에 할애할 시간은 없었다.
평소에 생각해 두었던 소재라도 있었다면 모를까, 그런 것도 없는 판이니, 이런 시기에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심력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구나.”
한다은은 조금 실망한 것처럼 보였지만, 제자의 의견을 존중했다.
“너도 집필하고 있으니 무턱대고 부탁하기는 어렵구나. 하지만,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들러 주렴. 예전에 써 놨던 것도 괜찮으니.”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으음, 여기 돈까스는 언제 먹어도 참 맛있단 말이지. 나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 가 봐야겠다. 수고하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이 돌아간 뒤, 형우와 의재는 수다를 떨며 남은 돈까스를 마저 다 먹었다.
“계산이요. 만 이천 원 맞죠?”
그대로 계산하기 위해 지갑을 꺼내 들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손사래를 쳤다.
“아까 교수님께서 다 계산하고 갔다, 이놈아!”
“어어, 정말요?”
나중에 감사하다고 해야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뒤에서 한 무리의 학생들이 다가왔다.
방금까지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공태준 패거리들이었다.
“저희 것도 계산하셨겠죠?”
“…학생들 건 계산 안 했는디?”
“뭐라고요?”
한다은 교수님은 제자의 밥값을 대신 내 줄 정도로 대단하신 분이었지만,
제정신 아닌 교수는 제자의 밥값을 계산할 줄 몰랐다.
“…돈까스 값 정도야, 내가 내지 뭐. 쟤네들 가난해서 교수님이 대신 내줬나 본데….”
물론, 공태준은 그 와중에도 기적적인 정신승리를 잊지 않았다.
* * *
학교를 마치자마자, 형우는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바로 지원을 만났다. 차기작을 위해서였다.
차기작次期作.
웹소설로 성공한 사람은 의외로 많지만, 웹소설로 꾸준히 성공하는 사람은 그만큼 많지 않다. 예술과 다른 직종의 가장 큰 차이랄까.
이전 작의 성공이 다음 작의 성공을 담보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곡만 유명한 가수, 한 작품만 유명한 화가, 한 시리즈만 유명한 소설가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첫 번째 작품이 요행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두 번째 작품을 써 보는 수밖에는 없다는 말이죠.”
잘 익은 곱창 하나를 형우의 그릇에 올려주며, 지원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차기작 구상하신 게 좀 있나요?”
“…아직까지는 딱히 와닿는 게 없네요.”
“으음….”
며칠 전, 형우는 302화를 끝으로 지난 8개월 동안 썼던 <전설의 보안관>을 완결지었다.
“지금 사이트에 올라간 게 270화니까, 대충 30일 정도는 시간이 있긴 해요. 아니면 완결 기념으로 조금 휴식을 취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형우가 고개를 저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는 속담답게, 형우는 ‘참새치’라는 이름이 피크를 찍은 지금의 시기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지금 작품의 연재가 끝나면, 공백기 없이 바로연재를 시작하고 싶어요.”
하지만 차기작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은 지금으로서는 그저 당찬 포부에 불과했다. 잠깐 고민하던 지원이 넌지시 운을 띄웠다.
“그러면 혹시… 출판사에서 좀 도와드릴까요?”
“기획소설이요?”
기획소설企劃小說. 출판사에서 주제와 컨셉, 대강의 줄거리를 정하고, 작가는 그에 맞춰 글을 쓰는 식의 방식이다.
보통 게임이나 드라마 등 원작이 있는 작품을 소설로 각색할 때 사용하는 방법인데, 요즘에는 딱히 원작이 없는 경우에도 기획소설을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형우는 지원의 요청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아직 그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아요. 그냥, 가끔 이야기를 나누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계속 막히면 그때 가서 부탁하도록 하지요.”
“흐음, 최대한 빨리 결정해 주세요. 슬슬 본격적으로 학교 수업도 시작되겠죠?”
“네. 맞아요. 그래서 이번 주는 좀 바쁠지도 몰라요.”
아무리 학점 관련 혜택을 곱빼기로 받았다고 한들, 평소보다는 바빠질 게 분명했다. 그 전에 <전설의 보안관>의 마무리 작업을 완료할 계획이었다. 그 말을 들은 지원이 한숨을 푹 쉬었다.
“형우 님도 바쁘시네요. 저도 바빠 죽겠거든요. 공모전도 준비해야 하고….”
“공모전이요?”
“네. C&N에서 매년 이쯤 되면 공모전을 크게 열거든요.”
형우 웹툰 프로젝트에, 공모전에, 이번에 대량 고소까지. 지원은 말 그대로 몸이 세 개 있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특히 이번 공모전은 엄청 중요해요. 작년에는 우승자가 변변치가 않아서 그냥 대상을 안 냈었거든요. 욕을 얼마나 먹었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진저리가 난다는 듯, 지원이 이를 뿌득 갈았다.
“…형우 님도 혹시 좋은 작가 지망생 있으면 꼭 좀 소개해 주세요!”
“네, 꼭 그럴게요.”
“꼭이요, 꼭! 꼭꼭꼭꼭!”
…닭인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다행히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꺼냈다면 또 아재개그를 한다며 한 소리 들었을 게 뻔했으니까.
“형우 작가님, 혹시 이다음에 일정 있으세요?”
“일정은 없고, 집에 가서 글이나 좀 쓰려고요.”
“집이라면… 이번에 이사하신 그 방이요?”
최근 형우는 지원의 도움을 받아 학교 근처의 투룸을 싼값에 계약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형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귀신 나온다는 말 때문에 그래요?”
“네.”
처음에는 싼값에 덜컥 계약했지만, 계약하고 나니 신경이 쓰인다고 할까.
“오늘 처음으로 거기서 자 보는 건데, 진짜 귀신 나오면 어떡할까 싶어요.”
“에이, 설마. 그냥 한 말이지 귀신이 진짜로 나오겠어요? 형우 작가님, 그런 거 안 믿으시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안 믿어요?”
부적에서 튀어나온 참새랑 같이 살고 있는데.
오컬트를 안 믿을 리가.
* * *
“…왜 이렇게 소름이 돋지?”
집에 들어온 지 세 시간 째. 작업을 하는 동안 귀신이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뭔가 흠칫흠칫한 기분은 계속 들었다.
‘…저건 그냥 바람 소리야. 플라시보라고, 플라시보.’
플라시보, 혹은 피그말리온 효과.
있다고 생각하면 진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효과다. 간단하게, 엘리베이터를 혼자 탔을 때 여기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오싹한 기분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차라리 귀신이 나오면 나으련만, 나오지 않은 채로 나올 것 같은 기분만 드니 그게 더 문제였다. 소설에도 도저히 집중되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이래서야 작업하기 힘들겠는데.’
싼값에 덜컥 계약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귀신 이야기는 좀 거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귀신은 무슨 귀신이야.’
만에 하나 진짜로 나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계약한 집이고, 살아야 하는 집이 아닌가. 어차피 학기 중에는 계속 머물러야만 했다.
그래서, 알맞은 격언을 하나 떠올렸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어.’
귀신 나오는 상황을 어떻게 즐긴다?
답은 곧이어 나왔다.
“…생각해 보니, 귀신 나오면 좋은 거 아냐?”
이어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공포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 시리즈였다.
그 공포에 질린 기자들이 감독에게 어떻게 이런 무서운 걸 떠올렸냐고 질문했을 때, 프리드킨 감독은 ‘경험’이라고 대답했다.
실제 경험은 아니고, 꿈에서의 경험이었다. 꿈에서 귀신을 봤는데, 그 모습이 너무 무섭고도 생생해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프레드릭이 꿈에서 본 장면이 바로 <엑소시스트>에서 제일 무서운 장면으로 뽑히는, 귀신에 들린 딸이 몸을 기괴하게 뒤튼 채 계단을 기어 내려오는 장면이다.
“꿈에서 봐도 그 정돈데, 실제로 보면 완전 대박 소설 쓸 수 있는 거 아냐?”
남들이 들으면 정신 나갔다고 할 법한 말이지만, 형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귀신 한 번 보고 잠 좀 설친 대가로 <엑소시스트> 같은 걸 만들었으면 완전 남는 장사가 아닌가 싶었다.
“차기작은 공포물인가.”
형우는 계속해서 귀신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내용은 조금 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귀신아 절대 나타나지 말아라! 이런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정반대였다.
“귀신아, 제발 제발 제발 나타나 줘!”
그 외침을 누군가 들은 걸까.
빠각빠각, 빠가각.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렸다.
“벌써?”
형우는 뭔가에 홀린 듯, 펜과 노트를 꺼내 들었다. 공포영화에서는 보통 이런 사람이 제일 먼저 귀신한테 당하곤 한다.
‘…아냐, 요즘 공포물은 클리셰도 잘 비틀어서, 처음에 트롤링하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기도 해. <미스트>만 봐도 그렇잖아?’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 같지 않은 변명을 했다. 무서운 느낌이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소설에 대한 열망이 귀신에 대한 공포보다 더 컸다. 아니, 그 둘은 사실 같았다.
소설가는 감정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니까.
아들을 잃은 셰익스피어의 슬픔은 <햄릿>이 되었고, 프레드릭 감독의 공포는 <엑소시스트>가 되었다.
기차를 보고 어렴풋이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라고 느낀 조앤.K.롤링의 노스텔지어는 <해리 포터>라는 최고의 학원 소설로 거듭났다.
‘나라고 못 할 거 있어?’
그러니, 자신도 공포를 소설로 바꾸어내리라.
소설가라면 응당 흔치 않은 경험을 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는 거다.
빠각빠각.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펜과 노트를 든 채로 소리의 근원을 서서히 추적해 나갔다.
소리는 화장실에서 들려왔다. 형우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제발 귀신 있어라. 제발!’
어둠 속에서 뭔가가 휙, 날아올랐다.
놀라지는 않고, 실망했다.
귀신이라면 날아오지 않고, 형우를 향해 뛰쳐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천장 같은 데 붙어 있거나, 아니면 미친 듯이 웃거나, 제멋대로 흔들리거나, 적어도 둥둥 떠서 왔을 거다.
아무튼 날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날개가 없으니 사람이 죽어서 된 귀신도 날개는 없다.
“……너였냐.”
“뺘아악!”
빠각거리는 소리의 정체는 귀신이 아니라 참치였다. 정확히는, 참치가 화장실의 벽면에 부리를 찧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그 감각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고양이가 밧줄을 좋아하는 거랑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면 이해는 됐다. 형우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귀신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새로운 소재에 미쳐 있는 형우답게, 안도감보다는 실망감이 더 컸다.
“뺘아악?”
그런 형우의 곁으로 참치가 표로롱, 날아 들어왔다. 참치의 부리에는 뭔가가 물려 있었다.
“이건 뭐야, 참치야?”
“퉤.”
참치가 입에서 뭔가를 뱉었다.
노란색의, 아주 오래된 듯한 종이 뭉치였다.
그 위에는 알 수 없는 빨간 글씨도 쓰여 있었다.
“이건 분명…….”
“뺘악.”
“……쓰레기잖아. 왜 쓰레기를 물고 온 거야, 참치야?”
종이 뭉치를 집어 그대로 창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날 유달리 깊게 잠든 형우는 꿈을 꾸었다. 한 남자가 형우를 향해 고개를 푹 숙이는 꿈이었다.
[…네 덕분에 이 집의 주박에서 풀려났어.]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언젠가 이 은혜를 꼭 갚으마.]
그 순간, 형우는 잠에서 퍼뜩 깨어났다.
“…….”
형우는 실망했다.
꿈속에서 나온 귀신은 무서운 짓도 안 하고, 나쁜 짓도 안 했다.
“안 무섭잖아.”
소설 소재로 쓰기에는 아주아주 부족해 보였다.
그렇게 좋은 말만 하고 쓱 사라져 버리다니.
“나쁜 짓을 하나도 안 하다니……. 진짜 나쁜 귀신이네.”
소재를 주면 좋은 귀신이고, 소재를 안 주면 나쁜 귀신이다.
그러므로 나쁜 짓을 해야 좋은 귀신이고, 좋은 말만 하면 나쁜 귀신인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오 분 후,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형우는 꿈의 내용을 적당히 잊어버린 채로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