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55화 (55/200)
  • #54

    교내 공원의 벤치에 앉아, 천우희는 하늘을 바라봤다.

    “진짜 날씨 좋네.”

    대학교, 그건 그녀의 인생에 없었던 단어였다.

    정확히는 있을 수 있었으나, 포기했던 것이다.

    ‘만약 아빠의 말을 따랐다면 어땠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 말대로 대학을 가서 순문학을 계속 파고들었더라면. 문단에 이름을 올리고, 아빠와 함께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었더라면….

    “……괜한 생각이야.”

    천우희가 고개를 저었다. 만약을 상정하는 건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다.

    스스로 집을 나오고, 스스로 장르문학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스로, 그 길을 포기하려고 한다.

    오늘은, 한다은이 주었던 일주일 유예의 마지막 날이었다.

    “이게 소설이라면… 고구마라고 욕이 와장창 달릴 상황이네.”

    주인공이 왜 저러냐. 왜 당장 아버지의 뺨을 갈기지 않고 괜한 희생이나 하고 있냐, 당장 하차한다. 그런 댓글들이 달렸을지도 모른다.

    당연한 일이다.

    하나도 극적이지 않으니까, 클라이맥스도 카타르시스도 없으니까.

    ‘내가 생각해도, 진짜 별로네.’

    자신이 작가였다면, 이런 순간에 반드시 클라이맥스를 넣었을 거다. 예컨대,

    수양대군이 사로잡은 거대한 호랑이.

    비 오는 날, 가정부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

    조폭들의 연회 한가운데서 들리는 흐느낌.

    복수에 실패한 남자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질문이 틀렸으니 옳은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라는 비정한 선언 같은 것.

    혹은, 자조하는 자신의 뒤를 덮어오는 짙은 그림자 같은 것 말이다.

    “…그러냐.”

    천우희의 시선이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그 끝에 있는 건, 환자복을 입은 자신의 아버지 천병옥이었다.

    “…여긴 어떻게?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천우희의 움직임이 뚝, 하고 멈췄다.

    “간호사 몰래 도망쳤다.”

    “…그게 돼?”

    “되더구나.”

    지금쯤, 병원에서는 난리가 났을 테다. 하지만 세상에는 병실에 입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는 법이다.

    “…왜 그런 거냐?”

    “뭐가.”

    “몰라서 묻는 건 아니잖니.”

    저 –니. 로 끝나는 어미가, 천우희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어미는 지나치게 친절한 느낌이 든다.

    “왜 그런 거냐고 묻기에는 좀 늦었는데. 10년 전에 물어봤어야지. 내가 집을 나갔을 때.”

    “이제 와서 시시비비를 가리기엔 너무 늦었지. 지금 내가 할 말은 이것뿐이다.”

    천병옥이 자신의 딸을 마주봤다.

    “너는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어. 당장 그만 둬.”

    그 말을 들은 천우희는 코웃음을 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만두면?”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누군데.

    “그러면 아빠는 골방 노인이 되는 거야. 평생 배운 건 아무 쓸모도 없이, 그렇게 늙어가는 거라고.”

    천우희가 가까스로 입을 움직여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간단한 산수잖아. 무능력한 아버지와 작가 딸, 혹은 교수 아버지와 강사 딸. 백만 명한테 물어봐도, 백만 명이 다 후자가 낫다고 할걸.”

    “…우희야.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천우희의 표정이 천천히 변했다.

    비웃어 주려고 했는데, 표정이 잘 안 나왔다.

    “…10년 전, 아빠는 내 앞에서 내가 쓴 소설을 나 스스로 찢어 버리게 했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지?”

    형우에게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천우희는 그 일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술을 엄청나게 마시고, 나한테 모지게 굴었잖아. 기억 안 나?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잖아. 아빠는 가족보다 꿈이 더 중요해.”

    “그렇게 말하지 마.”

    “아빠 딸이니까 나도 알아. 나도 똑같았으니까. 몰래 집을 나갔으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받은 게 조금 더 많긴 하네.”

    천우희는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빠와 함께 동화책을 읽으며 글을 배웠던 기억들이다. 처음으로 쓴 아기 고양이와 두더지가 나오는 동화를 보고 칭찬을 받았던 일과, 그 상으로 마트에서 고양이 샤프와 안 매운 치약을 받았던 일 같은. 시시콜콜한 기억들이었다.

    “그러니까, 이걸로 갚는 셈 쳐. 난 원래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니까. 그러니까 잠자코 있어.”

    “…그만둬라.”

    “날 내쫓은 건 아빠잖아!”

    참다못한 천우희가 소리를 질렀다.

    “대체 뭐가 문제인데? 이제 와서 착한 척하고 싶은 거야? 나도 사실은 좋은 아빠였다. 그러고 싶은 거냐고?”

    “넌 장르문학을 쓰고 싶어 했잖아!”

    천병옥도 마주 소리쳤다. 어안이 벙벙해진 천우희의 귓가로,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니까, 넌 내 딸이면 안 됐어! 그날이 무슨 날이었는지 알아?”

    천우희가 자신의 소설을 자랑했던 날.

    그날은, 천병옥이 <장르 논쟁>이라는 글을 투고했던 날이었다.

    “그때, 나는 수많은 장르 쪽 사람들과 매일같이 싸우고 있었다.”

    “그래서 장르 소설이 죽도록 미웠다는 거야?”

    “아니, 그 반대지.”

    천병옥이, 허탈하게 팔을 늘어트렸다.

    “네가 내 딸이라는 이유로 그들에게 공격받을까, 난 그게 무서웠다.”

    그래서, 일부러 딸에게 모질게 대했다. 자신을 잊도록. 딸이 대학에 간다고 했던 날이 헤어지는 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돈을 더 많이 넣어주기도 했다. 이별 선물이었다.

    “…사실이에요.”

    그렇게 말하며 뒤에서 등장한 건 형우였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일단 받아 봐요.”

    천우희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먼저 다가온 형우가 천우희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여보세요. 천우희 작가님?”

    “…지원 언니?”

    형우에 이어서 지원 언니까지? 천우희는 이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죠?”

    “지금 교수님과 함께 있죠?”

    “교수님이라면….”

    “천병옥 교수님이요.”

    의식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천우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둘이… 아는 사이에요?”

    “네. 대학 시절 만났었어요. 천병옥 선생님이 제 담당 교수님이셨죠.”

    학기 내내 우수한 학생이었던 지원은 졸업하자마자 C&N에 성공적으로 취업했다. 천병옥에게 연락이 온 건 그쯤이었다.

    “자기 딸이 장르소설을 쓰는데… 자기 몰래 한 번 봐줄 수 있겠냐. 그런 말이었지요.”

    “…지원 언니, 그걸 왜 지금까지 말 안 했어요?”

    “교수님께서 그걸 원하셨으니까요. 자기 딸인 게 알려지면 안 좋은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며….”

    그 이후로도 지원의 말은 이어졌지만, 귀에 들어오는 말은 하나도 없었다.

    천병옥은 천우희가 건네준 소설의 포장지조차 뜯지 않았다. 읽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번이나 읽은 책을 또 읽을 필요는 없으니까.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천우희는 그제야 아빠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봤다.

    “…나만 바보 된 거야? 장르가 싫다며?”“그건 맞지만.”

    천병옥이 힘겹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게 꼭 내 첫 번째일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천병옥은, 10년 만에 보는 아빠는, 정말이지 많이 늙어 보였다.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내가 10년간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아빠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냐고?”

    곧, 10년간 꽁꽁 감춰뒀던 천우희의 진심이 터져 나왔다. 천우희는 성공하고 싶었다. 성공해서, 아빠에게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편했던 적이 없었다고.”

    이 정도 성공으로 아빠가 만족할까? 난 성공한 게 맞을까? 그런 생각이 그녀를 꽉 사로잡고 있었다. 성공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런 강박이 생겼다.

    그래서, 일부러 명품 옷으로 화려하게 치장했다. 자신이 못되게 굴어도 화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며 자존감을 채웠다. 유명인이란 그런 법이니까.

    “그런데 아빠는 뭐? 그걸 다 알고 있었다고? 나를 위해서 희생했다고?”

    “…미안하구나. 내가 잘못했다.”

    “그 이야기를 이제 와서 하는 거야?”

    천우희가 아버지를 향해 발을 뻗었다.

    마치 오래 전 기억도 나지 않는 옛날, 처음으로 걸음마를 하듯이.

    문학 작품이었다면, 분명 이것이 클라이막스이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수양대군이 사로잡은 거대한 호랑이.

    비 오는 날, 가정부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

    조폭들의 연회 한가운데서 들리는 흐느낌.

    복수에 실패한 남자의 귀에 들려오는 목소리, ‘질문이 틀렸으니 옳은 대답이 나올 리가 없다.’라는 비정한 선언 같은 것.

    혹은, 자조하는 누군가의 뒤를 덮어오는 짙은 그림자 같은 것.

    그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현상을 전후하여.

    코믹한 희극이 음울한 비극이 되기도 하고

    유쾌한 성공담은 끈적끈적한 실패담이 되며

    참회의 이야기가 참살의 이야기로 진화하고

    피해자의 서사가 가해자의 서사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10년간의 갈등이, 순간의 화해로 발화하는.

    반전反轉과 절정絶頂의 순간이 찾아오고 마는 것이다.

    “…으음.”

    형우는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는 부녀를 바라봤다.

    “…저기요, 일단 화해한 건 좋은데. 아직 문제가 좀 남아 있는데요.”

    초를 친다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초를 쳐야 하는 순간이 맞았다.

    천병옥과 천우희의 부녀 갈등은 해결되었을지언정, 아직 천병옥과 한다은의 문단 내 세력 갈등은 끝나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어머.”

    교수회의를 마치고 교수실로 돌아온 한다은은 자신의 방에 기다리고 있는 세 명의 사람들을 향해 차례로 시선을 던졌다.

    “병옥 선배에, 우희에, 형우까지.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일까?”

    “장르문학의 이해 강의의 교수 선정과 관련해서 교수님께 제안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교수 선정?”

    한다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강사나 교수를 고르는 것은 학과장의 고유한 권한. 일반적인 상황이었다면 일개 학생이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은 월권행위이자 무례한 행위로 취급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다은은 그런 권위적인 행동들보다는, 즐거움과 실리를 더 중요시하는 타입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자기 제자를 엄청나게 아꼈다.

    “형우 네가 좋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지금 상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천병옥은 지금 문단에서 밀려난 상태다. 하지만, 한다은 교수의 도움이 있다면 분명 문단에 복귀하는 게 가능하긴 할 테다.

    형우의 앞에서는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한다은 교수님이지만, 문단에서의 영향력은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사람이니까.

    그러면 잘못했습니다, 용서한다. 하하호호, 그렇게 끝날 수 있는가?

    한다은 교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끝낼 일이었으면, 굳이 문단까지 동원해 천병옥을 공격하지는 않았을 거다.

    한다은 교수님은 천병옥을 공격한 첫 번째 이유는 ‘문단의 압력으로부터 학생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 말은 분명 맞지만, 이유가 그거 하나만은 아닐 테다.

    천병옥은 순문학 우월주의자지만, 문단에 순문학 우월주의자가 천병옥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천병옥에 대한 한다은의 공격은 그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나의 교육지침을 넘보지 말라. 그랬다가는 저런 꼴이 되고 말 테니. 그렇게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한다은은 천병옥을 용서해서는 안 된다. 그 순간, 모든 경고가 물거품이 되어버리므로.

    “그 취지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천병옥 선생님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분명 스토리가 필요했겠지요.”

    그렇게 말하는 형우를, 한다은이 빤히 바라봤다.

    “스토리라고?”

    “천병옥 선생님의 잘못을 그 딸인 천우희 작가님이 대신 갚는다. 그런 스토리 말입니다.”

    오호, 한다은의 눈빛이 변했다. 조금 놀란 것 같기도 했고, 형우를 기특해하는 것 같기도 했다.

    “요즘 소설을 쓰더니 많이 늘었구나.”

    “정치극을 쓸 일이 있어서 공부를 좀 했었거든요.”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래서 나는 더더욱 병옥 선배를 내 마음대로 용서할 수가 없어. 네 말마따나 이런 건 남들 보는 눈이 중요하거든.”

    증오라던지 미움이라던지, 그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다분히 정치적인 발언이었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만약 한다은이 인간 대 인간으로서, 감정적으로서 천병옥을 싫어해서 일을 벌인 것이라면 형우의 방법은 애초에 먹히지 않았을 테니까.

    “그렇다면 교수님, 이건 어떻습니까?”

    정치는 스토리다.

    그리고 스토리라는 건, 언제든 새롭게 변화하고, 태동할 수 있다.

    다름 아닌, 한다은 본인에게 배웠던 것이다.

    “…순문학 우월주의자의 수장이었던 천병옥 교수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형우의 이야기를 들은 문단의 거인은,

    “…오호라.”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감탄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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