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세상에.”
자신의 눈앞에 앉아 있는 천우희를 보며, 형우는 멍청한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한달음에 천우희를 만나러 왔는데, 들은 이야기가 상당히 기가 막혔다.
“그러니까, 천우희 작가님 아버지가 천병옥 평론가시라고요?”
“맞아. 정확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긴 했지만, 천우희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는 느낌이 있었다.
며칠 전, 형우의 병문안을 갔던 병원에서 천우희는 자신의 아버지 천병옥을 만났다. 만났다는 말보다는, 보았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눈을 까뒤집은 채로 축 늘어져 있던 아버지는, 분명히 자신을 보지 못했을 테니까.
우습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천우희는 그 눈빛을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개똥 같은 아버지.’
솔직히 말해서, 천병옥과 천우희의 부녀관계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순문학 우월주의자인 아버지와, 장르문학 작가인 딸. 사이가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일 테다.
천병옥에게 천우희는 부끄러운 딸이었고, 천우희에게 천병옥은 빌어먹을 아버지였다.
허나 둘의 사이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딸을 가진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 천병옥 또한 어린 딸을 좋아했다. 소위 말하는 딸바보였다. 그리고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부모가 자주 하는 행동도 했다.
바로, 자식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공을 던지고 영화를 좋아하는 어머니가 딸과 함께 디즈니 영화를 보듯,
천병옥은 자신의 딸 천우희와 동화를 읽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소설을 읽혔다.
그리고 4학년 땐가, 천우희가 처음으로 교내 경시대회에서 자그마한 상 하나를 받아 왔다.
아버지가 아주 감격스럽게 자신을 쳐다봤던 게 기억났다. 글이 좋냐고도 물어봤다. 좋다고 했다. 그 자그마한 어린 날의 축복은 슬프게도, 어느 순간부터 축복이 아니게 되었다. 그날부터, 천우희는 아버지인 천병옥에게 글을 배웠다. 경시대회는 물론, 꽤 규모 있는 백일장에도 나가서 많은 상을 타 왔다. 천병옥은 가르치는 데에 재능이 있었고, 천우희는 배우는 데에 재능이 있었다.
혈통으로 이어진 재능이랄까. 천우희는 천병옥에게 자랑스러운 딸이었고, 천병옥은 천우희에게 좋은 아빠였다.
하지만, 문제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터졌다.
천우희는 그 또래의 아이들이 으레 그렇듯, 게임과 아이돌, 배우들과 장르 소설 같은 것에 빠져들었다. 특히, 장르 소설이 너무 좋았다.
인간의 꿈이 바뀌는 데에는 얼마만큼의 계기가 필요할까? 천우희는 그 값을 정확히 알고 있다.
5,500원짜리 대여점 순정만화. 그거면 충분했다.
<우리들이 있었다>라는 제목이었다.
처음 읽었을 땐, 말도 안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과장되어 있었고, 사건 진행도 억지스러운 데가 많았다.
진짜 같은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라고 믿고 싶어지는 이야기였다.
글을 잘 쓰던 아이가 순정만화에 빠졌다면, 그다음 이야기는 바보라도 알 수 있다.
그렇게, 천우희는 장르 소설에 빠져들었다. 한 사이트에서 진행하던 인터넷 소설 대회에서 2등을 하기도 했다.
그 기쁨을 가장 먼저 나눈 것은, 최고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아버지 천병옥이었다.
‘아빠! 나 2등 했어!’
‘…인터넷 소설이라고?’
‘응응. 1등 못한 건 좀 아쉬운데, 그래도 2등은 했어. 잘했지?’
하지만, 아빠는 그걸 기뻐하지 않았다.
‘…대체 왜 지금 이런 소설을 쓰는 거니? 날 부끄럽게 하는구나.’
그날 처음으로 천우희는 부끄러운 딸이 되었고, 천병옥은 멍청한 아빠가 됐다.
‘대체 왜 날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야? 아빠 정말 싫어!’
장르소설을 쓰고 싶은 딸과, 순문학 외의 문학은 모두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감정의 골은 깊어지기만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되자마자, 대학에 합격했다고 하고 집을 나왔다.
대학은 당연히 안 갔다. 그 등록금으로 몰래 집을 얻어서 글을 썼고, 성공했다.
“…아빠를 본 건 10년 만이었지.”
21세기에, 10년이나 얼굴을 보지 않은 부녀의 이야기는 그렇게 희귀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만남이 병원일 줄이야.
“스트레스로 기절한 거라더라. 이번에는 운이 좋았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대.”
“스트레스라….”
그 이유라면 형우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한국 대학교의 청년 리더 행사 때 있었던 일을 계기로 한다은과 천병옥은 지난 한 달 동안 몇 차례나 맞붙었다.
한쪽은 은퇴한 지 10년이 되어가는 평론가, 다른 쪽은 한국대학교의 문창과 교수. 승패는 뻔한 싸움이었다.
“…최근에 들어보니까, 그나마 가끔 나가시던 강사 자리마저 못 구한 모양이더라고.”
문단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이나, 혹은 교권을 쥐고 싶은 생각이 있는 사람이 결코 건드리지 말아야 할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아마 한국 문학계의 거인인 한다은일 것이다.
한다은과 천병옥의 싸움에서, 문단은 최종적으로 천병옥이 아니라 한다은의 손을 들어 줬다.
문단을 위해서, 순문학을 위해서 싸웠는데, 문단이 자신을 버렸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한 충격에, 천병옥은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야기를 다 들은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거랑 소설이 펑크 난 거랑은 무슨 상관이 있어요?”
“딱 지금 말하려고 했는데, 너 성격이 좀 급하구나?”
장난스럽게 말하려고 노력한 티는 나지만, 여전히 장난스럽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때 나, 엄청 바보 같은 일을 했어.”
병원에서 나오기 전, 천우희는 간호사에게 부탁 하나를 했다.
천병옥 환자가 깨어난 뒤에 책 한 권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내 책이야. 포장도 안 뜯었어. 원래는 너 주려고 했던 건데….”
지금도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다음 행동은, 더더욱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병원에서 나온 천우희가 찾아간 것은, 한국대학교 문창과의 교수실이었다.
* * *
며칠 전, 한국 대학교의 문창과 교수실.
천우희와 한다은은 커피 두 잔을 사이에 둔 채로 마주 보고 있었다.
“드세요, 천우희 작가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셔도 돼요.”
“……흐음, 그럴까?”
한다은이 커피를 홀짝, 마셨다. 천우희는 멍하니 앉아서 그 커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말 괜찮겠니?”
“약속만 지켜 주신다면요.”
“네 아버지…. 그러니까, 천병옥 선생님을 용서해 달라, 그게 부탁이었지.”
“네.”
세상에는 두 가지 갈등이 있다.
무릎을 꿇으면 끝나는 갈등과, 그것만으로는 택도 없는 갈등. 천병옥과 한다은의 갈등은 안타깝게도 후자였다.
“이번에 새로 <장르문학기초>라는 과목을 신설하는데, 아직 마땅한 강사를 구하지 못해서 말이다. 네가 그 자리를 맡아 준다면, 병옥 선배를 용서하지 못할 것도 없지.”
감정 관계로 풀 수 없는 갈등은, 이해 관계로 풀면 된다.
그것이 한다은의 요구사항이었다. 그렇게 오래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할게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스스로가 얼마나 이상하게 느껴지던지.
죽고 살 정도로 아빠랑 친한 것도 아니다.
10년 만에 처음 본 거다.
그런데 왜 그렇게, 지나칠 수가 없던지.
왜 하필 10년 만에 본 얼굴이 병상에 누워 있는 초췌한 표정이었는지.
‘…개똥 같은 아빠.’
정말로,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혈연에 묶여 그런 아빠를 내치치 못하는 자신도 너무 답답했다.
이게 소설이었다면, 독자들은 고구마라며 가슴을 퍽퍽 때렸을 거다.
“고민이 많아 보이는구나.”
표정을 한참 바라보던 한다은은, 인자한 표정으로 천우희를 바라봤다.
“네가 원해서 방법을 알려주기는 했다만. 솔직히 말하면 나는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한국 대학교 강사인걸요. 누구라도 가고 싶어 안달하는 자리인데, 뭐가 문제겠어요?”
“…내가 이곳에서 교수를 한 게 벌써 20년이야. 너만 한 애들은 수도 없이 봤지.”
그 애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심을 말하는지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관록은 붙었다.
“내가 알기로 너는 아직 연재 중인 작품이 있던데. <망국의 테라피스트>, 맞지?”
한국 대학교의 교수 입에서 자신이 쓴 작품의 제목이 나오다니. 하지만 기쁨보단 서글픔이 앞섰다.
“…맞아요.”
“완결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것 같더구나. 하지만 개강까지는 이제 고작 삼 주 남았지.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지는 않겠지?”
“알고 있어요.”
“…혹시 강의와 연재를 동시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라면, 그건 힘들다고 말해 주고 싶구나.”
가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채로 교편을 잡는 강사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런 각오를 실천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결국 작품을 포기하고 강사에만 올인하거나, 혹은 작품을 위해 강사직을 때려치우게 된다.
그 말은 곧, 천우희가 장르문학의 이해 과목의 강사직을 수락한다면 <망국의 테라피스트>의 연재는 포기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잘 생각하고 결정해. 아버지를 위하는 건 좋지만, 그게 꼭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니니까.”
“모르진 않습니다. 조언은 감사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충분히 생각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할 수도 있어. 아직 시간은 있단다. 많지는 않지만, 분명히 있지. 정확하게는 일주일이 남았구나.”
한다은은 테이블 구석에 놓인 체리 사탕 하나를 집어 천우희에게 내밀었다.
“만약 일주일 후에도 생각이 같다면, 그때 다시 찾아오렴.”
* * *
그렇게 됐으니까, 지원 언니한테도 전해 줘. 차마 미안해서 말을 못 했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천우희는 급한 일이 있다면서 그대로 가 버렸다. 괜히 오지랖 부리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오지랖이라.’
형우가 그 단어를 천천히 곱씹었다.
맞다. 오지랖을 부릴 필요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택시를 잡았다.
“네, 손님! 어디로 모실까요?”
“경기도 대학병원으로 가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병원은 왜… 아.”
택시 기사가 유쾌하게 말을 받으려다가, 형우의 심각한 표정을 보고 관뒀다. 아마도 가족이 아픈가 보다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그 생각은 틀렸다. 형우에게는 아픈 가족이나 친구는 없다. 형우가 만나러 가는 것은, 천우희의 아버지인 천병옥이었다.
‘…오지랖을 부리지 말라고 했었지.’
오지랖이라는 단어는 결과론적이라는 점에서, 참으로 재미있는 말이다.
누군가를 몰래 도와줬을 때,
그 도움이 성공한다면 고마운 일이 되고, 실패한다면 ‘오지랖을 부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형우는 오지랖을 부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천우희 작가님이 글을 그만두는 건 막아야 해.’
일단 천병옥을 찾아가서 설득해 볼 생각이었다. 당신의 딸이 당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다고, 그걸 막아야 한다고.
천우희가 천병옥을 사랑하는 만큼 천병옥도 천우희를 사랑하고 있다면, 분명 형우의 바람은 통할 것이다. 형우가 아는 부모란 그런 존재였다.
‘장르소설가인 천우희는 싫어할지언정, 자신의 딸인 천우희까지 싫어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확신하자마자, 택시가 끼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병원에 들어가자마자 안내데스크를 찾아가 물었다.
“천병옥 환자에게 김형우가 찾아왔다고 전해 주십시오. 한국대학생이라고 하면 알 겁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천병옥에게 와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오랜만입니다, 교수님.”
과연, 천우희의 말대로 천병옥은 지난 한 달 사이 상당히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교수는 무슨. 강의가 없는데 무슨 교수인가?”
다분히 조소 섞인 발언이었지만, 형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형우의 시선은 천병옥이 아니라, 그의 옆에 놓인 수납장을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그 위에는 <블랙기업이지만 사장님 얼굴이 복지라 괜찮아요!>라는, 긴 제목의 소설이 놓여 있었다. 천우희가 간호사를 통해 전달한 그녀의 책이었다.
“…책이 그대로네요.”
책은, 포장조차 뜯어지지 않은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읽을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 대답을 듣는 순간, 형우는 자신의 모든 계획이 그 쐐기돌부터 단단히 잘못되어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