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51화 (51/200)
  • #50

    “야! 오늘은 내가 쏜다!”

    “오오, 이민재!”

    피씨방에 가득한 중학생들이 친구의 호탕한 선언에 비명을 질렀다.

    “라면 시켜도 되냐?”

    “핫도그도 시켜도 돼! 나 돈 많다.”

    “오오, 이민재. 얼마 전에는 전동킥보드도 하나 사더니, 요즘 뭐 하기에 돈이 그렇게 많냐?”

    민재가 피식 웃었다.

    “인마, 형님 사업하신다, 사업.”

    “무슨 사업? 비트코인이라도 해?”

    “코인은 무슨. 비밀이야, 짜샤. 형님 화장실 다녀올 테니, 내 짜파구리 맛있게 말아 놔라.”

    “네, 형님!”

    장난스럽게 고개를 숙이는 친구들을 뒤로한 채로, 이민재는 화장실 변기칸에 앉았다.

    “흐흐, 이번엔 포인트가 얼마나 들어왔으려나…?”

    이민재가 실실 웃으며 보는 휴대폰에는, 불법 공유 사이트의 화면이 올라와 있었다.

    “40만 포인트!”

    이민재가 활동하는 불법 공유 사이트는 불법 사설토토 사이트와도 연동이 되어 있어서, 포인트를 즉각 환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40만 포인트를 현금 40만 원으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무조건 버는 건데, 무섭게 코인을 왜 하냐, 이 말이지.”

    특히 최근에 타이핑해서 올렸던 <전설의 보안관>이라는 작품의 수입이 짭짤했다.

    익명3 : 와 역시 잼본좌님!!

    익명11 : 보고 싶었는데 딱 올라오네;; 역시 잼본좌.

    잼본좌는 이민재의 아이디로, 자신의 이름을 뒤집은 ‘재민이’에 –본좌를 붙여서 만든, 중학교 2학년 감성이 폴폴 넘치는 닉네임이었다.

    쏴아아-

    포인트를 확인한 이민재는 바로 피씨방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는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짜파구리와 콜라 하나가 놓여 있었다.

    “크, 역시 짜파구리는 형섭이 네가 제일 잘 비빈다니까. 근데 뭐 보는 거야? 웹소설?”

    “응, 소설 봐. 시리즈에서 연재 중인 <전설의 보안관>이라는 건데, 진짜 꿀잼이다.”

    “뭐? <전설의 보안관?> 푸하하!”

    민재는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형섭아, 너 병신이냐? 뭐하러 그걸 돈 내고 봐? 여기서 보면 공짜잖아.”

    형섭을 향해 민재가 휴대폰을 들이밀었다.

    “미친놈아, 이거 불법이잖아.”

    화면을 바라본 형섭이 고개를 저었다.

    “하, 이 순진한 놈을 어떻게 할까?”

    민재는 어린 양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형섭을 바라봤다.

    “넌 인마, 무단횡단도 안 하냐?”

    “어… 차 없으면?”

    “똑같은 거야 짜샤.”

    “그, 그래? 그럼 나도 할까?”

    “그러라니까 인마. 내가 알려 줄게. 아, 게임 시작했다!”

    그렇게 말하며, 형섭은 컴퓨터로 시선을 돌렸다.

    “야야, 카구팔 쏴!”

    “저 새끼 삼뚝이야!”

    “아이고, 씨발!”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상상도 못 한 채, 이민재는 자신의 캐릭터가 총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며 분통을 터트렸다.

    * * *

    C&N의 장르소설편집부.

    “으음….”

    지원은 진중한 표정으로 몇몇 사이트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형우 작가님 말대로네. 벌써 꽤 많이 퍼졌어.”

    형우의 <전설의 보안관>뿐만이 아니라, C&N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전반적인 작품들 대부분이 사이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이건 혼자 할 문제가 아닌데….”

    그렇게 생각하며, 지원은 바로 편집자인 공판석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30분 후, C&N의 모든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갑자기 무슨 긴급회의래요?”

    “두더지 잡는다는데요?”

    “하기야… 요즘 웹툰이다 공모전이다 바빠서 좀 못 잡기는 했죠.”

    두더지는 불법 다운로더와 업로더를 일컫는 출판업계의 은어였다. 잠시 후, 씩씩거리는 표정으로 공판석이 들어왔다.

    “다들 이야기는 들었지? 요즘 우리가 잠잠한 틈을 타 또 두더지들이 말썽이란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당연히 잡아야지! 방금 플랫폼 담당자들이랑 다 통화했어.”

    텍본으로 골머리를 썩이는 것은 출판사와 작가뿐만이 아니기에, 공판석은 고소에 필요한 자료를 추가로 얻기 위해서 플랫폼 담당자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플랫폼 쪽에서도 슬슬 한번 잡아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모양이더라고. 마침 우리가 칼춤을 추겠다니 옳다구나 싶겠지.”

    “오.”

    그런 공판석을 보며, 지원은 남모르게 탄성을 터트렸다. 돈이 걸린 일에 한해서, 공판석은 누구보다 움직임이 빠르고 영민했다.

    “서 수석은 로펌에 연락 때려 놔. 조만간 바빠질 거라고.”

    “알겠습니다.”

    “홍 매니저는 작가님들께 연락해서 고소 위임장 받아두고.”

    “넵.”

    “정 매니저는 모니터링 회사 만나 봐. 매뉴얼 보면 전화번호 있을 테니까, 가서 상황 설명 잘하고 농땡이 안 까는지 잘 감시해. 자료 모이면 바로바로 로펌에 전달하고. 질문 있나?”

    “저, 편집장님?”

    그때까지 열심히 회의 내용을 필기하던 편집부의 막내, 정윤진이 손을 들어 올렸다.

    “질문이 있는데요.”

    “무슨 질문?”

    “그 두더지 말이죠…. 어디서 잡을까요?”

    윤진의 질문을 들은 공판석이 이마를 짚었다. 생각 같아서는 죄다 잡아버리고 싶었지만, 그 많은 불법 사이트들을 전부 잡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보통, 한두 개의 불법 공유 사이트를 겨냥하고 본보기로 탈탈 터는 방식을 택한다.

    “요즘 두더지 안 잡은 지 너무 오래됐으니까… 확실하게 가자. 유명한 데로 세 개 정도 추려봐.”

    “세, 세 개요…?”

    “이참에 본보기를 보여 주자고. C&N을 함부로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그 말을 끝으로 공판석은 책상을 땅, 하고 때렸다. 해산하라는 뜻이었다.

    * * *

    이민재의 친구, 고형섭은 오늘 하루 종일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침대에 누워 웹소설을 보며 뒹굴거리고 있었다.

    “햐, 읽어도 읽어도 끝이 안 나네.”

    타 플랫폼에선 100원에 한 편밖에 보지 못하던 소설인데, 민재가 알려 준 사이트에서는 100원이면 50편도 넘게 볼 수 있었다.

    “진작에 여기 가입할걸.”

    얼마나 신났는지, 자주 가는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랑하기까지 했다.

    작성자 : 배그고수(고형섭)

    제목 : 전설의 보안관 읽는 중.

    던전지키기에 비하면 보잘 것 없겠지만 일단 공짜니까 읽어는 준다ㅋㅋ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달렸다.

    카페인매니아 : 뭐임? 어떻게 공짜로봄?

    ㄴ배그고수 : 텍본임ㅋㅋ

    카페인매니아의 댓글은 바로 달렸다.

    카페인매니아 : 구라 ㄴ 전설의 보안관 텍본 없음.

    ㄴ배그고수 : 있는데?

    ㄴ카페인매니아 : 인증 ㄱ

    ㄴ배그고수 : 기달

    ‘어지간히 급했던 모양이네.’

    인증이라, 못할 것도 없었다. 고형섭은 킬킬 웃으며 바로 자신이 보던 소설의 휴대폰 화면을 캡쳐해서 게시글을 올렸다.

    글을 올린 지 10초도 되지 않아서 첫 댓글이 달렸다.

    콜라팝콘 : 진짜 텍본임?

    ㄴ배그고수 : ㅇㅇ

    ㄴ콜라팝콘 : 뭘 자랑이라고 ㅇㅇ거림?

    ㄴ배그고수 : ㅋㅋ너는 돈 주고보는거 나는 공짜로보니까 심술났냐? 궁금하면 걍 물어봐라 ㅋ

    ㄴ콜라팝콘 : 개노답;

    두 번째 댓글도 곧이어 달렸다.

    개추 : 이 병신은 던전지키기도 텍본으로 봤을듯ㅋㅋ

    ㄴ배그고수 : 참독자라고 불러라.

    ㄴ개추 : 어휴 그지새끼.

    띠리리리링, 그다음부터는 딱히 몇 개다 셀 필요도 없이 우후죽순으로 댓글이 달렸다. 올라오는 댓글들을 살펴보기가 힘들었다.

    ‘새끼들 열폭하네. 난 똥이나 싸고 와야지.’

    고형섭이 낄낄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 * *

    띠링, 띠링, 띠링, 띠리링, 띠링.

    “뭐 이리 시끄러워?”

    화장실에 다녀온 고형섭이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잠깐 안 본 사이에 댓글이 80개가 넘게 걸려 있었다.

    산림청 : 찐이다 찐!

    막시무스 : ㅋㅋ잘가고

    포커칩 : 유명대가게해주세요천하대가게해주세요한국대가게해주세요!! 성지순례

    미움우정구애사랑 : ㅋㅋㅋㅋㅋㅋㅋ 찐이다!

    퀴즈쇼 : 하필 걸려도 이분한테ㅋㅋ

    댓글창은 온통 글쓴이인 자신에 대한 조롱으로 가득했다.

    “…대체 뭐가 찐이라는 거야?”

    그렇게, 천천히 댓글을 거슬러 올라가던 형섭의 눈에 유달리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 하나가 보였다.

    서지1 : C&N입니다. 본 화면 캡처하여 법적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잡았다 요놈! 이라는 뜻이었다.

    * * *

    로펌에서 넘겨받은 자료를 본 지원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 살다살다 두더지를 이리 많이 잡아 보네.”

    지원이 쉴 틈도 없이 정리한 자료를 받아든 공판석이 날카로운 표정으로 그 내용을 훑었다.

    “서른일곱이라…. 그런데 말야….”

    공판석이 그중 몇 명을 펜으로 집었다.

    “여기 있는 애들 다섯 명. 이거, 중학생들이잖아? 맞지?”

    “그렇습니다.”

    “중학생들 잡아야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형사는 가지도 못하고, 민사로 치려고 해도 촉법소년이다 뭐다 해서 힘들 텐데?”

    “그렇게 넘어가기에는 너무 헤비한 업로더라… 특히 이 이민재라는 학생이요. 음, 말로 하는 것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네요.”

    지원이 태블릿 PC를 톡톡 때린 후, 공판석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지?”

    “이민재가 업로드했던 소설 목록입니다.”

    <전설의 보안관>부터 시작해서, <망국의 테라피스트>와 <너무 양심적인 보험 설계사>는 물론, 그 외에도 C&N과 관련되거나 혹은 관련되지 않은 온갖 작품들의 제목이 마치 사전처럼 산재해 있었다.

    “정확하게 쉰일곱 작품이고, 다른 아이디로 올린 것까지 생각하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속기사야 뭐야? 이런 놈이 왜 이제야 잡혔지?”

    “중학생치고는 워낙 주도면밀해서 잡기가 애매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용케도 잡았군. 어떻게?”

    “장수를 잡으려면 말을 쏘라는 말이 있지요.”

    이민재를 잡을 수 있었던 건 거의 반쯤 우연이었다. 경찰서에서 고형섭에게 전화를 걸자마자, 그대로 겁에 질려 술술 늘어놓았다고.

    “저는 그냥 친구가 시켜서 했어요!”

    “친구?”

    “그, 이민재라고 있는데, 애가 자기가 업로드하는 사이트 있다고… 저는 따라만 했어요! 진짜예요! 영재 중학교 2학년이에요! 저 걸리면 아빠한테 죽어요, 제발…!”

    마지막엔 심지어 엉엉 울기까지 했으니, 참 얄팍한 우정이다 싶었다.

    “…뭐, 결과적으론 이민재를 잡게 됐으니 좋은 거지요.”

    “이민재, 고형섭이라… 그 부모들이 고생깨나 하겠어. 내 자식들이 그랬으면 호적에서 파버렸을걸.”

    그렇게 말하며, 공판석은 보고서를 자신의 사무철 안에 넣었다.

    “작가들한테 경과 알리고, 변호사랑 논의해서 잘 처리해.”

    “네, 알겠습니다.”

    지원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서른일곱 명이나 잡았다고요?”

    형우도 지원의 설명을 들어 불법 공유의 현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서른일곱이나 잡아낸 것도 꽤 공을 많이 들인 축에 속할 것이다.

    “형우 님 덕분에 쉽게 잡았어요.”

    “제가 뭘요, 걔가 멍청했던 거죠. 아이디가 배그고수였나?”

    “맞아요. 중학교 2학년이 벌써부터 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고형섭을 유도 신문했던 ‘카페인매니아’의 정체는 자신의 소설 텍본의 근원지를 찾기 위해 눈을 불태우며 돌아다니던 형우였다.

    글도 못 쓰는 상황이라 무료해 죽을 것 같던 상황에 몰두할 게 생기니 미친 듯이 달라붙은 것이다.

    “너무 간단하게 걸려서 처음에는 저도 못 믿었다니까요?”

    “흐흐, 똑똑하지 않아서 다행이죠.”

    지원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어쨌든, 마흔두 명 모두가 작가님을 만나고 싶다고 의사를 표현해 왔어요. 합의 요청이겠죠.”

    “어라? 숫자가 이상한데요. 서른일곱 명 잡았다고 하지 않았어요?”

    “다섯 명은 청소년이거든요.”

    아하, 그제야 이해가 됐다. 서른일곱에 추가된 다섯 명은 그 학생들의 부모님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은 무리하지 않는 게 좋으니, 직접 만나는 것보단 제 선에서 처리하는 게….”

    “아니에요, 직접 만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소설 도둑들 얼굴은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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