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50화 (50/200)

#49

‘…상황은 그럴 듯하네.’

지원은 프로다.

비록 형우가 고생했다고는 했지만, 그 이유만으로 자격 미달의 소설을 통과시켜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새롭게 쓴 소설의 첫 페이지를 읽는 순간, 지원의 생각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뭐야. 엄청 재밌잖아?’

지원은 그만 활짝 웃으면서, 이거 엄청 재밌잖아요? 형우 작가님! 이라고 외칠 뻔했다.

그러지 않은 건, 지금 이곳이 병원이기 때문이다.

“…끝내주네요. 완전 마음에 들어요. 이 정도면… 작가님이 원하시는 대로 로맨스 요소를 집어넣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정말요?”

“…그렇다고 작품 내용이 완전히 그쪽으로 가면 안 될 말이지만요.”

방금까지만 해도 수술을 방금 마치고 초췌해 보였던 형우의 표정이 활짝 펴졌다.

‘편집자님한테도 인정받았어.’

그 자체만 해도 즐거웠지만, 새로운 글에 대한 실마리를 잡았다는 게 더 기뻤다. 지금 당장이라도 글을 계속해서 쓰고 싶다는 욕구가 바짝 올라왔다.

“안 돼요.”

그런 형우를 말린 건 지원이었다.

“의사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당분간 무리하지 말라고. 글 쓰지 말고 좀 쉬세요.”

“그럴 수는….”

“쉬라니까요.”

더 우겨보려고 했지만, 지원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홍삼이랑 녹용도 새로 사 왔으니까 꼬박꼬박 드시고요.”

“네.”

형우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다.

* * *

C&N의 장르소설부서.

“윤진 님?”

이른 아침, 사무실에 도착한 지원은 노트북 앞에 쓰러져 있는 막내 윤진의 모습을 발견했다.

“……서 수석님?”

그렇게 지원을 바라보던 윤진의 눈에는 이윽고, 닭똥 같은 눈물이 맺혔다.

“흐아아아앙….”

“뭐, 뭐예요? 무슨 일 있었어요?”

“못 찾겠어요!”

“뭘 못 찾아요?”

“서 수석님이 맡긴 일 하고 있었는데… 수석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참새치 작가님이 로맨스 못 쓴다고…. 그래서 저도 이상한 점 찾아보려고 했어요. 진짜 열심히 했는데! 아무리 찾아도 못 찾겠는 거예요…. 아무래도 저는 아직 모자란가 봐요. 흐에엥!”

“아.”

지원은 어제 너무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윤진에 대한 것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윤진 님, 그게요….”

지원은 땀을 뻘뻘 흘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모든 설명을 다 들은 윤진이 입을 헤, 벌리고 멍청한 표정으로 지원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문제 없는 거죠?”

“네, 맞아요.”

“다행이다!”

윤진이 해맑게 외쳤다.

“난 또, 제가 부족해서 못 발견한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요!”

뭔가 예상했던 말이랑 달랐다.

왜 그런 일을 시켰느냐는 둥, 너무하다는 둥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죄송해요, 윤진 님. 제가 미처 신경을 못 썼네요.”

“에이, 서 수석님이 뭐가 미안해요? 제가 더 뛰어난 편집자였으면 보자마자 아 이건 문제 없구나 눈치챘을 텐데. 제 잘못이죠.”

그러면서 실없이 헤헤, 웃는 윤진. 그 모습을 본 지원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흐흐. 나머지 일은 어떻게 됐어요?”

“아, 일단 해 놓긴 했어요! 안띵 작가님 작품이랑 그리고….”

“직접 보는 게 좋겠네요.”

그대로 지원은 윤진이 만들어 놓은 퇴고본을 확인했다.

큰 문제는 없었다.

“잘했어요. 그런데, 이런 데에서는 편집자의 의견이 좀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

“작가님들한테 제 의견을 쓰기는 좀 그래서….”

“오늘 형우 작가님이 그러더라고요. 편집자는 작가한테 욕하라고 월급 받는 거라고.”

“아하…!”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 윤진이 박수를 딱 쳤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아무튼, 윤진 님도 이 정도로 배우셨으니까. 다음 공모전 1차 심사 정도는 맡으셔도 되겠는데요.”

“에엑, 제가요?”

“네. 이제 곧 시작이잖아요.”

처음에는 신입인 윤진에게 맡기는 것이 좀 불안하다 싶었는데, 오늘 해 놓은 깔끔한 일 처리를 보니 맡겨도 될 것 같았다.

“잘 부탁해요, 윤진 님.”

“저,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서 수석님!”

윤진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 * *

“쉬겠다고는 했지만….”

막상 쉬려고 자리를 잡으니, 영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가 않았다. 노는 것도 놀아 본 놈이 잘 논다고. 형우는 그 논다는 개념 자체가 희박한 사람이었다.

일할 때는 장편 소설을 썼고, 쉴 때는 단편 소설을 써오던 게 형우의 삶이었던 것이다.

“…이것도 다 봤네.”

일단 쉬는 김에 밀린 소설이나 보려고 마음을 먹고, 과감하게 20만 원이 넘는 돈을 소설 사이트에 충전한 게 이틀 전.

그리고 불과 이틀 만에, 형우는 그 20만 원어치 소설을 몽땅 다 읽었다. 손목이 뻐근했다.

그냥 읽은 게 아니라, 필기하며 읽어서 그렇다.

‘편집자님은 소설을 쓰지 말라고 한 거지, 읽지 말라고 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구매해 놓은 소설의 에필로그를 읽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엄청 좋은 작품도 있었고, 처음은 좋았으나 마지막으로 갈수록 엉성해지는 작품도 있었다.

좋은 점은 좋은 점대로, 나쁜 점은 나쁜 점대로 죄다 적어넣고 배웠다. 그러고 나니 할 게 없었다.

“오랜만에 댓글이나 한 번 확인해 볼까?”

형우는 병원에 있지만, <전설의 보안관> 비축분이 꽤 많이 남아 있었던 덕분에 지금도 정상적으로 연재되고 있었다.

“와우.”

휴대폰을 들어 올린 지 1분도 되지 않아서, 형우의 입꼬리는 광대까지 승천했다.

t1canna : 와 진짜 전개 미쳤다;

파라섹트 : 아 캐서린코인 똥망이네. 베아트리체가 최종 히로인인가?

존버는승리한다 : 역시 베아트리체!!!!!!!!! 믿고 있었다고 젠장!

재밌으면짖는개 : 멍멍! 멍멍멍! 아르르르르르! 왈왈왈!

226화의 반응은 꽤 만족스러웠다.

덩달아 소설의 순위도 꽤 많이 올랐다.

[네이비 시리즈 최근 뜨는 인기작! 너한테만 무료! : 전설의 보안관 – 참새치]

[커피콩 페이지 화제의 작품! 기다리면 무료! : 전설의 보안관 – 참새치]

결국 형우는 두 플랫폼 모두에서 작품을 5위 내로 안착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정확히는 네이비 시리즈에서 5등, 커피콩 페이지에서 4등이었다.

‘이게 진짜 로맨스 파워구나!’

이것만 해도 입이 찢어지겠지만, 그다음은 더 좋았다.

“아, 찾았다.”

한참이나 댓글을 바라본 후에, 형우는 자신이 원하던 글을 발견했다.

도깨비3 : 와… 작가님 로맨스 못 쓴다는 말 취소. 완전 설레네.

시크릿가든 : 작가님 진짜 가둬놓고 매일 글만 쓰게 하고 싶다… 차기작은 로맨스 안 되나요?

미스터션샤인 : 으음…,,이거…,,좋자나…???

도깨비3, 시크릿가든, 미스터션샤인. 셋 모두 전에 형우의 로맨스를 지적했던 독자들이었다.

“역시 통했어!”

그들의 댓글을 확인하는 순간, 형우는 목 뒤쪽에서 뭔가가 쭈우욱,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청량감이랄까, 성취감이랄까? 꽉 막혀있던 뭔가가 뻥- 뚫리는 기분이랑 비슷했다.

“아. 시간 됐네.”

댓글을 보기 시작하고 정확히 10분 후, 형우는 바로 댓글창을 닫았다. 민준 삼촌이 오래전에 해 줬던 조언을 따른 것이다.

‘작가가 절대로 하면 안 되는 게 두 개 있다. 뭘까?’

‘살인이랑 강도요.’

‘그건 모든 사람이 하면 안 되는 거고!’

‘농담이에요. 뭔데요?’

‘주식 보는 거랑, 댓글창 보는 거다. 주식은 아예 안 하는 게 낫고, 댓글창은 하루에 딱 10분만 보거라. 그 이상 보면 주화입마에 빠져.’

‘…주화입마라면?’

‘댓글창은 마치 보약과 같단다. 적당히 보고 피드백한다면 네 글에 크나큰 도움이 되지만, 하루종일 보고 있으면 작가 생명에 지장이 갈 수도 있어. 알겠니?’

처음에는 그 말이 이해가 안 됐는데, 연재를 계속 하는 요즘에는 조금 이해가 됐다.

‘게다가, 좋은 일은 이게 끝이 아니지.’

형우는 그대로 오늘 아침 지원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지원 : 작가님! 잘 쉬고 계시죠?

형우 : 덕분에요.

지원 : 흐흐. 푹 쉬세요. 그리고, 이번에 정산 들어간 거 확인해 보셨어요?

형우 : 당연하죠!

은행 어플을 켜자마자, 큼지막한 알람이 형우를 반겼다.

이번 달에만 소설로 번 돈이 이천삼백만 원이었다. 심지어 세후! 형우는 재빨리 메시지를 보냈다.

형우 : 입금 받았습니다!

지원 : 이번 달은 달피아 매출만 보냈고요, 다음 달부터는 2차 유통 매출액도 정산될 거예요!

형우 : 잘 부탁드립니다! 충성충성^^7

세 개의 플랫폼 총수입을 더하면 삼천은 분명 넘을 테고, 운이 좋으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몰랐다.

“2억 못 채운 게 좀 아깝네.”

물론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7개월 만에 1억 9천을 벌었다는 건 쾌거였지만, 그래도 뭔가 좀 아쉽기는 했다. 비슷한 돈이라도 이왕이면 앞자리가 바뀌는 게 좀 더 실감이 난다고나 할까.

입맛을 다시며 노트북을 켠 형우는 그대로 북한의 김정은처럼 행동했다.

어디선가 김정은의 컴퓨터를 살펴본 적이 있었는데, 김정은이 가장 많이 검색해 본 검색어는 다름 아닌 ‘김정은’, 자신의 이름이라고 했다. 형우는 포털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의 작품을 검색했다.

검색 : 전설의 ㅂ

거기까지만 쳤는데, 그 아래로 연관검색어가 좌르륵 떠올랐다.

전설의 보안관

전설의 보안관 일러스트

전설의 보안관 팬아트

전설의 보안관 트리위키

전설의 보안관 한국대

전설의 바보

전설의

전설의 보안관 txt

전설의 보안관 다운

….

그 수많은 검색어 중, 형우의 눈길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정확하게, 마지막에 있는 두 개였다.

“전설의 보안관 txt랑… 전설의 보안관 다운?”

즉시 전설의 보안관 txt를 검색한 형우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토토, 바카라, 성인방송? 이게 다 뭐야?”

외설적인 사이트 광고와 인터넷 불법 도박업체 광고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보이는 P2P 게시판의 가운데에서, 형우는 자신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설의 보안관txt. 1-200(미완)>

300포인트입니다! 재밌어요!

1포인트는 현금 1원과 같은 가치를 갖고 있었다.

‘내 작품을 훔쳐서 돈을 번다고? 게다가 꼴랑 300원?’

그것만 해도 열이 뻗치는데, 댓글은 더 가관이었다.

익명1 : 감사합니당 잘보겠습니당.

익명3 : 혹시 완결인가요?

ㄴ익명4 : 연재중입니다!

익명6 : 이거 봤는데 진짜 별로네요. 돈 주고 봤으면 후회할 뻔했어요!

ㄴ익명13 : ㅋㅋ그러니까요.

ㄴ익명48 : 주인공 왜 이리 답답한지, 나라면 다 쏴 죽였겠다. 아무튼 잘 봤습니다.

ㄴ익명99 : 웹소설이 다 그렇죠 뭐 ㅋㅋ

댓글을 확인한 형우의 눈에 불이 확, 튀었다.

“불법으로 보는 새끼들이 감평까지?”

마치 음식점에서 돈도 안 내고 음식을 집어 먹은 다음에, 이 음식이 맛이 없네, 식었네 어쩌고 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이건 못 참지.”

마침 쉬기만 해서 몸이 근질근질한 차였는데, 잘 걸렸다고 생각하며 형우는 곧바로 편집자인 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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