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49화 (49/200)

#48

경기도에 위치한 한 병원의 수술실 앞.

“…제발.”

지원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 앞을 전전긍긍하며 왔다 갔다 했다. 그리고 30분 후, 의사와 간호사가 수술실 밖으로 나왔다.

“잘 끝났나요?”

“네.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다행이다…!”

지원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리고 곧이어, 환자복을 입은 형우가 수술실의 문을 열고 어기적거리면서 걸어 나왔다.

“어라, 편집자님? 왜 여기까지…?”

“쓰러졌다는 소식 듣고 왔어요. 괜찮으세요?”

형우가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지원은 바로 병원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병원 간호사에게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다.

형우가 수술실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던지. 지원은 더 물을 것도 없이 수술실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대체 무슨 일이에요? 어제까지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수술이라니? 전 그것도 모르고…!”

아픈 사람에게 쓴소리를 한 것 같은 죄책감이 마구마구 밀려들었다. 지원의 눈가에 저절로 눈물이 맺혔다.

“어디가 아프신 거에요? 심장병인가요?”

“…그게요.”

“아니면 호, 혹시 암? 몸에 혹이라도 생긴 건가요?”

혹이 생긴 건 맞다.

“어, 흠, 그게요. 일단 목소리 좀 줄여주시겠어요?”

“에, 목소리요…?”

“그러니까, 제가 어디가 아프냐면 말이죠….”

형우가 주위를 살짝 둘러보더니, 지원의 귓가에 대고 뭔가를 속삭였다.

“…치질이거든요.”

* * *

사람들에게 작가가 많이 걸리는 병이 뭐가 있을까? 하고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대답한다.

감수성이 풍부하니까, 우울증에 잘 걸릴 것 같다.

마찬가지 이유로 알코올 의존증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 고흐처럼 자해도 하지 않을까?

형우가 생각하기에, 그 세 가지는 모두 틀렸다. 진정한 작가의 3대 질환은 그런 것이 아니다.

치질, 허리디스크, 그리고 과로.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작가는 치질과 허리디스크에 취약하다.

햇빛을 잘 안 보니까 과로도 자주 걸린다.

“어제 너무 무리했나 봐요.”

형우가 면목 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어젯밤, 천우희와 헤어지고 고향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져 있었다. 기차를 네 시간이나 타고, 천우희에게 수업까지 들은 탓에 피곤했지만, 형우는 쓰러지는 대신 바로 노트북을 펼쳐 들었다.

열심히 배운 게 조금이라도 휘발될까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안 자니?”

밤늦게까지 들리는 타닥거리는 소리에, 어머니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 표정은 심히 걱정스러웠다.

“…또 손에 물집 잡힐 때까지 글 쓰는 거니?”

“물집은 무슨. 아니에요.”

형우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럴 단계는 이미 한참 전에 지났으니까.

이미 굳은살이 박인 손에는 더 이상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다시 글에 열중했다. 수십, 수백 번을 쓰고 고쳤다. 단어 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처음 써 보는 것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당연하다고 해서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콧물이 흘렀다.

“…추운가.”

그렇게 생각하며 코를 쓱 문질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콧물이 아니라, 코피였다.

“…이런.”

고개를 내리고 코끝을 눌렀다. 그 자그마한 동작에도 비틀, 하고 몸이 흔들렸다.

현기증이 일어서 눈앞이 빙글 돌았다.

빙글이 아니었다. 빙글빙글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는,

황야의 회전초가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모래바람이 휘날렸다.

그곳은, 서부 개척 시대의 황야였다.

피로에 찌들어서 본 환상일지도 모르고, 과도한 상상력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선잠이 들어 꿈을 꾼 걸지도.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일까.

눈앞에 헤럴드와 베아트리체가 보이는데.

[헤럴드, 비켜. 그 마을에 뭐가 있는지 알잖아.]

[알지. 네 부모를 죽인 살인자가 있다는 걸. 하지만 우리는 그게 누군지 몰라.]

[범인을 말하지 않는다면 다 공범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즉결 처분.]

헤럴드의 목표는 모두에게 존경받는 ‘전설의 보안관’, 그러니까 맥스 시티의 보안관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서 베아트리체의 폭주를 막는 것이 옳다.

하지만 헤럴드는 베아트리체를 마음 깊이 사랑하고 있으며, 그녀의 복수심 또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베아트리체를 막아선다면 그녀가 영영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가족을 고르느냐, 꿈으로 나아가느냐의 기로.

형우가 226화를 완성하지 못하고 밤을 샜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어느쪽이 더 좋은지 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이 순간, 형우는 미칠듯 자신을 괴롭혔던 끔찍한 양자택일兩者擇一의 해답을 깨닫고야 말았다.

‘이건… 단순한 선택이 아니잖아.’

선택이란 건 하나를 고르면 하나를 잃어버리는 상황을 말한다. 하지만, 헤럴드와 베아트리체의 관계는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건 딜레마야.’

딜레마Dilemma. 둘 중 하나를 고를 뿐인 선택Choice과는 다르게, 하나를 고르는 순간, 다른 하나마저 의미가 없어지는 모순적인 구조를 말한다.

헤럴드가 맥스 시티의 보안관을 꿈꾸는 것은 베아트리체를 위해서다. 그러므로 베아트리체를 잃는다면, 그의 꿈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

베아트리체는 전설의 보안관이 되겠다는 헤럴드의 포부가 마음에 들어 함께 모험을 떠났다. 꿈을 버린다면, 베아트리체 또한 잃게 된다.

어느 쪽을 고르든, 둘 모두를 잃게 되는 상황.

그러니, 둘 중 어떤 것도 골라서는 안 된다.

‘…이걸 이제야 깨닫다니.’

설정을 만든 창조자인 자신조차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예전에 문창과에서 수업을 들을 때 ‘텍스트의 무의식Unconscious’이라는 내용에 대해 배운 적이 있었다.

‘작품은 종종 작가보다 위대해지고, 종종 작가가 하지 않은 말을 하기도 하지요.’

지금까지는 어렴풋이 이해한 척만 했는데, 이제야 그 말을 똑바로 이해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에 했던 말도 똑똑히 기억난다.

‘작가는 가끔 자기 작품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것을 뮤즈Muse가 왔다고 표현했지요.’

형우는 그제야 이 낯선 감각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뮤즈의 강림, 혹은 무아지경無我持敬.

‘무협소설에나 나오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꿀꺽, 형우가 침을 삼켰다. 그 말 말고는 지금의 상태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소설이 혼자 써지고 있어.’

캐릭터들이 알아서 움직이고, 자신은 그 뒤를 맹렬하게 쫓아가는 기분이었다.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지? 일단 헤럴드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노트북 속 헤럴드는 이미 총을 들어 올린 채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적들을 해치웠던 헤럴드의 애장인 콜트워커사의 드라군이다.

‘갈등을… 해소하지 않는다?’

헤럴드의 총구는 베아트리체를 겨누는 대신, 마치 자결하려는 사람처럼 자신의 관자놀이를 겨눴다. 총에서는 분명 딸각, 소리가 날 것이다. 예전에 써 놓았던 짧은 설정이 기억났다.

헤럴드의 총은 약간 불량품이라서 가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아도 총알이 멋대로 튀어 나간다.

주인공의 무기는 늘 대단하게 묘사되는 것이 왠지 좀 고리타분하게 느껴졌기에 넣은 설정이지만, 지금의 상황을 긴박하게 만들기에는 아주 좋았다.

의도치 않은 복선이랄까.

‘이제 여기에 개연성 있는 대사가 조금 있으면 더 좋을 텐데.’

새로운 걸 찾기보다, 마찬가지로 예전에 썼던 설정들을 참고했다. 헤럴드가 도박을 더럽게 못 한다는 설정이 괜찮아 보였다.

[베아트리체, 나는 도박에서 이겨본 적이 거의 없어. 언젠가 캐서린이 그러더라고, 목숨을 안 걸고 해서 지는 거라고.]

그 설정은 곧바로 헤럴드의 대사가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목숨을 한번 걸어 볼 생각인데, 네 생각은 어때?]

베아트리체는 대답하는 대신, 입을 굳게 다물고 자신의 총을 들어 올린다. 총구가 겨누는 건 헤럴드의 머리쪽이다.

[이번에도 역시 꽝인가?]

하지만 헤럴드는 후회하지 않는다. 그대로 눈을 질끈 감는다.

[…넌 예전부터]

어두운 세상에서, 베아트리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문제였어.]

그리고 총소리. 베아트리체의 총이 불을 뿜었다. 최고의 현상금 사냥꾼답게 그녀의 총은 백발백중이다. 헤럴드가 쥐고 있던 총이 저 멀리 날아간다.

[뭐 하는 거야, 헤럴드? 죽으려고 그래? 아니면, 뭐 믿는 구석이라도 있어?]

[널 믿었지, 베아트리체.]

가족과 꿈,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선택지. 헤럴드는 그 선택지를 거부했다.

딜레마와 타협하는 대신, 변수 하나를 추가해 딜레마적 구조를 완전히 깨 부쉈다.

변수의 이름은 ‘서로의 마음’이다.

헤럴드가 하는 것은 짝사랑이 아니다. 베아트리체도 헤럴드를 좋아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꿈과 사랑 중에서 한 가지를 택하라니.

헤럴드와 베아트리체 모두, 결코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렇게 딜레마는 깨졌다. 불안함은 사라졌고, 서로의 마음을 확신했다.

여기부터 로맨스다.

[확실하게 절반을 버리느니, 조금 무리해서더라도 다 가지고 싶었어. 나는 욕심쟁이거든.]

[그래서 네가 도박판만 가면 돈을 다 꼴아버리는 거야. 오, 헤럴드! 이리 와.]

헤럴드에게 오라고 한 주제에, 베아트리체는 기다리 않을 것이다. 카우보이 부츠를 질질 끌며 먼저 달려가겠지. 그리곤 바로 눈물을 흘릴까?

설마. 그녀는 그렇게까지 감성적인 캐릭터가 아니다. 서부의 일등 현상금 사냥꾼은 먼저 질문을 던질 테다.

[작전은 있어?]

[성공률은 30% 정도? 아니, 그보다 조금 적을지도.]

[고작 그런 작전으로 나를 말리려고 한 거야?]

[방금 한 자살 소동은 성공률이 10%였어. 하지만 성공했잖아.]

[오, 헤럴드.]

베아트리체가 헤럴드의 가슴에 머리를 폭 묻는다. 바로 로맨틱하게? 아니다.

천우희의 조언이 떠오른다. 로맨틱은 독자와의 밀고 당기기가 중요하다고. 밀기는 충분히 밀었으니, 한번 당겨 줄 타이밍이다.

헤럴드가 표정을 구기며 아오, 비명을 지른다.

[베아트리체! 너 지금 내 발 밟았어.]

[지금 발 밟은 게 대수야?]

잘 가던 분위기에 일부러 분위기에 금을 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당겼다 싶다. 이제 밀어버릴 차례다. 독자들이 정신을 못 차리도록.

[좀 닥쳐, 헤럴드. 이래야 눈높이가 맞잖아.]

[무슨 눈높이… 아.]

그대로 베아트리체는 헤럴드의 멱살을 쥔다.

그대로 마지막 문장을 적었다. 마지막 문장은,

[헤럴드의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이거다.

“마음에 드네.”

한번 더 확인한 후에, 그대로 저장했다. 문서의 이름은 <전설의 보안관 226화 완성본>이다.

그대로 ‘전송’ 버튼을 누르는 순간, 형우의 시야가 까맣게 암전되었다. 또다시 코피가 팍, 하고 터졌다. 테이블이 핏자국으로 흥건했다.

어쩌면, 다시 터진 것이 아니라 한 번도 멈추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걸 다 닦으려면 행주가 세 개는 필요하겠는걸.’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형우는 자신의 몸이 허물어지는 것을 느꼈다. 콰당- 하는 소리가 나고, 달려오는 어머니가 보였다. 예전에 한 책에서 봤던 뮤즈Muse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뮤즈는 영감을 주지만 또한 아주 욕심쟁이입니다. 그녀는 가끔 예술가의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요.

모든 것을 파괴하는 건 좀 그렇지만

약간의 현기증 정도라면,

만족할 만한 거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눈 떠보니까 병원이었습니다.”

쓰러진 원인은 과다출혈이 아니라 과로였다.

“게다가 혈전성 외치핵, 그러니까, 치질도 있다고 의사가 그랬고요.”

그래서 이왕 병원 온 김에 치질까지 치료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바로 수술 일정을 잡은 거였다.

“…그러니까 그만 좀 울어요, 편집자님. 누가 보면 죽을병 걸린 줄 알겠어.”

“어떻게 그래요? 제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해서 작가님이 과로하신 건데. 괜히 로맨스가 이렇니 저렇니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걸….”

그런 지원의 어깨를 형우가 토닥거렸다.

아픈 건 난데 왜 위로도 내가 하지? 조금 억울하긴 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그러려니 했다

“에이. 편집자가 원래 작가 욕하라고 월급 받는 건데. 그러니까 그만 우세요. 자꾸 그러시면 저 섭섭합니다?”

큰 병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지원의 눈물을 쉽게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보여줘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지원은 자신이 프로라는 사실을 잊어버리진 않았다.

“뭘요?”

“그, 코피 쏟고 입원하면서까지 썼다는 이번 화… 그거 달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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