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46화 (46/200)
  • #45

    <새로운 집, 그리고 새로운 공간>

    컨셉이 정해진 후부터, 촬영팀은 마치 네비게이션을 단 차량처럼 한 번의 이탈도 없이 순조롭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인터뷰를 해 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정승록은 긴장하지 말라며 형우의 어깨를 살짝 주물러 줬다.

    처음에는 소설을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아버지의 투병 이야기를 했다.

    “스토리 좋네요.”

    정승록은 그렇게 말하며 끄덕이다가,

    “어, 음. 죄송합니다. 조금 실례였나요?”

    라며 사과했다. 직업병인가 싶었다. 형우는 그런 정승록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하도 오래된 일이라.”

    그다음에는 순문학에서 장르소설로 전향을 마음먹은 이유와, 어머니의 반대를 극복한 과정 같은 것을 인터뷰했다. 역시 정승록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로는 역시 소설 이야기인데요. 혹시 이렇게 되고 싶다, 하는 작가가 있나요?”

    형우가 잠시 고민하다 대답했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돈 많이 버는 작가요?”

    “…잠깐 컷.”

    정승록이 검지와 중지로 뭔가를 자르는 시늉을 했다.

    “작가님. 그거 말고 좀 다른 대답 없을까요?”

    “다른 대답이요?”

    “뭐랄까… 좀 더 반짝거리는 게 있었으면 좋겠는데.”

    “돈은 반짝거리잖아요.”

    “어허.”

    <요그>도 일단은 매거진이니, 없는 이야기를 막 적어낼 수야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연출적인 측면을 제외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렇게 말하며 정승록이 예로 든 것은 한국의 유명 축구선수 이성우의 인터뷰였다.

    “이성우 선수는 머리 스타일이 특이한 걸로도 유명하잖아요? 색깔도 형광색이구요. 예전에 기자가 인터뷰를 한 게 있어요. 왜 머리를 그렇게 하냐고.”

    “네.”

    “그때 이성우 선수가 뭐라고 대답했느냐면, 할머니를 위해서라고 했어요. 축구 중계라는 게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거니까, 눈이 안 좋은 할머니가 자기를 잘 못 찾는다고. 그래서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머리를 티 나게 했다. 그렇게 대답했죠.”

    그 인터뷰라면 형우도 알고 있다. 이성우라는 선수의 이미지를 ‘악동’에서 한순간에 ‘효자’로 바꿔버린 인터뷰. 그 덕에 젊은 선수가 머리 꼴이 저게 뭐냐고 욕하던 팬들조차 숙연해지지 않았던가.

    “약간, 그런 식의 강한 한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거죠.”

    정승록이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며 입으로 쉿쉿, 소리를 냈다. 그제야 그가 말하는 ‘그림’이라는 게 뭔지 대충 감이 잡혔다.

    “같은 질문을 한 번만 더 해주실래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정승록이 흡족하게 웃었다.

    “…혹시, 앞으로의 포부가 있나요?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던지.”

    “마지막 작품이 미완인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

    자신감이 붙은 형우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셰익스피어도, 찰스 디킨스도, 마지막 작품은 미완으로 남았다고 해요. 왜인 줄 아세요?”

    “글쎄요.”

    “글을 쓰다가 세상을 떴거든요. 저는 그런 소설가가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 글을 쓰다 세상을 떠나는….”

    “……잠시, 잠시만요.”

    정승록의 반응이 이상했다. 막 몸을 배배 꼬고 어색한 표정으로 볼을 긁적거렸다. 꼭 직장 상사한테 이빨에 고춧가루 꼈다고 말할지 말지 고민하는 모습 같았다. 보다 못한 형우가 먼저 물었다.

    “뭐가 이상한가요?”

    “그게요… 조금 기분 나쁘실지도 모르는데.”

    “대답 못 들으면 그게 더 기분 나쁠걸요. 아시잖아요. 뒷말 못 들으면 찝찝한 거.”

    정승록이 이마의 땀을 슥 닦아낸 후에,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 제가 알기로, 작가님은 아직 20대고, 갓 소설가가 되신 거잖아요?”

    “그렇죠?”

    “근데 방금 말한 건 좀….”

    “좀?”

    “지금 말하기에는 조금 이른 것 같다고 할까….”

    “아.”

    과몰입했다는 뜻이었다. 정승록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저건 패스하고 다른 질문으로 가죠.”

    “그래도 되나요?”

    “어차피 컨셉은 인테리어랑 환경이니까요. 이건 진짜 대답 잘해 주셔야 해요. 아까 인테리어를 보니 책장 위쪽을 비워 두셨던데, 혹시 이유가 있으실까요?”

    “아 그건….”

    형우는 오버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대답을 이어나갔다.

    * * *

    “좋아요, 이 정도면 그림은 충분히 나온 것 같네.”

    정승록이 필름이 가득 든 가방을 기분 좋게 톡톡 두드렸다. 그 안에는 시골의 풍경부터 시작해서, 서울의 풍경, 인테리어점까지, 지난 사흘 간 진행했던 모든 강행군의 흔적이 그대로 들어 있었다.

    ‘새로운 집, 새로운 시작. 분명 이건 대박이야!’

    서울과 지방을 오가는 강행군이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정승록은 흡족한 표정으로 슬레이트를 탁, 하고 닫았다.

    “총 촬영시간 21시간 42분으로 최종 촬영 마치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정승록의 말에 맞춰 촬영장 여기저기서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21시간이라. 그게 다 들어가요?”

    “아뇨. 들어가는 건 이 중에서 1%밖에 안 될걸요.”

    “헉.”

    형우가 입을 쩍 벌렸다. 정승록에게는 별것 아닌 일상이었는데, 남들은 늘 이 이야기를 하면 놀라워했다.

    “작가님이 쓰시는 소설도 그렇잖아요. 퇴고.”

    “퇴고는 아무리 못해도 절반은 남기거든요.”

    “흐흐, 그런가요?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정승록이 형우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결과 나오기까지는 한 1주일 정도 걸릴 거예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부아앙-!

    잠시 후, 촬영팀이 탄 차가 흙먼지를 뿜어내며 시골의 도로 위를 달렸다.

    백미러를 통해 길게 하품하는 형우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스타일리스트인 이설화가 볼멘소리를 냈다.

    “작가님은 이제 자러 가겠죠? 부러워라.”

    그 말을 들은 정승록은 기가 찬다는 듯이 하, 하고 웃었다.

    “너도 스타일리스트라 별로 할 거 없잖아.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방금까지가 카메라와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컴퓨터랑 한 판 붙을 차례였다.

    * * *

    “저기 있네.”

    파란색 트레이닝복은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여.”

    무심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리는 것은 당연하게도 천우희였다.

    “…촬영은 잘 끝났어?”

    “덕분에요. 아, 그래서 말인데.”

    형우는 가방을 뒤져 이번 호 <요그>잡지를 꺼냈다. 어제 형우의 집에 도착한 잡지였다.

    “원래 2주 있다 나오는 건데, 기자님이 미리 보내 주신 거예요. 천우희 작가님에게는 도움도 많이 받았겠다, 직접 전해드리고 싶었거든요.”

    “꽤 기특한 생각을 했네. 그건 그렇고, 배는 안 고파?”

    천우희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흔들었다.

    “괜찮은 식당 아는데, 어때? 나 차 끌고 왔거든.”

    차 키에는 동그란 방패 모양 로고와 함께, BMW라는 세 글자가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형우가 입을 헤 벌렸다.

    “…차 좋아 보이는데, 무슨 차에요?”

    “BMW 5시리즈야. 6천 주고 산 거지.”

    “6천이요? 와우.”

    가격으로 따지면 현수의 자동차인 벤츠 S클래스가 더 비싸기는 했지만, 형우의 입장에서는 6천이나 1억이나 똑같이 비싼 차이긴 매한가지였다.

    “왜, 한번 몰아보고 싶어?”

    “저 면허 없는데요.”

    “…면허도 안 따고 뭐 했대? 그럼 조수석에 타.”

    어느새 선글라스를 꺼내 쓴 천우희가 손짓했다.

    ‘추리링과 고급 외제차라.’

    뭔가 잘 안 어올리는 것 같으면서도, 그 갭에서 또 간지가 풀풀 풍긴다고 할까. 그대로 둘은 도로를 타고 도심 쪽으로 달려 나갔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베네치아의 섬>이라는 이름의 파스타 전문점이었다. 이름답게 이탈리아풍의 인테리어가 돋보였다. 둘은 파스타를 하나씩 시킨 뒤, 자리에 앉았다.

    “일단 <요그>부터 좀 볼까.”

    표지에는 다리가 하나 없는 모델 한 분이 멋진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전에 TV에서 본 사람이었다.

    19살까지 축구선수를 꿈꾸며 체육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인해 다리 한쪽을 잃은 뒤 모델로 전향해서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이다. 그 외의 사람들도 다 쟁쟁했다.

    “이 사람은 50세에 연기자 도전하신 분이고… 특집 코너 나오는 모델은 시각 장애인이신 분이네. <요그> 이번 호, 진짜 신경 많이 썼는걸.”

    “제가 여기 껴도 되는지 모르겠다니까요.”

    “안될 건 또 뭐야. 그나저나, 넌 어디 나와?”

    천우희는 페이지를 슥슥 넘겨 형우가 나오는 <작가들의 밤> 부분을 찾았다. 정확히는, 찾았다가 쓱 넘어갔다. 형우가 지적했다.

    “방금 지나갔어요. 47페이지.”

    “?”

    <작가들의 밤>이라는 타이틀 아래에는, 멋들어진 붉은색 체크무늬 셔츠가 잘 어울리는 훈남이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옷은 분명 내가 골라준 옷이 맞기는 한데.”

    천우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잡지에 나온 얼굴과 형우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니까, 이게 너라고?”

    “……예.”

    형우는 조금 멋쩍은 기분을 느끼며 천우희의 시선을 피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 좀 그랬지만, 솔직히 엄청 잘생기게 나오긴 했다. 촬영 전에 형우는 정승록에게 자신이 사진발을 잘 안 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승록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사진발은 피사체가 아니라 찍는 사람이 만드는 거라고 말했었다.

    ‘저 정도 되는 프로면, 민트초코도 맛있어 보이게 찍을 수 있단 말이죠.’

    그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지금 보니 참으로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다. 정승록의 마법이랄까.

    “분명 김형우라고 쓰여 있는데, 이 잘생긴 김형우는 대체 누구니?”

    “고마워요, 천우희 작가님.”

    “이 정도면 사기 아닌가? 양심이 없는 것 같은데?”

    “와, 참 고마워요.”

    형우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사진은 됐고, 내용은 안 읽을 거예요?”

    사실 형우가 생각하기에, 진짜 마법은 사진이 아니라 내용 쪽이었다.

    [모든 아버지들은 자신의 아들을 감동시키고 싶어 하지만, 결국에는 아들에게 감동을 받고 만다. 특히 소년 김형우의 아버지는 누구보다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열다섯 살의 소년은, 아픈 아버지를 위해 펜을 잡고 글을 썼다. 그리고, 아버지를 감동시켰던 그 펜의 떨림은 10년이 더 지난 지금 훨씬 더 진한 울림이 되어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 묘사가 얼마나 낯설던지. 따지고 보면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는데, 글로 써 놓으니,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인 것 같았다. 그 밑에는 형우와 정승록의 인터뷰가 달렸다.

    [아까 책장을 보니 맨 위쪽 칸은 비워 두셨더라고요. 혹시 이유가 있나요?]

    [키가 작아서라고 말하면 싫어하실 거죠?]

    [형우 작가님 저보다 키 크시잖아요. 그러면 제가 뭐가 돼요?]

    [하하, 농담이고요. 그 자리는 배려석입니다. 그, 지하철 보면 임산부 배려석이나 노약자 배려석 같은 게 있잖아요? 그런 거죠.]

    [오호, 배려석이라. 무슨 배려석일까요?]

    [앞으로 나올 책들을 위한 배려석이죠.]

    [앞으로 나올 책들이라면?]

    [당연히 제가 쓸 책들이지요. 그래서 배려석이라고 한 거예요. 다른 명작들 사이에 두기는 좀 약하니까, 특별히 자리를 만들어 준 거죠].’

    [제 생각엔 형우 작가님 작품도 충분히 멋져요.]

    메인 인터뷰 뒤에는 서울과 시골이라는 공간과 작가의 삶의 내용이 알뜰하게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는 참치와의 인터뷰도 짤막하게 실렸다.

    [참치는 형우 작가님의 애완동물이잖아?]

    [뺙뺙!]

    [날 수 있니?]

    [뺘아아아악!]

    [흐음, 날 수 있다는 뜻 맞지?]

    “푸핫.”

    천우희는 타이밍 좋은 개그에 웃음을 터트렸다.

    “진짜 잘 썼네.”

    기본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로 가되,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적절하게 유머를 섞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최근에 본 것 중 제일 괜찮은 인터뷰였어. 꽤 고생했겠네.”

    “…에이, 고생은 무슨.”

    칭찬에 쑥스러워진 형우는 괜히 그렇게 말했다. “정승록 기자님 질문이 좋았던 거죠. 그 사람은 누굴 인터뷰했어도 이 정도는 했을걸요.”

    “뭐래, 내가 인터뷰 안 해 봤냐.”

    천우희가 콧방귀를 뀌었다.

    “인터뷰는 호흡이거든. 어느 한쪽만 잘해서는 좋은 기사가 나오지 않는다는 거야.”

    우문현답愚問賢答, 현문우답賢問愚答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좋은 질문에 좋은 대답만 나왔으면 이런 말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질문이 좋았던 만큼, 네 대답도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특히 책장 부분이 좋더라.”

    천우희는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짓궂게 웃었다.

    “나도 오늘부터 책장 맨 위 비워 놔야겠다.”

    “아.”

    “그 자리는 내가 쓸 책을 위한 배.려.석이니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많은 명작들 사이에 나의 작품을… 아악!”

    천우희는 결국 형우에게 팔을 꼬집히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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