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잡지사에서 예고했던 촬영일.
“…이렇게 입는 옷 맞나?”
형우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옷차림을 살폈다. 천우희와 함께 쇼핑했던 옷들이었다.
“…이상한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뭐랄까, 몸에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광대 같았다.
“…옷이 이상한데.”
“그렇게 입으니 이상하지. 일단 셔츠부터 집어넣으렴.”
그렇게 말한 것은 어느새 형우의 방에 들어온 어머니, 송윤아였다.
“어머니? 오늘 일 나간 거 아니었어요?”
“얘는 무슨, 이런 날에도 내가 일을 나가야 쓰겠니?”
그렇게 말하는 어머니의 얼굴은 주름 하나 없이 말끔했다. 형우가 선물한 고급 화장품의 힘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입은 옷 또한 언뜻 보면 강남 사모님이라고 여겨질 만큼 화려했다. 어디 가서 놀아보지도 못하고 매일같이 일만 하는 어머니를 위해 형우가 예전에 큰맘 먹고 사 줬던 옷들이었다.
“언제는 안 입는다면서요.”
“그럼 있는 옷을 버려야 되겠니?”
어머니께 옷을 선물한 날, 형우는 어머니에게 고맙다는 말 대신 이런저런 잔소리를 잔뜩 들었었다. 돈 생겼다고 펑펑 쓰는 거 아니라느니, 다시 한번 이런 쓸데없는 거 선물로 주면 안 받고 다 버려버리겠다느니 하는 말들이었다.
“엄마 어때? 좀 괜찮아?”
“엄청 예뻐요. 시상식 나온 여배우 같아. 김해수나 고헌정 정도?”
“애도 참, 비행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도 형우의 말이 기분 좋기는 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입어요.”
“무슨, 오늘이니까 입은 거지. 내가 이런 옷 입을 일이 어디 있니?”
“뭐, 생길 수도 있죠. 남자친구가 생긴다던가….”
“다 늙은 나를 누가 좋아한다고 남자친구 타령이야.”
“에이… 찾아보면 있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 엄청 가까이 있을지도….”
형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민준 삼촌이었다. 최근 어머니와 민준 삼촌 사이에 요상한 기류가 흐른다는 건, 엄마랑 민준 삼촌 빼고는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애가 또 괜한 소리를… 그나저나 이리 와 봐라. 기껏 비싼 옷을 입어 놓고 꼴이 그게 뭐니.”
“뭐가요?”
“누가 네 아빠 아들 아니랄까 봐 옷을 참 더럽게도 못 입는구나. 이리 와 봐라. 그건 그렇게 입는 옷이 아냐.”
그대로 어머니는 형우의 옷매무시를 가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셔츠를 집어넣고, 옷을 쭉쭉 펴고, 단추를 다시 묶었다. 별것 아닌 디테일들이었는데, 하나를 할 때마다 거울 속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다.
“…와아.”
어머니의 손을 거치고 나니, 형우의 모습은 말 그대로 180도 변했다. 아까까지의 모습이 광대라면, 지금은 마치 18세기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에서 혁명에 대해 토론하는 철학가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흐음, 아까보다 훨씬 낫기는 한데….”
형우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살피던 어머니는 괜찮은 게 생각났다는 듯 형우의 카라를 쥐었다.
“카라를 살짝 구기는 게 낫겠다.”
“…한 번도 안 입은 새 옷인데요?”
“그래서 그래. 준비했다는 느낌이 너무 세잖니. 소풍 가는 어린애도 아니고, 이거 새 옷이에요 하고 동네방네 자랑하기도 그렇잖아.”
카라를 몇 번 구긴 후에 어머니가 눈을 돌린 건 형우의 방이었다. 촬영이 잡혀서 어제 어느 정도 정리를 해 놓기는 했다.
“깨끗하긴 한데, 뭔가 밋밋하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어머니는 그대로 부엌을 뒤져 파스텔 톤으로 곰 인형이 그려진 머그컵을 꺼냈다. 형우가 어릴 때 쓰던 물건이었다.
“그건 갑자기 왜요?”
“방이 너무 예술가스럽기만 한 건 재미가 없잖니?”
곰 인형 머그컵을 사용해서, 이미지에 약간의 갭을 주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거 아무도 눈치 못 챌 것 같은데.’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감격스러워 말은 안 하고 있지만, 형우는 약간 의문이 생겼다.
‘옷이야 깔끔한 게 무조건 좋고, 컵이야 뭘 쓰든 상관없지 않나?’
그렇게 한참이나 방의 구조를 요리조리 바꾸고 있을 때, 갑자기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여기예요?”
“그래, 빨리 장비 갖고 내려. 시간 없다.”
잡지사에서 온 차량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검은 봉고에서 정승록을 비롯해 다섯 명 정도가 우르르 내렸다. 형우가 입을 쩍 벌렸다.
“다섯 명이나 어쩐 일이세요?”
“아, 오늘 촬영 도와줄 친구들이에요.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김형우 작가님. 그나저나….”
도착한 정승록은 흐음, 하고 턱을 매만지면서 형우를 위아래로 쭉 훑었다. 그러기를 십 초 정도. 정승록이 씩 웃으며 함께 내린 젊은 여자의 허리를 쿡, 찔렀다.
“설화야. 너 오늘 쉬겠다?”
“그러게요.”
“괜히 데리고 왔네. 차에서 대기하고 있어.”
설화라고 불린 여자의 얼굴이 헤벌쭉하게 벌어졌다. 형우가 물었다.
“…누구예요?”
“아, 저희 팀 스타일리스트에요. 원래 피사체 의상 담당하는데, 작가님 보니까 필요 없겠다 싶어서.”
정승록이 씩 웃었다.
“오늘 의상 정말로 컨셉 좋네요! 카라는 일부러 구기신 거죠? 완전, 작가라 그러신지 몰라도 서브 텍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하시네요.”
…그걸 알아본다고?
“그런데 좀 너무 댄디한 느낌이 없지도 않은데… 뭔가 포인트 줄 만한 거 집에 없을까요?”
“어… 이런 거요?”
형우가 곰 인형 머그컵을 슬쩍 들어 올렸다. 정승록의 감탄사가 바로 터져나왔다.
“크으! 맞아요, 그런 거! 미리 준비하신 거예요?”
“아, 예. 준비했습니다.”
“대박, 대박. 이래서 젊은 작가들이랑 일하는 게 좋다니까? 요즘 트렌드를 알잖아.”
정승록이 엄지손가락을 척 치켜들었다.
“가끔 그런 사람도 있어요. 카라 구기자고 하면 새 건데 왜 구기냐고 하는 사람.”
“……아.”
“아니, 전에 누구는 기껏 소품 준비해 왔는데 이게 더 편하다면서 촌스러운 하얀색 머그컵을 굳이….”
정승록의 뒤로, 숨죽여서 쿡쿡 웃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 * *
“촬영 준비할게요.”
우우웅, 하고 카메라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잡지사라 사진을 찍고 인터뷰나 하는 정도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은 카메라가 동원됐다.
“요즘 트렌드는 스토리텔링이거든요. 잡지사라고 해서, 사진 몇 장 찍고 인터뷰 몇 장 달아놓고, 그걸로는 택도 없다는 이야기죠. 오디션 프로그램만 봐도 아시잖아요?”
정승록의 설명이었다. 옛날에 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격인 강변가요제 같은 프로그램은 그냥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부르고, 거기에 점수를 매기는 방식이 유효했다.
하지만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은 다르다. 노래 실력뿐이 아니라, 참가자 개인의 스토리에도 비중을 둔다. 가끔은 ‘노래는 A가 더 잘 부르는데, B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래서 B에 투표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종종 나오고, 그게 최종적인 결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실력뿐만 아니라, 스토리도 가치가 된 시대라고 할까. <요그>같이 대중을 대상으로 한 잡지사일수록 그런 시장의 사정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일단 형우 작가님의 일상을 따라다니면서 그림을 뽑은 후에, 저희가 의논해서 그 안에서 컨셉을 정할 거에요.”
100P가 넘는 잡지에서 <소설가의 밤>이 실리는 지면은 8P 정도다. 그 8P를 위해서, 촬영 기사들은 이틀, 삼일을 꼬박 새운다고 했다. 사진 몇 장 찍고 인터뷰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세간의 이미지와 달리 잡지라는 분야 또한 꽤나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분야였다.
‘하기야. 소설가도 마찬가지지.’
소설가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여행 다니며,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햇살이 비치는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이며 여유롭게 노트북을 두드리는 모습을 떠올린다.
하지만 형우가 겪어본 소설가의 삶은 그것과 정확히 반대였다. 여행을 갈 시간도 없고, 영감은 떠오르는 게 아니라 쥐어짜는 거고, 커피는 한 모금 정도가 아니라 리터 단위로 마셔야 했다. 모두가 말하듯, 현실과 이상은 늘 커다란 괴리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말인데, <요그>에서 원하는 쪽은 어느 쪽이죠?”
“으음, 그것참, 말하기가 애매한데요.”
형우의 질문에, 카메라를 조작하던 정승록이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대답했다.
“저번에 한 작가님은 정말로 이틀 내내 담배 피우면서 글만 쓰시더라고요. 물론 그게 소설가들의 일상이겠지만… 그래서는 저희가 쓸 그림이 없거든요.”
“그러면 조금 더 연출적으로?”
“…그것도 문제인 게. 다른 작가님은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서 요가를 하지 않나, 보육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시더니 몸이 아프다고 몸져누우셔서 또 그림이 나오질 않아서 곤란했죠.”
“약간… 리얼(real)은 아니고, 현실감(reality)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그 표현 좋군요. 아주 좋아요.”
정승록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드는 바람에, 그의 수염이 크게 흔들렸다.
“일단은 일상을 찍는 걸로 가되, 도중에 그림이 나오지 않을 것 같으면 저희가 추가적인 요청을 하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네.”
“흐음, 좋아요. 의상 좋고, 구도 좋고, 조명 좋고. 그러면 촬영 시작합니다!”
형우는 카메라를 향해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뭐여, 형우 방송 타는 겨?”
“방송은 아니고 잡지사라던데.”
“무슨 잡지산디?”
“요그였나 크툰이었나… 뭐 그런 이름이었는데?”
형우의 집 앞에는 사람들이 그득그득 모여 있었다.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 카메라니, 봉고차니 하는 방송용 장비들이 그득하니 그럴 만도 했다.
시골은 소박하고 정겹지만, 도시와 같은 활기와 폭발력은 없다. 소위 말하는 즐길 거리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즐길 거리에 잔뜩 굶주려 있는 상태였다.
저번에 공판석이 형우의 집 앞에서 강짜를 부릴 때도 온 마을 사람들이 다 모였었는데 하물며 방송국이라니. 사람들이 안 모일 리가 없었다.
“마을 사람이야 뭐, 이해한다고 쳐도….”
형우는 자신의 눈앞에 놓인 수박화채를 바라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냉면 그릇처럼 커다란 놋그릇에 넘쳐흐를 듯이 각종 과일들이 담겨 있었다.
“오미자에, 산딸기에, 머루에… 게다가 생크림은 대체 어디서 구한 거야?”
겉모습만 보자면, 신라 호텔 같은 데 가도 십만 원은 줘야 먹을 수 있을 것처럼 생겼다. 방금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온 어머니가 간식이라며 두고 간 것이다.
“형우야 평소에 네가 좋아하는 거란다.”
“제가… 평소에 이런 걸요……?”
“호호, 왜 그러니? 사람들 앞이라 부끄러운가 보다.”
그런 어머니의 폭주를 제지한 것은 정승록이었다.
“하하, 어머님. 아들 생각하는 모습 너무 보기 좋습니다. 그림이 잘 나오겠는데요?”
“어머, 정말요?”
“네. 옷차림도 아주 아름다우십니다. 형우 작가님 촬영 빨리 끝낸 후에, 어머님 인터뷰도 꼭 해야겠는데요?”
“아니, 아니… 제가 무슨 인터뷰를….”
타이밍 좋은 정승록의 너스레 덕분에, 살면서 처음 보는 인자한 미소를 띤 어머니는 그대로 호호 웃으며 거실로 돌아갔다. 정승록이 형우를 향해 이제 됐죠? 라는 느낌으로 눈을 찡긋했다.
‘…세상에.’
그 고집 센 어머니를 저렇게 쉽게 컨트롤하다니.
역시 프로는 다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