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휴우, 다행이다!”
12시 11분. 형우는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퇴고 과정을 마쳤다.
‘하마터면 시간에 못 맞출 뻔했네.’
형우의 퇴고는 3단계로 이루어진다. 일단 초고를 작성한 후에, 부족한 부분을 고치는 것이 1단계 퇴고다. 이 경우에는 보통 작품의 큼직큼직한 부분을 고치는 데에 주력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완성된 1차 퇴고본은 그대로 편집자에게 전달된다.
1단계 퇴고본을 전달받은 편집자, 그러니까 지원은 작품을 읽고 맞춤법을 교정한다. 때로는 짤막한 감상과 피드백을 남기기도 한다. 맞춤법이 이상하거나 오탈자가 나온 게 아니라면, 편집자가 소설을 직접 건드는 일은 거의 없다. 그저 제안을 할 뿐이다. ‘3P에 4번째 줄에 나오는 문장은 지우는 게 어떨까요?’ ‘헤럴드와 베아트리체가 싸우는 부분이 너무 길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을 흔히 ‘교정작업’이라고 부르고, 편집자의 손을 거친 2차 퇴고본을 ‘교정본’이라고 부른다. 수 많은 제안이 빼곡하게 적힌 교정본은 다시 형우에게로 돌아온다.
교정본에 적힌 편집자의 의견을 수용할지, 아니면 무시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3차 퇴고다. 작가마다 좀 다르지만, 형우는 지원의 의견을 대충 90% 정도는 수용하는 편이었다. 이렇게 3차에 거친 퇴고가 끝나면, 그 작품은 독자와 만날 준비를 완료한 것이다.
위이잉.
작품을 올리자마자, 지원에게 전화가 왔다.
“네, 편집자님. 방금 보냈습니다. 제안 거의 다 수용했고요. 4P에서 도치한 부분만 패스했어요.”
“확인했어요. 그런데, 작가님. 혹시 댓글 확인해 보셨어요?”
“댓글이요? 아직 안 봤는데요.”
“지금 당장 확인해 보세요!”
지원의 말을 따라, 형우는 사이트에 들어갔다.
“댓글이 200개…?”
댓글 개수를 보자마자, 형우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저번에 비슷한 일이 있었을 때는 소설이 내용이 아니라 소설 외적인 것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이번에는 아니겠지.’
형우의 간절한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댓글 중, 소설 내용에 관한 건 몇 개 되지도 않았다.
대부분은, 외적인 이야기였다.
하꼬인생 : 작가 한국대라는거 팩트임?
난나눈누 : 미치겠다; 이게 한국대생의 필력인가?
마구니가가득 : 아니 참새치 작가님은 글도 잘 쓰고 학력도 좋고 얼굴도 잘 생겼고 못하는 게 뭐임?
ㄴ백수도직업 : 참새치 작가님 로그인하세요;
6월의라이온 : 근데 어제 인별그램 올라온 인증샷 보면 좀 장용건? 삘나긴 함.
ㄴ사이다패스 : 작가님 아이디가 대체 몇 개임?
팩트폭격기 : 솔직히 말하면 참새치 작가님도 3대 500까지 벌크업 좀 하고 코에 뭐 좀 넣고 키높이 깔창 8CM짜리 깔면 장용건 같긴 할 듯.
ㄴ에픽등장 : 이새낀 또 뭐야 ㅋㅋㅋ니가 제일 나빠.
문창과교수 : 이 사람 한국대 맞습니다. 저의 제자입니다.
ㄴ수미상관법 : 이 사람 컨셉 웃기네ㅋㅋ. 진짜 참새치 스승이면 고추 자르고 인증함.
‘…이게 뭐야?’
댓글들 대부분은 자신의 학력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난 일주일간, 소문이 쫙 퍼진 모양이었다.
‘그건 당연한 일이긴 한데….’
그 많은 사람들 한가운데서 ‘내가 참새치다.’라고 해 버렸으니, 소문이 안 나는 게 이상했다. 오히려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이게 이렇게 이슈몰이를 할 일인가?”
하루 사이에 <전설의 보안관>의 독자가 상당히 늘었다. 심지어는, 추천글도 몇 개나 써졌다.
[한국대생의 필력, 어마어마합니다.]
[백내장을 앓아 맹인이던 저희 할아버지가 20년 만에 전설의 보안관을 보기 위해서 눈을 번쩍 뜨셨습니다. 심지어는 제가 전설의 보안관을 보며 걸어가는데, 앉은뱅이처럼 보이시던 노숙자분이 벌떡 일어나 같이 보자며 쫒아오시더군요…]
반쯤 장난으로 쓴 영양가 없는 리뷰였다. 하지만 리뷰가 장난이었을 뿐, 늘어난 선호작 수는 진짜였다. 심지어 구매율은 그보다도 더 늘었다.
나비야나비야 : 예전에 읽다가 그만뒀는데, 작가 한국대라는 말 듣고 다시 보는 중.
박수무당 : 좀 노잼인데… 뭐? 작가가 한국대라고? 역시 한국대! 꿀쥄꿀쥄!
민초남 : 엄마가 공부 안 하고 뭐하냐기에 한국대생이 쓴 글 읽고 있다고 하니까 아 공부중이구나 미안하다, 하면서 나감. 용돈도 줌. 그 돈으로 <전설의 보안관>다 질렀음.
소설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회귀자回歸子들 덕분이었다.
형우는 아리송했다.
“…어떤 작가는 부장판사 아들이고, 어떤 작가는 시립대 출신인데도 그냥 그러려니 하던데, 왜 나만…?”
형우는 학력 사회인 대한민국을 얕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든 일단 ‘한국대’라는 타이틀만 붙어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네’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오는 게 바로 한국대라는 이름의 힘이다.
하물며 잘나가는 작가가 한국대 출신이라는 것은, 장르시장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국대 재학생인 형우만 그걸 몰랐다.
[이번 정거장은 수서, 수서입니다. 내리실 분은….]
“어이쿠.”
댓글에 집중하던 나머지, 도착했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뻔했다.
* * *
“허억, 허억!”
역에서부터 뛰다시피 강당까지 달려온 형우는 그대로 땀을 닦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대로 책상 위에 있는 오렌지 주스를 벌컥거리며 마셨다.
빰빠바밤!
오렌지 주스를 비우자마자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나팔이 울렸다. 시작은 학교 관계자의 개회사로 시작됐다.
“저희 한국대학교 재학생들이 이렇게 행사에 참여해 준 것을….”
“저희 서울시의원은….”
“저희 장학재단은….”
뭐 이리 식순이 복잡한지. 국민의례는 물론이고, 거기에 교가까지 있었다. 학생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웅성거렸다.
“…우리 학교에 교가가 있었어요?”
“원래 대학교들 다 교가 있어. 안 불러서 모르는 거지. 음대 애들은 그래도 알긴 알더라.”
“걔네들도 고생 많네.”
형우도 이 학교에 6년을 다니면서 교가를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온 세상에 빛을 내는 한국 대학교~”
챙!
음대생의 경쾌한 심벌즈 소리에 맞춰, 교가도 끝났다. 식순을 확인해 보니, 이다음이 시상식이었다.
‘꿀꺽.’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지난 몇 달 동안 오늘을 위해서 고생해오지 않았던가. 주변에 있는 학생들 또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본 행사는 교내의 80개 과에서, 80명의 학생이 참여해 주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감사를 보내며, 장려상부터 수상 시작하겠습니다. 한국 대학교의 리더 장려상은…!”
한국 대학교의 최대 행사 중 하나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구석의 음대생 몇 명이 손 바쁘게 드럼을 치는 것이 보였다. 두구두구두구….
“장려상은 바로, 컴퓨터 공학과의 이정훈 학생입니다!”
“와아아!”
강당 전체에서 박수가 터져 나오고, 수상자에게 상패가 주어졌다. 그다음인 은상은 무용학과의 학생이 받았다.
‘남은 건 대상 하나인가.’
형우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한국대학교의 학과 또한 또한 예체능, 이공계, 인문계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는 전통적으로 세 개의 학부 모두에게 반드시 하나씩은 상을 줬다. 컴퓨터 공학과는 이공계고, 무용학과는 예체능이니, 대상은 자동으로 인문계 쪽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형우가 속한 문창과 또한 인문계 대학에 속해 있었다.
‘…제발!’
형우가 두 눈을 질끈 감고 기도를 했다. 귓가에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예의 금상 수상자이자 이번 학기 한국 대학교의 리더로 선정된 사람은….”
사회자가 잠시 뜸을 들였다. 연단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특히 문과생들이 모인 자리는 침 삼키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단신으로 시위를 막아낸 불어불문학과의 이창준 학생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형우는 그대로 고개를 푹 떨어트렸다.
* * *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가 종료된 후, 한다은 교수님의 교수실. 형우는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한다은 교수님이 한숨을 푹 쉬었다.
“…루왁 아니야. 블랙 아이보리니까, 걱정 말고 마셔.”
저번에 한다은 교수님이 주셨던 커피는 사향 고양이 똥으로 만들었다는 코피 루왁이었다. 맛은 좋았지만, 알고 나니 얼마나 찜찜하던지.
“비싼 거 줘도 싫다는 애는 네가 처음이다. 그거 자연산 루왁이었는데.”
“잘 마실게요.”
똥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형우는 그대로 커피를 홀짝거렸다.
‘좋네.’
커피를 그렇게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맛이 다르다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루왁이 쓴맛이 좀 강했다면, 이번에 먹는 블랙 아이보리는 쓴맛이 거의 나지 않았다.
‘작업하면서 먹기 딱 좋겠네.’
탁 소리를 내며 커피잔을 내려놓자마자 한다은 교수님이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까웠어. 마지막까지 표가 갈렸거든.”
“그런가요.”
“아무래도 연설 내용보다는, 그다음 사건이 좀 이목을 끌었지.”
천병옥과의 설전을 말하는 거였다.
“아무래도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자리다 보니, 그 모습이 그렇게 곱게 보이진 않았던 모양이야.”
한다은 교수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부분이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역시 꽤 아쉬웠다.
“…하아.”
형우는 아쉽다는 듯 괜히 머그잔만 만지작거렸다.
“씁쓸하네요.”
“블랙 아이보리가? 이건 안 쓰기로 유명한 커피인데?”
한다은 교수님이 농담을 던졌지만, 쓴맛이 그렇게 쉽게 가시지는 않았다.
“그러면… 선취업 후학점 혜택은 못 받는 거네요.”
패배한 걸로도 모자라서, 세워뒀던 졸업 계획에 꽤 커다란 차질이 생겼다.
형우의 고개가 바닥으로 푹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신경 많이 써 주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네요.”
“……어이구.”
그 모습을 본 한다은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한심해서였다.
“…형우야. 나는 교수로서 제자의 오류를 한 가지 짚어주지 않을 수 없구나.”
“오류요?”
한다은은 내가 이런 것까지 4학년한테 가르쳐야 하다니, 라는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잘 듣거라. 내가 너한테 요구한 건, 특혜에 걸맞은 업적을 보여달라는 거였다.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는 그 방법의 하나였을 뿐이고.”
인간은 포유류지만 포유류가 꼭 인간인 건 아니다. 같은 논리를 적용하자면, 교내 행사 입상은 선취업 후학점 제도의 자격 증명요건이 되지만 그 증명을 꼭 교내 행사 입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라는 논리가 완성된다.
그 말은 즉,
“아직 기회가 있다는 건가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형우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한다은이 인자하게 미소지었다.
“…그런 의미에서 너는 꽤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쉬운 말로는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고 해야 할까?”
짝짝-
한다은의 박수소리에 맞춰 교수실의 문이 살짝 열렸다.
“들어가도 됩니까?”
그 사이로, 수염이 덥수룩한 한 남자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일견 털털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그럼에도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이었는데….
“……아.”
기억났다. 분명, 예전에 지원이 보여 줬던 잡지에서 본 적 있었던 얼굴이었다.
“혹시, 그, <작가들의 밤> 연재하시는….”
“맞습니다!”
이름까진 기억나지 않아서 좀 얼버무렸는데, 남자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듯 형우의 앞에 와서 호들갑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잡지사 <요그>에서 칼럼 쓰고 있는 정승록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