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37화 (37/200)

#36.

“와.”

출입문 쪽, 양복을 차려입은 형우가 어색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며 서 있었다.

‘…사람 진짜 많네.’

그것도 죄다 유명한 사람들 뿐이다. 공태준이 억지를 부려서라도 참가를 고집했던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어색하게 서 있는데,

“선배!”

사람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들이 등장했다. 손에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 있는 연수였다.

“연설하시는 거 축하드려요. 일단 꽃다발 받으시고….”

“응, 고마워 연수야. 그나저나, 준비는 다 됐지?”

“선배가 말한 대로 하긴 할 건데… 정말로 문만 열면 되는 거죠?”

“응 부탁할게. 아, 교수님 오신다.”

멀리서부터 포스를 풀풀 풍기며 다가온 한다은 교수는 형우에게 대뜸 손을 내밀었다. 고개를 숙이려던 형우는, 잠깐 망설이다가 교수님의 손을 맞잡았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그래, 늦지 않게 잘 왔구나. 기분은 어떠니?”

“청심환 하나 먹고 왔습니다.”

“이따가 정 안 되면 하나 더 먹거라.”

괜한 농담을 하며 교수님이 씩 웃었다.

“약속은 기억하고 있지?”

“네, 교수님.”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에서 괄목할만한 성적을 거두면, 몇 가지 학점 혜택을 주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 그거면 됐다. 아, 요즘 네 소설 재밌게 읽고 있다. 좋더구나.”

“…<전설의 보안관>을요?”

“그거 말고 다른 것도 쓰니?”

“아니요, 아닙니다.”

교수님한테 웹소설을 쓴다고 말하긴 했지만, 읽어보실 줄은 몰랐던 형우는 좀 놀랐다. 그런 형우의 귀로 교수님의 감평이 스며들었다.

“…좋기는 한데….”

형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한다은 교수님의 ‘좋기는 한데….’는 모든 한국대학교 문창과 학생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었다.

선칭찬 후비판이라고 한다. 집행일 전의 사형수에게 내어 주는 최후의 만찬이랄까. 그런 느낌이다.

“…헤럴드에 비해 베아트리체 묘사가 좀 빈약하더구나. 엄청 걸리는 건 아닌데, 여자가 읽기에는 미묘하게 어색한 부분이 많아. 이해하겠니?”

아니나다를까, 날선 비판이 튀어나왔다.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가끔 이야기가 좀 새는 느낌이 있더구나. 피자집에 피자 먹으러 갔는데, 가게 주인이 피자가 질린다면서 멋대로 국밥을 주는 느낌이랄까. 국밥도 나름 맛있기는 했는데, 플롯의 일관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더구나.”

“아….”

단 1분만에 형우의 멘탈이 너덜너덜해졌다.

이런 자리에서까지 소설 감평을 들을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그제서야 형우의 표정을 본 한다은이 실수했다는 듯 입을 살짝 가렸다.

“어머, 나도 모르게 그만.”

“…아닙니다. 감평 감사합니다.”

목에서 피가 나오는 기분을 느끼며, 형우는 스승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아직 할 말이 좀 있긴 한데… 감평은 나중에 할 시간이 있겠지.”

“네.”

“…그리고 말이다. 부담 주려고 하는 말은 아닌데, 어제저녁에 불어불문학과 정 교수가 나한테 와서는 깝죽대더구나.”

“깝, 깝죽이요….”

“그냥 그렇다고.”

“노력할게요.”

“…몇 가지 조언을 하자면. 노란 셔츠 입은 사람이 질문하면 받아주지 마라.”

“노란 셔츠요? 왜요?”

“…그런 게 있으니까 그냥 그렇게 알고 있어. 그러면 이따 보자꾸나. 나는 인사할 사람이 많아서.”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한다은 교수님은 휘적거리며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그 옆으로 연수가 바짝 달라붙었다.

“저, 교수님.”

“왜 그러니, 연수야?”

“그, 너무 부담 주신 거 아니에요? 저러다가 실수하면 어쩌려고.”

“후후후.”

한다은 교수님이 연수를 보며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었다.

“내가 모르고 그랬을 것 같니?”

“그럼요?”

“사람들 앞에서 말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긴장을 너무 안 하면 오히려 패닉에 빠지고 만단다. 긴장은 나쁜 게 아냐.”

특히 한다은이 보기에, 형우는 긴장을 안 하면 오히려 방심하고 실수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압박을 준 것도 있었다.

“…선배가 잘 할 수 있을까요?”

“나도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구나.”

한다은이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 * *

연단 위에서, 한 학생이 열변을 토했다.

“…그래서 저는 프랑스에서의 학생 데모 하나를 완만하게 해결하고, 그곳의 야구선수 출신 대학생이 언더핸드로 던진 화염병을 그대로 발로 차서 궤도를 꺾었습니다. 어릴 때 택견을 수련한 덕분이었지요.”

프랑스에서 홀로 데모 하나를 해결했다던 불어불문학과 학생이 영웅담을 늘어놓았다. 형우의 차례는 그다음. 전체에서는 4번째였다.

“…잘하네.”

들어 보니, 저 불어불문학과 학생은 올해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라고 했다.

“하필 바로 다음이라니.”

뭔가 그림이 별로 안 좋다고 해야 하나. 약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정해라, 진정해.’

저학년 국어 교과서는 말하기와 듣기, 쓰기를 한 권에 묶는다. 그 탓인지, 사람들은 가끔 그 셋을 비슷한 것으로 취급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히려 방에서 혼자 작업하는 작가라는 사람들이야말로, 어쩌면 말이라는 매체와 가장 먼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어우.”

그런 형우니만큼, 지금 이 상황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심호흡하던 차에 연단으로부터 우렁찬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불어불문학과 학생의 연설이 끝난 것이다.

“…다음은, 문예창작과의 학생인 김형우 학생의 강연이 있겠습니다. 제목은 <가족과 꿈>입니다. 박수로 맞아주세요!”

사회자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형우는 조심스럽게 연단 위로 걸어 나왔다. 한다은은 자리에 앉아서, 손톱을 쥐어뜯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번째 순서라 사람들도 지쳤는지 연단에 집중하는 사람이 몇 없었다. 이런 와중에 발표를 하라고 한다면 분명히 맥이 엄청 빠질 테다.

‘나라도 열심히 들어 줘야지.’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세 사람분의 손뼉을 쳐대고 있던 순간, 형우가 갑자기 손을 쑥 들어 올렸다.

휘리릭!

그 움직임에 맞춰 강당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날아올랐다.

“뺘아아악-!”

날아온 것은 형우의 참새인 참치였다. 녀석은 강당 가운데를 한 바퀴 빙글, 돌더니 그대로 형우의 어깨에 턱 걸터앉았다. 강연장 한가운데서, 빈 새장을 들고 서 있는 연수의 모습이 보였다.

“미사역 드루이드?”

“맞네, 맞아! 그 사람이 우리 학교 학생이었어?”

그 퍼포먼스 한 방에 사람들의 눈이 번뜩 떠졌다. 순식간에 형우에게 이목이 쏠렸다. 참새를 어깨에 올린 채로, 형우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한국대학교 문창과 4학년 김형우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3개 플랫폼에서 웹소설 <전설의 보안관>을 연재 중인 작가, 참새치입니다.”

형우가 그렇게 이야기한 순간, 장내는 또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참새치라는데. 혹시 아세요?”

“그, <전설의 보안관> 쓴 작가잖아요. 나 읽어봤어요.”

“어험. 격 떨어지게 장르소설 따위를….”

“저는 안 보는데, 제 아내가 좋아하던데요. 꼭 보라고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웹소설은 보는데 참새치는 모르겠네요.”

“전 알아요!”

온갖 말들이 새어 나왔다.

짝.

그런 사람들의 앞에서, 형우는 박수를 한 번 쳤다. 그 동작에 맞춰 형우의 뒤에 놓인 스크린 위로 네 글자가 떠올랐다.

<가족과 꿈>

…처음에 형우가 생각했던 제목은 이것보다 훨씬 더 길었다.

<순문학과 장르소설에 대한 경계론적인 이해 – 대중평론가 슬라보예 지젝 참고.>라는 이름이었다.

하지만, 형우는 이 제목을 단 네 글자로 줄였다.

제목이 짧아졌다. 고로 집약적이지 않다.

학술 용어가 빠졌다. 고로 학술적이지 않다.

인용이 없다. 고로 전문적이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사설私說이고, 수필隨筆이다.

제목 그대로, 꿈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였으니까.

숨을 죽이고 연단을 바라보는 수백 쌍의 눈들 앞에서, 형우는 천천히 마이크를 쥐었다.

“…저희 아버지는, 제가 중학교 때 돌아가셨습니다.”

* * *

“……훌쩍.”

연단에 모인 사람들 몇 명이 소매로 눈물을 슥 닦았다. 형우의 발표 때문이었다.

“중학교 때 간암으로 투병 중인 아버지를 위해 작은 손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지금 보면 엉터리지만… 아버지는 그게 참 좋다고 하셨거든요.”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한국대학교에 왔다는 말이 나올 때, 사람들은 모두 형우를 응원했다. 그 모습을 보니 조금 힘이 났다. 다음 이야기가 진짜배기였으니까.

“그러나 저는, 한 선배의 말 때문에 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입생 OT때의 일이었지요. 어떤 일이었냐면….”

공태준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자, 연단에 모인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아니, 미친 거 아냐? 남이야 뭘 하던 무슨 상관이래?”

“요즘도 그런 꼰대가 있나? 선배가 뭐라고 후배 꿈으로 이래라 저래라래? 야, 너 문창과잖아. 누군지 알아?”

“누구겠어, 공태준이지. 알지? 그 맨날 자기 운동한다고 신입생한테 껄떡대는 애.”

이름은 말할 생각이 없었는데, 학생들이 모인 곳에서는 저절로 공태준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뭔가 뒷담 까는 것 같은데. 아니, 따지자면 앞담인가.’

벌써 코를 훌쩍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형우는 묘한 느낌을 느꼈다. 자신의 일상을 들으며 누군가가 감동한다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게 두 번째 이유였다.

“…저는 난독증 탓에,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를 만났죠. 여기서 가장 슬픈 일이 뭘까요? 휴학을 한 것? 아니면 난독증이 온 것? 다 아니었습니다. 가장 슬픈 건, 어머니가 제 꿈을 반대한다는 거였습니다.”

말하면서도 왠지 울컥했다. 왠지 자신이 먼저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울면 안 돼. 울려야지.’

작가는 스스로 감동해서는 안 되고, 남을 감동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되새기며, 형우는 가까스로 흐르는 눈물을 참아냈다.

“…제 꿈을 반대하는 이유가 저를 싫어해서라면 차라리 어머니를 미워하고 끝냈겠지요. 하지만, 제가 진짜로 슬펐던 건 어머니의 이러한 반대가 당신의 사랑에서 나왔다는 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선택의 기로에 설 수밖에 없었죠.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형우가 청중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렸다.

“…가족과 꿈, 여러분이라면 그중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무엇을 골라야 옳을까요?”

그렇게 열변을 토하는 순간, 좌중들 사이에서 파도가 일어났다. 눈물의 파도였다. 그 모습을 보며, 형우는 확신했다.

‘…실패했다.’

그렇게 생각했다. 형우의 두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 울려고 했는데.’

울면 발음이 뭉개지고, 전달력이 떨어지고 또 뭐였더라….

그렇게 생각하며, 울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 * *

“…지, 지금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장르소설 작가인 아들을 응원해 주고 있습니다. 니체가 말했듯이, 거친 풍랑을 맞고 성취한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이상입니다.”

다행히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발표를 끝마칠 수는 있었다.

짝짝짝!

감동적인 연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사회자마저 눈물을 살짝 닦았다.

“정말 감동적인 연설이었습니다. 이어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받는 시간인데요. 혹시 여러분 중 질문하고 싶은 사람 있으십니까?”

사람들 몇 명이 손을 들었다. 형우는 그들을 쭉 둘러봤다.

“저분이요.”

형우는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한 남자를 지목했다. 남자는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마이크를 잡았다.

“…날씨가 좀 덥군.”

그렇게 말하며, 노년의 남자가 외투를 벗었다. 그 모습을 본 형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노란 셔츠 입은 사람한텐 질문하지 말아라.’

남자의 외투 안에서 나타난 건, 노란색 셔츠였다.

“내 이름은 천병옥이라고 하네. 평론가지.”

남자는, 자신을 그렇게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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