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35화 (35/200)

#34.

라임Rhyme.

단어를 나열할 때, 같은 모음이나 자음을 이어 붙임으로써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 내는 수사법을 뜻한다.

라임이 있는 문장은 일반적인 문장보다 더 독특하고 기억에 오래 남으며, 그 탓에 각본가나 연설가처럼 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특히 이 라임이라는 것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기울인다고 들었다.

“래퍼들도 마찬가지고….”

<기브미더머니>가 끝난 뒤.

복희는 졸립다며 방으로 들어갔지만, 형우는 오히려 잠이 싹 달아나는 기분을 느꼈다. 방송에 출연했던 한 프로듀서의 발언 때문이었다.

“참가자님의 노래는 훅도 좋고 멜로디도 좋았어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어요, 맛이. 랩에서 맛이라는 건 결국 라임이거든요? 라임을 잘 써야 맛이 난단 말이에요. 그 어디 연구를 보면, 나찌독일 시절에 사람들이 히틀러 연설에 푹 빠진 것도 히틀러가 라임을 잘 써서 그렇대요. 셰익스피어 연극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그리고 랩퍼들은 그런 정치인이나 각본가보다 라임을 더더 많이 써야 돼요. 정치인은 연설에 시간제한이 없는데, 우리는 노래 길이에 시간제한 있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형우는 엉킨 실타래의 끄트머리를 찾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같은 문제였어.’

최근 형우를 괴롭히는 고민은 딱 두 가지였다.

열심히 썼는데 읽어 보니 맛이 안 나는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용 연설문과, 스토리는 괜찮은데 읽어 보면 왠지 모르게 느낌이 없는 어린이 연극용 각본.

지금까지는 두 고민의 이유가 다른 줄 알았다.

“지금까지 이걸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니.”

형우가 허탈하게 하하 웃었다.

연설문과 극본. 그 두 가지 형식에는 누구라도 알 법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귀로 듣는 거였어.”

초등학생도 알 만큼 간단했지만, 지금까지 귀로 듣는 글이 아니라 눈으로 보는 소설만 써온 탓에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문장을 썼으니, 당연히 맛이 살지 않을 수밖에.”

문제점을 알고 나니, 고치는 것은 쉬웠다. 형우는 휴대폰을 꺼내 국어사전 어플을 다운받았다. 래퍼들이 라임을 짤 때 국어사전을 참고한다는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과연, 도움이 됐다.

“10장에 나오는 ‘깨끗한 소망’이라는 단어에서 ‘깨끗한’은 조금 안 어울려. ‘순수한 소망’이 라임에 더 적합해.”

“…[악당이여, 불안하다면 당장 도망쳐라]라는 문장을 맛깔나게 살릴 수 있을 것 같은데… ㅂ이 들어가는 단어가 뭐가 있더라…?”

잠깐 고민하다가, 형우는 몇 가지 단어를 생각해냈다. [악당이여, 불안하다면 당장 도망쳐라.]라는 라임 없는 문장은 곧 [불한당이여, 불안하다면 부리나케 도망쳐라.]라는 통일된 문장으로 변했다.

‘확실하게 맛이 살아!’

글로 쓸 땐 별 차이가 없어 보였지만, 소리 내어 읽어 보니 차이가 명확하게 느껴졌다.

생명력을 얻어가는 문장을 보며 형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단어와 단어가 리듬감을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대사들은 때때로 하나의 노랫가락처럼 느껴졌다.

“됐다!”

그렇게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은 순간, 때마침 현수가 방에 들어왔다.

“현수야. 마침 잘 왔다. 안 그래도 부르려는 참이었는데.”

형우의 얼굴을 본 현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형우, 너 괜찮아? 지금 눈에 다크서클이….”

“사돈 남 말 하네. 너도 지금 다크서클 광대까지 왔거든. 괜한 말 말고 이거나 봐.”

형우는 자신이 쓴 대본을 현수에게 내밀었다.

“…하루 만에 완성한 거라고?”

현수는 조금 미심쩍은 표정으로 대본을 받아들었다. 하루만에 완성했다니.

혹시 애도 태준 선배처럼 대충 쓴 건 아니겠지? 그런 의심이 살짝 들었다. 그리고,

촤라락, 촤락.

…마지막 문장에 도착했을 때, 현수는 믿을 수 없는 기분을 느끼며 똑같은 말을 한번 더 반복하고 말았다.

“…이게 정말 하루 만에 완성한 거라고? 정말?”

* * *

보육원에서 머무른 지도 어언 삼 일이 지났다.

“와, 이번 대본 훨씬 재밌는 것 같아.”

“외우기도 훨씬 쉬워!”

대본을 받아든 아이들이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이거 감독님 친구가 도와준 거래.”

“감독님 친구면 뭐야?”

“어… 프로듀서인가 그러지 않아?”

“영어로 하면 PD야.”

“…프로듀서도 영어 아냐?”

어디서 들은 건 있는 건지,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형우를 피디님이라고 불렀다. 뭣 모르는 아이들이 붙여 준 이름이었지만, 솔직히 그렇게 불리는 게 기분이 좋기는 했다.

“연극 시작 5분 전!”

“피디님이랑 감독님 다 보니까 열심히 해야 해! 복희 너, 또 마음에 안 든다고 나래이션 도중에 무대 난입하면 안 돼!”

“내가 언제, 이 자식들아?”

“우와아! 복희 또 화났다!”

…그런 소동을 뒤로한 채, 연극은 시작되었다. 요정 복장을 한 복희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외운 대본을 읽었다.

“…옛날 옛적에, 바보 이반이 살았습니다.”

처음에 현수가 쓴 것은 <라푼젤>을 베이스로 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복희는 그 이야기가 싫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어떤 아줌마가 자기 딸한테 우리 공주님, 그랬어. 나는 그런 말 들어본 적 없어… 그러니까, 왕자랑 공주는 싫어….’

보육원의 아이들 대부분이 같은 사정을 공유하고 있었다.

‘응, 나도 그런 이야기는 별로야.’

어릴 적 아버지를 잃은 형우였기에 조금이나마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 <라푼젤> 대신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을 모티브로 연극을 새로 짰다.

“…사람들은 이반을 무시하고 바보라고 했습니다.”

공주와 왕자 분장을 한 아이들이 나와 이반 역할을 한 아이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그 뒤로 복희의 내레이션이 깔렸다.

“…하지만, 사람들은 몰랐습니다.”

옆에서 뭔가가 꼼지락거리기에, 바라보니 어느새 몇몇 아이들이 형우의 옆에 다가와 있었다.

“…사실 이반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요. 이반은 농사의 천재였습니다. 가뭄이 닥친 날,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복희의 나레이션과 동시에, 무대가 쩍- 갈라졌다.

그 사이에서, 이반의 밭의 모습이 보였다.

“진짜 바보는 바로 자신들이었다는 것을요.”

다른 밭들은 말라 죽어가는데, 주인공인 이반의 밭에는 잘 자란 농작물이 가득했다.

“우와아! 잘 만들었다!”

연극을 구경하던 아이들의 입도 쩍-벌어졌다.

급하게 만든 것 치고는 상당히 괜찮은 무대와 각본이었다.

짝짝짝-

모두의 박수와 함께 무대가 끝나자마자, 형우는 복희를 따로 불렀다.

“나레이션 좋았어, 복희야. 하지만 ‘바보’ 다음에 ‘바로’라고 말할 때, ‘바’ 쪽에 악센트를 주는 편이 더 나을 거야.”

“알겠습니다! 김형우 피디님!”

복희가 장난스럽게 경례를 붙였다. 처음에는 경계하는 느낌이었는데, 지난 며칠 사이 부쩍 친해졌다.

“언제 친해졌대?”

어느새 다가온 현수가 형우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형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애들이란 잘난 사람한테 끌리기 마련이니까.”

“잘난 척은.”

“저 정도로 잘 썼는데, 잘난 척할 법하지 않냐? 솔직히 안 좋은 부분 있어?”

“제목은 좀 구려.”

현수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바보가 농사를 너무 잘 지음>이라니, 너무 웹소설 같은 제목 아냐?”

“난 웹소설 쓰는 사람이거든.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천재 이반>은 어때?”

“으윽.”

<바보가 농사를 너무 잘 지음>보다 훨씬 그럴듯한 제목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 빼고는… 다 좋아.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해 줄 줄은 몰랐다. 고마워. 사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부탁한 건데….”

현수였다면 이런 칭찬을 들으면 내가 뭘, 운이 좋았지, 그렇게 말할 테지만, 형우는 현수가 아니었다.

“지푸라기가 금으로 만든 거였지?”

“하하, 네 말이 맞네.”

그리고, 지푸라기가 금이었던 것은 형우도 마찬가지였다.

형우의 손에는 종이 원고 하나가 들려 있었다.

<가족과 꿈>

지난 삼일간 현수와 함께 머리를 싸매고 만든 연설문의 최종본이었다.

“너는 써 줬는데, 나는 기껏해야 이 정도밖에 못 도와줘서 미안하네.”

현수가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인마, 그러면 대필이야, 대필. 팁 몇가지 정도면 충분해.”

“아무튼, 고마웠다 형우야.”

“그래. 일 끝내고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

그렇게 보육원을 떠나려는데.

“형우 형, 가는 거야?”

“피디님, 안 가면 안 돼요?”

그새 친해진 아이들 몇 명이 바지를 붙잡고 매달렸다.

“애들아, 난 가야 해.”

“형 안 가면 좋겠는데….”

몇몇 아이들은 울음이라도 터트릴 기세였다. 꽤 난감해지려는 순간,

“너희들! 연극 연습 안 하고 뭐 해!”

누군가가 아이들의 목덜미를 턱, 하고 잡았다.

희망 보육원의 군기반장, 나복희였다.

“빨리 안 들어가면 저녁에 청소시킨다?”

“우와앗! 복희 화났다!”

“청소는 싫어!”

아이들이 와르르- 도망치듯 들어갔다.

“이제 가. 버스 늦을라.”

복희가 어른 흉내를 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 연극 때는 보러 올 거지?”

그러니까, 어른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당연하지. 내가 만든 건데.”

형우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복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치야, 너도 잘 가.”

“뺘악!”

그렇게 인사를 마친 후, 형우는 버스에 올렸다. 조금씩 멀어지는 희망보육원 건물이 보였다.

“허.”

기껏해야 일주일도 안 지났는데, 엄청 오랜 시간 동안 있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형우는 어제 완성한 연설문을 펼쳐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입을 헤, 하고 벌렸다.

“이거, 어제는 없었던 건데.”

연설문 군데군데에는 붉은색의 밑줄이 벅벅 그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여러 가지 조언이 쓰여 있었다.

[저번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이 부분은 지우는 게 좋겠다.]

[여기서는 약간 뜸을 들이도록 해.]

[3장과 4장의 배치를….]

익숙한 필체로 써진 정성 어린 지시문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현수 녀석, 이런 건 언제 썼대.”

어쩐지 다크서클이 눈 밑까지 있더니만.

* * *

위이잉!

지금 시간은 12시 15분. 교수실에 앉아있던 한다은은 평소처럼 형우의 <전설의 보안관>을 읽기 위해 돋보기안경을 썼다.

“오호….”

한다은의 입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평소에도 재밌었는데, 오늘은 스토리뿐만 아니라 캐릭터들의 대화까지도 뭔가 착착 감기는 느낌이었다.

“리듬감이 좋은걸.”

댓글창 역시 호평 일색이었다.

멍애 : 뭔가 오늘따라 글이 더 잘 읽히는 느낌인데? 뭐지?

우주힙찔이 : 라임 쩌네; 헤럴드 그대로 <기브미더머니>나가도 될 듯.

푸키몬어드벤처 : 진짜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슨 노래 가사 같음. 비트 띄우고 헤럴드 대사 그대로 써넣으면 그게 힙합임.

수틀리면던짐 : 작가 뭔 일 있었음? 요즘 소설 폼 장난 아닌데.

“요즘 독자들은 촉이 참 좋다니까.”

댓글을 읽던 한다은의 입에서 피식,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일이 있기야 했지.”

한다은은 책상 위에 놓인 두 개의 연설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가족과 꿈> - 김형우.

<순문학적인 세계관 속 소외된 사람들> - 공태준.

일단 처음 내정자는 형우였으니, 형우의 것을 먼저 읽었다.

“<가족과 꿈>이라, 제목이 심플해.”

내용 또한 심플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듯 대화체로 쓰인 글인데다가, 자신의 경험을 예로 들며 최대한 편하게 설명하려고 한 티가 나서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쉬운 문장이 꼭 쉽게 쓴 문장은 아니지.”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귀에 쏙쏙 들어가는 것이다. 그걸 위해서 형우는 자신의 연설문에 그럴듯한 리듬을 꽤 많이 집어넣었다.

“…흠잡을 데가 없군.”

만약 이게 과제였다면 뒤도 보지 않고 A+를 줬을 것이다. 다음은 공태준 것이었다.

“<순문학적인 세계관 속 소외된 사람들>이라.”

정말 공태준답지 않은 주제였지만, 그걸 빼면 나쁜 주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지엽적이면서도 최근 문학계의 관심사를 정확히 반영했다.

“…내용도 나쁘지 않아.”

기대를 안 하고 읽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아니, 기대 이상 정도가 아니라 그냥 잘 썼다.

정확하게 4분의 1지점까지만 그랬다.

“…뭐지?”

4분의 1지점 후부터, 공태준의 글은 급격히 무너졌다. 앞에서 했던 이야기를 의미 없이 반복하고, 갑자기 무리한 논리 전개를 하다가 주장 자체를 무너트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표현 방식까지도 조잡해졌어.”

마치 고수가 두던 바둑을 초보가 이어받아 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30년 넘게 대학생들을 가르쳐 온 한다은은 그 이유까지도 알 수 있었다.

“…대필이군. 더 볼 필요도 없어.”

한다은은 형우를 향해 전화를 걸었다.

* * *

쾅!

공태준이 집어 던진 휴대폰이 벽에 부딪혀 산산이 박살 났다. 그걸 시작으로 크리넥스 휴지, 둥그런 휴지, 책, 컵까지.

가정부가 하루 종일 열심히 정리한 방이 순식간에 어지러워졌다.

“왜 내가 아니라 김형우야!”

그 아수라장 사이에서, 공태준은 눈을 벌겋게 뒤집고 씩씩거렸다.

“…고작해야 허접스러운 판타지 소설이나 쓰는 놈이 문창과의 대표라고?”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했다.

“김형우에, 조현수 그 새끼까지. 모두 짜고 나를 엿 먹인 건가…?”

공태준은 그 추론이 상당히 그럴듯하다고 생각했고, 동시에 분노로 가득 찼던 머리가 조금 맑아지는 걸 느꼈다.

“…그래, 내가 김형우 같은 놈한테 질 리가 없잖아. 녀석이 비겁하게 조현수랑 짜고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정정당당’하게 붙었다면 내가 분명 이겼을 거야. 암, 암. 그렇고말고.”

공태준이 자신의 관자놀이에 양 손가락을 올리고 빙글빙글, 돌렸다.

“그래, 난 피해자라고. 그 자식들이 가해자고. 상종 못 할 비겁한 놈들이지…. 그러면, 이 자식들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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