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33화 (33/200)

#32.

한국대학교 문창과의 교수실. 소설을 전담해서 가르치는 교수 한다은은 둥그런 돋보기안경을 쓴 채로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5… 4… 3… 2, 그리고 1!’

띠링!

12시 15분이 되자마자 1초의 오차도 없이 휴대폰에 깔아 놓은 웹소설 알람 어플이 울렸다.

<전설의 보안관> 150화가 올라왔습니다!

그 알람을 보자마자, 한다은은 재빨리 네이비 시리즈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제자가 썼다기에 반쯤 호기심으로 봤던 작품이지만, 지금은 기다려서 볼 정도로 애독자가 됐다.

“오호, 이 갈등을 이렇게 풀어낸단 말이지?”

“세상에… 여기서 이렇게 꺾네?”

가끔 소설을 읽을 때면 한다은은 자신이 나이 들었다는 것을 느꼈다. 젊었을 때는 소설을 보든 드라마를 보든 입을 꾹 닫고 집중했었는데, 요즘은 자꾸 자기도 모르게 입방아를 찧게 됐다.

“벌써 끝인가.”

소설을 다 읽은 뒤, 한다은은 약간의 여운과 피로를 느끼며 미간 사이를 꾹꾹 눌렀다. 아직까지도 자그마한 휴대폰으로 소설을 보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오늘도 역시 재밌긴 한데… 애가 연애를 안 해봤나? 대학생이 쓴 것 치고는 로맨스가 상당히 풋풋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소설의 여운을 즐기던 순간,

“교수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라고 외치면서, 누군가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공태준이었다. 그 모습을 본 교수가 눈을 껌뻑거렸다.

“…뭐가 말이 안 된다는 거니?”

사실은 ‘노크는 어디 갔니?’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너무 꼰대 같아 보일까 봐 그만뒀다.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공태준은 침을 튀겨대며 제 할 말만 했다.

“한국대학교 리더 행사에 김형우를 내보내기로 했다면서요? 1학기 때 학교도 안 다닌 녀석입니다. 이건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그렇구나.”

공태준이 튀긴 침이 자신의 커피잔에 쏙, 들어가는 걸 본 한다은은 그 커피잔을 슬쩍 옆으로 밀었다.

“…태준아.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에 누굴 내보낼지는 교수 재량이야. 알잖니?”

“그렇다고 아예 매뉴얼이 없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분명 ‘과 내에서 기량이 출중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적혀 있잖습니까?”

“…그 부분이 왜 문제가 된다는 거니?”

한다은의 생각에 형우는 충분히 기량이 출중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었다. 소설가로 성공하고 매년 장학금을 받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공태준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었다.

“녀석은 판타지 소설이나 쓰는 놈이에요. 문창과의 수치란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공태준은 뭔가를 꺼내 한다은에게 내밀었다.

“제가 이번에 1등으로 당선한 문학상입니다. 마공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거고요.”

“…마공잡지사의 대들보문학상?”

마공잡지사라면 한다은도 아는 이름이었다. 유명한 출판사기는 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 유명하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그러니까, 네 말은 네가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를 나가겠다는 뜻이니?”

“그렇습니다, 교수님. 판타지 소설이나 쓰는 놈보다는, 그래도 정규 문단지에서 상을 받은 제가 더 적합하지 않겠습니까?”

정규 문단지? 그 말을 듣고 한다은은 그만 코웃음을 칠 뻔했다.

순문학의 폐단 중에는 ‘등단 장사’라는 게 있다. 돈을 받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파는 것인데, 마공잡지사는 말 그대로 돈만 주면 작가라는 이름을 달아 주는 시정잡배 같은 곳이었다. 등단작들의 수준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럴 땐 가끔 옛날이 그립다니까.’

20년 전이었으면 헛소리는 그쯤 하라며 공태준에게 소리를 질러도 열 번은 넘게 질렀을 거다.

하지만 세월이 꽤 많이 흘렀다. 개작두 교수라고 불리던 한다은의 성격도 많이 죽었고, 세상도 변했다. 고등학교나 중학교만큼은 아니겠지만, 한다은은 대학교 교수들의 교권敎權또한 꽤 많이 약해졌다는 것을 오랜만에 체감했다.

‘이런 헛소리마저 참고 들어 줘야 한다니….’

한다은은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면 태준아, 이렇게 하자. 형우와 네가 나한테 연설문을 보내는 거야. 그리고 그 둘 중에 더 좋은 걸로 결정하마.”

“좋습니다, 교수님!”

공태준은 드디어 말이 통한다는 표정으로 씩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판타지 소설이나 쓰는 놈한테 질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반드시 이길 비장의 방법도 있었다.

‘감히 내 턱을 쳐? 너도 한번 당해봐라!’

벌써부터 복수에 성공한 듯 실실거리며 교수실에서 나가는 공태준을 보며, 한다은은 혀를 쯧쯧 찼다.

“…대학교에도 도덕 시간이 있어야 한다니까.”

착잡하게 중얼거린 한다은은 휴대폰을 들어 애제자의 번호를 꾹꾹 눌렀다.

“여보세요, 형우야. 나다, 한다은.”

“헉, 교, 교수님!”

전화기 너머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 * *

“천우희 작가님, 오늘 올라 온 99화 봤죠? 로맨스 어땠어요?”

“…나 같은 작가들은 말이지, 그런 걸 로맨스가 아니라 소꿉장난이라고 불러. 하지만 뭐, 소꿉장난치고는 괜찮았어.”

“헤헤, 아직 그 이상은 감이 안 잡힌다고 해야 하냐….”

“그나저나, 진짜로 내 조언은 안 들을 거야? 헤럴드랑 베아트리체가 이어지는 것도 좋지만, 에이전트 제로랑 이어지는 것도….”

“꿈도 꾸지 마세요.”

“분명 좋아하는 사람 있다니….”

“끊습니다.”

형우는 천우희의 말이 길어지기 전에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내기가 끝난 뒤로부터 한 달, 그녀는 형우와의 약속을 꽤 성실하게 이행했다.

매일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형우에게 로맨스에 대해 강의를 해 주고, 때로는 소설을 직접 감평해 주기도 했다.

정식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는 거라면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 필요했겠지만, 형우가 지금 하는 것은 정식으로 로맨스를 쓰겠다는 게 아니라, 로맨스적인 요소 몇 개를 채용하는 것 정도였으니 그 정도면 충분하고도 넘쳤다.

‘<전설의 보안관>은 어디까지나 서부극이니까. 소설의 본문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아직까지 정확하게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작법에 대해 알아가는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작가가 되고서도 꾸준히 공부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실감이 갔다.

‘…<전설의 보안관> 집필에, 로맨스 공부에, 요즘 진짜 바빠지긴 했네.’

심지어 할 일은 하나 더 있었다.

‘조기졸업에 선취업 후학점이라. 이건 못 놓치지.’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노트북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노트북 화면 위에 떠 있는 것은 1학기 때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에서 1위를 했다던 <시간 관리 비법>이라는 연설문이었다.

‘딱 이정도만 쓸 수 있었으면 원이 없겠는데.’

한국 대학교의 리더 행사는 요즘 형우의 최대 고민 중 하나였다. 기간이 3주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도 연설문을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그것만 해도 스트레스인데, 오늘 아침에는 교수님에게서 공태준이 뜬금없이 내기를 걸어왔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와, 다른 건 몰라도 그 선배한테 지기는 싫은데.’

그 소식을 듣고 노트북 앞에 앉은 지 세 시간 째. 딱히 소득이랄 건 없었다.

아무리 열심히 써 봐도, 막상 읽어 보면 왠지 느낌이 안 산다고 해야 하나, 맛이 없다고 해야 하나.

<시간 관리 비법>. 그러니까, 저번 학기 1등이라는 명확한 비교 대상까지 있으니 그 느낌은 더더욱 선명했다.

“어떻게 이렇게 잘 쓴 거지?”

잠깐 고민하던 형우는, 고민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머리를 탁, 하고 때린 형우는 바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 *

“대한민국의 경제 지표는 연신 하락세를 기록하며….”

“전문가들은 이러한 재정 위기가 석유 국가들의 내전으로 인해 기름값이 치솟은 탓으로….”

“UN은 중동 지역을 여행 금지지역으로 지정하며, 동시에 중동에서 발생한 난민과 고아의 타국 이주 정책을 적극적으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

형우는 멍하니 앉은 채로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냐….”

이상하게 뉴스에서는 늘 나쁜 소식만 나왔다. 가끔 나오는 좋은 소식도, 나쁜 소식에 비하면 별것 아닌 수준의 좋은 소식이었다.

“…경제 지표는 나빠졌지만, 카레 빵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다는 소식입니다. 물가가 오름에 따라 비싼 소시지 빵보다는 비교적 싼 가격의 카레 빵이 더 잘 팔린다는 분석인데요….”

어이없는 뉴스의 내용에 형우가 피식 웃었다.

“참치야, 저런 뉴스는 대체 왜 나오는 걸까?”

“뺘악.”

“카레빵이라니. 내 생각에는 말야, 뉴스 기자가 인도 관련 주식을 산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뺘아악!”

철컹!

참치가 조용히 하라는 듯 날개로 새장을 툭 때리더니, 그대로 깃털 사이에 머리를 묻었다.

‘피곤할 만도 하지.’

오는 내내 저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이들을 위해서 온갖 재롱을 다 피워댔으니.

‘이크.’

참치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형우는 기차에서 내렸다. 그 후에도 버스를 타고 꽤 오래 이동했다.

위이잉!

주머니에서 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천우희였다.

“여보세요, 김형웁니다.”

“나 우희인데. 그… 지금 뭐 해?”

“왜 그러세요?”

“오, 오늘은 전화가 없길래… 요즘 매일 전화했잖아.”

천우희가 변명하듯이 이야기했다.

“오늘은 그, 공부 안 할 거야?”

“아, 말씀 드리는 것 깜빡했네요. 한 삼일 정도는 연락 없을 거예요. 일이 좀 있어서. 지금 경기도 쪽에 있는 보육원이에요.”

“보육원? 보육원은 왜? 너 혹시 사고 쳤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연설문 도움받으러 가는 거예요.”

“연설문이라면… 그 한국 대학교의 리더 어쩌고 하던 거? 근데 그거랑 보육원이 무슨 상관?”

“저번에 한국 대학교 리더 행사에서 1등 한 애가 지금 거기에 있으니까요.”

“흐음,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며칠간은 전화가 없다는 거지….”

왠지 아쉽다는 듯이 말하며, 천우희가 전화를 툭 끊었다. 형우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멍하니 눈을 깜빡거렸다.

“…조현수.”

저번 한국대학교의 리더 행사에서 1등을 차지한 장본인이자, 반지하 셋방에서 형우의 글을 보고 ‘이 글에는 영혼이 없다.’라고 돌직구를 던졌던 친구.

지금 형우의 성공담은, 그 현수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떻게 지내려나.”

그 이후로 서로 바빠진 덕분에, 꽤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다.

[이번 정거장은 희망 보육원입니다.]

버스 알람에 형우는 내릴 준비를 했다. 멀리서 보육원 건물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 * *

버스에서 내리고도 보육원까지는 2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열대야가 심한 탓에 옷은 금방 땀으로 흠뻑 젖었다.

“후, 도착했다.”

그대로 초인종을 누르려는 순간, 끼이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소녀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아저씨, 이름이 김형우 맞아요?”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는, 약간 경계하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어. 어떻게 알았어?”

“감독님이 문 열어 주라고 했어요.”

“감독님?”

“…현수 오빠요.”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형우가 오는 걸 미리 보고 있던 모양이다.

“그래, 고마워. 넌 이름이 뭐야?”

“나, 복희에요.”

“그럴 때는 전 복희에요, 이렇게 말해야지.”

“아니, 제 성이 나 씨라고요. 나. 복. 희. 전복희는 무슨, 제가 해산물인줄 알아요?”

아하. 실수를 알아챈 형우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복희가 그런 형우를 쏘아보며 물었다.

“…아저씨 꼰대예요?”

“갑자기?”

“…어린 애라고 무시하면서 뭐 가르치려고 들면 꼰대라던데. 저번에 왔던 사람은 딱 그랬거든요. 맨날 우리 가르치려고 들고.”

흐음, 누가 가르쳤는지 참 잘 가르쳤다. 하지만 반박을 못 할 건 또 아니었다.

“꼰대는 이런 거 안 사와.”

형우는 오는 길에 카레 빵을 잔뜩 구워 파는 빵집을 발견했다. 뉴스 탓인지 배가 고프기도 하고, 보육원에 맨손으로 가기도 좀 뭐하다 싶어 카레 빵을 서른 개 정도 사 왔다.

“그리고, 꼰대는 참새도 안 키워.”

“참새?”

형우의 손에 들린 새장을 발견한 복희의 표정이 아이답게 헤 벌어졌다.

“귀여워!”

‘역시.’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참치와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

‘데리고 오기를 잘했어.’

참치는 인맥에 좋다.

* * *

대부분의 보육원이 그렇듯, 희망 보육원 또한 기업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아 경영을 이어나간다.

현수의 아버지가 오너로 있는 로펌 또한 희망 보육원의 후원자 중 하나였다.

중앙지검에서 부장검사까지 했던 현수의 아버지가 은퇴 후에 설립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꽤 이름 있는 로펌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걸 보면 진짜로 부자 같지는 않은데.’

현수는 카레 빵 하나를 순식간에 해치우고서도, 뭔가 아쉽다는 듯 손끝에 묻은 카레 가루를 쭙쭙 빨아먹고 있었다.

“형우야, 이거 맛있다. 혹시 더 없어?”

“방금까지 있었는데, 복희가 세 개 먹었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면서도 아쉬운 듯 손을 힐끗거리는 현수를 보고, 형우가 한마디 했다.

“부자들은 요플레 뚜껑 안 핥고, 손에 묻은 소스 안 빨아 먹을 줄 알았는데.”

“네가 우리 아빠를 봐야 하는데. 집 앞 마트에서 포인트까지 꼬박꼬박 챙기신다.”

머릿속에서 와장창하는 소리가 났다. 부자들에 대한 환상 하나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그 표정을 본 현수가 하핫, 하고 웃었다.

“형우야. 우리 엄청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기껏 물어본다는 게 요플레 뚜껑 이야기야?”

“너무 좀스러웠나?”

그렇게 대충 얼버무린 후, 뭐 다른 이야깃거리가 있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형우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대본?’

낱장으로 흩어져 있긴 했지만, 분명 연극에 쓰는 대본이었다. 방구석에는 만들다 만 소품처럼 보이는 옷감 덩어리나 종이 뭉치 같은 것들도 보였다.

“아까 보니까 복희도 너한테 감독님이라고 하던데. 뭐 학예회라도 준비하고 있던 거야?”

이 정도면 꽤나 문창과스러운 대화 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요플레 뚜껑 이야기보다는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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