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지글지글.
집 안에는 온통 전 굽는 냄새로 가득했다.
“뭐요, 생선전인가? 누님 오늘 애 좀 많이 썼구만. 아들 좋은 일 생겨서 그런가?”
평소처럼 형우의 집을 찾은 민준이 아는 체를 했다. 송윤아는 코웃음을 치며 전을 휙 뒤집었다.
“아들은 무슨. 니네 줄 거 아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형우의 어머니인 송윤아의 얼굴에선 요즘 웃음기가 떠나지 않았다. 은근슬쩍 자식 자랑을 얼마나 하는지. 최근 공판석이 찾아온 일도 겹쳐서, 형우가 유명한 작가가 됐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마을에 아무도 없었다.
오죽하면 마을 이장이 오랜만에 경사가 생겼다며 현수막을 걸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어볼 정도다.
“대체 무슨 현수막을 걸어요?”
“경축, 우리 마을에서 위대한 작가 김형우 탄생! 이거 어뗘?”
“이장님, 제발!”
그런 이장님을 말리기 위해 형우가 얼마나 고생했던지. 결국 현수막은 나중에 형우가 대중문화상이라도 타면 그때 거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쳤다.
“좋은 일이에요, 누님. 좋은 일이야. 형님도 좋아하실 거요.”
“좋아하기야 했겠지. 그 양반은 말도 마라.”
윤아가 픽 웃었다. 오늘은 형우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세상을 떠난 남편의 기일이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그래도 윤아는 가끔 남편의 빈자리를 느꼈다. 특히 좋은 일이 있을 때 그랬다.
간암으로 투병하던 남편이 죽었을 때, 윤아에게 남은 거라곤 형우 하나밖에 없었다. 모아둔 돈도 남편 수술비로 다 썼다. 그 밑바닥에서 윤아는 어떻게든 형우를 잘 키워내리라 다짐했다.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끝끝내 눈물은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참은 것이다.
“누님 보면서 참 독한 사람이다 싶었지.”
“독하긴 무슨. 나라도 억세게 있어야지.”
“그건 그런데… 아얏!”
생선전을 열심히 집어먹던 성민준은 결국 손바닥을 얻어맞았다.
“네 거 아니래도.”
“나 참. 하나 먹으면 뭐 죽나.”
“죽는 건 아닌데. 그래도 예의란 게 있지. 그나저나 형우는?”
“오기 전에 연락했소, 조만간 역에 도착한다던데.”
어제 아침, 형우는 일어나자마자 부리나케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전설의 보안관>의 웹툰화를 위해 약간의 회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윤아는 피곤할 테니 자고 올라오라고 했지만, 형우는 아버지 기일을 빠질 수는 없다며 새벽에 첫 기차표를 끊었다.
* * *
덜컹, 덜컹.
계약을 끝내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형우는 오늘 있었던 계약을 다시 곱씹었다.
“웹툰화라.”
잔뜩 긴장하고 갔지만, 사실 형우가 신경 쓸 부분은 거의 없었다. 형우가 한 것이라고는 계약서에 서명하며 저작권료를 확인한 정도가 끝이었다. 그 외에, 작화가를 섭외하고 플랫폼을 구하는 일은 출판사에 일임했다.
‘아무래도 나보다는 전문가가 더 잘하겠지.’
형우는 웹툰 시장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괜히 미주알고주알 신경을 쓰는 것보다야 그쪽을 믿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흐음, 이 정도면 됐나?”
형우는 바로 지원에게 메일을 보냈다. 혹시 형우가 개인적으로 소설 내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대로 보내달라고 요청받았던 것이다. 답장은 즉시 왔다.
지원 : 조만간 구해질 것 같아요. 길어도 두 달?
형우 : 흐흐, 좋은 분으로 부탁드려요.
지원 : 어련하겠어요?
그 사이, 기차가 역에 도착했다. 승강장에서 나오자마자 기다리고 있는 민준과 딱 마주쳤다.
“여어, 왔구나. 피곤하지는 않니?”
“괜찮아요. 기차에서 좀 잤어요.”
“잤다는 놈이 눈이 그리 새빨갛냐? 보나 마나 글 썼구만. 하루 자고 오라니까!”
“정말 괜찮아요. 차에서 좀 자지 뭐.”
“거참, 누구 닮았는지 말을 참 더럽게도 안 듣네.”
자주 쓰는 비유지만, 날이 날이니만큼 그저 그런 비유로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도로를 타고 한 시간을 더 달린 후에 민준의 차가 멈춘 곳은 시내 근처에 위치한 한 납골당이었다.
故 김철호.
어릴 적 병을 앓다가 형우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끝끝내 세상을 떠나고 만 아버지의 이름이었다.
“여보, 저 왔어요. 당신 좋아하던 생선전도 가져왔어.”
어머니가 능숙한 손놀림으로 제사상을 펼쳤다. 민준이 그 위에 술을 한 잔 따라 올렸다.
“무슨 술을 이리도 가득 채웠어.”
“철호 형님 성격이면, 죽어서도 자기 가진 거 주변 사람들과 나누려고 할 거 아니요. 제삿날이라도 생색 좀 내라고 가득 따랐소.”
그 말대로, 형우의 아버지인 김철호는 생애 마을 사람 모두에게 사랑받는 청년이었다. 얼마나 마음 씀씀이가 좋았는지, 마을에서 누가 힘든지 누가 아픈지에 대해 모르는 게 없었다.
“그러면 뭐 해, 제 몸 상하는 건 몰랐는데.”
어머니의 말이었다. 아버지의 간암이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병세가 심각해진 후였다. 의사는 수술을 권했지만, 아버지는 수술을 반대했다.
“괜히 헛돈 쓰지 말고, 그걸로 나중에 형우 장가나 잘 보내 줘. 내 몸은 내가 잘 알아.”
하지만 어머니는 끝내 아버지를 수술대 위로 올렸다. 마을 사람들이 한푼 두푼 모아둔 돈이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조차도 너무 늦었다. 큰돈 들인 수술은 실패로 끝났다. 마을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울지 않는 건 딱 한 명. 아픈 아버지밖에 없었다.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는 웃었다.
“그래도 난 복 받은 놈이야. 너처럼 멋진 아들이 있고,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고… 쿨럭! 게다가 마을 사람들도 나를 이렇게나 좋아해 줬잖아.”
“아빠….”
“형우야. 나 없이도 잘 지내야 한다. 그리고 형우 엄마. 내가 죽으면 꼭 선산에 묻어 줘.”
“…그렇게 할게요.”
“역시, 난 복 받은 놈이야.”
아버지는 그렇게 눈을 감았다. 한데, 그 순간까지도 아버지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아버지가 묻어달라 했던 선산은 이미 팔아버린 지 오래였다. 아버지의 수술비는 마을 사람들의 모금만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비쌌던 것. 하지만 모자는 아버지를 위해 그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을 했다.
아버지는 결국 고향 땅에서 한 시간이나 떨어진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어머니는 그 점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여보. 조금만 기다려요. 내가 꼭, 어떻게든 고향 땅으로 이장시켜 줄게요.”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며 먼저 두 번 절을 했다. 다음 차례는 형우였다.
“아버지, 오랜만에 와서 죄송해요.”
아버지의 기일은 공교롭게도 대학생의 1학기 기말고사 시간과 겹쳤다. 그 탓에, 지난 몇 년간 형우는 기일에 납골당을 찾아오지 못했다.
“아버지, 예전에 매일 방에만 누워 계셨을 때 기억나세요? 매일 책만 읽으셨을 때요.”
형우의 아버지는 소설을 좋아했다. 정확히는 아프고 나서부터 좋아하게 됐다. 독서는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취미였으니까.
“…그런데 우리 동네가 너무 깡촌이어서, 대여점 같은 것도 없었죠. 기껏해야 민준 삼촌네 집에 있던 것들이 전부였잖아요.”
당시 중학생인 형우는 소설을 다 읽고 심심해하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 힘들었다. 그때 어린 형우의 눈에 들어온 것이 펜과 노트였다.
글을 쓰는 법 따위는 몰랐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생각하며 형우는 며칠 밤을 새워 소설을 써 내려갔다.
몸이 아팠던 주인공이 기연을 얻어 다시 몸이 건강해지고, 그 힘을 통해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야기를.
“분명 좋은 소설은 아니었을 거예요. 맞춤법도 잘 몰랐고, 전개를 하는 법도 몰랐으니 내용도 엉망진창이었겠지만… 아버지는 그걸 읽고 이렇게 말해 줬어요.”
재밌다고. 너는 글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고.
“…아버지한테 보여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가방을 뒤진 형우가 뭔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통장.
그 안에는 형우가 이번에 정산받은 돈이 모두 들어 있었다.
“아버지의 말이 결국 맞았어요. 저, 이번에 책 내게 됐어요. 작가가 됐다고요. 돈도 엄청 잘 벌어요. 보세요.”
형우의 통장에는 5천만 원이라는 숫자가 떡하니 찍혀 있었다.
예전에 민준이 물었었다. 돈도 많은 놈이 왜 이리 씀씀이가 없냐고. 그때는 그냥 쓸 데가 있다고만 대답했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끼고 아껴둔 것이었다.
“어머니. 아버지 묘. 다시 산으로 옮겨요.”
“아무리 그래도….”
“저 알아요. 어머니가 매일 뼈 빠지게 일하는 거, 아버지 이장 시켜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왠지 눈물이 나와서, 쓱 문질렀다.
“어머니, 아니, 엄마. 나도 이제 효도 좀 하자. 나 불효자 만들 거야?”
그렇게 말하는 형우를 본 윤아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장례식장에서도 흘리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납골당에서 끌어안고 펑펑 우는 둘을 보며, 민준이 괜히 코를 쓱 문질렀다.
‘거참, 형님. 자식 잘도 두셨소.’
결혼에 뜻이 없었던 민준조차도, 듬직한 형우 녀석을 보면 가끔 저런 아들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버리고는 말았다.
* * *
어머니가 지금껏 모아왔던 돈에, 형우가 가진 돈을 합치니 어느 정도 이장에 필요한 비용은 나왔다.
“바로 아버지 이장 준비할까요?”
“그게 말이다.”
어머니가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의 반응이었다.
“네 직업이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직업도 아니고, 돈 있다고 펑펑 쓰는 거 아니다.”
형우의 어머니인 윤아의 생각에는, 돈이란 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였다. 올해는 형우가 운이 좋아 큰돈을 벌었지만, 그게 내년의 성공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다.
작가라는 직업은 수입이 불규칙하다. 최악의 경우 내년 내내 깡통만 찰 수도 있다.
“이장은 네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그 말을 들은 형우가 입술을 빼쭉거렸다.
“그렇게 말해 놓고, 끝내 안 받을 거잖아요.”
“…아닌데?”
“그러면 약속해요. 제가 5억 벌면, 그때는 돈 받으세요.”
“10억.”
“…6억.”
“10억.”
형우는 결국 어머니의 고집에 두 손을 들었다.
“알았어요, 10억. 그때는 꼭 돈 받으셔야 해요?”
“어휴, 내 아들이 10억 벌면 원이 없겠네. 벌고서 말해라, 벌고.”
짐짓 꾸중하는 듯 표정을 지었지만, 어머니의 표정은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한 70% 정도는 아들에 대해 대견함이고, 30% 정도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일 테다.
자기가 무능해서 자식 돈을 빼앗아 쓰는구나, 뭐 그런 생각이겠지. 그 표정을 보며 형우는 다짐했다.
1억 정도는 용돈 취급할 수 있을 정도로 대박 작가가 되겠노라고. 그렇게 되면 어머니의 죄책감도 차츰 사라질 것이다.
어머니 정도 무게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저 대견함만 느껴 달라고. 그런 아들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꿈에 부풀어 있는데.
“…아버지랑 어머니가 맞벌이로 300만 원씩 버실 때, 내 한 달 용돈이 5만 원 정도였으니까, 1억을 용돈으로 받으려면 얼마나 벌어야 하지?”
…60억?
인터넷에 재빨리 <해리포터>의 작가인 조앤.K.롤링을 검색해 보니, 1년에 번 돈이 618억이란다. 그러니까 한 달에 50억.
조앤.K.롤링만큼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야기니까, 다시 말해 세계 1위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1억 용돈은 너무 과했나?”
그제서야 두뇌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던 현실감각이라는 녀석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친절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혹시 나 설마… 또 김칫국 마셨나?’
웹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로 늘 김칫국을 마실 때마다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졌었다.
‘…이번엔 아니겠지?’
그렇게 고개를 저으면서, 형우는 <전설의 보안관>이번 화를 업로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