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29화 (29/200)

#28.

한 달 전 소설의 결과로 내기를 나누었던 카페에 세 사람이 다시금 모였다. 천우희는 평소보다 더 까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울어댄 탓에 팅팅 부어버린 눈을 형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오랜만이에요, 천우희 작가님.”

“…그래.”

“지원 매니저님도요.”

“오느라 힘들진 않으셨어요?”

“흐흐, 웹툰 계약할 생각 하니까 막 힘이 나던데요. 여기서 바로 하는 거죠?”

“네. 계약서 가지고 왔어요.”

웹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천우희는 저절로 속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쓱, 하고 숙였다. 넘쳐 오르는 자괴감 탓에 머리가 무거워진 탓이다.

‘진짜 진 거구나.’

적당히 진 거였으면 처음에는 우겨보려고 했다. 선작은 자신이 더 많으니, 포텐셜은 자기가 더 큰 게 아니냐고. 기분 좋은 승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무승부라고는 우겨볼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를 보고 나니 그럴 수가 없었다. 댓글 조작이라는 형편없는 짓까지 했는데도 아득한 격차로 져 버렸다. 심지어 김형우는 그걸 알면서도 글로 승부하고 싶다며 그 일을 스스로 묻었다.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완전한 패배였다.

‘…뭐가 로맨스의 여왕이야.’

고향을 등지고, 대학을 포기하고 서울에 올라와서 글을 쓰기 시작한 순간부터 천우희는 단 한 번도 게으름 없이 노력해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노력은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한 속물적인 노력으로 변했다.

남들이 로맨스의 여왕이라고 치켜주는 말 때문에, 진짜 여왕이라도 된 듯이 오만하게 굴었다. 글보다 평판이 중요해졌고, 자리를 잃어버리는 것이 나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두려웠다. 작가로서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김형우는 그 점을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내기를 걸었을 때부터 그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했다. 만난 지 며칠도 안 되는 사람도 알고 있는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

‘...얼굴을 못 들겠어.’

비겁한 짓을 하고서도 경쟁에서 진 것보다, 웹툰화에 실패한 것보다, 남한테 자신의 유약한 속내를 다 들켜버렸다는 것이 가장 부끄러웠다.

‘…글 접을까?’

마음이 약해지니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앞에 뭔가를 쓱 내밀었다. 틴더 초콜릿이었다.

“…뭐야?”

“이거 좋아하시죠?”

천우희가 의심스럽다는 듯 형우를 바라봤다.

“어떻게 알았어?”

“작가님 소설 보면 틴더 초콜릿에 대한 묘사가 좀 많더라고요.”

“맞아.”

형우가 씩 웃으며, 보란 듯이 주머니에서 틴더 초콜렛을 한가득 꺼냈다.

* * *

지원이 형우에게 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오늘 하는건 정확하게는 계약이 아니라 가계약에 가까운 형태였다.

“그러니까, 이 사람과 계약을 할 거다. 이런 약속 같은 거죠. 확실한 계약은 후에 작화가가 결정된 후에 하시게 될 거예요.”

공판석과는 달리, 지원은 계약서에 밑줄까지 쭉쭉 그어가며, 조항 하나하나를 자세히 설명해 줬다. 그 덕에 형우도 판권 계약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저는 뭘 하면 되지요?”

“일단 판권계약부터인데… 판권계약은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선구매 후제작이고, 하나는 선제작 후 비율정산의 방식이죠.”

선구매 후제작의 경우, 작품을 만들기 전 미리 판권을 구매한 후에 제작을 시작하는 방식을 말했다.

“이 경우에는 해당 작품이 망해도 상관없다는 장점이 있죠.”

돈을 받는 순간 거래가 완료된 식이기 때문에, 해당 작품이 쫄딱 망해도 원작자의 지갑 사정에는 딱히 변화가 없다.

다만, 반대로 그 작품이 엄청나게 성공할 경우에는 꽤 배아픈 경우가 나온다.

“예전에 <왕의 남자>라는 작품이 있었잖아요.”

“저도 그거 재밌게 봤는데. 관객이 천만 명이랬나?”

“<왕의 남자>가 판권을 산 방식이 선구매 후제작 방식이었어요. 정확하게 알려지진 않았는데… 당시 환경을 보면 아마 원작자는 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 사이를 판권료로 받았겠죠.”

<왕의 남자>의 순이익은 390억. 그 중 3천 만원이라고 하면 비율상 0.1%도 안 된다.

“물론 반대 케이스도 있어요. <왕의 남자>가 유달리 대박이었던 거고, 영화에는 손익 분기점을 못 넘는 작품들도 꽤 많으니까요.”

그러니까, 순수익이 0원인 작품들을 말하는 거다. 선구매 후제작 방식으로 계약한 원작자들은 이런 경우에도 일정량의 돈을 쥘 수 있게 된다.

만약 반대로 제작 후 비율정산 방식으로 작품을 팔았다면, 이 경우 원작자가 가져가게 될 돈은 최소한의 금액뿐이다. 관례상 최소한으로 작가에게 지급하는 ‘감사비’ 명목의 금액은 150만 원 정도라고 했다.

“허어….”

성공하든 실패하든 돈이 벌리는 ‘안전자산’인 선구매 후제작의 방식이나,

혹은 실패하면 쪽박, 성공하면 대박인 비율 정산의 방식이냐.

그 고민은 커피 한 잔을 다 마신 후에야 끝났다.

“저는 비율정산 방식이 좋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될 대로 돼라! 라는 느낌으로 고른 것은 아니었다. 선구매 후제작 방식의 경우, 새로운 창작물에 대해 원작자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것이었다. 이미 거래가 끝난 상황이기 때문에.

하지만 비율정산 방식의 경우에는 원작자가 비교적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만큼의 능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이 망하든 흥하든 손 놓고 멍하니 있는 것보다야 옆에서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게 더 속이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 대답할 줄 알았어요.”

지원이 그런 형우를 보며 씩 웃었다. 그렇게 가계약을 마친 후, 지원은 형우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저는 이제 일이 있어서 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입 모양으로 살짝 속닥거렸다.

‘천우희 작가님에게 너무 심한 건 시키지 말아요.’

형우가 걱정 말라는 듯이 손짓했다. 지원이 갈 때까지도, 천우희는 멍한 표정으로 틴더 초콜릿을 하나씩 까먹고 있었다.

“…맛있어요?”

“으, 응?”

시선을 눈치챈 천우희가 놀란 듯 입안 가득 넣고 있던 초콜릿을 단숨에 흡, 하고 삼켰다. 형우가 그런 천우희를 안심시키기 위해 얼굴 가득히 사람 좋은 미소를 띠어 보였다.

“스트레스받을 땐 단 게 좋더라고요.”

“…그러다 살 찌면 또 스트레스받아. 그러면 또 단 걸 먹고 또 살이 찌지.”

천우희가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패배의 충격이 컸던 것인지, 사람이 며칠 사이에 꽤나 네거티브하게 변한 느낌이었다.

“…괜한 이야기를 했네요, 하하….”

“착한 척하지 말고, 소원이나 말해. 내가 뭘 해주면 돼?”

천우희는 조금 강하게 이야기했다.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무릎을 꿇으라면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면 할게.”

비겁한 천우희, 성격 개차반인 천우희였지만, 그렇다고 제 입으로 한 약속을 저버릴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형우는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뭐하러 그런 짓을 해요?”

“…뭐가?”

“기껏 천우희 작가님한테 소원 하나 빌 수 있게 됐는데, 고작 무릎 꿇는 걸로 쓰면 아깝잖아요.”

형우가 생각하기에 그건, 기껏 요술램프를 얻어 놓고 소세지를 가득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다름없는 멍청한 짓이었다. 하지만 천우희는 그 말을 다르게 해석했다.

‘훨씬 심한 걸 시킬 거라는 뜻 아냐…?’

천우희의 안색이 까맣게 물들었다. 형우의 이야기가 계속됐다.

“천우희 작가님, 여론 조작하신 것도 제가 모른 척했었잖아요. 왠지 아세요?”

“…왜?”

“천우희 작가님한테 꼭 부탁하고 싶은 게 있었으니까요.”

“그, 부탁이란 게 뭔데?”

“사실, 제가 성적으로 고민이 좀 있어요.”

“뭐, 뭐라고!”

성적인 고민?

천우희의 두 눈이 팽팽 돌았다. 천우희의 머릿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쫘아악 뿜어졌다.

“말보다는,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네요.”

“지, 직접 보여준다고…?”

…으앗!

천우희는 숨이 멎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대학생들이 빠르다더니, 이렇게나 갑자기?

처음부터 끝까지 죄다 글러 먹은 생각이 마구 떠올랐다.

형우는 천우희가 상상한 어떤 행동들을 하는 대신, 그저 휴대폰을 불쑥 내밀 뿐이었다.

“이것 좀 봐주시겠어요?”

“…엥?”

천우희의 눈이 휴대폰을 향했다. 익숙한 초록색의 화면이 보였다. 한국의 대형 플랫폼 중 하나인 네이비 시리즈였다.

그리고 그 옆에, [작품 성적]이라는 글씨가 볼드체로 강조되어 있었다.

‘…‘성’적으로 고민인 게 아니라 ‘성적’으로 고민인 거였잖아…?’

음란마귀가 낀 건 나였구나. 갑자기 확 부끄러워졌다.

“…얼굴 빨간데, 괜찮아요?”

형우가 눈치 없이 물었다. 천우희는 손으로 부채를 만들어 얼굴을 부쳤다.

“…됐어. 하던 이야기나 마저 해. 성적이 뭐 어쨌다는 거야?”

“아, 그게요….”

형우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 * *

각각의 플랫폼에는 ‘독점 기간’이 있다. 형우의 <전설의 보안관>은 달피아에서 연재를 개시했고, 이 경우에는 100화가 넘어가게 되면 타 플랫폼에 유통이 가능해진다. 얼마 전, 드디어 100화까지 연재한 형우는 타 플랫폼에도 <전설의 보안관> 연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이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딱, ‘나쁘지 않았다’. 대한민국 3대 플랫폼으로 평가받는 ‘커피콩 페이지’와 ‘네이비 시리즈’에서는 달피아에서만큼 대박을 터트리지는 못했다.

이유는 독자층의 차이에 있었다. 입맛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 일단 기본적으로, 남녀 성비부터 차이가 났다.

남성 독자들이 80% 이상을 차지하는 달피아와는 달리, 네이비 시리즈와 커피콩 페이지는 여성과 남성 독자의 비율이 큰 차이가 없었다.

‘<전설의 보안관>은… 따지자면 하드보일드한 남성향 소설이지.’

달피아에서는 작품의 매력으로 인식되었던 부분이, 네이비 시리즈와 커피콩 페이지에서는 오히려 단점으로 작용한 셈이었다.

“딱히 마음에 두지 마세요. 모든 독자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작품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요?”

편집자인 지원은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형우는 그 대답조차 성에 차지 않았다.

‘이왕 런칭 시작한 거, 조금 더 높은 곳을 노려봐야지.’

형우는 커피콩 페이지와 네이비 시리즈를 뒤져, 자신의 작품과 비슷하게 남성향을 베이스로 깔면서도, 여성 독자들에게도 높은 지지를 받는 소설 몇 개를 찾아냈다.

‘……역시.’

비법이랄 게 있기는 있었다.

‘로맨스.’

일반화를 하면 안 되겠지만, 통계적으로 봤을 때 남성 독자는 로맨스보다 액션의 선호도가 높고, 여성 독자는 액션보다 로맨스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네이비 시리즈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한 작품 중 하나인 에그타르트 작가의 <중혼황후> 같은 경우가 이 두 가지를 모두 잡아 성공한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로맨스를 통해 여성 독자를 잡음과 동시에, 암중에서 일어나는 정치극을 실감 나게 묘사함으로서, 액션에 대한 남성 독자들의 니즈까지 완벽하게 충족시켰다.

그 덕에 <중혼황후>는 흔히 말하는 ‘남성향’, 혹은 ‘여성향’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 최고의 웹소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부동의 1위라는 지표가 그것을 증명했다.

형우는 자신의 작품에 그 방법을 접목해 볼 생각이었다.

‘<전설의 보안관>의 액션은 충분해.’

그건 이미 자신의 작품을 보고 있는 수만 명의 독자가 증명해 준 사실이다.

‘그렇다면… <전설의 보안관>에 로맨스 요소를 조금 첨가할 수는 없을까?’

하드보일드 서부극이라는 작품의 정체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자연스러운 로맨스 한 스푼을 통한 새로운 독자층의 공략.

‘혼자서는 힘들겠지만, 최고의 로맨스 작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충분히 가능할지도 몰라.’

형우가 천우희의 잘못을 한 번 눈감아준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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