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28화 (28/200)

#27.

어느새 다가온 7월.

C&N의 장르소설부에는 달뜬 열기와 함께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늘의 날씨입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온이 30도가….”

“회의 시작하게 TV 꺼!”

공판석의 명령에, 리모콘 가까이 있던 직원이 재빨리 TV를 껐다.

오늘은 이번 분기 C&N의 최대 프로젝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웹툰화 프로젝트의 가동일이었다.

“지원 매니저님 생각은 어때요? 참새치 작가님이 이길 것 같아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상대가 천우희인데. 참새치 작가 무시하는 건 아닌데, 상대를 너무 잘못 만났어.”

최종적으로 낙점된 후보는 둘.

“청팀! 공판석 편집장님과 그 담당 작가인 천우희의 <망국의 테라피스트>! 그리고 홍팀! 서지원 수석 편집자님과 그 담당 작가인 참새치의 <전설의 보안관>! 천우희 대 참새치, 참새치 대 천우희, 웹툰화 결정전을 시작! 하겠습니다아아아아아아!”

홍 매니저가 유명한 스포츠 캐스터의 목소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냈다. 덕분에 무거운 분위기가 조금은 풀렸다. 그와 동시에 문이 열리며, 막내인 윤진이 양손 가득 프린트를 들고 들어왔다. 윤진은 재빠른 손놀림으로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복사물을 돌렸다.

“회의 시작하지.”

시작은 <망국의 테라피스트>였다. 발표는 편집장인 공판석이 직접 했다. 자신의 담당 작가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망국의 테라피스트>는 100화를 기점으로 해서 결국 선작 3만을 돌파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짝짝 터져나왔다. 선작 3만이라니. 거대 출판사인 C&N내에서도 흔하게 볼 수 없는 숫자였다.

“거, <전설의 보안관>은 선작이 몇 갠가?”

판석이 지원을 향해 눈짓했다. 해 볼 수 있으면 해 봐. 이런 뜻이었다. 지원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전설의 보안관>의 선작은 2만 8천입니다.”

여기저기서 아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2천 차이. 진짜 아깝다.”

“2주 사이에 선작이 3천 늘어난 거예요? 그래프 보면 증가 곡선이 거의 직각인데? 50화도 안 되는 무료연재작이면 모를까, 100화 넘는 작품이 이렇게 크는 건 또 일하다 처음 보네.”

“이거, 시간 좀 더 있었으면 몰랐겠는데?”

<전설의 보안관>의 성장세는 확실하게 놀라웠지만, 천우희의 선작을 따라잡기에는 약간 모자랐다. 이미 벌어져 있던 간격이 너무 컸다.

“자자, 그러면 결정 났네.”

결과를 확인한 공판석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이번 프로젝트의 웹툰 시범작은 내가 직접 계약 따낸 우리 천우희 작가님의 <망국의 테라피스트>로 결정이다. 불만 없지?”

“잠시만요. 이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린 것은 아니나 다를까, 수석 편집자이자 형우의 담당 매니저인 지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판석이 피식 웃었다.

“서 수석. 아쉬운 건 이해하겠는데 말야.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지 않나? 멋대로 우기면 곤란해.”

“…편집장님, 혹시 저희가 정확하게 어떤 내기를 했는지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오늘 작품의 성적을 확인해서 그 결과를 보자는 거였지. 아닌가?”

“맞습니다. ‘성적’을 확인하자고 했었죠. ‘선작’이 아니라요, 그렇지 않습니까?”

지원이 말했다.

“선작은 물론 중요한 지표입니다. 하지만 선작만이 작품의 전부는 아니지요. 더 중요한 건 역시 매출 아니겠습니까?”

“매출이라고? 대체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공판석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매출이라니! 뭔가 숨겨둔 카드라도 있나 해서 긴장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서 수석, 그러니까 지금, 이제 첫 작품을 쓴 신인 작가의 작품이 천우희 작가의 매출액을 넘어섰다,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건가?”

“정확합니다.”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제정신이 아니군.”

“저는 거짓말을 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통계와 지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법 아니겠습니까?”

지원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튼을 눌러 PPT화면을 띄웠다.

[C&N장르소설편집부 2분기 매출 결산]

그 앞에서, 지원이 익숙한 듯 브리핑을 시작했다.

“<전설의 보안관>의 최신화 판매량은 1만 8천입니다. 평균 판매량은 2만 정도지요. 유료화 이후 총 100화가 연재되었고요.”

아이돌로 비유하자면, 선작은 팬클럽 회원의 수고, 구매수는 앨범 판매량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작이 꼭 구매수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구매수가 선작의 5할만 나와도 업계에서는 대박작이라고 평가하는데, <전설의 보안관>의 구매수는 5할을 넘어 거의 7할에 육박했다.

“초대박작이라는 뜻이죠.”

지원의 말에, 판석은 재빨리 계산기를 두드렸다.

연재 편수 100화 × 평균 판매량 20,000개 × 편당 판매가가 100원이니…….

……2억.

계산을 마친 공판석이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하게, 신인 작가치고 놀라운 수치긴 해. 하지만 천우희 작가도 그 정도 매출은 충분히 나오고 있지 않나?”

천우희는 C&N의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팬층이 두껍기로는 정평이 난 작가였다. 참새치 같은 신인이 아무리 열심히 한들, 그것만으로 이길 수 있는 클래스가 아니다.

분명 그래야 했는데.

“…이건.”

<망국의 테라피스트>의 매출액을 확인하는 순간, 판석의 두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자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형우가 천우희를 따라잡았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 아니다.

그 반대였다.

“…홍 매니저, 저 그래프 잘못 뽑은 거 아니지?”

“아, 아닙니다.”

홍 매니저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보는 게 진짜라는 건데, 공판석이 눈을 쓱쓱 비볐다.

‘평균 구매수 1만?’

100화 기준 평균 구매수 1만은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 달 전만 해도 <망국의 테라피스트>의 구매수가 2만이라는 거였다.

‘한 달 사이에 구매수가 반토막났다고?’

형우에게 따라잡혀서 패배한 게 아니다.

따라잡히기 전에, 스스로 고꾸라진 거다.

“……이걸 왜 눈치를 못 챘지?”

질소 포장지처럼 잔뜩 부풀어 있는 선작 수에 취해 있느라 정작 중요한 실질 구매수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신경도 쓰지 못했다.

그렇게, 편집자와 작가의 무관심 속에서 한 달만에 떨어진 구매율이 총 47%.

이 숫자가 알려주는 사실은 명백하고도, 명백했다.

<망국의 테라피스트>는 하락세였다.

* * *

지이이잉, 이이잉.

거세게 울려대는 휴대폰 탓에 형우는 잠에서 깼다. 창밖을 보니 이미 해가 중천을 넘어 우상향 각도를 그리고 있었다. 어제 작업을 새벽 늦게까지 하느라 잠을 늦게 청한 탓이었다.

‘낮밤이 완전 바뀌었네.’

조만간 생활 패턴을 한번 뒤집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형우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지원의 목소리다.

“이겼어요.”

지원의 첫 마디는 간략했다. 후우, 형우는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긴장했거든요.”

이길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과를 볼 때는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거짓말. 긴장한 사람이 지금까지 잠을 자요?”

“어라, 티 났어요?”

“하품 소리 다 들렸거든요. 나 참. 올빼미족도 아니면서 그렇게 하면 병 걸려요. 이럴 게 아니라, 이번에 이긴 기념으로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드려야겠네. 잘 아는 한의원 있어요.”

“…부탁드릴게요.”

안 그래도 요즘 좀 몸이 허하다고 생각하는 참이긴 했다.

‘그나저나 편집자님 목소리가 좀 다급하시네.’

하기야, 오히려 형우보다 더 긴장하고 있었던 게 지원이 아닌가. 걱정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래도 영 믿음 안 가는 눈치이기는 했다. 형우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천우희가 너무 강한 상대라서다.

“좀 묻는 게 늦었기는 한데, 형우 님. 대체 어떻게 이길 거라고 처음부터 자신하셨던 거예요?”

“아 그게.”

전전긍긍하는 지원과 달리 형우는 처음부터 승리를 확신했었다. 이유는 두 개였다.

“일단 첫 번째는, 제 독자들이 절 좀…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충성심이 높다?”

“맞아요, 그거.”

충성심 높은 독자. 연독률이 잘 찍히는 작품의 독자들에게 붙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주로 메이저를 쓰는 작가보다는 마이너한 장르를 쓰는 작가에게 이런 수식어가 많이 붙는다.

메이저 장르의 경우에는 대체가 아주 많다. A라는 헌터물이 마음에 안 들면, 순위권에 있는 다른 B라는 헌터물을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마이너 장르는 좀 이야기가 달랐다. 지금 순위권에 위치한 작품 중 웨스턴 장르는 형우가 쓰는 <전설의 보안관> 하나밖에 없었다.

대중성을 조금 포기하는 대신 해당 장르의 골수팬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웨스턴을 비롯한 마이너 장르를 쓰는 작가들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할 텐데요.”

지원의 지적에,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장르의 희소성을 무기로 내세웠다고 한들, 그것만으로 로맨스 소설의 여왕인 천우희를 이기는 것은 무리였다. 더 중요한 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저도 천우희 작가님 팬이었거든요.”

민준의 집에서 한창 웹소설을 공부할 때 읽었던 작품 목록에는 당연히 천우희의 것도 있었다. 그녀는 당시 최고의 로맨스 작가였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최고의 로맨스 작가가 아니었다고 해도, 형우는 그녀의 소설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형우가 본 천우희는 끊임없이 발전하는 작가였다.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하고, 공식을 만들어냈다. 한권한권 나아갈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느낄 수 있었다. 거기서 형우는 많은 영감을 얻었다.

세 작품 모두 좋았지만, 그중에도 특히 이번에 드라마화가 된 <블랙기업이지만 사장님 얼굴이 복지라 괜찮아요!>는 다섯 번도 넘게 읽었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다.

주인공은 당차고 톡톡 튀었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핍박하는 배경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서사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매화마다 뭉클한 감동을 받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천우희가 지난 두 개의 작품을 통해 쌓아 온 노하우들을 한 번에 집대성해 폭발시킨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흠잡을 데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천우희 작가가 신작을 썼다고 했을 때, 형우는 누구보다 빠르게 그 작품을 봤다. 얼마나 더 발전했을까 기대했다.

<망국의 테라피스트> 역시 흠잡을 데가 없었다.

주인공은 당차고 톡톡 튀었다. 주인공을 끊임없이 핍박하는 배경은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서사는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러니까, <블랙기업이지만 사장님 얼굴이 복지라 괜찮아요!>랑 똑같았다.

그저, 배경이 판타지로 변한 게 전부였다.

천우희의 작품을 몇 번씩이나 읽고 분석한 형우였기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 것이라곤 그저 자기복제. 형우를 설레게 했던 그 열정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형우는 알았다. 이 작품이 전작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하리라는 걸.

“똑같은 걸 두 번 보면 지루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판타지로 배경을 바꾸는 것은 그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다. 독자들은 그런 것에 오래 속아줄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만약 제대로 된 편집자라도 있었으면 그 문제를 지적해 줬을 테지만, 천우희는 그것마저 제 발로 걷어차 버렸다.

“아마 본인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 거예요. 팬아트를 많이 넣은 것도 그래서인 것 같은데….”

요전에 천우희가 형우에게 했던 ‘팬아트 5개짜리 작품’이라는 요상한 평가가 속에 남아서 한 말은 아니었다.

“소설가가 소설을 잘 써야지, 그렇게 팬아트만 덕지덕지….”

“아흐윽!”

말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폰 너머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지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혹시 천우희 작가님이랑 같이 있어요?”

“네.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천우희 작가님이 왜 졌는지 물어봐 달라고 하셔서….”

어차피 나중에 만나면 이야기하려고 했으니, 딱히 상관은 없긴 했다. 다만,

“…울 줄은 몰랐는데.”

“아흐으으윽… 으아앙! 말이 너무 심하잖아, 개새끼야!”

팩트가 너무 아팠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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