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26화 (26/200)

#25.

오늘도 민준은 설레는 마음으로, <전설의 보안관>의 이번 화를 결재했다.

“첫 작품으로 5위라.”

장르문학계는 늘 게으른 천재에 대한 소문이 떠돈다. 장난삼아 쓴 첫 작품으로 1위를 달성했다든지, 취미 삼아 쓴 작품으로 월 2천을 벌었다든지 하는 말들.

저 말을 실제로 실현하고 있는 형우를 보기 전까지, 민준은 그런 천재들에 대한 이야기가 반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형우를 만난 지금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반쯤 거짓말인 게 아니라, 완전히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형우의 노트북은 산지 이제 한 달밖에 안 됐는데도 벌써 자판이 닳아 없어지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다가 조금이라도 막히면 민준의 집에 찾아와 책이란 책은 다 빌려 가서는, 밤을 세워 읽었다.

‘대견한 녀석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민준은 그대로 <전설의 보안관>의 광대한 세계관 속으로 빠져들었다. 최근 민준의 하루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슬프게도, 그 시간은 늘 짧았다.

‘여기서 끊다니! 괘씸한 놈!’

소설은 에이전트 제로가 사실 헤럴드를 모함해서 내쫓았던 선임 보안관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장면에서 딱 끝났다. 얼마나 치가 떨리도록 캐릭터를 잘 만들었던지, 헤럴드가 아니라 마치 자신이 당한 것처럼 속이 끓었다.

‘이번 화 진짜 좋네. 다음 화는 어떻게 되려나?’

몇 번인가 궁금함을 못 참고 내용을 물어봤는데, 나온 뒤에 보라는 답변만 돌아올 뿐이었다. 맞는 말인데도 얼마나 서운하던지.

‘잘나간다 그거지.’

하지만 딱히 질투 같은 건 없었다. 대견한 동생을 보는 느낌이랄까. 평소처럼 잘 읽었다는 댓글을 달기 위해 댓글창을 열었다.

‘오늘따라 댓글이 많네.’

그대로 댓글 개수를 확인하던 민준의 눈이 큼지막하게 커졌다.

‘댓글이… 300개?’

만약 댓글이 50개였다면, 독자 반응이 좋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100개였다면, 부러워 미칠 것 같았을 테다.

하지만 300개는 너무 많았다. 민준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리고 댓글을 확인하는 순간, 불안감은 실제가 됐다.

민트초코 : 이거 완전 구린 글이라던데요?

콩국수 : 혹시나 해서 왔는데, 진짜 서부영화 그대로 가져다 썼네; 창의성 0

하와이안피자 : 양심 있으시면 연중이나 해라. 난 안 볼란다.

돼지껍데기 : 명작 베껴 왔는데도 완전 노잼이네…. 그냥 이 정도면 재능이 없는 게 맞는 듯.

훌륭한 소설 내용에 대한 칭찬은 어디에도 없고, 근거 없는 수많은 악플이 댓글창을 점령하고 있었다.

“맙소사.”

재빨리 노트북을 덮은 민준은 즉시 형우의 집으로 달려갈 채비를 마쳤다.

* * *

“형우야!”

가타부타 인사도 없이 민준은 곧바로 형우의 방에 들이닥쳤다. 문을 열자마자 노트북 화면을 보며 히죽거리는 형우의 모습이 보였다.

“흐흐흐.”

“혀, 형우야?”

그 괴기스러운 모습에 민준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망했다.’

형우의 노트북 위에는 소설의 성적을 집계한 그래프가 떠올라 있었다. 자세한 숫자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안 봐도 뻔했다.

표절 시비가 걸린 작품의 성적이 좋게 나올 리가 없었으니까.

‘성적이 떨어졌는데 웃고 있다고?’

그 사람이 이영호가 아니라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스트레스 탓에 머리가 훼까닥 돌아버렸구나!’

소설가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작품이 망해서 소리를 지르다가 경찰이 왔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 식상한 이야기고, 자기도 모르게 3층 창문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다리가 부러졌다는 놈도 있었다.

‘형우 다리가 부러지는 건 막아야 해!’

다행히도 민준은 이럴 때 쓸 만한 격투기 기술 몇 가지를 알고 있었다. 퓨전 격투기 소설인 <환생이 조금 애매하다>를 쓰기 위해 조사했던 것이지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테이크다운 후에 트라이앵글 초크로 제압하자.’

소설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뉴튜브로 수십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 게다가 형우는 키는 좀 커도 덩치는 작다. 제압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민준이 조심스럽게 형우를 불렀다.

“…형우야?”

“민준 삼촌? 언제 오셨어요?”

그제야 민준과 눈이 마주친 형우가 민준을 보고 씩 웃었다.

“거기서 뭐 하세요? 안 들어오시고.”

“들어오는 건 됐고… 뭐 하고 있었니?”

“아. 소설 댓글 보고 있었어요. 너무 좋아서.”

악플이 좋다니? 민준의 의심이 점점 확신으로 변했다. 형우는 미쳤다. 그리고 그 미친놈은 지금 자기가 미쳤다는 것도 모른 채 보란 듯이 노트북을 들어 올리기까지 했다.

“민준 삼촌도 보실래요? 히힛.”

킬킬거리는 모습을 보니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다. 꼭 몇 년 전 영화상을 휩쓴, 춤을 잘 추는 광대 분장의 빌런 같았다. 한국이 총기 불법 국가인 게 다행이라고 생각될 정도였다.

“형우야! 정신 차려! 이런 일로 정신을 놓으면 자식아, 누님은 어떻게 하냐?”

“정신을 놓긴 누가 정신을 놔요. 저 완전 멀쩡한데?”

“악플에 마음이 상한 건 알겠다. 하지만 임마, 그럴 때일수록….”

“저 제정신이라니까요? 삼촌이야말로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며 성큼 다가오는 형우. 민준은 자신도 모르게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대로 형우의 오른쪽 다리를 붙잡고 뒤로 넘어트렸다. 머릿속으로 수십 번이나 시뮬레이션했던 레슬링 태클이었다.

콰앙!

형우의 몸이 그대로 쓰러졌다. 민준의 거대한 몸 아래에 깔린 형우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악! 왜 그래요? 삼촌 미쳤어요?”

“미친 건 너야! 어떡하지? 일단 찬물이라도…. 아니, 정신과에 가자!”

“정신과는 뭔 놈의 정신과에요?”

“인마! 요즘 시대에 정신과 가는 건 이상한 일도 아냐!”

“무슨 소리예요? 저 멀쩡하거든요? 아악!”

“아냐, 너 안 멀쩡해. 멀쩡한 작가면 떨어진 성적 보고 히죽거리진 않아.”

“아니, 성적이 떨어지긴 뭐가 떨어져요? 안 떨어졌어! 오히려 올랐다고요!”

이제는 아주 현실까지 멋대로 조작하고 있었다. 조현증의 초기 증상이었다.

“그래, 형우야. 올랐겠지. 그러니까 나랑 같이 병원 가자… 응?”

“미치겠네! 일단 보라고요! 진짜 올랐다고!”

형우가 민준을 향해 노트북을 들이밀었다.

“오르긴 대체 뭐가….”

노트북을 받아 든 민준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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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보안관>

2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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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헛것을 보나?’

하지만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 봐도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광증도 전염되나…?’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진짜 올랐다고?”

며칠 전만 해도 형우의 작품은 선작(★) 2만의 벽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선작 2만을 넘는 게 목표라는 형우에게 민준은 어린놈이 첫술부터 욕심도 많다며 핀잔 아닌 핀잔을 하지 않았던가.

“…일단 비켜요. 무거워요.”

“그, 그래.”

“살 좀 빼시고요.”

“…네 엄마한테는 이르지 마라.”

“생각 좀 해 보고요.”

아뿔싸, 윤아 누님이 알면 가만 안 있을 텐데. 민준이 재빨리 대화 주제를 바꿨다.

“그나저나,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떻게 이슈가 터졌는데 오히려 선작이 늘어날 수가 있지?”

“그게요…. 아마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

형우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슬쩍 내밀었다. 화면 위에는 뉴튜브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 * *

<전설의 보안관, 표절? 노잼?>

저도 처음에 검색어에 떴기에 이건 뭐지 싶어서 봤었는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표절 아닙니다. 노잼은 더더욱 아니고요.

…이게 표절이라고 하면, 세상에 표절 아닌 게 없을 정돕니다. 그냥 법적으로 보나, 도의적으로 보나 이건 절대 표절 아니니 억까하지 마세요….

…노잼? 이거 노잼이라고 까려면 더 재밌는 소설 좀 추천해 주세요. 저는 최근 본 것 중 제일 재밌게 읽었습니다. 여간하면 완결 안 된 작품은 명작 리스트에 안 올리는데, 이건 미리 올려둘게요….

올해 웹타쿠의 추천 소설들

<쌈질을 배우다>, <매지션 킬러>, <나 혼자만 B형 인간>, <전설의 보안관>….

콰앙!

천우희가 집어던진 휴대폰이 벽에 부딪혀 박살났다.

“웹타쿠가 갑자기 왜 끼어들어?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건데? 왜?”

웹타쿠. 그는 뉴튜브에서 십만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전문 웹소설 리뷰어이자 업계에서 유명한 인플루언서였다.

‘헌터물이나 읽던 놈이 갑자기 뭘 잘못 먹었나, 왜 갑자기 팔자에도 없는 웨스턴을 쳐 읽고 지랄이야?’

웹타쿠랑 김형우랑 아는 사인가? 아니면 갑자기 웨스턴에 삘이 꽂혔나? 천우희의 머릿속에 수많은 가정이 떠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민한 그녀의 두뇌는 그 이유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미친, 나 때문이잖아.’

중증 헌터물 매니아로 알려진 웹타쿠지만, 헌터물만 리뷰하지는 않는다. 아주 가끔은 헌터물이 아닌 작품도 리뷰할 때가 있었다. 보통은 둘 중 하나였다. 엄청나게 유명하거나, 혹은,

‘뭔가 이슈가 터졌거나.’

[24시간 인기 검색어 추이]

1위 : 전설의

2위 : 보안관

3위 : 참새치

4위 : 전설의 보안관 표절

참새가 방앗간은 지나가도, 뉴튜버가 이슈는 절대 못 지나간다는 말이 있다.

천우희가 장르소설회랑에 올렸던 리뷰 덕분에, 지난 며칠간 연재 사이트의 검색 순위는 온통 <전설의 보안관>과 ‘참새치’로 도배됐다. 웹소설 전문 뉴튜버인 웹타쿠가 그런 이슈를 놓칠 리가 없었다. 하필 물고 늘어진 게 표절 이슈였던 것도 실수였다.

업계에서 웹타쿠의 별명은 표절 전문 스나이퍼였다. 그는 지난 2년간 총 다섯 개의 작품을 표절이라 지적했고, 그가 지적했던 모든 작품은 결국 표절로 밝혀졌다. 레드오션인 리뷰 시장에서 그가 단기간에 이름 있는 뉴튜버로 성장한 배경이기도 했다.

그런 웹타쿠가 직접 영상을 만들어 <전설의 보안관>은 표절이 아니라고 했다.

거미 : 웹타쿠가 전보(전설의 보안관) 표절 아니라는데?

멍애 : 로맨스마니아 VS 웹타쿠 누가 이김?

하꼬인생 : 로맨스마니아 잠수탄 거 보면 모름?

영춘권 : 참새치 작가랑 원수라는 소문 있던데.

멍애 : 하… 로맨스마니아 커뮤니티에 치킨 자주 쏴서 좋았는데. 이제 누가 치킨 쏴주나.

혹시나 싶어 장르소설회랑의 여론도 살펴봤지만, 민심은 이미 멀리 떠나간 뒤였다.

‘이 새끼들이, 내가 치킨을 얼마나 퍼 줬는데!’

선동은 실패하고, 여론마저 돌아섰다. 그것뿐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터였지만, 상황은 더 나빴다.

멍애 : 야, 나 전보 다 샀다.

하꼬인생 : 아니 참새치 선생님이 네 친구냐? 세기 명작 <전설의 보안관>이라고 불러라.

디스 : 전보 아직 전권 구매 안 한 흑우 없제?

오히려 반전 여론을 타고 <전설의 보안관>이 그대로 날아올라 버린 것.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게 보기 싫어 일을 벌였는데, 노를 부러트리기는커녕 자신의 손으로 최신형 터보엔진을 달아준 격이었다.

기세를 탄 형우의 작품은 무섭게 치솟아, 어느새 선독 수가 2만 5천을 넘었다. 최근 들어서는 5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을 정도였다.

지금 천우희가 연재 중인 <망국의 테라피스트>의 성적이 2만 7천이니, 말 그대로 턱 끝까지 쫓겨 있는 상황이었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천우희가 심호흡을 했다. 더 나쁠 수도 있었다. 예를 들면, 로맨스마니아가 자신이란 걸 들키거나 하는 일 말이다. 그랬다가는 정말로 빼도 박도 못하게 될 것이다.

“아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천우희는 커뮤니티의 계정과 게시글을 모두 삭제했다.

얼마나 아깝던지. 누구 멱살이라도 잡고 드잡이질을 하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확 치솟았다.

띵동, 띵동.

때맞춰, 초인종이 울렸다. 작업에 방해되니 초인종을 누르지 말라고 분명 문 앞에 써 놨는데. 마침 화도 나던 차에 딱 좋았다.

너 오늘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며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누르지 말라니까, 글자 못 읽… 억!”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문틈으로 불쑥 튀어나온 두 손이 천우희의 멱살을 억세게 쥐었다.

“…지원 언니?”

“그래, 나야, 우희야. 아니… 로맨스마니아라고 불러야 하나?”

“네, 네?”

그제야 알았다.

잘못 걸린 건 이쪽이었다.

“지, 지원 언니도 알잖아요! 이건 그러니까, 신고식 같은 거…….”

“신고식이라고요?”

“그게…… 아악!”

뭐라고 변명을 하려고 했지만, 지원이 천우희를 바닥에 던지는 게 더 빨랐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다른 건 건드려도, 내 작가는 건들지 말라고. 이 호로자식아.”

넘어져서 느끼는 아픔보다, 그 눈빛이 몇 배는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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