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25화 (25/200)

#24.

C&N 장르 소설 편집부는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봐라, 봐. 내가 하면 된다고 했잖아?”

“역시 편집장님이십니다. 대단해요.”

기분 좋아 보이는 편집장, 공판석의 옆에서 편집부의 베테랑 홍 매니저가 어색한 몸짓으로 따봉을 만들어 보였다. 참 익숙한 사회생활의 현장이었다.

“출근했습니다아….”

지원이 사무실에 출근한 건 그즈음이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지만, 부하 직원의 사정을 사려 깊게 신경 써 줄 공판석이 아니었다.

“에헴. 서 매니저, 어서 오게.”

“…지금 저 부르신 거예요?”

“그럼. 편집부에 서 매니저가 서 매니저 말고 또 있나?”

지원은 반갑게 인사하는 공판석을 의심스럽게 쳐다봤다. 형우와 사건이 있었던 날 이후, 지금까지 판석은 일부러 지원을 모른 척했고, 어쩌다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편집장의 어깨에는 힘이 가득 들어갔고, 표정에는 거만함이 서려 있었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세요?”

“좋은 일? 있지, 있어. 내가 계약을 따냈거든.”

“계약이요?”

지원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판석을 바라봤다. 도둑이 제 버릇 못 버린다고, 혹시 그사이를 못 참고 또 나쁜 버릇이 도졌나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신인이에요?”

“신인은 무슨! 기성이야! 그중에서도 업계 탑이지. 들으면 깜짝 놀랄걸?”

대체 누굴 섭외했기에 이토록 기고만장한가 싶을 정도였다. 최근 활동을 시작한 탑급 작가 중에 출판사를 아직 안 구한 작가가 남아 있던가?

‘…설마?’

아무리 기억을 뒤져봐도 한 명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혹시, 천우희 작가예요?”

“어, 어떻게 알았나?”

그 설마가 맞았다. 공판석이 김샜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뭐, 절반 정도는 자네 덕분이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랬다. 어제 천우희가 공판석에게 전화를 걸었단다. 아마 지원의 상사인 편집장에게 클레임을 걸어 지원에게 꼽을 주려는 의도였던 것 같았다.

‘머리 좀 썼다 이거지.’

하지만 천우희는 미처 편집장이 바뀌었다는 것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 잔뜩 화난 천우희의 전화를 받은 것은 공판석이었다.

거대 출판사의 편집장치고는 글을 다루는 게 영 서투른 공판석이었지만, 그도 구르는 재주는 있었다. 공판석은 말을 참 잘하고, 사람을 잘 휘둘렀다. 애초에 대학도 이 바닥에 흔한 문창과나 국문학과가 아니라 사회심리학과를 나왔다.

‘거기에 부전공은 정치외교학과였지, 아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들어도 정신을 휘휘 저어 놓는 게 공판석의 말재간인데, 화나서 반쯤 이성을 놓은 상태였으니, 안 봐도 뻔했다.

‘고양이 앞에 생선이 나타난 격이군.’

공판석이 자랑스럽다는 듯 천우희의 이름이 적힌 계약서를 흔들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는 대박 작가를 놓치지 않고 C&N에 받아낸 셈이니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겠지만, 뭔가 기분이 오묘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편집자를 개무시하는 작가와, 작가를 개무시하는 편집자의 콜라보라니.

‘…환장의 콤비네.’

지원은 그대로 형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지원 : 대박.

지원 : 천우희가 매니저를 구했다는데요?

답장은 바로 왔다.

형우 : 엥? 안 구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내기 내용이랑 안 맞는데? 저 어쩌죠?

지원 : 끝까지 들어 봐요. 그 편집자가 글쎄, 우리 편집장이야.

형우 : 공판석이요? 헐.

형우 : (강아지가 어이없어하는 이모티콘)

지원 : 그런데 내기는 어떻게 하죠? 분명 천우희 작가님은 매니저 안 쓰시기로 했었잖아요.

이번에도 대답은 빨랐다.

형우 : 공판석이잖아요, 공판석.

형우 : 노카운트라고 전해주세요.

* * *

지원 : 노 카운트래요.

지원의 메시지를 받은 천우희가 피식 웃었다.

‘이게 도망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는데.’

바보는 기회가 있어도 못 잡는다더니, 딱 그 꼴 아닌가.

‘하기야, 이 정도로 튈 거면 애초에 내기도 안 걸었겠지.’

천우희는 천천히 키보드를 쳐서 작품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천우희는 모니터를 가득 채운 자신의 소설을 재빨리 눈으로 퇴고했다. 일단 골자는 지금까지 써왔던 것과 비슷한 식으로 잡았다.

‘돈 많고 권력 있고, 명예 높고, 능력도 있지만, 어딘가 나사 빠진 망나니랑,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억세고 매력 있는 여자 주인공.’

천우희의 머릿속에는 이미 몇 번이나 증명된 확실한 웹소설의 성공 공식이 자리해 있었다. 그 공식에 맞춰 배경만 살짝 비틀면 됐다.

‘재벌 2세는 전작에서 이미 했고… 업계 엘리트는 너무 많이 써먹어서 이제 거의 케케묵은 냄새가 날 정도야. 그러니까, 판타지.’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대략적인 배경이 완성되었다.

‘대한민국의 테라피 종사자였던 여주인공이 판타지 세계에서 1황자의 시녀로 환생하는 거지. 제목은… <망국의 테라피스트> 정도가 좋겠네.’

전쟁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1황자. 그리고 우연히 그 모습을 보고 21세기의 테라피 기술을 통해 어깨를 치료해 주는 여주인공. 둘 사이에서 꽃피는 로맨스!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마사지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면 재미없으니까, 약간 여주인공이 마법적 재능도 있는 걸로 하고… 활도 좀 잘 쏘는 걸로 하자. 주변 사람들이 활을 왜 이리 잘 쏘냐고 물어보면 주몽의 후예라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거지. 주몽은 다들 좋아하니까.’

이야기와 캐릭터에 조금씩 살이 붙었다.

‘주인공이 화염 계열 마법을 쓰는 거랑 물 계열 마법을 쓰는 것 중 뭐가 더 좋을까… 흐음, 매니저한테 물어볼까?’

신나서 메시지를 써대던 천우희의 손가락이 뚝 하고 멈췄다.

‘맞다. 이제 매니저 없지.’

갑자기 뭔가 쓸쓸한 기분이 확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지원이었다면 분명 자신의 의견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를 해 줬을 텐데.

찰싹!

천우희가 자신의 손으로 두 뺨을 세게 때리는 소리였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정신 차려, 천우희. 왜 자꾸 버림받은 개새끼처럼 구는 거야?”

그런 건 자존심이 용납지 않았다. 버림받은 게 아니라, 스스로 버린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결과가 증명해 줄 것이다.

‘그러니까, 무조건 이겨야 해.’

천우희는 그대로 휴대폰을 등 뒤로 집어 던졌다. 휴대폰이 쓰레기통과 부딪혔다.

와르르-

쓰레기통이 엎어지며 그 안에서 포장도 채 뜯지 않은 고급 향수들이 튀어나왔다. 며칠 전, 지원과 함께 샤넬에서 샀던 향수들이었다. 하지만 천우희는 이미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나 말고 그깟 놈을 고르다니. 지원 언니. 언니 실수한 거예요.’

결국 자신이 맞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일념으로 키보드를 두드리는 천우희.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데에는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두 편, 세 편, 네 편. 천우희는 자신의 소설을 보며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보라고, 편집자 없어도 재밌잖아.’

화수가 올라갈 때마다 댓글들이 우후죽순처럼 달렸다.

귀요미혈귀 : 천우희 작가님! 기다렸어요!

파파루치 : 미쳤다! 이번에는 판타지물인가요? 같이 달리겠습니다.

반룡 : 대박사건 대박사건! 완전 나 죽어 ㅠㅠ

그대로 15화가 되기 전에 선작 1만을 넘겼다. 이 추세대로라면 삼십 화 이전에 선작을 이 만, 운이 좋다면 삼만도 찍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천글도 세 개나 달렸다.

‘전문 리뷰어 평가는 없네.’

그 부분만이 조금 실망스러웠다. 웹타쿠나 웹소설 시스터즈같은 유명 뉴튜버나 리뷰어가 작품을 홍보해 준다면 확실하게 궤도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뭐, 빠르냐 늦냐의 차이일 뿐이지.”

슬슬 유료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요즘 잘 나가는 작품이 뭐가 있나 살폈다. 그러던 중, 작품 하나가 천우희의 눈에 들어왔다.

<전설의 보안관>.

그 김형우라는 놈이 쓰는 작품이다. 저번에 듣기로 선작이 만 오천 정도라고 했는데, 지난 한 달 사이 좀 올랐는지 지금은 이만 명이 조금 넘었다. 순위는 유료 베스트 5위였다.

‘일단 읽어나 볼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패. 그렇게 생각한 천우희는 감자칩을 꺼내온 뒤 <전설의 보안관>을 읽기 시작했다.

‘1화는 별로네. 언제적 마초 주인공이람?’

‘작가가 연애를 안 해 봤나? 여자 주인공인 베아트리체인가? 애 왜 이리 어설퍼? 이런 게 정말 5위 작품이란 말야?’

‘…시장 연설은 그래도 좀 읽어 줄 만하네.’

그렇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을까. 천우희는 맞춰둔 휴대폰 알람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미친, 벌써 7시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설에 빠져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죽 집중했으면, 가져온 감자칩을 반도 먹지 못했다.

‘이거 좀 위험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미 방심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겠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에는 또 불안한, 그런 느낌이었다.

‘위험한 싹은… 미리 잘라 두는 게 맞지.’

타다다닥!

천우희의 손이 자판 위를 달렸다. 상대가 소설을 열심히 쓰니, 나도 열심히 써서 이기자! 같은 바람직한 선의의 경쟁이었다면 참 좋았겠지만, 현실이 늘 아름답지는 않은 법이다.

로맨스마니아 : 님들 오랜만이용!

멍애 : 헉 로맨스마니아님 오셨네.

좋아드루이드 : 요즘은 비평 안 씀?

장르소설회랑은 국내 최대 규모의 웹소설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였다. 천우희는 이곳에서 ‘로맨스마니아’라는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것도 닉네임을 대면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의 네임드.

그 아이디의 주인이 천우희라서는 아니었다. 익명 사이트에서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건 구설수에 휘말리기 딱 좋은 위험한 짓이었다. 특히 자신처럼 유명인이라면 더더욱.

사이트 내에서 그녀는 소설가 천우희가 아니라, 웹소설 비평가인 ‘로맨스 마니아’였다.

그녀의 글재주는 소설뿐만이 아니라 리뷰에도 적용됐다. 뛰어난 필력으로 서슴없이 적어내는 원색적인 비평은 장르소설회랑의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부끄럽지만, 직접 쓴 소설을 리뷰한 적도 있었다. 욕은 거의 없이 칭찬만 썼는데, 그 탓에 잠깐 천우희의 지인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다.

‘그땐 진짜 들킬 뻔했어.’

같은 실수를 할 생각은 없었다. 오늘 천우희가 쓸 리뷰는 자신의 소설인 <망국의 테라피스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형우의 소설인 <전설의 보안관>의 리뷰를 쓸 생각이었다.

‘소설은 확실하게 재밌었어.’

그 점은 천우희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흠집을 못 낼 건 또 없지.’

천우희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재미는 있으나, 중간의 이 문장이 다른 소설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론 레인저>나, <쾌걸 조로>같은 옛 서부극들 말이죠.]

억지라는 것은 천우희도 알고 있었다. 문장 구성이 아예 똑같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오마쥬 수준이다.

‘하지만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예전에, 모 방송사에서 했던 사회고발 프로그램에서 신체에 무해한 화학 조미료를 단지 ‘화학 조미료’라는 이유로 대차게 깐 적이 있었다. ‘표절’이라는 단어도 ‘화학 조미료’라는 단어와 같다. 그것이 유해하든 아니든 사실 여하를 떠나, 일단 사람들을 분노케 만든다.

그 글을 쓰는 사람이 유명 리뷰어라면 더더욱.

뱀심

뱀의 마음이라는 뜻으로, 단순한 질투를 넘어 다른 작가에 대한 유언비어, 별점 테러, 악플 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잘 나가는 신인 작가는 이러한 ‘뱀심’을 반드시 한 번은 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할 정도의, 신고식 같은 개념이다. 물론 천우희도 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쓴 김에 비슷한 사이트인 환상회랑과 웹소설회랑에도 비슷한 글을 적었다.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렸다.

하꼬인생 : 좀 비슷한 것 같기도 한데? 진짜 표절 맞는 거 아님? 일단 중립기어 박는다.

무쉬무쉬 : 이게 무슨 표절임ㅋㅋ 또 뱀심 발동했네.

단탈리안 : 내가 표절 전문간데, 이거 표절 맞는 것 같음.

멍애 : 아 지금까지 재밌게 봤는데;

장작에 불이 붙듯, 순식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활활 잘 타네!’

이마에 가득 찬 땀을 닦아내며, 천우희가 뿌듯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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