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구매 수 1만 3천.
“맙소사.”
형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전설의 보안관>의 첫 유료화 성적이었다. 유료 직전 선작수가 만 오천이었으니, 90%가 넘는 독자들이 이탈하지 않고 따라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 얼마를 번 거지?’
형우가 연재하는 사이트는 기본적으로 수익의 37%를 플랫폼 수수료로 가져간다. 거기에 C&N과는 8대 2 계약을 맺었다.
‘소설 한 편은 100원이니까, 거기에서 37원을 빼고… 그걸 8대 2로 나눈 후에 만 삼천을 곱하면…?’
70만 원. 간단한 사칙연산임에도 머리가 핑핑 돌았다. 형우가 수학을 못 해서가 아니라, 그게 돈이라서 그랬다. 계산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돈은 아무래도 일당으로 세는 것보다는, 월급으로 세는 게 더 기분 좋은 법 아니겠는가.
<전설의 보안관>은 일요일을 제외하고 1주일에 6회 연재된다. 평균적으로 한 달에 25화에 26화 정도를 연재하는 셈이다. 하루에 70만 원씩 25화를 연재했을 때 벌 수 있는 돈은?
…써 놓고 보니 초등학교 수학 문제 같았다. 답은 순식간에 나왔다.
1,750만 원.
형우는 입을 쩍 벌린 채로 계산이 맞는지를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한 번 확인했을 때, 틀린 데는 없었다. 그래서 그대로 얼굴을 꼬집었다. 역시 아팠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한 번 더 확인했다. 곱셈을 먼저 하고 덧셈을 다음에 하는 거 맞지? 혹시 몰라 초등학교 수학책까지 꺼내 확인했다. 곱셈을 먼저 하는 게 맞았다.
“진짜 1,750만 원이 맞네.”
민준에게 혹해서 돈을 벌기 위해 웹소설을 시작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곤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전에 수학자 오일러와 관련된 영화를 본 적이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식이라는 오일러 등식을 발견했을 때, 그는 침대에 엎어져 아이처럼 울었다고 했다.
‘그때는 수학 문제 풀고 우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이해가 좀 됐다. 방금 형우가 한 초등학교 수준의 계산은, 평생 풀어 온 모든 수학 문제 중 가장 감동적이고, 벅차오르는 문제였다. 가장 아름다운 사칙연산이었다.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단지 많은 돈을 벌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감은 눈의 어둠 뒤로, 문창과에 입학한 뒤 처음으로 들었던 수업 시간의 모습이 찬찬히 떠올랐다.
성큼성큼.
당당한 발걸음으로 교탁 앞에 선 교수님은 새로 들어온 학생들을 한번 쭉 둘러 보고서는, 그대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여러분은 글을 쓰는 사람이지만 작가는 아니야. 그럼 둘의 차이는 뭘까?’
학생들은 여러 대답을 했다. 글의 퀄리티 차이 같은 기술적 부분부터, 글에 영혼을 담는 것이라는 등의 약간 수사적인 의견까지 나왔다. 교수님은 그 모든 의견을 경청하고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여러분 말도 다 맞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게 빠졌잖아. 작가라면, 자기 글을 돈으로 바꿀 수 있어야지.’
‘에이, 그건 너무 로망 없잖아요. 교수님.’
‘방금 그렇게 말한 학생, 핸드폰 뭐 쓰지?’
‘갤럭시요.’
‘다른 걸 써 본 적은 없어?’
‘없어요.’
‘그건 그대가 갤럭시를 최고의 휴대폰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돈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어, 다른 휴대폰도 돈을 쓸 가치는 있어요.’
‘하지만 그대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맞나?’
‘…그러네요.’
그렇게 대답하는 학생을 보며, 교수님은 장난스럽게 씩 웃었다.
‘왜 그 간단한 논리가 예술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니까. 돈을 얼마나 버느냐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돈을 번다는 것 자체는 아주 중요해. 기억해 둬. 사람들은 오직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에만 돈을 쓰는 법이거든.’
하도 옛날 일이라 기억하는 사람이 몇 없지만, 그때 교수님과 휴대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 형우였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지. 글이라는 것도 비슷하거든. 팔아보기 전까지는, 내가 쓴 게 양잿물인지 아니면 와인인지 알 방법이 없다는 거야.’
‘그리고 내 글이 양잿물이 아니라 와인이라는 걸 알았을 때, 비로소, 그 사람한테는 풋풋하게나마 작가 냄새가 조금 나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너희들도 작품 써서 꽁꽁 감춰두지 말고, 최대한 남한테 보여 주고 출판하려고 노력하란 말야. 그건 꽤 괜찮은 경험이니까. 알겠어?’
그 말을 끝으로, 교수님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끝냈다. 실제로 돈을 벌어 보니, 교수님이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꽤 괜찮은 경험이라면서요. 그 정도라면서.”
이토록 벅찬 것이라고는, 이토록 기쁘다고는 말해주지 않았다. 가린 손 사이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떨어졌다. 그 옆에서 참치가 삐익, 하고 울음소리를 냈다.
형우는 동물들이 내는 소리를 왜 ‘울음소리’라고 말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기쁜 소리인데, 암, 그렇고말고.
* * *
덜컹덜컹.
형우는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타고 있었다. 잠깐 서울에 볼일이 있었다.
“요즘 기차는 참 좋단 말이지.”
와이파이도 터지고, 노트북 거치대도 있었다. 조금 멀미가 나기는 했지만, 작업에 딱히 커다란 지장을 주지 않았다. 형우는 캔커피를 살짝 홀짝이며 소설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현주면주 : 다음편!!!!!!!!!!다음편 내놓으라고!
유진 : 헤럴드가 저런 과거가 있었다니…
멍애 : 이 쒸@펄, 악당 새끼 추잡하게도 구네. 예전 군대에서 만났던 최민식, 병장 놈이 생각나네요. 잘 읽었읍니다^^
마지막 댓글을 읽은 형우의 잇새로 웃음이 픽 새어 나왔다.
“그럼, 누가 모티브인데 당연히 추잡하지.”
지금 50화부터 시작되는 새로운 에피소드의 빌런 캐릭터는 코드 네임 제로라는 이름의 캐릭터였다. 인종차별주의자에, 자기 아랫사람을 물로 보고, 제 주제도 모르고 여자를 밝히며, 그런 주제에 나름 꽤 권력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모티브는 두말할 것도 없이 공판석과 공태준이었다. 둘은 공교롭게도 성씨마저 같았다. 코드 네임 제로(0)라는 이름은 거기서 따 왔다.
생각대로, 캐릭터가 등장하자마자 댓글 창이 아주 난리가 났다. 자기 선임이 생각났다는 건 기본이오, 우리 회사 부장님이 모티브인 게 분명하다는 말도 있었다. 저 악당 놈을 빨리 헤럴드가 없애버렸으면 좋겠다는 게 공통 의견이었다.
“역시.”
원래 형우는 코드 네임 제로라는 캐릭터를 <전설의 보안관>에 등장시킬 생각이 없었다. 코드 네임 제로는 꼰대들에 대한 증오심을 담아 반쯤 장난으로 만든 캐릭터였을 뿐이다. 코드 네임 제로를 정식 빌런으로 삼자는 것은 지원의 아이디어였다.
“물론 메인 빌런을 삼기에는 조금 경박하고 가볍긴 하죠.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에요. 혹시, 두 명의 악당 법칙이라는 거 알아요?”
“…두 명의 악당 법칙이요?”
두 명의 악당 법칙. 미워하기 쉽고 평면적인 악당을 먼저 등장시키고, 그다음에 그와 대비되는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악당을 등장시키는 스토리 전략이었다.
미국의 히어로 영화가 이 전략을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그 외에도 수많은 장르에서 변주되며 사용되는 방법이다.
“그거 괜찮네요.”
형우는 그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주로 깽판치는 건 코드 네임 제로가 담당했고, 그 뒤에서 수작질을 하는 캐릭터는 형우가 처음에 조형해 뒀던 오만하고 귀족적인 캐릭터로 설정했다.
‘두 번째 악당은 주인공과 같은 직업을 가진 걸로 하자. 그리고 총 솜씨는 주인공보다 조금 나은 걸로. 그래야 이야기가 긴박해질 테니까.’
그러고 나니, 뭔가 밋밋했던 스토리가 훨씬 더 잘 풀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댓글만 봐도 그 부분이 여실하게 드러났다.
‘공태준도 이럴 때는 도움이 되는군.’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노트북을 덮고 밖을 내다봤다. 주변 풍경이 기차 뒤로 홱홱 지나갔다. 형우가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매일 기차 타기도 번거로운데, 운전면허라도 따야 하나.”
요즘 면허는 잘 배우면 1주일 만에도 취득할 수 있다고 들었다. 차를 살 돈도 충분히 있었다.
‘일단은 작은 차로 하자. 스파크나 모닝 같은 거.’
조금 무리를 한다면 민준처럼 꽤 좋은 차를 사는 것도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초보 시절에 고급 차를 타 봐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느낌도 있었고, 뭣보다 지금은 돈을 조금 모아 볼 생각이었다.
‘일단 목표는 올해 내로 1억, 그 정도로 할까?’
그렇게 머릿속으로 돈을 모을 계획을 착착착 쌓아 올리던 사이,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객차 내에 울려 퍼졌다.
* * *
“먼저 가 보겠습니다!”
“맞다, 지원 님 오늘 미팅 있었죠?”
옆에서 갓 신입 티를 벗은 윤진이 아는 체를 했다. 요즘 지원의 표정은 늘 밝았다. 최근에 런칭한 <전설의 보안관>의 대성공 덕분이었다.
“맞아요. 미팅 전에 은행도 잠깐 들르고.”
“은행은 왜요?”
“오늘이 <전설의 보안관> 정산일이거든요.”
어느새 <전설의 보안관>이 런칭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C&N은 약속대로 소설의 런칭 타이밍에 맞춰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쳤다. 황금시간의 사이트 배너에 형우의 작품이 올라갔고, 쿠폰 이벤트와 할인 이벤트도 빠지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런칭된 이후에도 <전설의 보안관>은 꾸준히 약간의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형우의 작품이 성공한 것에 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무리 홍보를 잘해도 작품이 자격 미달이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하지만 형우의 소설은 언제나 좋은 퀄리티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퀄리티가 점점 올라가네?’
글을 쓸 때마다 뭔가 깨달음이라도 얻는 건지, 형우의 글은 쓰면 쓸수록 점점 나아졌다. 지원은 그 점에서 상당한 안도감을 느꼈다.
어떤 일이든 오래 하면 할수록 그 기술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웹소설에서는 그 당연한 일이 가끔 당연하지가 않았다. 갑작스럽게 성공한 작가들의 경우, 오히려 쓰면 쓸수록 작품이 망가지고 퀄리티가 대폭 하락해버리는 경우가 있었다.
절박함이 사라져서 나태해지는 경우는 차라리 양반이었다. 편집자가 조언을 하면 네가 뭘 아느냐며 역으로 따지는 작가도 봤다.
‘그런 사람들이 형우 작가님을 봐야 하는데!’
지원은 어제 형우와 했던 전화내용을 떠올렸다.
“편집자님. 저 일요일도 연재할까요?”
“…갑자기 왜요?”
“그게요, 제가 버는 돈을 계산해 보니 1,750만 원 정도 벌더라고요.”
“그런데요?”
“일요일도 연재하면 2천만 원 벌 수 있는데… 혹시 그런 마음 아세요? 비뚤어진 보도블록 보면 왠지 신경 쓰이고, 1750이라고 써져 있으면 왠지 조금 더 올려서 2천 맞추고 싶은….”
“…일요일은 쉬세요. 휴식도 퀄리티에요. 안 쉬고 계속 쓰면요, 잘 될 글도 안 써져요.”
“넵.”
형우는 군말 없이 지원의 말을 들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던지.
‘역시 내가 사람 하나는 잘 봤다니까!’
지원은 스스로의 안목을 칭찬하며, 사무실에서 나가기 전 편집장인 공판석에게 보고를 올렸다.
“편집장님. 먼저 가 보겠습니다.”
“어험. 그렇게 하도록 하게.”
편집장 공판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전 심한 몸살감기로 일주일 넘게 병가를 낸 뒤부터 공판석의 태도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여전히 꼬장을 부리고, 짜증을 자주 내기는 했지만, 예전처럼 괜한 일로 트집을 잡거나 다른 사람의 일에 마구잡이로 훈수를 두지는 않았다.
‘형우 작가님이랑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형우가 직접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판석의 태도 변화에 형우가 관련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챘다. 돈 안 되는 일은 죽어도 안 하는 판석이 직접 일러스트레이터를 수소문하고, <전설의 보안관>의 런칭 직후 부랴부랴 프로모션을 밀어붙이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뭐, 결국 성공했으니 돈 안 되는 일은 아닌가.’
그대로 지원은 형우에게 만날 준비가 됐다는 문자를 보냈다. 띠링, 답장은 즉시 날아왔다.
형우 : 어디서 만나실래요?
지원 : 형우 님 편한 데로요.
형우 : 그러면 혹시, 백화점은 어떠세요?
백화점? 형우의 답장을 본 지원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갑자기 백화점이라니. 형우 작가님 혹시… 어디서 나쁜 거라도 배워 온 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