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6화 (16/200)
  • #15.

    현주면주 : 와 헤럴드 진짜 멋있네;

    멍애 : 뭔가 찡하네요 흑흑.

    짤쟁이 : 저 작가님 헤럴드랑 베아트리체 팬아트 그렸는데 작가님 메일로 보내드리면 되나요?

    소설매니아 : 완전 긴장되네요! 유료화 평생 안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곧 하겠죠? ㅠㅠ

    “됐어! 됐다고!”

    형우가 소리를 질렀다. 오늘 자로 <전설의 보안관>의 25화가 올라갔다.

    ‘25화라….’

    감회가 새로웠다.

    전작이었던 <서울낭인괴담>을 연재 종료했던 화가 딱 25화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12,411.

    지난 24시간 동안, <전설의 보안관>을 보았던 사람들의 숫자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호작 개수는 8천, 평균 50개에 육박하는 댓글은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중이다

    ‘어라?’

    댓글 하나하나를 확인하던 형우의 눈앞에, 새로운 알람이 떠올랐다.

    [‘유진’ 님이 참새치 님의 작품, <전설의 보안관>의 추천 글을 등록했습니다!]

    ‘…유진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형우의 두 눈이 끔뻑거렸다.

    * * *

    글쓴이 : 유진

    참새치 작가의 <전설의 보안관> 추천합니다!

    …저번 작의 실패를 완벽하게 고쳐내고, 새로운 장르로 도전한 작품입니다….

    …지금까지는 저도 참새치 작가의 추천 글을 써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저번 작품인 <서울낭인괴담> 또한 제가 추천했었지만, 결국 실패한 작품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하지만 이번 <전설의 보안관>만큼은, 정말로 제 모든 것을 걸고 좋은 글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부극에 대한 향수를 갖고 계시다면, 한 번쯤 달려 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진짜 유진이잖아.”

    유진은 형우가 <서울낭인괴담>을 연재할 당시 꼬박꼬박 댓글을 달아 주던 애독자였다.

    ‘그때도 추천글을 써 줬었지.’

    거기서 얼마나 많은 감동을 받았던지. 지금도 그 추천글의 문장 하나하나가 눈에 선했다.

    하지만 유진도 결국에는 <서울낭인괴담>을 떠났다. 독자의 말을 무시하고 제 고집만 부리는 형우에게 질려버린 탓이다. 옛말에 등 돌린 사람만큼 살벌한 사이가 없다고 했다.

    ‘다시 못 볼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그럼에도, 유진은 다시 돌아왔다. 다른 독자들의 댓글도 고맙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유진의 추천글은 그중에서도 특히 감명 깊었다.

    “그러니까, 보답하자.”

    작가가 독자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좋은 글을 쓰는 방법밖에 없다. 형우는 그대로 노트북에 연결된 인터넷 선을 뽑았다. 작업 시작을 위한 루틴이었다.

    “어제 어디까지 썼더라?”

    형우는 노트북을 펴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문장들을 바라봤다.

    저번 에피소드에서 주인공인 헤럴드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눈앞에서 악당을 놓치고 만다. 하지만 헤럴드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신조인 지저분한 ‘황무지 스타일’대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사건을 해결한다. 도시의 시장은 그런 헤럴드를 칭찬하며 추천장을 써주려고 한다.

    ‘맞다. 추천장에서 막혔지.’

    대체 추천장을 어떻게 써야 그럴듯해 보일지 영 갈피가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수많은 추천장 형식의 글들을 참고해 봐도 딱 와닿는다 싶은 게 없었다.

    ‘지금까지는 말이지.’

    타다다닥!

    형우의 손이 자판 위를 내달렸다. 몇 번의 실패 끝에 헤럴드와 베아트리체는 거대 강도단을 퇴치하는 쾌거를 이루어낸다. 하지만, 헤럴드를 바라보는 도시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았다.

    ‘저깟 시골 촌놈이. 보나 마나 뭔가 비열한 술수로 공을 가로챘겠지.’

    ‘그래. 저번에 봤을 때는 장총도 똑바로 못 다루던 놈이잖아. 황무지 스타일 어쩌고 하면서, 멍청하게 권총이나 휘두르던 녀석.’

    그 질타에 주눅이 든 헤럴드의 등을 밀어주는 것은, 그의 가장 소중한 파트너인 베아트리체다.

    “어깨가 아주 오그라들겠군. 개척지의 망나니 헤럴드는 어디로 가버린 거야?”

    평소엔 무뚝뚝하지만, 이럴 때는 의지가 된다. 헤럴드가 모자를 들어 올리며 멋쩍게 웃는다.

    “도시 분위기는 나랑 잘 안 맞는군.”

    “언제부터 헤럴드가 분위기를 따지게 된 거야? 네 관심사는 언제나 하나밖에 없었잖아? 평소처럼 어떻게 하면 나를 꼬실 지나 고민하라고.”

    잠시 후, 시장이 단상에 오른다.

    “일단 첫 번째, 우리 시의 용병단장인 타이미.”

    시장이 이름을 호명할 때마다 작전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연단에 오른다. 그럴 때마다 시민들이 박수를 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헤럴드 데이비스. 이자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아주 많지.”

    군중들의 반응은 미묘하다. 박수도 없고, 호응도 없다. 침묵 사이에서 시장의 연설이 울려 퍼진다.

    “그는 아주 교활하고, 야만적이며, 또한 작전 초반에 시건방진 개인행동으로 인해 작전 전체를 실패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앞으로 말할 것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지. 헤럴드 데이비스에게는 이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나쁜 단점이 하나 있다.”

    사람들 사이에서 야유와 조소가 튀어나온다. 헤럴드는 또다시 자신의 어깨가 좁아지는 것을 느낀다. 그런 헤럴드를 보며, 시장이 씩 미소 짓는다.

    “바로, 자신의 업적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는 점이지.”

    어라? 무슨 소린가 싶어 고개를 들어 올리는 헤럴드. 그 앞에 보이는 것은 작전에 참여했던 모든 동료들이 보내는 존경스러운 눈빛이다.

    “헤럴드는 저번 작전의 실패를 완벽하게 고쳐내고, 새로운 방법으로 잔악무도한 갱들에게 도전하였다. 지금까지의 나는 해럴드라는 보안관을 믿을 수 없는 자라고 생각했으나, 이젠 아니다.”

    베아트리체는 당연한 듯이, 사람들의 중심에서 헤럴드를 보고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내 감히 말하건대, 나의 모든 것을 걸고 헤럴드가 최고의 보안관이라는 것을 자부하노라.”

    마지막 문장을 쓴 형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괜찮네.”

    연설의 모티브는 말할 필요도 없이, 떠났다가 끝끝내 다시 돌아온 한 독자, 유진이 써 줬던 <전설의 보안관>의 추천글이었다.

    그대로 파일을 지원에게 보냈다. 보낸 지 30분도 안 돼서, 답장이 날아왔다.

    지원 : 이번 25화 반응 봤어요? 대박!

    지원 : 아 그리고, 작가님이 보내주신 42화부터 45화까지 다 읽었어요!

    형우 : 하루에 세 화를 다 읽었다고요? 무리하신 거 아닌가요?

    지원 : ㅋㅋ하루만에 세 화를 쓰는 작가님도 계신데 세 화 읽는 게 뭐 어렵다고! 다 좋은데, 42화에서 주인공이 총을 쏘는 부분에 대한 묘사가 좀 길어요. 500자 정도 다이어트하는 게 좋겠어요. 그 외에도….

    지원은 아직 계약을 맺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형우가 보낸 소설들을 시시각각으로 감평해 줬다. 잠재적 고객을 위한 선행투자라던가. 눈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형우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사소한 문제들마저 빠르게 피드백을 해 줬다.

    “500자 다이어트라.”

    피드백을 수용하면서, 머그잔에 담긴 인삼차를 한 잔 마셨다. 매일 고되게 작업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직접 담근 귀한 차였다. 과연, 차를 마시니 온몸에 힘이 펄펄 났다.

    독자와 편집자, 그리고 어머니. 그런 고마운 이들이야말로, 형우가 소설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전설의 보안관>은 그런 식으로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 * *

    [안녕하세요. 키로와트 출판사의 권택 팀장입니다. 작가님의 작품과 관련해서 잠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왔어!’

    그렇게 중얼거리며, 형우는 메시지를 그대로 보관함으로 옮겼다. <전설의 보안관>이 연재처의 투데이 베스트에 무사 안착한 후부터 하나둘씩 컨택이 오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아예 하루에도 몇 개씩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어디랬더라, 키로와트? 헐, <크툴루가 범인을 너무 잘 찾음>이 키로와트 출판사 작품이었구나. 진짜 재밌게 봤었는데.”

    형우는 싱글거리며 그대로 보관함을 눌렀다. 그 안에 꽉꽉 들어찬 것이 전부 컨택 쪽지들이었다.

    [안녕하세요. 글로 버는 미디어의 정수형 대표입니다.]

    [안녕하세요. 참새치 작가님! 소설토끼 파브르 매니저입니다!]

    글로 버는 미디어는 로맨스를 주력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요즘 웹툰화를 성공해 인기를 한창 끌어모으고 있는 출판사였다. 소설토끼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출판한 작품도 그저 그런 수준이라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출판사 오퍼들. 모두가 형우를 잡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그 숫자를 세는 데에는 손가락만으로는 부족했고, 발가락까지 사용해야 할 정도였다. 결국 형우는 끼얏호! 하고 기쁨의 비명을 내지를 수밖에 없었다.

    ‘유료화라니! 연재라니!’

    인터넷에서 봤던 월 천이니, 월 이천이니 하는 대박 작가들의 일상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점심에 우아한 개인 작업실로 출근한 후에, 저녁에 유명 바에서 뭘 마실 거냐고 묻는 바텐더의 질문에 ‘늘 먹던 걸로’라고 대답하는 거다. 그러면 분명 완전 멋있을 것 같은데….

    찰싹-!

    한참이나 좋아서 이불 위를 뒹굴거리던 형우는 불현 듯 자신의 뺨을 소리나게 때렸다.

    “김칫국은 여기까지만.”

    저번에 김칫국을 잔뜩 들이켜다가 그대로 이불을 뻥뻥 찼던 기억을 떠올리며, 형우는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대박이긴 해.’

    생각 같아서는 모든 출판사들에게 작품을 하나씩 내어 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불가능했다. 형우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단 한 마디밖에 없었다.

    “너무 늦었다고요.”

    형우는 보관함의 맨 아래에 있는 쪽지를 클릭했다. 지원으로부터 온 편지였다.

    지원 : 김형우 작가님! C&N 수석 편집자 서지원입니다!

    서로 아는 사이인데도 격식을 바짝 차려 보냈다. 아마도 지원 특유의 개그 센스인 것 같았다. 형우가 생각하기에, 지원은 약간 엉뚱한 데가 있었다.

    “그래도 역시, <전설의 보안관>은 지원 님이랑 진행해야지.”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형우는 천천히 지원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 * *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는 이른 아침부터 들려오는 사박거리는 소리에 눈을 뗐다. 창밖에는 부슬거리며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지금 집을 가득 메운 소리는 집 밖에서가 아니라 집 안에서 나는 소리였다.

    “무슨 일이니? 옷장을 다 헤집어 놓고.”

    “오늘 계약하는 날이잖아요. 편집자님은 대충 입고 오라고 했지만, 그래도 아무 옷이나 입고 가기에는 좀 그래서.”

    형우가 출판사와 계약을 맺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나? 요즘 따라 시간이 참 빠르게 느껴지는 윤아였다.

    “이 옷은 어때요?”

    “…진심이니?”

    형우가 입고 있는 건 철 지난 데님 청바지와 잘못 빨아서 줄어든 보라색 후드티였다. 너드(Nerd)? 아들의 처참한 패션 센스를 목격한 윤아의 눈이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껌뻑거렸다.

    ‘매일 란닝구랑 몸빼 바지만 주구장창 입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데!’

    형우는 패션 고자였다.

    “…뭔가 방법을 찾아야겠구나. 따라 와 봐라.”

    그 길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간 윤아는 그대로 옷장 문을 활짝 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 윤아가 꺼내든 것은 위아래 세트로 되어 있는 네이비색 정장이었다.

    “웬 정장이에요?”

    “네 아버지 거다. 중요한 행사 때만 입었던 거야. 이제 네가 입거라.”

    그렇게 말하며, 윤아는 손수 아들의 옷을 입혀 줬다.

    “어디 불편한 데는 없니?”

    “전혀요. 딱 맞는걸요. 그런데, 좀 오바하는 것 같지 않나? 분명 편하게 입고 오랬는데.”

    “그래도 격식은 차리는 게 좋다.”

    윤아의 말에 형우도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옷이 날개라더니. 방에서 글만 쓰느라 하얗게 떠버린 얼굴도 정장을 입으니 뭔가 그런대로 분위기가 사는 느낌이었다.

    형우는 자신이 고성의 뱀파이어처럼 보인다고 생각하다가, 너무 나르시즘인 것 같아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 사이, 윤아는 양복에 깔맞춤인 넥타이를 들고 왔다.

    “누가 그러더구나. 넥타이는 행운의 상징이라고. 네 아빠 넥타이도 늘 내가 매 줬어. 그러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

    윤아가 넥타이를 매줌과 동시에, 형우의 집 앞에 차 한 대가 그대로 정지했다. 몸빼 바지에 란닝구 차림인 민준이 그 안에서 팔을 흔들었다. 형우를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기 위해 온 것이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달려 나가는 형우. 윤아는 창문을 통해 형우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날이 다 갰구나.”

    어느새, 자박거리며 내리던 비는 그대로 그쳐 있었다. 이제, 시골 마을의 풀들이 조금씩 고개를 들어 올릴 것이다. 그렇게, 부디 모든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윤아는 민준이 쓰러졌던 이후 처음으로,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하늘을 향해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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