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5화 (15/200)
  • #14.

    “둘이 정자에 있다고? 마을 가운데 있는 정자 맞지? 어르신들 바둑 두는 곳?”

    “거기 말고 정자가 또 있어요?”

    “그래, 바로 가마. 거기 딱 기다려!”

    형우의 전화를 끊자마자, 민준은 완성해 놓은 원고를 갖고 마을 근처에 있는 정자로 뛰었다.

    헉헉대며 그곳에 도착할 때쯤, 민준은 기묘한 광경을 보았다. 지원이 형우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던 것이다.

    “둘이 뭐 하쇼?”

    “아, 작가님. 딱 맞춰 오셨네요.”

    “이게 무슨 상황이지? 고새 둘이 눈이라도 맞았소?”

    “눈이요? 맞았죠, 맞았어!”

    황당해하는 민준을 향해 지원이 뭔가를 내밀었다. 뭔가 싶어 보니, 형우가 최근에 쓴다고 이야기했던 소설인 것 같았다.

    “저기요, 민준 작가님! 저 작가님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로 서운한 거 있죠?”

    “또 뭐가요. 세 시간 약속 지키지 않았습니까?”

    “그게 아니라 이거요!”

    지원이 형우의 작품을 잡고 기세 좋게 흔들었다.

    “<뉴 카우보이>!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었으면 저한테 먼저 연락을 했어야죠! 그게 도리 아니에요?”

    “<뉴 카우보이>요…?”

    민준은 억울했다. 지금까지 <환생이 조금 애매하다> 2권의 작업에 매진했던 터라, 민준도 그 작품을 처음 봤던 것이다.

    ‘이게 그렇게 좋나?’

    그렇게 생각하며, 민준은 형우의 작품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지원과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형우야, 이거 진짜 네가 쓴 거 맞아? 어디서 대필 받거나 한 거 아니지?”

    “대필이라뇨? 무슨 그런 말을.”

    “미안하다. 말이 헛나왔어.”

    하지만, 형우가 새로 쓴 소설은 절로 대필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재밌었다.

    ‘이게 고작해야 두 번째 작품이라고…?’

    * * *

    “완전 마음에 들어!”

    <뉴 카우보이>를 다 읽은 지원은 짤막하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펜을 빌려달라고는 했지만, 딱히 표시한 부분도 없었다.

    “특히 전개가 진짜 엄청 빽빽하네요? 필요 없는 장면이 하나도 없어요!”

    그건 전적으로 저번 작품인 <서울낭인괴담>의 실패 덕분이었다. 괜히 멋있게 한답시고 문장을 늘여 쓰고 묘사를 화려하게 하느라 작품 하나를 그대로 말아먹지 않았던가.

    “만 자를 쓰고 오천 자를 지우는 식으로 썼거든요.”

    “역시! 작법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만 자를 쓰고 오천 자를 지우는, 소위 ‘절반 먹기’라는 방법은 웹소설계의 거장인 한 작가가 즐겨 쓰는 방법으로도 유명했다.

    그 덕분인지, 만년필까지 꺼내 들고 몇 번이나 읽었음에도 지원은 <뉴 카우보이>에서 지적할만한 부분을 거의 발견하지 못했다.

    그나마 너무 형식적인 묘사 정도를 지적한 게 전부일 정도. 저 정도 지적은 5질, 6질을 한 기성작가의 작품에서도 나올 법한 지적이었다.

    거꾸로 말하자면, 형우의 <뉴 카우보이>는 5질 이상의 기성작가가 쓴 것 이상의 기량을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었다.

    “이걸 사이트에 연재하신다고요?”

    “네. 내일쯤 올릴 생각인데요….”

    “아직 올리신 건 아니죠?”

    지원이 그대로 형우의 두 손을 턱 잡았다.

    “이거, 저희랑 같이할 생각은 없어요?”

    민준이 본 것은 그 장면이었다. 어느새 소설을 다 읽은 민준이 먼저 운을 뗐다.

    “그래도 아직 유료화도 안 한 작품을 계약이라… 너무 이른 거 아니요?”

    “저도 지금 당장 계약을 맺자는 건 아니에요.”

    물론 업계에는 재능 있는 작가를 발견하자마자 덜컥 계약을 맺어대는 편집자들도 있다. 보통 초보 작가들이라고 하면 글밖에 모르는 샌님들이 대부분이기에, 편집자들이 적당히 감언이설을 뒤섞어 주면 저도 모르게 홀라당 넘어가 도장을 찍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지원은 그런 방법을 선호하지 않았다.

    ‘작가가 작품을 낳으면, 편집자가 기르는 거지. 후레자식이 안 되도록 좋은 점은 부각시키고, 나쁜 점은 자르고.’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편집자와 작가 사이의 유대감이었다. 편집자가 작가를 돈줄로 보거나, 작가가 편집자를 세금 떼가는 세리 취급하기 시작하면 유대감이 생길 리 없다.

    ‘서지원, 릴렉스.’

    지원이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뉴 카우보이>는 미친 듯이 재밌었다. 마음 같아서는 형우를 바로 붙잡아서 C&N 전속 작가로 도장을 찍게 하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렇게 억지로 하다간 잡은 고기도 놓쳐 버리기 십상이었다.

    “지금으로선 뭐, 얼굴 터 두는 정도만 하고, 유료화를 성공하신 후에 타 플랫폼 연재를 계획하신다면 언제든지 문의해 주세요. 사실 말만 이렇게 하는 거고, 저는 거의 90%? 정도는 이 작품이 성공할 거라고 생각해요.”

    “90%요?”

    “네. 그것도 사소한 문제 한두 개만 고치면 거의 100%를 장담할 수 있죠. 요컨대, 제목 같은 거요.”

    “제목이 좀… 이상한가요?”

    “이상하지는 않죠. 안 어울리는 것뿐.”

    민준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웹소설의 제목은 결국 접근성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는데, <뉴 카우보이>는 제목만으로는 내용을 유추하기가 어려운 감이 없지 않아.”

    형우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나름 열심히 지은 제목인데 여기저기서 까여대니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그럼 민준 삼촌이라면, 제목 뭘로 지었을 것 같은데요?”

    “<보안관이 총을 너무 잘 쏨>. 어때, 멋지지?”

    “…네?”

    그 형편없는 제목을 들은 형우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지원은 거의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작가님 아무리 그래도 <보안관이 총을 너무 잘 쏨>은 좀… 애초에 총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도 아니잖아요?”

    “아니, 예를 든 거잖아요. 예를. 편집자님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요?”

    “글쎄요, 저라면….”

    잠시 고민하던 지원이 결심했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전설의 보안관>은 어때요?”

    * * *

    편집자.

    작가의 소설을 감평해 주고, 피드백을 해 주는 역할을 주로 하는 직업. 소설의 내적인 방향 외에도, 플랫폼의 계약이나 타 사이트의 계약, 혹은 종이책 출판 등에 있어서도 편집자의 존재는 필수적이다.

    그리고 C&N은 그런 한국의 소설 편집부 중에서도 그 규모와 인지도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출판사였다. 서지원은 그 사실에 나름의 흡족함을 느끼며, 버튼을 눌러 출판사의 자동문을 열었다.

    “윤진 님! 저 왔어요!”

    늦은 시간, 퇴근하지 않고 남아 있는 직원은 막내 편집자인 정윤진밖에 없었다.

    “지원 님? 분명 며칠은 걸릴 것 같다고 하지 않았어요? 원고는요?”

    “당연히 받아 왔죠!”

    지원이 자랑스럽게 손에 든 <환생이 조금 애매하다>의 2권 원고를 흔들었다.

    “대박. 민준 작가님이 제시간에 원고를 내다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뜰 건가 봐요.”

    그 말을 들은 지원의 표정이 뾰로통해졌다.

    “윤진 님. 편집부 1원칙!”

    “에엑.”

    C&N 편집부의 1원칙은 다른 사람이 담당하는 작가를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지적을 받는 윤진의 표정은 억울해 보였다.

    “피. 욕은 본인이 제일 많이 하면서.”

    “내 작가는 나만 욕한다! 평소라면 한 소리 했겠지만…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봐줄게요.”

    오늘의 지원은 지나가는 거지한테 라면을 뺏겨도 웃으며 지나칠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민준의 작품을 제시간에 받아와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형우를 발굴한 기쁨이 더 컸다.

    “저기요. 윤진 님. 바빠요?”

    “아니요. 이제 끝내고 퇴근하려는 참이에요.”

    “그러면 퇴근하기 전에, 이거 한 번 읽어 볼래요?”

    “…소설이네요? <전설의 보안관>?”

    <전설의 보안관>. 이번에 형우는 지원의 제안을 수용하여 제목을 바꿨다.

    “…서부극인가 봐요.”

    윤진의 살짝 굳은 표정은 마치 왜 퇴근 직전에 일감 줘요? 라고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이건?”

    스크롤을 내리는 윤진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그리고 마침내, 윤진은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스크롤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다음 화가 없어서 아쉬운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어때요, 재밌죠?”

    “…그냥 대박인데요? 전개가 엄청 시원시원한 게, 딱 요즘 스타일이랄까. 서부극이라는 소재도 쉽게 표현됐고요. 이거 작가 누구예요? 기성이죠?”

    지원이 고개를 저었다. 윤진의 눈이 커졌다.

    “그럼 신인이에요? 대박.”

    “그냥 신인도 아니죠. 놀라지 마세요. 이거, 참새치 작가님이 쓴 거예요.”

    “참새치라면… <서울낭인괴담> 작가요?”

    윤진의 입이 떡 벌어졌다. 편집자들은 늘 소설 연재 사이트를 예의주시한다. 다른 출판사가 채가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입 작가를 발굴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출판사 막내라 아직 전담 작가가 몇 없는 정윤진은 거의 플랫폼에 올라오는 모든 작품을 챙겨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울낭인괴담> 또한 당연히 봤다.

    아까운 작품이었다.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너무 확실했다. 13화 이후로, 윤진은 더 이상 <서울낭인괴담>을 읽지 않았다. 더 볼 필요도 없었다.

    스타일이 웹소설과 도저히 맞지가 않았다. <서울낭인괴담>은 분명 웹소설 적인 소재를 차용하고 있었지만, 그 문체나 전개 방식에서 묘하게 순문학 냄새가 났다.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전개가 엉성하다거나, 문장력이 부족한 거라면 차라리 낫다. 1부터 100까지 가려면 더하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스타일은 이야기가 달랐다. 건물로 따지면 기초 공사 같은 거였다.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지금까지 힘들게 쌓아 올린 100을 차근차근 부숴 0으로 만든 뒤, 그걸 다시 1부터 쌓아 올리는 것과 같았다. 게임 하다 죽어서 경험치만 잃어도 분개하는 게 사람이다. 쉬울 리 없는 작업이었다.

    윤진이 알기로,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스타일을 바꾸는 데 성공했던 작가는 한 정통 판타지 작가였다. 철학적이고 난해하던 내용을 웹소설스럽게 녹여내기까지 6개월이 걸렸다. 사실 이것만 해도 엄청나게 대단한 거였다. 대부분은 그대로 실패해 버린다.

    오죽하면 편집부에 나쁜 버릇 든 작가를 고쳐 쓰는 것보다 차라리 새 작가 키우는 게 낫다는 말까지 있겠는가.

    ‘그런데, 고작 2주 만에 고쳤다고?’

    천재. 그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오히려 천재라면 불가능하다. 천재들은 자신들이 쌓아온 걸 쉽게 부정하지 못한다. 아인슈타인조차도 죽을 때까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니 천재는 아니다. 오히려,

    미친놈.

    윤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원이 동의한다는 듯이 박수를 짝 쳤다.

    “그나저나 윤진 님, 퇴근 안 하고 지금까지 뭐 하시고 계셨어요?”

    “그게요, 편집장이….”

    편집장의 이름을 꺼내는 윤진의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영화라면 분명 삐-처리가 붙었을 말들이었다. 지원은 회사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지원 : 김형우 작가님! 작품 기대할게요!

    지원에게 온 메시지를 확인하며, 형우는 멍하니 어깨 위에 앉은 참치의 볼을 쓰다듬었다.

    “참치야, 봤어?”

    “뺘악?”

    “나보고 작가님이래.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C&N 편집부의 수석 편집자가… 내 작품을 기대한다고… 세상에.”

    속이 울컥해서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형우의 삶에서 가장 듣기 좋은 말 1위는 ‘오늘은 내가 밥 살게’였다. 하지만 25년 만에, 그 순위에 처음으로 변동이 생겼다.

    ‘작품 기대할게요.’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말이 아닌가. 여운에 젖은 채로, 밤하늘을 바라봤다.

    서울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별빛들이 얼마나 반짝거리던지. 그 별빛 아래에서, 형우의 두 손이 빠르게 자판 위를 나부꼈다. 두 손에 마치 날개가 달린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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