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1화 (11/200)

#10.

1화의 좋았던 분위기는 정확히 12화까지 이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조회수가 네 자리 수였다. 그게 떨어지기 시작한 건 딱 13화부터였다.

루즈하다, 고구마다, 피곤하다. 그런 댓글들이 몇 개 달렸다. 재밌다는 댓글의 빈도가 점점 줄어들다가, 끝내는 댓글 자체가 달리지 않았다. 가장 최근에 올린 25화는 24시간 조회수가 70명도 안 됐다.

1화를 본 건 1786명이니, 95%가 넘는 독자가 중도 이탈한 것이다.

“대체 왜?”

형우는 자기 작품에 박힌 710개의 별을 바라봤다. 추천글 이후 쭉쭉 오르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대로 멈춰서 증가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늘이 되기 전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오늘 쓴 내용이야말로, 지난 25화의 빌드업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했다.

처음에는 화가 났다. 이번 화는 엄청나게 노력했다. 매 화마다 수십 번이나 문장을 고치고, 구조를 바꿨다. 얼마나 분노했는지, 유진의 댓글에 대댓글을 달려고도 했다.

ㄴ참새치: 전전화인 23화를 보면 미나가 어릴 때 트라우마가 있잖아요? 그 트라우마 탓에 지금 저런 행동을….

거기까지 썼다가, 그대로 지웠다. 작가가 작품에서 내용을 설명하지 못하고 댓글로 뭔가를 씨부린다는 것 자체가 작가로서의 자질 미달이라고 느껴진 탓이다.

“후우.”

더 이상 소설을 전개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형우는 <서울낭인괴담>을 쓰던 노트북을 덮었다.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오랜만에 바람이나 쐴까 하고 방문을 나섰다. 어머니는 참치와 함께 앉아서 TV에서 방영하는 요리 예능을 시청하고 있었다.

“아니, 장사를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해유!”

TV 속에서, 한 남자가 고함을 질렀다. 얼마나 박력이 넘치던지. 형우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했다.

[백셰프의 골목식당].

유명한 프랜차이즈 업계 큰손인 백셰프가 골목의 식당들을 누비며 골목 상권을 부활시키는 것을 메인 콘텐츠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역시 백셰프가 자격 미달의 식당 주인을 대상으로 돌직구를 던져 대는 장면이었다. 마침 TV에도 그 장면이 방송되고 있었다.

“아니, 사장님. 장사를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니까유?”

충청도 사투리가 구수한 백셰프였지만, 그 내용은 결코 구수하지 않았다. 대구탕집 아주머니가 항변했다.

“아니 그게… 분명 저는 열심히 했는데.”

“열심히 하기는 뭘 열심히 해유? 시장조사 개판, 피드백도 개판이잖아유. 봐 봐, 지금도 손님들이 음식 다 남기고 갔는데, 주방에만 틀어박혀서 왜 남겼는지에는 관심도 없잖아.”

답답한 듯이 가슴을 탕탕 치는 백셰프.

“장사가 뭐 큰 이유가 있어서 한 번에 망하는 게 아니에유. 조짐은 늘 있다니까?”

어느새, 형우도 그 예능 프로그램에 깊게 빠져들었다. 형우가 몇 시간이나 읽었던 댓글들이 대구탕집 사장님을 질타하는 백셰프의 말과 함께 공명했다.

“보세유. 일단 밥이 다 식었잖아유.”

‘유진: 작가님 미나가 너무 고구만데요?’

“그리고 이것 좀 봐유. 메뉴가 수십 가지네.”

‘질풍신뢰: 등장인물 너무 많네요. 외우기가… ㄷㄷ’

“큰 이유가 있어서 장사가 망하는 게 아니에유. 이런 것들이 하나하나 뭉쳐서 그렇게 되는 거지. 그런데 사장님, 방금 국이 짜다고 한 손님한테 뭐라고 했어유?”

그 뒷부분은 안 들어도 알겠다.

“원래 그런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했겠지. 조짐이 있어도 애써 무시하고서, 제 고집만 피웠겠지.

마치 자신처럼.

<서울낭인괴담>의 13화. 미나가 처음으로 철용의 앞을 막아섰을 때. 독자들은 그걸 보고 답답하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서는 미나가 막아서야 해. 그렇게 해야 뒷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어.’

15화, 철용의 동료가 무의미하게 죽었을 때, 독자들은 저렇게 멋진 캐릭터가 왜 저렇게 죽어야 하냐고 물었다.

‘이 사람들은 <왕좌의 게임>도 안 봤나? 멋진 캐릭터도 죽을 때는 죽어야지.’

그렇게 계속 변명만 했다. 내가 맞다고, 독자들이 틀렸다고. 이 모든 빌드업들이 쌓여 만들어진 25화를 보고 나면, 독자들은 펑펑 울면서 자신의 삿된 소설관을 탓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조회수 70. 댓글 단 하나. 그마저도 혹평이다.

‘그리고 나는 그 혹평에 댓글로 변명이나 하려고 했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TV 속 백셰프의 말은 계속됐다.

“언제까지 변명만 할 거예유? 손님을 탓하지 말아유. 언제나 잘못은 사장님한테 있다니까?”

그 말을 끝으로, 백셰프의 골목식당은 다음 화를 예고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사장님, 붐비는 대구탕집, 흡족하게 미소 짓는 백셰프.

그 모습을 본 형우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독자를 탓하지 마라. 모든 문제는 나한테 있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거였다.

* * *

위이이잉!

해도 뜨지 않은 시간,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성민준은 그대로 잠에서 깼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다섯 시. 전화를 건 것은 형우의 어머니인 송윤아였다.

“누님, 이 꼭두새벽부터 무슨 일이우?”

“그게 말이다… 형우가.”

“형우가 왜요?”

“들어 봐라. 애가 밤새 비명을 지르더니, 뭔가 퍽퍽 때리는 소리가 들리고, 타닥거리는 소리가 이따금 들리다가, 갑자기 조용해졌는데. 이거 혹시 무슨 일 있는 거니?”

윤아의 이야기를 들은 민준은 순식간에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혹시 어제 막 갑자기 침울해하고 그러지 않았소?”

“그래, 맞다. 그걸 어떻게 아냐?”

“어떻게 알기는. 나도 겪어 봤으니 알지요.”

초장에 저 잘난 줄 알고 설치던 습작생들이 팍 꺾이면 겪는 당연한 반응이랄까.

“누님, 집에 청소기는 있지요?”

“청소기는 갑자기 왜?”

“형우 방 청소를 새로 해야 할 거요. 먼지가 많이 쌓여 있을 테니.”

* * *

팡팡!

형우가 열심히 이불을 찼다. 그 이유는 방금 의재에게서 온 카톡 때문이었다.

의재: 야 돈 번다는 거 어떻게 됐냐? 돈 벌어서 나 오마카센가 뭔가 사 준다며.

형우: 아

의재: 뭐임? 내 오마카세 돌려줘!!

거기까지만 읽고, 차마 볼 수 없어 널브러진 이불 위로 휴대폰을 집어던졌다. 부끄러운 기억 탓에, 형우는 이불에 누운 지 다섯 시간이 다 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내가 미쳤지.”

형우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살살 문지르며, 노트북의 깜빡거리는 화면을 확인했다.

[연재 종료 공지. 지금까지 <서울낭인괴담>을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에게 감사합니다.

부족함을 느껴, 더 나은 작품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참새치 올림.]

첫 화를 올릴 때와는 다르게, 연재 종료 공지를 올리는 손에는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형우가 아예 이 작품을 버린 것은 아니다. 어제 종일, 형우는 자신의 작품에 달린 댓글들을 읽고, 조심스럽게 작품을 고쳤다.

한 걸음 떨어져서 보니, 자신의 첫 작품인 <서울낭인괴담>의 문제점이 객관적으로 보였다.

‘여기서 묘사를 왜 이런 식으로 한 거지? 미나는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미나뿐이 아니야. 철용도 이상해. 사회성 결여된 놈인데, 이렇게 말을 현란하게 할 리가 없잖아.’

‘아니, 대체 왜 여기서 이렇게 쓴 거지? 그냥 총을 쐈다고 하면 될 걸, 한 페이지를 꼬박 들여 묘사하다니. 무슨 17세기 고전소설도 아니고!’

막힐 때는 독자들이 달아 준 댓글들이 큰 도움이 됐다. 그들은 형우보다도 철용과 미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 형우의 소설을 읽고 댓글까지 달아 줬던 사람들.

슥슥슥.

만년필이 A4용지 위를 휘저었다. 민준이 줬던 고급 몽블랑 만년필이었다. 과연, 모나미 볼펜과는 급이 다른 필기감이 느껴졌다. 그 덕에 손목이 저번보다 훨씬 덜 피로했다.

잉크를 다섯 번이나 갈았을 때, 형우는 손에서 <서울낭인괴담>을 내려놓았다.

형우는 A4용지에 계속해서 글을 끄적였다. 안 좋은 부분은 보완하고, 좋은 부분은 남겼다.

‘액션 신에 대한 평은 좋아.’

총기에 대한 묘사나, 전투 분야에 대해서는 호평이 많았다. 그 부분을 열심히 조사한 탓이다.

‘하지만 문제는 캐릭터와 전개네.’

전개를 위해 캐릭터의 성격을 마음대로 뒤틀었던 것이 문제였다. 좋은 작품은 캐릭터를 따라 이야기가 전개되어야 하는데, 형우는 정반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알아차릴 수 있었겠지만, 자만심에 취해 독자들의 말을 일부러 삐딱하게 받아들였던 탓에, 그만 놓치고 말았던 부분이었다.

“후우.”

형우는 긴 한숨을 내쉬며, 글을 정리하던 A4용지를 그대로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방문이 갑자기 벌컥 열렸다.

“어, 어머니?”

“콜록콜록!”

방에 들어오자마자 기침을 터트리는 어머니. 그 모습을 본 형우는 당황했다. 지금까지 어머니가 이렇게 다짜고짜 방에 들어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 어머니?”

“민준이 말이 맞구나. 잠시 나가 있으렴.”

“갑자기요…? 그 청소기는 뭐예요?”

“갑자기는 무슨 갑자기야?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니? 먼지 구덩이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본 형우는 어머니의 말이 맞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이 밝아 오면서 창문으로 스며든 약간의 햇빛 덕분이었다.

대체 이불을 얼마나 차 댄 건지, 방 안에 먼지가 폴폴 날아다니는 것이 참 잘도 보였다.

“오늘은 그 글인지 뭔지 안 쓰니?”

“오늘은 좀….”

어머니의 물음에 형우가 끝을 얼버무렸다. 새로 소설을 쓰려고 해도, 지금으로서는 마땅히 떠오르는 소재가 없었다.

“그러면 일이나 좀 도와라.”

“농사요?”

“그래.”

조금 고민하던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할 일도 없고, 요즘 글만 쓰느라 운동이 좀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도 했다. 어머니와 함께 도착한 곳은 집 뒤쪽에 위치한 무밭이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뽑으면 돼요?”

“그래. 할 수 있겠니?”

“저 어릴 때는 농사 가끔 도와드렸잖아요.”

형우는 팔까지 걷어붙이고서는, 무의 머리를 꾹 잡았다. 무를 뽑을 때는 무식하게 무청을 잡아당겨서는 안 된다. 무청을 말리면 우거지가 되고, 우거지 또한 훌륭한 식자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신 형우는 조심조심 무의 머리를 살짝 판 뒤, 무와 무청의 사이 부분을 정확하게 잡고 힘을 주어 뽑아냈다.

쑤욱!

오랜만에 해 봤지만 한 번에 성공했다. 몸에 밴 건 잘 잊지 않는다더니. 뽑아낸 무는 과장을 조금 보태서 성인 남자의 허벅지만 했다. 그것만 봐도 어머니가 얼마나 농사를 열심히 지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한번 먹어 볼 테냐?”

어머니가 자른 무를 하나 내밀었다. 아삭!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코끝에 감돌았다. 그 맛을 음미하고 있던 차에, 어머니가 운을 뗐다.

“형우야, 너 혹시.”

뭔가 머뭇거리는 어머니. 형우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노래 가사에도 있듯이, 늘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다.

“글 같은 거 다 때려치우고, 공무원 시험 볼 생각은 없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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