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10화 (10/200)
  • #9.

    묶음 판매라고도 하는 이 전략은 꼭 웹소설 시장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마케팅 시장에서 사용하는 기본 전략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 웹툰 시장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네이비 웹툰도 그래. 월요일에는 판타지 작품이 좌르륵 있고, 무협은 수요일, 금요일은 학원물이 많잖아.”

    “아하.”

    그냥 생각 없이 늘어놓은 줄 알았는데, 그 또한 나름의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며,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배울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매일 열두 시 십 분. 프롤로그랑 1화… 아니, 2화까지는 같이 올리는 게 좋겠다. 그리고 그 다음 날부터는 매일 하나씩 올려.”

    “매일이요?”

    “독자를 끌어모으는 방법 중 제일 확실한 건 매일 연재하는 거야. 네가 이름 있는 작가라면 모를까, 신인이잖아. 사람들은 신인의 작품에 크게 기대하지 않으니까.”

    매일 연재 법칙. 이 또한 하나의 팁이었다. 심지어 유명 기성들조차도 초반 20화 정도는 쉬는 날 없이 매일 연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짜식, 이거 원래 돈 받고 알려 주는 건데. 나중에 성공하면 한턱 내라.”

    “한턱만 내겠어요?”

    형우는 싱글거리며 밖으로 나섰다. 민준은 조금 애매한 표정으로 그런 형우의 뒷모습을 멀찍이 바라봤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성민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작품 자체의 퀄리티의 문제라기보단, 시장 니즈의 문제였다. 기성들도 신작을 연재할 때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엎어 버리는 게 일상인 게 웹소설 시장이다. 겉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작품도 그게 시장에 나가서 성공할 확률은 크게 쳐 줘야 30% 남짓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지. 그 30%에 들 수도.’

    그래도, 일단 써 보고 실패하는 게 안 쓰는 것보단 낫다는 것이 성민준의 생각이었다.

    ‘실패에서도 배우는 게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며, 성민준은 머그잔 가득히 담긴 인삼차를 홀짝거렸다. 수제 인삼청이었는데, 물론 민준이 담근 것은 아니었다.

    오늘 아침 몰래 찾아온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가 몰래 건네주고 간 것이다.

    ‘요즘 형우가 폐를 좀 끼친다면서?’

    ‘폐는 무슨요.’

    책상 위에 놓인 민준의 노트북 화면이 깜빡거렸다. 모니터에 떠오른 것은 완성 직전인 <환생이 너무 애매하다>의 2권 원고였다.

    ‘내가 이렇게 빨리 쓰다니. 편집자가 기절이라도 하겠는데.’

    형우 덕분이었다. 누군가에게 소설론을 말해 주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집필에 도움이 됐다. 누가 그랬던가?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거라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잠까지 줄여 가며 열심히 하는 형우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었다. 선배이자 삼촌으로서 뭔가 보여 주고 싶어진다고 해야 하나.

    “나도 질 수는 없지.”

    그렇게 인삼차를 다 마신 후, 성민준은 다시 집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참새치 님의 서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참새치는 형우의 필명이었다. 당연히 그 출처는 지금 형우의 마우스와 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귀여운 참새, 참치다.

    [참치]와 [참새]는 이미 있는 닉네임이라기에, 둘을 이어 붙여서 만든 이름이었다.

    타다다닥.

    형우는 혹시 오타나 비문이 있나 다시금 확인하며 서재에 <서울낭인괴담>을 한 자 한 자 옮겨 적었다.

    다행히 그런 건 없었다. 어제 온종일 프롤로그와 1, 2화를 퇴고한 덕분이었다. 그대로 작품 등록 버튼을 눌렀다.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기를.”

    오랜만에 두 손을 꼭 모으고 기도하는 형우였다. 그렇게 이 주일이 흘렀다. 평소처럼 연재를 준비하며 사이트에 접속하던 형우는, 평소와 다른 알림 하나를 발견했다.

    [‘유진’ 님이 참새치 님의 작품, <서울낭인괴담>의 추천글을 등록했습니다!]

    추천글이라고? 유진이라면 형우도 아는 닉네임이었다. 종종 응원한다는 댓글과, 재미있다는 댓글을 남겨 주던 사람이라서 기억이 났다. 그대로 형우는 추천글의 링크를 클릭했다.

    [참새치 작가님이 쓰신 <서울낭인괴담> 추천합니다!]

    “이거 봐 봐, 참치야.”

    “뺘악!”

    참치가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오늘 아침부터 이게 벌써 몇 번째인가. 참치가 귀찮아할 만도 했다.

    하지만 형우의 생각은 달랐다. 벌써 열 번도 넘게 읽었는데도,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비록 아직 연재 수는 10화밖에 되지 않았지만, 요즘 흔하게 볼 수 없는 어두운 분위기의 어반 판타지라는 점을 높게 샀습니다.]

    [게다가 뭐랄까, 필력이라고 할까요? 흡입력이 쫙쫙 있다는 느낌?]

    추천글의 효과는 어마어마했다. 그 글이 올라오고 나서부터, 소설의 유입이 엄청나게 늘어났던 것이다.

    천풍신뢰: 추천글 보고 왔는데 재밌습니다… 추천^^

    현주면주: ㅋㅋ요즘도 이런 게 나오네.

    일류 작품들에 비하면 몇 안 되는 댓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형우는 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분을 느꼈다.

    “1화 조회가 무려 천 명이야, 천 명!”

    게다가 선호작을 누른 독자의 수는 500명이 넘었다. 1화를 본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형우의 작품에 호감을 표했다는 뜻이었다. 형우의 머릿속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다.

    “일단, 참새 네 집부터 예쁜 걸로 하나 사 줄게. 그리고 밥도 그냥 쌀 말고… 그래, 경기미로 하자. 경기미!”

    “뺘아아악!”

    참치도 좋다는 듯이 날개를 나풀거렸다. 형우의 황금빛 망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응응. 또 뭘 할까, 일단 서울에 작업실도 하나 얻는 거야. 또 뭘 하지? 흐음… 그 치즈가 잔뜩 들어간 치즈 크러스트 피자도 시키자. 그리고 도우는 안 먹는 거지. 돈 많은 애들처럼!”

    형우는 그게 김칫국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급기야는 친구인 의재한테 문자까지 보냈다.

    형우: 야, 의재야

    의재: 엥 갑자기 무슨 일이냐?

    형우: 나 어쩌면 돈 오지게 벌지도 모르겠다

    의재: 갑자기??

    형우: 달에 3백이나 4백은 벌듯. 어쩌면 천만 원?

    의재: 야 너 혹시 다단계 같은 거 하는 거 아니지?

    “다단계는 무슨.”

    한창 신나는데 흥 깨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집필을 시작했다. 오늘 올릴 화는 13화였다.

    김칫국은 김칫국이고, 그렇다고 집필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첫날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수십 번 퇴고하고, 수백 번 교정했다.

    “오늘은 특히 마음에 들어.”

    13화의 몇몇 대사는, 형우가 지난 오 년간 써 왔던 대사들 중에서 가장 좋다고도 자신할 수 있을 정도였다.

    ‘철용. 당신은 마치 열일곱 살의 잔다르크처럼 말하는군요.’

    ‘그러는 너는 마치 서른세 살의 히틀러처럼 말하고 있잖아.’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맨몸으로 늑대인간의 아지트로 들어가는 주인공 철용과 그걸 말리는 M16 소녀 미나의 대화 부분이었다.

    “흐음, 너무 붕 뜨는 대사인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 정도는 상관없을 거야. 가끔은 화려한 대사도 좀 있어야지.”

    형우의 생각에는 그 대화야말로 이번 화의 핵심 킬링파트였다. 좀 멋 부린 감이 없지 않기는 했지만, 또 너무 조심스러울 필요는 없어 보였다.

    ‘독자들도 많으니까.’

    문장을 놔둔 채로 13화를 업로드했다. 잠시 후, 휴대폰에 댓글 알림이 떠올랐다.

    유진: 이번 화는 조금 루즈하지만, 다음 화 기대할게요^^.

    유진이라면 추천글을 써 줬던 사람이었다. 그 댓글을 보자마자 형우는 13화를 쭉 훑었다. 평소에는 5,500자 정도를 쓰는데, 이번 화는 6,500자가 좀 안 됐다. 묘사를 좀 많이 집어넣은 탓이다.

    “묘사가 별로였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대로 고개를 저었다. 딱히 루즈하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없었다.

    “분량이 늘어나서 착각하셨나 보다.”

    그대로 형우는 14화를 써 내려갔다. 이번에는 묘사에 더더욱 공을 들였다.

    ‘철용이 선택한 것은 클레이 사격에 쓰이는 14년식 더블배럴 샷건이었다. 일반적으로 6조 강선으로 2만J 이상의 화력을 뽐내는 정규 군용 화기보다 화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A-02종 유기체, 즉 인간을 상대할 때나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완성된 건 13화보다도 더 긴 7천 자 분량이었다.

    “이렇게 많이 썼으니, 독자들도 좋아하겠지?”

    14화를 본 형우가 흡족하게 웃었다. 이 정도로 세밀한 묘사라면, 독자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즐겁게 봐 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띠링, 띠링.

    그런 형우의 뒤로, 계속해서 새로운 댓글이 등록되었다는 알람이 울려 퍼졌다.

    * * *

    형우의 어머니 송윤아는 오늘도 열리지 않는 아들의 방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방 밖으로 나온 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엄마. 저 어쩌면 돈을 좀 많이 벌지도 몰라요.”

    일주일 전, 형우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거기에 대해 윤아는 딱히 가타부타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돈이란 건 벌어서 손에 있을 때가 아니고서야 아무 의미도 없다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히 저런 말을 하면 들어올 돈도 안 들어온다는 게 윤아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표정이 점점 나빠지던 아들은 어느 순간부터 방에 틀어박혀서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았다.

    타다다닥!

    간헐적으로 들리는 저 소리만이 아들이 안에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 뿐이었다.

    “저러다 지 애비처럼 픽 쓰러지지는 않을는지….”

    그것이 윤아의 가장 큰 걱정이었다. 일 좋아하는 남편이 그렇게 훅 가 버렸지 않은가.

    “기껏 좋은 대학 가서는… 몸 편한 공무원이나 하면 오죽 좋아. 하필 작가라니.”

    일반적으로 작가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여행지에서 노트북을 펼쳐 유유자적 작업하는 한직의 이미지지만, 윤아는 작가가 그런 만만한 직업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아끼는 동생인 민준이 글을 쓰다가 스트레스성 위천공으로 쓰러진 것을 몇 번이나 봐 왔기 때문이다.

    언제는 한번 단단히 쓰러져서 이 주를 넘게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 이 주 내내 윤아는 매일 신단에 물동이를 떠 놓고 기도를 드렸다. 남편에 이어 가장 신뢰하는 동네 친구마저 잃을까 봐.

    “그런데 저놈은 지 에미 속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고… 에휴.”

    윤아는 한숨을 한 번 푹 쉬더니 그대로 리모컨을 잡았다. TV에는 요즘 유행하는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한창이었다. 화면 가득히 채워진 큼지막한 대구를 보며 윤아가 떠올린 것은 방 안에서 하루 종일 타자만 쳐 대는 아들이었다.

    “매일 저러는데, 보양식이라도 챙겨 먹여야지.”

    그렇게 생각하다가도, 내가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윤아는 스스로의 모순에 진절머리를 느꼈다.

    * * *

    “씨발….”

    형우는 자기도 모르게 욕을 했다. 마지막으로 욕을 한 게 언제였더라? 아마도 공태준에게 주먹질을 했던 과 사무실이 마지막인 것 같았다.

    형우는 핸드폰을 꺼내, <서울낭인괴담>의 조회수를 확인했다. 1화의 조회수는 1786. 추천은 100개가 넘었다. 댓글도 스무 개가 넘었다.

    유진: 작가님 저 이거 추천글 썼어요!

    나무아미타불: 허허… 소설 참 좋네요. 요즘 보기 힘든 소설인 것 같습니다. 응원합니다.

    천마유존: 커허, 남주가 화끈한 게 마음에 드네요!

    다메다메다메요: 저 늑대인간 놈들 다음 화에 다 뒤지겠죠? 제발!!!! 연참!!!!!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는데. 형우는 그대로 중간의 화를 다 뛰어넘고 마지막 화를 눌렀다. 댓글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유진: 하차합니다. 건필하세요.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 형우는 자신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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