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9화 (9/200)
  • #8.

    타다다닥!

    형우의 집 안방에서 노트북의 타자 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음 기능을 탑재한 키보드조차도, 형우의 열정 어린 타자음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으윽, 손 아파.”

    왼손보다는 오른손이 조금 더 욱신거렸다. 지난 일주일 동안 펜대를 놀려 노트 필기를 해댔던 탓이다.

    손목을 한 바퀴 돌리자 뚜두두두둑-하는 뼈 소리가 났다. 다른 건 괜찮은데, 손목을 돌리면 확실하게 아팠다.

    “그래도 소득은 있었어.”

    고통에 얼굴을 찡그리며, 형우는 자신의 노트북 화면을 바라봤다.

    <서울낭인괴담>

    이번에 형우가 새로 쓰려고 준비하는 작품의 제목이다. 하루를 꼬박 새워서 어느 정도의 구상은 끝내 놨다.

    ‘좀 짧은 감이 있지만, 나는 쓰면서 구상하는 타입이니까.’

    학교에서 글을 썼을 때도 딱히 오래 구상하고 뭔가를 써 본 기억은 잘 없었다. 오히려 쓰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경우가 더 많았다.

    “한 화가 5,500자라고 했으니 10화면 5만 자에서 6만 자 사이인가?”

    민준은 10화 분량(5만 자)을 완성한 후에 다시 자신을 찾아오라고 했었다.

    “대충 일주일 정도 걸릴 거다.”

    민준은 그렇게 말했지만, 형우는 일주일이나 글을 붙잡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구상 하루, 집필 사흘, 퇴고 하루. 총 5일로 끝낸다!’

    타다다다닥!

    다시금 형우의 손이 자판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 방문이 탁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매일 일어나서 글을 쓰고, 새벽이 되어서야 쓰러지듯 잠들었다. 어제는 너무 늦게까지 한 탓에, 12시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어났다.

    “배고픈데.”

    그대로 뭐라도 먹을까 해서 거실로 나온 형우의 눈에 평소와는 다른 광경이 들어왔다.

    “뺘악, 뺘악.”

    “어머. 애 좀 봐.”

    참치가 어머니의 손 위에서 핑그르르, 돌며 재롱을 부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런 참치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부리 안에 쌀을 한 톨씩 집어넣어 줬다.

    “…오늘은 일 안 나가셨네요?”

    “뭐야, 일어났니?”

    형우와 마주치자마자 어머니는 자신이 언제 웃었냐는 듯이 곧바로 표정을 굳혔다.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구나.”

    “어제 좀 늦게 자서요.”

    한집에 살지만, 어머니와 대화를 한 것은 의외로 적었다. 그야 어머니는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서, 밤이 늦어서야 집으로 돌아왔고, 그 시간에 형우는 작업에 열중하느라 거실에 잘 나오지 않았다.

    두 사람의 타임테이블이 이토록 다르다 보니, 같은 집에 살면서도 얼굴을 마주 볼 일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분위기가 어색해지려는 찰나,

    “형우야.”

    어머니가 먼저 형우를 불렀다.

    “저기 가 보면 파스 있을 거다. 하나만 들고 와 봐라.”

    거실 소파 위에는 펭귄 마스코트가 인상적인 파스가 한가득 올려져 있었다. 형우가 포장지를 북 뜯었다.

    “어디예요?”

    “3번.”

    형우는 어머니의 등을 휴대폰 자판이라고 생각하며 3번의 위치, 그러니까 오른쪽 어깨 아래에 파스를 붙였다.

    “좋구나.”

    “…요즘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일 안 하면 누가 내 밥 먹여 준대냐?”

    누가 가족 아니랄까 봐, 모자가 쌍으로 워커홀릭(Worker holic)이었다.

    “그렇게 일 좋아하시는 분이 오늘은 왜 안 나가셨어요?”

    “저것 좀 하느라 그랬다.”

    보글보글!

    형우의 눈이 가스레인지로 향했다. 그 위에는 높이만 해도 1m가 넘어 보이는 커다란 냄비가 놓여 있었다. 왠지 방에 고소한 냄새가 난다 했더니만, 저게 그 원인이었던 모양이다.

    “뭐예요?”

    “뭐긴 뭐야. 사골이지.”

    어제저녁에 시장을 봐서 사 온 소의 다리뼈였다. 그 말을 들은 형우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사골은 왜요? 어머니 사골 별로 안 좋아하잖아요.”

    “누가 안 좋아한대. 네 아버지 탓이지.”

    아버지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집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아버지는 형우가 고등학교 1학년이 되던 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죽는 날까지, 어머니는 매일같이 아픈 아버지를 간호하며, 끼니때마다 사골국을 푹 고아 마시게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어머니가 사골을 끓이는 걸 거의 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좀 특이했다.

    “무슨 일 있어요?”

    “집에 걸핏하면 밥 안 먹고 헛짓거리하는 놈 하나 있어서 그렇다, 곰국 끓여 놓으면 너처럼 맹한 놈도 제 밥은 잘 챙겨 먹을 거 아니냐? 그리고….”

    잠깐 망설이던 어머니가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사골이 뼈에 그렇게 좋다잖니.”

    어머니가 은근슬쩍 형우의 손목을 힐끔거렸다.

    “…알고 계셨어요?”

    “손을 벌벌 떨면서 다니는데, 그럼 그걸 모르겠니?”

    눈치 빠른 어머니는 아들의 손목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아들을 위해 밤새 곰국을 고아 내었던 것이다.

    “엄마….”

    형우는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엄마는 무슨 엄마야. 나이 다 먹을 대로 먹은 놈이. 징그럽다.”

    “그래도요.”

    “그래도는 무슨 그래도. 나도 요즘 어깨가 찌뿌두둥해서 겸사겸사 끓인 거다.”

    어머니는 그대로 곰국을 꺼내 왔다. 다섯 시간씩 세 번에 걸쳐 총 열다섯 시간을 끓여 낸 국물은 그 자체만으로도 보약과 다를 바 없었는데, 거기에 온갖 한약재까지 들어갔다.

    “…시골에 와서 맑은 공기 쐬면 빼빼 마른 놈도 살이 펑펑 찌던데, 너는 왜 아직도 그 모양이냐?”

    “어머니는 제가 살쪘으면 좋겠어요?”

    “빼빼 마른 것보다야 낫지. 그래서야 어디 사내 노릇이나 하겠냐.”

    “어머니도 참.”

    사골에 소금을 살살 뿌리고, 밥 한 그릇을 퍽 하고 말았다. 수저 위에 어머니가 슬쩍 고들빼기김치를 하나 얹어 줬다.

    “잘 먹겠습니다.”

    “그러든가.”

    입 안에서 부드러운 쌀밥과 고소한 사골 국물, 매콤하고 아삭한 고들빼기김치가 함께 씹혔다. 말 그대로, 감아서 치는 듯한 맛이었다.

    “한 그릇 더 먹을래?”

    “주세요.”

    “오냐.”

    과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형우였지만,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 * *

    한창 농사일로 바쁜 3월의 봄.

    형우는 제철 과일인 석류 몇 개를 입 안에 넣고 빙글빙글 굴렸다. 마을 과수원에서 농약을 쓰지 않고 키운 귀한 과일이라고 했다.

    “요즘 민준이네 자주 간다며?”

    어머니가 넌지시 물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석류 씨가 그대로 목구멍으로 넘어갈 뻔했다.

    어머니는 여전히 형우가 글을 쓰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겼다.

    “아, 민준 삼촌이요…?”

    형우가 얼버무린 끝말을 어머니가 이었다.

    “거기서 뭐 하니?”

    “그… 소설을 좀 배우고 있어요. 민준 삼촌한테요.”

    “그러냐. 너무 폐 끼치지 마라.”

    어머니는 그대로 석류 하나를 큼지막하게 베어 물었다.

    ‘응? 이걸로 끝?’

    소설 같은 거 쓰지 말라느니, 아니면 민준 삼촌네 집에 가지 말라느니 하는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심플하게 끝났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그 말을 끝으로 어머니는 오후 일이 있다며 집을 나섰다.

    “나도 슬슬 일을 해 볼까.”

    형우는 그대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자리를 잡았다. 귀한 국물로 보신을 한 덕인지, 평소보다 집중이 더 잘되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주인공이 사이다를 한번 넣어 주고… 응?’

    소설을 읽던 형우의 입에서 억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체 왜 여기를 왜 이렇게 썼지? 히로인이 쓰는 건 M16인데 M16에는 점사 기능이 없잖아!’

    재빨리 ‘점사’ 부분을 ‘반자동’으로 고쳤다.

    ‘악당이 너무 평범해. 조금 더 사연이 있으면 좋겠는데… 일회용 악당이 아니니 사연을 조금 추가해 주자.’

    악당에게 죽은 자식에 의한 트라우마 하나를 만들어 줬다.

    “이렇게 되면 몇 자나 쓴 거지…?”

    문서 통계를 눌러 확인해 봤다.

    파일 : 서울낭인괴담 1~10

    [글자(공백 포함): 72,355자]

    민준이 요구한 건 5만 자에서 5만 5천 자였지만, 쓰다 보니 즐거워서 분량을 조금 넘겼다.

    ‘그래도 이 정도면 뭐….’

    분량은 좀 오버했지만, 결과물은 꽤나 만족스러웠다. 특히 문장과 묘사 부분이 생각보다 잘 나왔다.

    “이 정도면….”

    검사를 맡을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형우는 열심히 쓴 소설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삐약, 삐약!”

    눈치 빠른 참치는 이미 형우의 모자 위에 올라타서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위이잉.

    때맞춰 인쇄도 끝났다.

    “가자, 참치야!”

    노트북을 가방에 챙겨 넣은 형우가 새삼 기쁘게 문 손잡이를 돌렸다.

    “어라.”

    어제까지만 해도 형우를 계속해서 괴롭히던 손목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나아 있었다.

    * * *

    늘 담배 냄새로 가득 찬 평소와는 달리, 오늘 성민준의 작업실에서는 연신 좋은 향기가 풍겨져 나왔다.

    “흐음.”

    수제 인삼청으로 만든 귀한 차를 홀짝이는 성민준. 그의 손에는 소설 한 편이 들려 있었다.

    <서울낭인괴담>

    오늘 저녁에 갑자기 형우가 찾아왔을 때, 성민준은 저번처럼 놀라지 않았다. 의욕 넘치는 녀석이 약속보다 일찍 올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5일이라, 생각보다 더 빠르네.’

    사실 그것도 손목의 통증 때문에 약간 늦어진 거였지만, 형우는 거기까지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뭐, 얼마나 빨리 썼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지.”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역시 소설의 퀄리티였다. 형우의 소설을 유심히 읽던 민준의 고개가 위아래로 살짝 흔들렸다.

    “……나쁘지 않네. 조금 길기는 하지만.”

    <서울낭인괴담>은 장르 소설을 처음 써 본 사람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좋았다.

    더 정확히는, 꽤 끝내줬다.

    “도시와 환상이라, 매력적인 소재지.”

    어반 판타지는 어두운 도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판타지의 하위 장르다.

    형우의 소설인 <서울낭인괴담>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적인 어반판타지였다.

    늑대인간에게 친구를 잃은 주인공이 샷건과 십자가로 뒷골목의 늑대인간들을 소탕하는 이야기였다. 그중에서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가르쳐 준 걸 잘 지켰네.’

    시가를 물고 오토바이로 늑대인간을 짓이기는 주인공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트라우마 탓에 사회성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었다.

    사랑스러운 루저 그 자체였다.

    ‘유진 스크라이브의 원칙도 지켰고.’

    어쩌다 간 술집에서 우연히 늑대인간의 습격을 받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간단하게 시작되는 장대한 이야기, 유진 스크라이브의 원칙이었다.

    ‘마지막으로 아크 플롯까지.’

    그것을 계기로 주인공은 늑대인간에 대한 증오밖에 모르는 인간이 된다. 내용도 좋았다. 히로인이 있었지만, 연애로 빠지지는 않았다. 특히 그 부분은 가산점을 줄 만했다. 목표에 대한 집중력은 가산점을 줄 만했다.

    묘사나 문장, 혹은 맞춤법 같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민준에게 웹소설을 배우기 전부터 형우가 잘하던 것들이었으니까.

    “일단 연재를 시작해 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그건 모르지. 작품을 딱 봐서 성공할지 아닐지 알면 내가 출판사 차렸게?”

    웹소설의 시장은 오묘했다. 누가 봐도 성공할 것 같은 작품이 실패하는 것은 꽤 흔했고, 이게 성공하겠느냐 싶은 작품이 성공할 때도 가끔은 있었다.

    민준이 작가가 아니라 편집자였다면 조금 더 소설을 꼼꼼하게 분석해 줄 수도 있었겠지만, 민준은 어디까지나 편집자가 아니라 작가였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일단 연재해 보라는 것밖에 없어. 딱히 눈에 띄는 문제는 없으니까. 성공하면 좋고, 실패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지.”

    얼핏 들으면 무책임해 보이는 말이었지만, 사실 연재라는 시장에 있어서는 저게 정답이었다.

    이해했다는 듯이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알았어요. 그럼 연재처는 어디로 할까요?”

    “일단은 신인이고 하니, 달피아가 좋겠다.”

    달피아는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쓰는 소설 론칭 사이트였다. 그중에서도 접근성으로 보자면 제일 뛰어났다.

    다른 두 개의 론칭 사이트인 네이비나 커피콩페이지는 출판사를 끼고 계약을 진행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달피아에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능력만 있다면야, 신인 작가도 능히 연재해 나갈 수 있을 정도의 낮은 진입 장벽이야말로 달피아를 최고의 론칭 사이트 중 하나로 만들어 준 원동력이었다.

    “작가들 중 달피아 출신이 제일 많은 이유기도 해.”

    달피아로 시작해서 몸집을 키운 후 타 플랫폼으로 이적하는 것이 웹소설 시장의 가장 정석적인 코스였다.

    “소설을 올리기 시작하면, 연재 시간은 무조건 열두 시 십 분으로 해.”

    “왜 하필 그 시간이에요?”

    “지금 어반 판타지 중에서 제일 잘나가는 작품이 12시에 연재되고 있거든.”

    그 시간이야말로 어반 판타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가장 많은 시간이었다. 민준이 장난스럽게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여기서 문제, 왜 12시가 아니라 12시 10분에 올리라고 했을까?”

    “에이, 너무 쉽잖아요.”

    형우가 손을 내저었다.

    “웹소설 한 편을 읽는 데 10분은 걸리니까요. 그 시간에 맞춰 올려야 유명작을 읽고 나온 독자들의 눈에 띄기 좋겠죠. 정답이죠?”

    “…한 번에 맞추다니. 재미없는 녀석.”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준의 표정은 꽤나 흡족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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