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6화 (6/200)

#5.

“읽으라고?”

“뺙뺙!”

참치는 아예 읽는지 읽지 않는지 감시라도 하겠다는 듯이, 날개로 뒷짐을 진 채로 형우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알았어, 읽을게.”

결국 형우는 참치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책을 펴들었다. 솔직히 재밌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난독증 때문에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다.

‘뭐, 그래도 쓰는 것보다야 쉽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형우는 천천히 <전생검신전기>를 펴들었다.

‘검신은 자신의 자존심을 꺾고 무릎을 굽혔다. 진태연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첫 페이지를 읽는데, 점점 글자가 흐릿하게 번져 나갔다. 난독이 도진 것이다.

“역시….”

그렇게 중얼거리며 형우가 소설을 덮으려는 순간,

“뺘악! 뺘아악!”

하고, 지켜보던 참치가 펄쩍 뛰었다. 형우가 미적거리자 팔을 콕콕 쪼기까지 했다.

“…읽으라고?”

형우가 다시 책을 집어 들자, 참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다.

‘지가 무슨 히틀러야, 뭐야.’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형우는 다시 소설로 시선을 옮겼다.

‘검신은 요즘… 자신의 건…, 아니 검이구나. 검에….’

흐느적거리는 글자를 필사적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족집게로 집듯이 집어냈다. 그렇게 겨우겨우 한 페이지를 다 읽었다. 후우, 깊게 심호흡을 한 뒤에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검신은 요즘 자신의 검에 대해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검이 틀린 건가? 마신과의 전투에서의 참담한 패배는 그에게 상실감을 느끼게 하기 충분했다. 엄청난 힘의 격차였다.’

두 번째 페이지를 읽는 건 그보다 조금 더 쉬웠다. 형우가 피식 웃었다.

‘문장은 엉터리에 비문 천지였고, 출판본임에도 몇 군데는 오타까지 있잖아.’

형우의 기준에서 보면 분명 자격 미달이라고 평가해야 할 만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형우의 웃음은 그 소설이 한심해서 비웃은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훨씬 더 평범하고 보편타당한 이유였다. 우리가 뭔가를 보고 웃는 이유란 뻔했다.

‘그런데 왜… 재밌지?’

소설을 읽을 때마다 등허리가 삐쭉거리고, 왠지 다리를 꿈틀거리게 됐다. 자세를 수십 번이나 바꾸고, 입꼬리가 움찔거렸다.

형우는 그 감정에서 괴리감을 느꼈다. 이론적으로는 분명 재미가 없어야 하는데?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던 형우의 머릿속에서, 얼마 전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문장도 완벽하고, 전개도 군더더기가 없어. 하지만, 글에 감정이 없어.’

‘네가 재밌어하는 이야기를 써.’

현수가 자신의 소설인 <부러진 분재>를 읽고 해 줬던 평가. 그때는 그저 머리로만 이해했던 말이었지만, <전생검신전기>를 본 지금에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소설은 딱 내 소설의 반대편에 있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모두가 재밌게 읽기를 바라며 영혼을 담아서 쓴 이야기. 형우는 이미 그 작품에 강하게 매료되어 있었다.

그 순간, 형우의 머릿속에서 뭔가가 파바박, 터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막혀 있던 것들이 뻥 뚫리는 느낌. 페이지를 넘기는 형우의 손이 점점 빨라졌다.

‘검신은 결국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는 자신이 어릴 때 처음으로 검을 배웠던 숭산을 찾았다.’

‘그곳은 다행히 아직 마교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검신은….’

난독은 평독이 되고, 평독은 속독이 되었다. 하지만 소설에 완전히 매료된 형우는 그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검신이 어떻게 됐다는 거야?’

다음 페이지를 넘기려던 손가락 끝이 허공을 짚었다. 그제야 형우는 더 이상 넘길 페이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2권 完. 3권에서 계속.>

단지, 그 무심한 글자만이 형우의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어느새 책 한 권을 다 읽은 것이다. 형우는 페이지를 넘기려던 손을 그대로 들어 머리채를 쥐어 잡았다.

“여기서 끊어? 검신은? 검신은!”

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외치다가, 재빨리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언제 잠들었대?’

아까까지만 해도 형우를 감시하던 참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네모난 쌀과자를 매트릭스 삼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제야 형우는 주위를 둘러봤다.

‘벌써 밤이야?’

바깥을 보니 벌써 어둑어둑했다. 시간은 아홉 시. 세 시간이 넘도록 소설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소란이니?”

방문이 열리며, 어느새 돌아온 어머니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소란스러워서 들어온 모양이다. 형우가 얼버무렸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잘 테니 너무 시끄럽게 하지 마라.”

약간 의심스러운 듯 쳐다보긴 했지만, 무뚝뚝한 어머니답게 뭘 더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밥 안 먹었으면 차려 놨으니 먹고 자.”

밥? 그 말을 듣자마자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고 보니 여기 와서는 아무것도 안 먹었네.’

거실에 나와 보니, 조그마한 소반 위로 소박한 시골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반찬은 쌀밥에 고들빼기김치, 그리고 계란 프라이 하나가 전부였다.

‘대박.’

고들빼기김치는 형우가 가장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였다. 젓가락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크게 집어 밥과 함께 씹었다. 그 즉시 쌉쌀하고도 얼얼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져나갔다.

‘서울에서 먹은 고들빼기김치는 왜 이 맛이 안 나지?’

얼마나 맛있던지. 농촌의 고봉밥 한 그릇을 몽땅 비웠다.

끼이익.

그런 형우를 보며, 어머니는 슬쩍 문을 닫고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밥에 정신이 팔린 형우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 * *

“뺙뺙!”

형우는 참치가 우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으윽, 참치야. 내가 얼마나 잔 거지?”

“뺙뺙뺙뺙뺙뺙뺙뺙뺙뺙뺙뺙!”

뺙이 12번이니 12시간 잤다는 뜻인가?

맞았다.

“…12시?”

창밖에는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참치가 꽥꽥거렸다.

“그런데 너는 왜 점심부터 성질이야?”

“뺙뺙!”

참치가 책상 위를 콕콕 찍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

뭐가 있어서가 아니라, 없어서 소리를 지른 거였다.

“쌀과자 다 먹었구나. 배고파서 깨웠니?”

“뺘아아악!”

형우의 자취방에서는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쌀독의 쌀을 잘도 빼먹던 녀석이지만, 아무래도 환경이 바뀌었다 보니 먹을 것을 찾는 데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반지하 방이랑 달리 어머니가 깨끗하게 관리하는 집에서는 벌레 같은 것도 찾기 힘들었을 테고. 형우는 찬장을 뒤져 쌀을 두 줌 정도 펐다.

“뺘아아아악!”

쌀을 세 줌이나 먹은 후에야, 참치는 만족했다는 듯이 날개를 퍼덕거렸다.

“뺙!”

그러다가 삐끗하는 걸 보니, 분명 과식이었다.

“그러게 적당히 먹었어야지. 그나저나 나도 뭐 먹을 거 없나.”

냉장고를 뒤질 필요는 없었다. 식탁 위에는 소박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수북이 쌓인 고봉밥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슨 밥을 이렇게 많이? 시골이라 그런가.”

반찬도 어제랑 똑같았다. 적당히 반 정도만 먹으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후하.”

삼십 분 후, 형우는 볼록한 배를 붙잡고 쌕쌕거리며 숨을 골랐다. 그 산처럼 쌓인 공깃밥을 죄다 먹었다.

“잘못하단 토하겠억-”

의자에서 일어나려다가, 살짝 비틀거렸다.

“뺘아아악!”

참치가 너도 똑같다는 듯이 삑삑거렸다. 서로가 서로의 부푼 배를 바라보고 낄낄거렸다.

“허억, 허억. 이러다가 돼지 되겠다. 참치야, 산책이나 하러 갈까?”

“뺘악, 뺘악.”

참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자가…… 아 여기 있다.”

형우가 모자를 쓰자마자, 참치가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오늘은 민준 삼촌네 한 번 가 볼 생각이었다.

“여긴 그대로네.”

고향을 바라보며 형우가 중얼거렸다. 몇 년 만에 온 고향이지만, 변한 게 거의 없어서 길을 찾기는 쉬웠다. 서울에 있을 때는 자취방 근처에서도 길을 잃기 일쑤였는데, 이곳에서는 눈을 감고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초등학생 때 민준 삼촌이랑 아빠랑 셋이 해서 가끔 매미 잡으면서 놀았는데.’

그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마을은 그대로였지만, 자신이 변했다. 지금 나이에 매미를 잡으려고 뛰어다니면 분명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것이다.

‘아니면 뉴튜버 취급을 받거나.’

그렇게 10분 정도를 더 걷자, 멀리서 파란색 대문이 눈에 들어왔다. 옆에 ‘성민준’이라고 써진 명패를 보니 확실했다. 문 앞에 선 형우는 초인종을 누르는 대신 크게 소리를 질렀다.

“민준 삼촌, 계세요?”

“어어, 뭐냐. 형우냐? 잠깐만 있어 봐라.”

잠시 후, 문이 열리면서 민준 삼촌이 얼굴을 드러냈다. 입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고, 턱수염은 반만 깎았고, 눈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어제도 글 쓴 거예요?”

“뭐, 마감이 얼마 안 남아서…. 너야말로 말도 없이 갑자기 무슨 일이냐?”

“아, 혹시 <전생검신전기> 있어요?”

“<전생검신전기>?”

늘 형우가 민준의 집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였다. 형우가 기억하기로, 무협 소설가인 민준의 집은 언제나 온갖 무협 소설들로 가득 차 있었다.

“흐음… 아마 있었던 것 같은데. 일단 들어올래?”

형우는 민준의 뒤를 따라 문턱을 넘었다.

* * *

“콜록콜록!”

방문을 열자마자, 형우는 기침을 터트렸다. 방 안을 가득 채운 담배 연기 탓이다. 노트북 옆에 자리한 재떨이 안에는 꽁초가 가득했다.

“아, 미안하다. 지금 뭘 좀 쓰느라.”

드르륵. 민준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켰다. 그제야 조금 숨쉬기가 편해졌다.

“평소에도 환기는 좀 하시지 그래요? 참치도 있는데!”

“참치? 아, 그 참새 말이냐?”

그제야 형우의 머리 위에 자리 잡은 참치를 발견한 민준이 짓궂은 표정으로 웃었다.

“캬. 고놈 참 살 통통하니 맛있겠다. 너 참새구이 먹어 봤냐? 그게 크기는 작아도, 한 마리면 소주 한 병은 그냥 비워요.”

“뺘아아악! 뺘아악!”

민준의 말을 들은 참치가 푸드덕거렸다. 하지만 방 안에 가득한 담배 연기 탓에 힘이 나지 않는지, 평소처럼 날뛰지는 못했다.

“참치야! 삼촌, 창문 좀 더 열어요!”

참치를 끌어안고 뛰쳐나갔던 형우는 어느 정도 환기가 된 후에야 다시 방을 들어올 수 있었다.

“훈련소 때 화생방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오바는. 너는 인마, 서울 가서 글 쓴단 놈이 담배도 안 배우고 뭐 했냐? 작가가 담배 없이 어떻게 글을 써?”

“그거 편견이에요. 몸에도 안 좋은 걸 뭣 하러 핀대.”

“…방금 내가 한 말은 혹시나 누님한테 이르지 마라. 날 아주 죽이려 들 거야. 그런 경험은 오 년 전으로 충분해. 알지?”

오 년 전이라면 형우가 막 대학에 합격했을 때였다. 마을 앞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현수막 하나가 나부꼈다.

[경축! 개천에서 용 나다! 철호네 첫째 아들 한국대학교에 합격!]

별다른 축제가 없는 시골 마을의 아이가 명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마을 전체의 축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을 전체가 소면을 삶고 전을 부쳤다. 그날, 마을의 돼지 세 마리가 명을 달리했다.

‘한국대학교는 개뿔!’

다만, 그 현수막은 일주일도 안 돼서 분노한 어머니의 손에 의해 내려오게 되었다. 형우의 학과 때문이었다.

‘글을 쓰겠다고?’

어머니는 형우가 지망한 ‘문예창작과’를 극구 반대했다. 반대를 예상했기에, 형우도 처음에는 법학과라고 거짓말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들통이 났다. 합격 통지서가 나온 이후까지 거짓말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 아들의 거짓말을 알아챈 어머니는 극구 반대를 했다.

‘…기껏 공부해서 좋은 대학교를 갔는데, 글이라니! 법대나 공대처럼 취업 잘 되고 좋은 과도 얼마든지 있잖니. 저 밑에 성민준이를 봐라. 너도 걔처럼 되고 싶은 거야?’

그 이유 중에는 성민준도 있었다. 그때도 민준 삼촌의 직업은 작가였는데, 그 당시 한창 일거리가 없었던 탓에 매일 집에서 죽치고 앉아 밥이나 축내는 신세였던 것이다.

“내가 괜히 헛바람 불어넣었다고. 말도 마. 그 후 한 일 년은 네 엄마랑 말도 못 했어. 기억나냐? 너 고등학교 내내 우리 집에서 산 거.”

민준 삼촌은 작가이니만큼, 집에 책이 많았다. 그것도 교과서나 백과사전 같은 것이 아니라 자극적인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같은 거였다.

“누님도 우리 집 오는 것 자체는 반대 안 했었잖냐. 매일 소설 읽고 해도 학교에서는 뭐, 1등을 놓치지를 않았으니까. 가끔은 애 봐주는 거 고맙다고 나한테 떡도 좀 주고 그랬었는데. 이 자식아. 문창과 속인 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했어.”

“삼촌도 도와줬잖아요.”

“그래서 내가 죽을 뻔했잖아. 나뿐이냐? 얼마 전에 이사 간 윤 씨도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데.”

윤 씨는 형우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이었다. 형우가 사정사정한 탓에,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는 걸 도와줬었다.

“그나저나, <전생검신전기>라. 꽤나 옛날 무협인데. 이걸 아직도 갖고 있구나. 그거 명작이지.”

“민준 삼촌도 이 책은 없어요?”

“무슨 섭섭한 소리를. 나는 명작은 죄다 사는 편이란다. 그래서 늘 돈이 없는 거야.”

민준이 형우의 머리를 살짝 헝클어트리더니, 그대로 서재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타난 민준이 책 한 무더기를 형우의 발치에 내려놓았다.

“<전생검신전기> 여기 있다. 확인해 봐. 아, 후속작인 <전생무신전기>도 있다. 이것도 어마어마한 명작인데, 혹시 필요하냐?”

형우가 딱따구리처럼 고개를 끄덕거렸다.

물을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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