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상을 쓰겟다-4화 (4/200)

#3.

형우는 신기한 표정으로 참새를 바라봤다.

“너, 참새 맞냐?”

“뺘아악!”

당연한 걸 묻는다는 것처럼 짜증 내는 녀석이었지만, 형우가 이렇게 묻는 게 아주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녀석은 이상하게 사람을 잘 따랐다. 살살 만져 봐도, 오히려 더 만져 달라는 듯이 가려운 데를 들이밀기까지 했다.

‘누가 키우다 잃어버린 건가?’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 애완 참새에 대해 검색해 봤지만, 한참을 찾아 봐도 딱히 거기에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사람 잘 따르는 이상한 야생 참새라고 결론을 내린 형우는 너덜거리는 지하실의 창문을 열었다.

‘야생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지.’

평소 <동물농장>같은 걸 즐겨봤기에, 참새야 거기가서도 잘 살아야 한다~ 같은 나래이션을 떠올리며 그대로 참새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표로롱?”

하지만 녀석은 지금 대체 뭣 하는 짓이냐는 것처럼 형우를 멀뚱히 바라보더니, 그대로 다시 돌아와 어깨에 턱 걸터앉았다.

“가. 훠이, 훠이.”

그렇게 몇 번이고 녀석을 날려 보내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녀석은 다시 형우에게 돌아왔다. 급기야는 짜증 난다는 듯이, 노트북 옆에 자리를 깔고 앉아 형우를 향해 눈을 부라리기까지 했다.

“여기가 좋은 건가?”

안 나간다는 녀석을 억지로 내보내기도 좀 그랬다.

‘…그냥 키울까.’

강아지나 고양이었으면 자기 먹을 밥도 없는 형편에 키우기가 힘들었겠지만, 참새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하루에 기껏해야 쌀 두 줌 정도인가?’

그 정도라면, 충분히 키울 만했다. 애초에 자기 좋다고 매달리는 작은 동물을 내쳐버릴 정도로 형우는 성격이 모질지 못했다.

* * *

“어머, 저 사람 봐.”

“머리 위에 저거 뭐야?”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그 모습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형우는 모자를 깊게 눌러썼다.

“삐익! 삐익!”

모자 위에서 참치가 흔들지 말라는 듯 불만스럽게 울음을 터트렸다.

‘…이게 이렇게 될 줄이야.’

삼십분 전, 형우는 해장도 할 겸 인스턴트 북엇국이라도 한 그릇 사 먹을까 싶어 편의점에 나갈 채비를 했다.

“집 잘 보고 있어, 참치야.”

참치는 형우가 참새에게 지어 준 이름이었다. 어찌 됐든 같이 살게 됐는데, 참새야 참새야 부르기도 좀 정 없지 않은가.

“금방 올게.”

그렇게 말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갑자기 안에서 삑삑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뺘아악… 삐우욱….”

그 울음이 얼마나 애달프던지. 마치 부모를 잃어버린 아이가 우는 것 같았다.

“진짜 잠깐이면 되는데….”

“뺘우욱….”

“알았어, 알았다고! 데리고 가면 되잖아!”

그 탓에, 어쩔 수 없이 모자 위에 참치를 얹은 채로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뺘아악!”

산책을 나온 참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머리 위에서 기분 좋게 지저귀었다. 순식간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와! 드루이드다, 미사역 드루이드.”

“저 사진 하나만 찍어도 돼요?”

멀리서 학생 몇 명이 달려와서 같이 사진을 찍고 가는 일은 부지기수요.

“저 참새 이름이 뭐예요?”

“참치.”

“이름 진짜 귀엽다! 저 참치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

그렇게 참치를 만지고 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녀석은 마치 자기가 연예인이라도 된 듯이, 사람들의 손길을 받으면 포로롱! 하고 팬 서비스까지 잊지 않았다.

“그래도 이건 좀 좋은가?”

형우는 주머니에 가득 찬 약과와 쌀과자, 뻥튀기들을 쳐다봤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참치가 귀엽다며 하나씩 사 준 것이다.

“허허. 나는 우리 뽀삐 데리고 하루 종일 지나다녀도 육포 하나 주는 사람이 없던데. 참치는 아주 복덩이구만.”

“뽀삐는 무섭게 생겼잖아요.”

“그건 사람들이 셰퍼드의 멋짐을 몰라서 그래. 우리 뽀삐가 얼마나 귀여운데?”

편의점 아저씨도 그렇게 말하면서 참치 주라며 쌀과자 하나를 얹어 줬다.

“당분간 먹을 것 걱정은 없겠네.”

오늘 받은 과자들만 해도, 참치 혼자서는 죽을 때까지 다 못 먹을 만큼 많았다.

‘남는 건 다 내 거라는 뜻이지.’

형우는 식비도 아껴 써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 먹을 것이 생기는 건 언제나 희소식이었다.

“너 완전 복덩이구나.”

형우는 새끼손가락을 들어 참치를 슬슬 쓰다듬었다.

“신기하단 말이지.”

누가 기르던 새도 아닌 것 같은데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것도 그렇고, 나돌아다닌다는 것도 신기했다.

집에 있으면 알아서 쌀통에서 밥을 챙겨 먹고, 쌀과자나 약과도 작은 부리로 요령있게 잘 뜯어 먹었다. 심지어 똥도 화장실 변기에서 쌌다. 그 외에도 신기한 점은 또 있었다.

푸드덕덕!

참치를 보고 까치 한 마리가 달려들었을 때였다. 까치는 그 멋진 외모와는 다르게 성격이 더러운 걸로 유명한 육식 조류였다.

“앗, 위험해!”

그렇게 말하면서 참치를 피신시키려는 찰나, 먼저 참치가 반응했다.

키아악!

괴상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른 참치는, 그대로 까치의 머리를 정확히 노리고 콕콕 쪼았다.

까악!

그 서슬 퍼런 기세에 결국 까치는 달아났다. 참치는 의기양양한 듯이 날개를 몇 번 까닥거리더니, 다시 형우의 모자 위에 턱하니 앉았다.

‘까치랑 싸워서 이기는 참새라고?’

그 모습을 본 형우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겉으로 봐도 까치는 참새보다 열 배는 더 크다. 사람이 탱크랑 싸워 이긴 거나 마찬가지였다.

“너 정말로 참새 맞아? 혹시 울버린으로 태어나려던 걸 실수로 참새로 태어난 거 아니냐?”

“뺙뺙!”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이 항변하는 참치. 형우는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더란다. 그러다 보니 12시가 다 됐다.

“그런데 참치야. 오늘은 월요일이야. 내가 학교를 가야 한다는 뜻이지.”

“삐약?”

아마 저 삐약은 그래서? 라는 뜻일 테다.

“…학교에 널 데리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니?”

참치가 부리를 딱, 하고 부딪혔다.

* * *

“아이고. 이거 흉터 남는 거 아냐?”

버스 창문에 기댄 채로, 형우는 참치에게 물린 팔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떨어트리고 오기는 했는데.’

몇 번을 봐도 참 옴팡지게도 잘 물었다. 누가 보면 피부병으로 착각할 정도다.

‘그래도 피는 안 나서 다행이지.’

그대로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대어 꾸벅꾸벅 졸았다.

위이잉!

막 잠이 들었는데, 휴대폰 진동이 형우의 잠을 깨웠다. 뭔가 싶어 봤더니 액정에는 서연수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어 연수야. 무슨 일로 전화를 다 하고?”

“형우 선배! 그게요….”

전화기 너머로도 연수가 울먹거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죄송해요. 공태준이… 저 때문에 괜히 선배가….”

눈치가 빠르지 않은 형우조차도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 *

한국대학교 문창과의 과 사무실. 형우는 침을 꿀꺽 삼킨 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 왔냐?”

씨익. 공태준이 형우를 보고 알은체를 했다. 연수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넌 선배를 보고도 인사도 없냐?”

“죄송합니다.”

꾸벅. 형우가 뒤늦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아야얏!”

흡족한 표정으로 끄덕거리던 공태준이 갑자기 목 뒤를 잡았다. 누가 봐도 엄살이 분명했다.

“아야야, 아파 죽겠네. 내가 어제 하루종일 병원에 좀 누워 있었거든. 김형우 너 때문에.”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너무 황당해서,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공태준이 코웃음을 쳤다.

“나 참, 이 뻔뻔한 자식 좀 봐. 무방비인 사람 뒤통수를 그렇게 때려서 기절시켜 놓고, 이제 와서 모른 척하시겠다?”

“제가 때렸다니까요! 형우 선배가 아니라!”

옆에서 연수가 빽 소리쳤다. 그 소란에 공태준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연수. 넌 조용히 하고 있어. 선배들 이야기하는데 어딜 끼어들어?”

“제가 했다고요, 제가….”

“네가 나를 때려서 기절시켰다고?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퉤, 하고 공태준이 과 사무실 바닥에 침을 뱉었다. 그 모습을 보니 대충 무슨 이야긴지 감이 잡혔다.

‘분풀이로군.’

맞은 건 아프니까 누구 하나 잡고 분풀이는 해야 되겠는데, 차마 여자한테 맞아서 기절했다고 하기엔 체면이 살지 않으니 그나마 만만한 형우를 잡고 지랄을 하는 거였다.

덩치 큰 의재가 아니라 자신을 타겟으로 잡은 것도 아마 같은 이유에서였을 테다. 엄청난 치졸함이었다.

“…학교에서 제일 선배라는 분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부끄러운 건, 사람을 함부로 폭행하고 입 싹 닫는 너네들이 느껴야지.”

태연하게 대답한 공태준이 눈앞에서 뭔가를 흔들었다. 병원 진단서였다.

“여기서 보면 전치 6주라던데….”

“이건… 앞 한솔 정형외과에서 받은 거잖아요?”

한솔 정형외과는 멀쩡한 사람이 가도 전치 삼 주가 나오고, 손가락이 베인 사람이 가면 전치 육 주가 나온다는 깽값 전문 병원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보자 보자, 후두부의 상처로 인해서 상해가 의심되고… 허어, 정신적인 외상까지. 세상에, 이걸 학교 측에서 알게 되면 정학 십 일은 나오겠는데?”

정학 십 일. 그 단어를 듣자마자 형우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교칙상,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은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가난한 형우로서는 정부 지원 장학금을 받지 못한다는 건, 그대로 학교 생활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어떻게 다녀온 학교인데, 그럴 수는 없었다.

“제가 뭘 해야 합니까?”

“으음, 별건 아니고.”

공태준이 형우를 바라보며 다리를 턱 꼬았다.

“일단은 무릎부터 꿇자.”

“무릎이요?”

“응. 그리고 잘못했다고 빌어. 그러면 혹시 모르지. 내가 용서해 줄지도.”

“안 하면요?”

“징계를 받게 될 거야. 만약 네 주장대로 네가 저지른 짓이 아니라고 하면… 다른 누군가라도 징계를 받게 되겠지. 어쩌면 학교가 아니라 경찰서까지 갈지도 모르고.”

그렇게 말하며 공태준의 시선이 연수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 표정이 얼마나 역겹던지.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인질극이었다.

‘인질을 살리고 싶으면 내가 희생하라는 건가.’

물론 형우는 영화에 나올 법한 정의의 사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걸지만, 형우는 그저 대학생일 뿐. 모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만큼 의협심이 넘치지는 않았다.

문제는, 후배인 서연수가 그저 그런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였다. 얼마나 울었는지, 연수의 두 눈이 시뻘겠다. 연수는 눈물이 많았다. 2년 전에도 그랬다.

월세가 없어 허덕이는 형우의 소식을 듣고서, 누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아르바이트로 벌었다며 선뜻 삼십만 원을 빌려줬던 착한 후배. 그때도 제가 뭐라고 눈물을 글썽거렸더랬다.

그런 후배를 위해서 무릎 한 번쯤이야, 뭐가 어려울까? 형우는 천천히 무릎의 힘을 뺐다.

“아악!”

연수의 비명이 과 사무실 내에 울려 퍼졌다.

“이제… 됐습니까?”

형우가 묻자, 공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아냐. 고작 이걸로 용서하기엔 후배님의 죄가 아직 크지. 내 조건은 아직 안 끝났어.”

“또 뭐가 있습니까?”

“응, 너한테 원하는 건 아니고. 서연수.”

공태준이 연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 나랑 밥 세 번만 먹자.”

“뭐, 뭐라고요?”

당황한 연수가 눈을 크게 떴다. 공태준은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는 듯,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김형우는 어떻게 너 지켜보겠다고 무릎까지 꿇었는데, 연수 너는 고작 밥 세 번이 어렵냐? 솔직히, 이 정도면 나도 많이 배려해 준 거야. 주먹에 맞았는데 무릎 한 번 밥 세 번으로 퉁을 쳐 주다니… 어억!”

공태준은 말을 끝까지 맺지 못했다. 그의 툭 튀어나온 턱에 뭔가가 세게 부딪혔기 때문이다.

퍼억!

턱에 부딪힌 것은 형우가 내지른 주먹이었다. 예상치도 못한 형우의 공격에, 공태준은 덩치값도 못 하고 바닥을 굴렀다.

“으윽.”

주먹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형우가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 느낌은 썩은 이를 뽑고 여드름을 짰을 때의 느낌과 비슷했다.

“진작 이렇게 할 걸 그랬어.”

형우는 그대로 발밑에서 바동거리는 공태준을 쳐다봤다.

“김형우, 너 이, 이 새끼! 날 패, 팼어? 저, 정학이 무섭지도 않냐?”

공태준은 비틀린 턱으로 어눌하게 협박 비슷한 걸 했다.

“안 무섭지는 않지.”

형우는 그대로 품을 뒤져 공태준을 향해 종이 한 뭉텅이를 집어던졌다.

“공태준, 너 부조교지? 그거 잘 챙겨서 접수해. 알았어?”

“이, 이게 뭔데?”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는 공태준을 향해, 형우가 으르렁거렸다.

“휴학계다,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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