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또 이번 방학 부조교였잖냐. 문학상 신청자 목록을 딱 보는데, 김형우 저 자식 이름이 있더라고. 뭐, 보자마자 떨어질 줄 알았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걸 공태준이 어떻게 알았나 싶었는데, 부조교였다니. 형우가 이빨을 까득 씹었다.
“1학년 때부터 좋은 소설들 대신 쓰레기 같은 소설이나 보던 앤데, 떨어지는 게 당연하지. 그런데 자존심도 없는 건 처음 알았네?”
당황한 형우를 앞에 둔 채로, 공태준이 한껏 비아냥거렸다.
“아, 혹시 고기 먹으러 온 거냐? 하기야, 너 가난하잖아. 어디 가서 한우를….”
“선배님. 취하셨습니다.”
보다 못한 의재가 말렸지만, 공태준은 막무가내였다.
“취하긴 무슨. 이제 한 잔 먹었는데. 어어? 어디 선배 말을 끊어?”
“선배님.”
“솔직히,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재능은 없는데 가난하기까지 하고. 김형우 너, 내가 1학년 때부터 안 될 줄 알았어. 글은 뭣 하러 쓰냐? 일이나 하지. 그거 불효야 인마, 불효라고! 의재 너도 인마! 저런 놈이랑 놀지 말아!”
더 이상 듣고 있기가 거북했다.
‘못 참겠네.’
의재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쥔 순간이었다.
퍼억!
방금까지 신나서 악담을 퍼붓던 공태준의 머리가 그대로 테이블에 콱, 처박혔다.
쨍그랑!
“꺄악! 서의재 너, 뭐 한 거야!”
술과 음식이 튀고 테이블이 크게 떨렸다. 그 가운데서, 주먹을 쥔 의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나 아니야!”
애초에, 자신이 때렸으면 서로 멱살을 잡고 싸웠지, 이렇게 정갈하게 한 방에 기절시키지는 못했다.
혹시 형우 짓인가 싶어 바라봤지만, 녀석 또한 완전히 얼어붙어서 눈만 끔뻑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하긴, 녀석은 좀 샌님이니까. 그러면 누가 공태준을 팬 거지?’
그 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빨갛게 취한 얼굴이 콧김을 흥 하고 뿜었다.
“이게에, 듣좌 듣좌 하니꽈아!”
형우의 후배인 서연수였다.
‘고등학교 때까지 태권도를 배웠다더니….’
과연, 동작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형우가 멍청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수야… 네가 왜?”
“아니. 못 들어 주겠잖아아요! 떨어진 놈은 재능이 없다느니, 어쩌고, 저쩌고오….”
취한 연수가 소리를 빽 질렀다.
“나도 대학문학상 냈는데!”
그 술자리에서 대학문학상을 제출하고 떨어진 사람은 형우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 * *
“조심히 들어가, 서연수. 택시 번호 외워 놨으니까 걱정 말고.”
“헤… 헤헤. 거뫄워여 선배님덜….”
연수의 소동 덕분에 술자리는 그대로 파투가 났다. 잔뜩 취한 연수까지 택시에 태워 보내고 나니 남은 건 형우와 의재와 현수, 그렇게 셋밖에 없었다.
“차라리 잘 됐지. 꼰대준이랑 술 먹느니 안 먹는 게 나아.”
연수에게 얻어맞은 공태준은 그대로 실려 나갔다. 들어 보니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고, 단순한 기절이라고 했다.
“뭐랬더라, 깔끔하게 목만 쳐서 후유증이 없다고 했었나?”
“맞아.”
“태권도 배웠다더니, 나 이제 쟤 무서워서 장난 못 칠 거 같아.”
해병대를 나왔다느니, 3대가 300이라느니, 온갖 부심을 다 부리는 공태준을 연수는 고작 당수 한 방으로 기절시켰다.
“이래서 엘리트 체육인한테는 개기지 말라는 거구나. 그건 그렇고, 연수는 괜찮을까? 공태준, 그 새끼 워낙에 쪼잔한 놈이라 뭔가 해코지하려고 들 텐데.”
실려간 건 공태준인데 다들 연수 걱정만 했다. 의재가 별일 있겠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뭐 하겠어? 지가 무슨 람보인 줄 아는 뇌까지 마초인 새낀데. 설마 여자한테 맞았다고 하고 다니려고. 형우, 너야말로 괜찮아?”
“괜찮아, 그런 말 신경 안 써.”
솔직히 말하면 조금 속이 울컥하기는 했다. 만약 연수가 먼저 나서지 않았다면, 주먹을 날리는 건 형우였을지도 몰랐다.
…물론 생각만이고, 실제론 안 날렸겠지. 형우는 어느정도 자기객관화가 되어 있는 편이었다.
“으휴, 술 먹다 끊겨서 좀 그렇네. 우리끼리 2차나 갈까?”
의재가 제안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 형우도 술을 좀 더 먹고 싶은 기분이었다.
“현수 너는?”
“나도 가지 뭐.”
“오, 의외네.”
“나도 노는 거 좋아해.”
그렇게 간 곳은 학교 근처의 치킨집이었다. 짠! 갓 나온 후라이드 치킨 위로 두 개의 맥주잔과 하나의 사이다잔이 부딪쳤다.
“너, 문학상 냈다는 거 진짜냐?”
잔이 두어 바퀴쯤 돌았을 때 의재가 물었다. 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준비는 했는데 못 냈어.”
“못 냈다니, 완성을 못 한 거야? 에이 설마. 글벌레인 형우 네가?”
글벌레는 형우의 별명이었다. 한번 키보드를 잡았다 하면 몇날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글을 써내는 형우에게 딱 어울렸다.
“완성을 못한 건 아니고….”
이렇게 된 이상 숨겨봐야 뭐하나 싶어, 형우는 우체국을 가다가 할머니를 마주쳤던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러니까, 할머니 돕다가 공모전을 놓쳐 버렸다는 거야?”
이야기를 다 들은 의재와 현수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형우를 바라봤다.
“…할머니는 어떻게 됐어?”
그렇게 물은 것은 현수였다.
“다행히 다친 데는 없으시더라고. 고맙다면서 손금 봐 주던데. 용한 무당이라 하시더라고.”
“손금이라고?”
“응. 뭐라더라, 예언? 점? 그런 것도 봐 줬어. 길은 맞는데, 방법이 틀렸다고 하던데. 또… 예전을 잘 돌아보면 방법을 알게 될 거라고도 했어. 아, 부적도 줬어. 참새 그려진 부적.”
“부적?”
“응, 이거.”
형우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에 매달린 부적을 보여 줬다. 한참을 보던 의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새는 안 그려져 있는데?”
“그럴 리가.”
형우가 부적을 빼앗아 들고 한참을 살펴봤다.
“뭐야, 진짜네? 참새 어디 갔어?”
* * *
“으으윽….”
김형우는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제 아무래도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모양이었다.
공모전을 망친 것, 그런데 하필 그 상을 동기가 받은 것, 그리고 꼰대준 놈한테 한 소리 들은 것.
각각 소주 두 병감인 일들이었는데, 그것들을 할부도 아니고 일시불로 처리했으니 반동이 장난 아닐 만도 했다. 심지어 아직까지 술이 덜 깬 것 같았다.
“쪼로로로롱!”
눈앞에 이상한 게 보이니 말이다.
“…참새?”
이제야 일어났냐는 듯이, 참새가 형우의 손을 두어 번 쪼았다.
“아얏!”
아픈 걸 보니 아무래도 환상은 아닌 것 같았다. 포로로롱! 참새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그대로 날아올랐다. 형우의 시선이 멍하니 참새를 따라 이동했다.
녀석은 반지하 방 구석에 잔뜩 핀 곰팡이와 누렇게 뜬 벽지를 지나더니 형우의 자그마한 노트북 앞에 앉은 남자의 어깨에 턱 하니 앉았다.
“조현수?”
“어, 일어났구나?”
녀석은 그렇게 말하며, 자기 어깨에 앉은 참새를 손가락 끝으로 살살 쓰다듬었다.
“특이한 취미야. 참새를 기르다니.”
내가 기르는 거 아닌데.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참새 같은 게 아니었다.
“네가 왜 우리 집에 있어?”
“기억 안 나? 너 취해서 내가 데리고 왔잖아.”
조금씩 기억이 났다. 하기야, 그 자리에 모인 사람 중 술을 마시지 않은 건 현수밖에 없었다. 창밖을 보니,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외제차 한 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현수의 자동차였다.
“고맙다.”
“고맙긴 뭘. 친구끼리.”
“그나저나 뭐 하고 있었냐?”
“이것 좀 읽고 있었어.”
그제야 녀석이 들고 있는 A4용지 뭉텅이가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에 공모전을 위해 열심히 썼던 소설, <부러진 분재>였다.
“그게 아직 있었네.”
사고가 나서 마감 기한을 놓친 이후로는 열불이 나서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그게 책장 어딘가에 처박혀 있었던 모양이다. 현수가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허락 없이 읽어서 미안하다.”
“읽으라고 쓴 건데 뭘. 그보다 내용은 어때?”
궁금한 건 오히려 그 부분이었다. 공모전에 소설을 내는 것은 물론 상을 받기 위해서지만, 소설을 전문가에게 평가받고 싶다는 마음도 컸다.
현수는 이번에 평론을 통해 대학문학상을 받아냈다. 대학문학상은 등단 취급을 해 주는 문학상이니, 사실상 평론가로 데뷔한 거나 진배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 구리면 구리다고, 좋으면 좋다고.”
“그게 말이지…. 소설 자체는 좋아.”
현수가 천천히 A4용지를 만지작거렸다.
“문장은 군더더기가 없고, 묘사도 좋아. 게다가 앞에서 사용한 복선 활용도 훌륭했다. 아버지가 쓰러진 후, 주인공이 지난 몇 년간 애지중지 키우던 분재의 목을 부러트리는 장면이 특히 감명 깊었어. 형우, 넌 이 작품을 대학문학상에 내려고 했던 거지?”
“맞아.”
“혹시 이번 수상작 읽어 봤어? <행복의 정원>.”
형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행복의 정원>은 타 대학의 2학년 여학생이 쓴 작품이었는데, 나이 든 할머니의 손을 잡고서 상실된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환상적인 소재로 풀어낸 작품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행복의 정원>은 네 소설보다 못 쓴 글이야. 문장력도 별로고, 묘사는 군더더기가 많아. 이야기 진행 또한 서투른 감이 없지 않고.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행복의 정원>과 네 소설 중 하나를 택하라고 했으면, 나 또한 <행복의 정원>의 손을 들어줬을 거야.”
잘 쓴건 내가 더 잘 썼는데, 우승은 저 쪽이 한다라. 형우는 그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내 소설이 더 좋다며?”
“그 말은 진심이야. 하지만….”
문창과에선 이런 말이 있다. ‘하지만’이 나오기 전의 모든 말들은 군더더기에 불과하다고. 그걸 아는 형우였기에 현수의 ‘하지만’이라는 말끝에 더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네 소설은 뭐랄까, 감정이 없는 느낌이 들었어. 문학 작품이 아니라 잘 짜여진 기계장치를 보는 기분이랄까?”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동력 장치. 현수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너는 이 소설을 쓰면서 정말 즐거웠어? 소설이 잘 짜여서 즐겁다처럼 기술적인 부분 말고, 이 이야기 자체가 즐겁게 느껴졌냐는 뜻이야.”
자신이 즐거운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독자 또한 즐거워하지 않는다.
‘되게 아프게 때리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 * *
부아아아앙!
창밖으로 현수의 자동차가 떠나는 것이 보였다. 그 이후로도 형우는 무기력함을 느끼며 한참이나 소설을 붙들고 있었다.
<부러진 분재>
이번에 썼던 소설의 제목이다. 하지만 도저히 제목 아래로는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중력 자체가 바닥난 느낌이랄까.
‘에휴.’
결국 소설을 읽는 걸 포기하고 바닥에 대충 던졌다.
네가 쓰고 싶은 글이 이게 맞냐는 현수의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말은 정말이지 단 한 부분도 틀리지 않았다.
‘힘드네.’
글 쓰는 게 힘들다. 요즘 형우의 머릿속에는 그런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다. 그 무거운 생각에, 형우의 머리가 절로 무릎 사이로 푹 떨어졌다.
“…응?”
그 순간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뺘악?”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진 형우의 소설을 부리 끝으로 콕콕 쪼고 있었다. 아까 현수의 어깨 위에 있던 녀석이었다.
그 탓에 소설이 찢어졌지만, 안 좋은 말을 들은 탓인지 별로 슬픈 기분은 들지 않았다.
“…배고프니?”
“포로로롱!”
마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녀석이 기쁘게 우짖었다. 그나저나, 참새가 뭘 먹더라?
“이거라도 먹을래?”
“뺘아악!”
되는대로 찬장에 있는 쌀을 한 줌 꺼내 줬다. 다행히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랴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녀석은 형우가 건네준 쌀을 잘도 받아 먹었다.
“맛있냐?”
“표로롱!”
물어서 뭣 하냐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녀석. 형우는 녀석의 등허리를 살살 쓰다듬어 줬다. 그제셔야 열린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나저나, 현수 녀석. 어떻게 들어온 거지?’
현수의 말에 의하면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고 했다. 집 안에 있던 건 참새 한 마리 뿐.
“혹시 네가 열었어?”
“뾰로롱?”
고개를 갸웃하는 참새. 그 모습을 본 형우가 멋쩍은 느낌으로 하핫, 하고 웃었다.
“하기야,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무슨 소리를.”
참새와 대화라니.
요즘 너무 피곤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