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0 / 0156 ----------------------------------------------
제5권 신의 아티팩트
잉그리드 마운틴(Ingrid mountain).
코르스 산적 무리의 본채가 있던 곳의 넓은 운동장에는 지금 한창 무리를 이룬 사람들이 구보(驅步)를 하고 있었다.
건장한 신체를 가진 자들이 곳곳에 서서 손에 몽둥이를 쥐고 위협적인 말을 하고 있었다.
“헉헉헉.”
“힘내라… 아직 열 바퀴나 더 돌아야 한다.”
“오늘 쓰러지는 놈에게는 저녁식사가 없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좋아, 열을 맞추면서 뛰어라.”
구보를 하고 있는 자들의 뒤편에도 보우를 쏘거나 아니면, 검술대련을 하는 자들이 눈에 띄었다.
이렇게 발보르 신의 전사들이 안드라 후작령을 점령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인구조사를 했더니, 150만이 아니라 200만이 넘었다. 그것은 바로 처음에는 유민들을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듀크는 안드라 후작의 영주성이 있는 도시 멜바에 있지 않고, 코르스 산적 무리의 본채가 있는 잉그리드 마운틴에 있기로 하고 그렇게 조치했다.
그래서 멜바를 비롯해 에스코피에, 니네베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대거 이주시켰다.
이미 지옥훈련을 한 발보르 신의 전사들이 많았기에 젊은 남자들을 강제로 끌고 와서 훈련을 시켜 전사로 거듭나도록 했다.
지금은 이 지역을 점령한 지 겨우 두 달 정도가 지났기 때문에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비밀이란 없기에 점점 그 소문이 퍼져 나가고 있었다.
제국의 황실에서도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되면 수십만의 무장한 제국군이 들이닥치게 될 것이니 미리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800여 개의 마을 중 한곳인 마카이오(Makaio)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마을이다.
6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대부분 밀농사를 하거나 염소나 양을 기르면서 생활하는 곳이었는데, 어느 날 이들을 노리는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매직 게이트로 이동한 오크전사들로, 20개 군단 중에서 제57군단의 오크전사들이었다.
“취익… 우리가 공격한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구나, 취익… 마음껏 약탈하자, 취익.”
“취익… 공격하라, 공격!”
오크들이 대형을 이루면서 마을로 진군했다.
땡땡땡땡.
마을의 목책 위에서 주변을 살펴보던 자경대원이 오크들을 발견하고 즉시 종을 쳤다. 요란한 종소리에 마을에 있던 자경대원들이 각자 무기를 꺼내 들고 목책으로 달려왔다.
자경대원들은 잉그리드 마운틴에서 훈련을 받은 전사들로 마을에 약 250명 정도가 있었다.
“오크다, 오크!”
“화살을 쏴라!”
슈슈슈슝.
하늘을 가로지르는 화살이 수백 개나 되었다.
오크전사들은 즉시 대형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화살공격을 막았다.
티티티팅, 파팍.
대부분의 화살은 방패에 맞아 튕겨나가거나 일부는 방패에 박혔고 화살에 맞은 것은 겨우 10여 마리의 오크가 고작이었다.
그것도 직격으로 맞은 화살이 아니기에, 오크들이 움직이는 데 지장을 받지 않았다.
“취익… 발리스타를 쏴라! 취익.”
“취익… 투석기를 쏘고, 보우도 쏴라! 취익.”
슈슈슝.
콰콰쾅! 와르르.
투석기에서 쏜 대형 돌덩이는 목책을 부수고 마을에 떨어졌다. 또한 발리스타에서 쏘아진 대형 화살은 집의 외벽을 관통해서 일부 무너지는 집도 있었다.
“취익… 마을엔 겨우 목책뿐이다, 취익… 마음껏 공격을 퍼부어라, 취익.”
군사훈련을 제법 받았던 마을의 자경대원들이었지만 오크전사들을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정규군과 붙어도 될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오크 부대장들의 지휘에 따라 공격을 퍼붓는 오크들은 이미 예전의 어리석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정규군 못지않은 전투력을 보유한 강한 몬스터였다.
“취익… 인간족들의 반항이 제법 거세다, 취익… 트롤 돌격대를 내보내라, 취익.”
“취익… 트롤 돌격대는 즉시 돌격하라! 취익.”
끼에에에.
괴성을 지르면서 거의 키가 4미터에 육박하는 트롤들이 손에 쇠몽둥이를 쥐고 마을을 향해 돌격했다. 그것도 한두 마리의 트롤이 아니라 200마리나 되었다.
“트롤이 공격해온다. 화살을 쏴라!”
“트롤의 눈을 공격해. 어서!”
예전의 트롤들은 살점이 떨어지거나 베이는 큰 상처를 입어도 순식간에 회복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무조건 돌격하는 경향이 있어서 병사들이나 기사들도 겁을 먹었다. 이번의 트롤들은 그런 트롤들보다 훨씬 강력한 놈들이었다.
두 눈은 붉게 물들었고, 머리에 쇠로 된 투구를 쓰고 상체와 하체에도 철판을 이어 붙인 갑옷을 입고 있어서 사실상 화살 공격은 효과가 없었다. 막강한 파워를 가진 트롤들은 목책을 부수고 마을에 단번에 진입하여 주민들을 공격했다.
사람들은 트롤을 피해서 도망치기 시작했지만, 여기저기에서 트롤들이 휘두르는 쇠몽둥이에 맞아 쓰러졌다.
또한 트롤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집들 중 트롤이 휘두른 쇠몽둥이에 와르르 무너지는 곳도 있었다.
트롤들이 마을의 방어력을 일시에 무력하게 만들었고, 그 뒤를 오크전사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기에 자경대원들도 손을 쓰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당할 뿐이었다.
“끝났어, 이젠.”
“이들은 예전에 알던 오크들이 아니야.”
“크아악!”
“커억!”
“살려줘… 아악!”
오크군단에 의해 600여 명의 마카이오 주민은 30분 만에 점령당했다.
오크전사들의 피해는 겨우 50여 명 정도였지만, 마을 주민은 600여 명 중에 250여 명만 살았고, 나머지는 죽거나 크게 다쳤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크들이 마을을 불태우지 않고 사람들만 끌고 갔다는 것이다.
오크 군단장은 부상을 입지 않은 250여 명의 포로들을 후방으로 이송했지만, 죽거나 부상을 입은 자들은 트롤돌격대에게 먹이로 던져주었다.
“쿠워어어어!”
인간의 연한 살과 피를 먹은 트롤돌격대는 기분이 좋아져서 포효를 했다.
“취익… 간단하게 마을 하나를 점령했다, 취익…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마을 세 곳이다, 취익… 신속하게 전열을 정비하라, 취익… 곧 이동할 것이다, 취익.”
사기가 오른 오크 제57군단은 신속하게 전열을 정비한 후 다음 목적지인 니마(Neema)마을을 향해 이동했다.
이렇게 오크 20개 군단이 하루 동안에 마을을 점령한 곳은 무려 60개 마을이나 되었다.
1만2천 명이나 되는 인간을 포로로 삼은 오크들은 인간들을 매직 게이트를 이용해 이동시켰다.
오크왕 켈란은 모처럼 환하게 웃었다.
“취익… 으하하, 정말 기쁘구나, 취익… 우리가 처음으로 인간족을 공격해! 취익… 인간 포로를 사로잡았으니 말이야, 취익.”
한편, 긴급한 소식은 잉그리드 마운틴에 있는 듀크에게도 전해졌다.
“뭐라? 많은 오크들이 마을을 공격했다고?”
“그렇습니다, 듀크 대장님.”
“으음… 어떻게 수만 마리의 오크들이 기습공격을 했단 말인가? 보리스,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은 모든 마을에 비상령을 내려 잉그리드 마운틴으로 이동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마을마다 비상령을 내려 싸우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아닙니다. 이번에 쳐들어온 오크들은 우리가 알던 예전의 그런 어수룩한 오크들이 아닙니다. 정규군을 방불케 하는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오크전사들이라고 합니다.”
“으음… 하긴, 각 마을에는 훈련을 받은 자경대원들이 있었는데도 제대로 저항도 해보지 못한 채 전투가 끝이 났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1만 마리 정도인 오크군단이 무려 20개나 되는 엄청난 대병입니다. 벌써 하루 만에 60개의 마을 약 3만 명이 당했습니다. 이건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음… 아직 우리가 완전히 준비를 하기 전에 기습공격을 당하다니… 제기랄!”
“어차피 당한 일입니다. 속히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알았다. 즉시 전 마을에 명령을 전달하라. 속히 잉그리드 마운틴으로 피난하라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전 전령들은 신속히 각 마을에 이 명령을 알려라. 어서 떠나라!”
두두두두.
말을 탄 전령들은 각 마을로 긴급하게 달려 나갔다.
잠시 그들을 내려다보던 듀크는 보리스에게 말했다.
“멜바와 에스코피에, 니네베는 괜찮을까?”
“그곳에는 튼튼한 성벽이 있으니 오크군단도 쉽게 점령하지는 못할 겁니다. 이미 그곳에도 비상령을 내렸습니다.”
“그래, 설마 도시 3곳을 다 점령하지는 않겠지.”
말은 그렇게 해도 듀크와 보리스의 얼굴은 근심으로 굳어 있었다.
도시 에스코피에는 상주인구 23만의 도시로 성벽이 높게 쌓여 있으며, 5만의 영지병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오크군단의 침공으로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라서 모든 영지병들이 무장한 상태에서 경계근무에 나섰다. 또한 도시민들도 무장하여 집에서 예비병으로 대기했다.
쿵쿵쿵쿵, 처처처척.
땅이 지진이 생긴 듯 흔들렸다. 지평선 끝에서 무서운 속도로 검은 것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가왔다. 그들은 바로 무장한 오크군단이었다.
뿌우우우.
고동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비상사태를 알렸다.
“오크가 쳐들어온다!”
“비상이다, 비상!”
마을을 500미터 남겨두고 다가온 오크군단은 일단 진군을 멈춘 다음 전열을 다시 정비하기 시작했다. 훈련을 강하게 받은 듯 모든 동작들이 절도 있고 일사불란했다.
꿀꺽.
오크군단의 위용을 내려다보던 한 병사가 침을 삼켰다. 무척 긴장을 한 모양이었다. 주위에 있는 모든 병사들 역시 긴장을 했는지 입술에 침을 묻혔다.
“저 오크들은 보통 오크들이 아니야.”
“몸집도 내가 알던 오크보다 훨씬 커. 또 저들의 무장 상태를 보라고.”
“저런 오크 한 마리를 죽이려면 여러 명이 달려들어야 하겠는데?”
이때 오크군단 측에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취익… 타워를 내보내라, 취익.”
오크 59군단장인 파블의 명령에 거대한 구조물 5개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앞으로 나왔다.
쿠르르르.
굉음을 일으키면서 움직이는 구조물은 20미터 높이의 목조탑에 전방에는 불에 잘 타지 않도록 특수약물로 처리된 천이 뒤덮여 있었으며, 철판을 덧대어 방어력을 보강했다.
도시 에스코피에의 외성 높이보다도 5미터가량 더 높았다. 거대한 바퀴 12개를 힘이 좋은 미노타우로스들이 밀었다.
목조탑은 5층으로 되어 있으며, 층마다 오크전사들이나 트롤 돌격대가 타야 하지만 지금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5층에 보우를 든 오크전사 50마리가 전부였다.
목조탑의 뒤에는 무장한 오크전사들과 트롤 돌격대가 한 손에 방패를 들고 뒤따랐다. 목조탑은 좋은 은폐물이기 때문이다.
“불화살을 날려 저것을 태워버려라!”
“불화살을 쏴라!”
슈슈슈슈슝.
화살촉에 불이 붙은 화살이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이 날아왔지만, 오크전사들은 그 자리에 멈추고 서로 거리를 좁히더니 방패를 머리 위로 들면서 화살이 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티티티팅.
역시 방패에 막힌 화살은 튕겨서 주변으로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