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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부우웅.
그는 허공으로 높게 떠올라 야영지를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음… 야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군. 후후후… 저기서 페이쇼 용병대장이 부하들을 모아 작전지시를 하고 있구나. 곧 너희들에게 죽음의 선물을 보내주지.”
다시 땅으로 내려온 하벨은 마법을 해제했다. 그리고 그들 근처에 다시 마법의 텐트를 설치한 후 로레인의 천막으로 향했다.
‘후후후… 야영지는 곧 공포로 가득 차게 될 거야.’
천막 안으로 들어서자 로레인과 아르미온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로레인이 먼저 하벨을 발견하고는 말했다.
“아! 어서 오십시오, 클로버 님.”
“제가 좀 늦은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의 일로 죄송하기는요. 이제 식사를 시작해도 되겠군요. 베스야, 식사를 가져오너라.”
“예, 도련님.”
준비되어 있던 요리가 테이블에 차려지기 시작했고,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 시각, 야영지에는 독이 없는 마법의 안개가 서서히 끼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용병들은 모닥불 옆에 앉아 있다가 짜증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웬 안개가 이리 끼는 거야?”
“계곡이라서 그런 모양이지.”
“그런가? 왠지 기분 나빠.”
하벨의 마법의 텐트 옆에는 용병들의 천막이 쳐져 있었다.
천막은 다른 용병 천막에서 볼 때 마법의 텐트가 보이지 않도록 마법의 텐트를 교묘하게 가린 채 서 있었다.
천막 속에는 페이쇼 대장이 배치한 용병 20명이 무장한 채 대기하고 있었다.
조금 전 로레인의 천막에서 저녁식사가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있는 그들은 마법사가 얼마 후면 마법의 텐트로 올 것을 알고 텐트 옆에 천막을 친 후 기다리고 있었다.
츠츠츠츠.
그때였다.
갑자기 환상 마법이 그들에게 펼쳐졌다. 그것은 시간차 공격으로 작동되도록 하벨이 시전한 마법으로, 판타스말 포스(Phantasmal force)라는 환상 마법이었다.
20명의 용병 각각의 눈에는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용병들은 거의 동시에 무기를 꺼내 들고는 머리 위로 검을 치켜들고는 그것을 향해 내리쳤다.
슈가각, 서걱!
“크억!”
“아아악!”
털썩.
하지만 그들이 내리친 것은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동료들의 머리였다.
그렇게 20명의 용병들은 동료들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채 1분이 걸리지 않는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얼마 후, 짙었던 마법의 안개는 옅어지면서 사라져버렸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으면서 즐겁게 대화를 나누던 시간은 지나고 어느덧 술상이 차려졌다.
“자… 클로버 님, 술 한잔 하시죠.”
“아… 그럼 조금만 주십시오. 밤에 봐야 할 책이 있어서요.”
“그렇다면 가볍게 한 잔이나 두 잔 정도만 하십시오.”
쪼르륵.
로레인이 술통을 들어 하벨에게 술을 부어주었고, 잔을 든 하벨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 꿰뚫어본다는 마법사의 매직눈으로 술잔속의 술을 순간적으로 살펴보았다.
역시나 우려한대로 술에는 정신이 몽롱해지는 약가루가 섞여있었다.
‘타임 스탑(Time stop).’
츠파파팟.
하벨이 그의 의지로 마법을 캐스팅함과 동시에 발현시켰다.
이 마법을 쓰면 효과 범위 내의 시간을 약 10분간 정지시킬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정지하자 그는 그의 술잔을 로레인의 것과 바꾸었다.
역시나 그자의 술잔에 들어 있는 술은 이상이 없었다.
“후후후… 이런 얕은수로 나를?”
스스슷.
타임 스탑 마법이 해제되자 하벨은 술잔을 들고 천천히 마셨다.
그것을 본 로레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감돌았고, 그도 자신의 술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
하벨은 술잔을 내려놓으면서 입을 열었다.
“페이쇼 대장도 이런 자리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습니다.”
“아, 용병들을 점검하느라 그런 참석하지 못한 모양입니다. 어젯밤의 불미스러운 일들이 있었기에…….”
“으음…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글쎄요… 센티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짐작 가는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저도 센티님과는 개인적으로 만난 적이 없어서 모르겠군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죄송하실 것 없습니다.”
“으음… 머리가 무겁군요. 저는 이만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술이 약하시군요. 겨우 한잔 마셨을 뿐인데요?”
“오늘은 이상하게도 한 잔 마셨을 뿐인데도 취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쩐다? 먼저 들어가서 쉬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쉬시지요.”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르미온 님께서는 좀 더 있다가 오시겠습니까?”
“아, 아니에요. 저도 그만 일어나야겠어요.”
“벌써요? 좀 더 있다가 가시지 않고요.”
“아니에요, 로레인 님.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저녁식사에 초대하겠어요.”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그럼요. 아예 지금 정하죠. 내일 저녁은 어때요?”
“좋습니다, 내일로 알고 있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아르미온은 하벨과 함께 로레인의 천막에서 나와 자신의 천막으로 향했다.
한편 로레인의 천막 근처에 있던 페이쇼 대장은 하벨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먼저 대기해 있는 용병들의 천막으로 향했다.
“허억! 이게 뭐야!”
천막 속에는 온통 피가 고여 있었고, 20명의 용병들이 상잔한 듯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었다.
부들부들 떨던 페이쇼 대장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다.
“이, 이런 일이… 잘못하면 내가 범인으로 지목될 수도 있겠어.”
순식간에 모든 걸 판단한 그는 즉시 천막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다 마침 그 앞을 지나던 하벨과 아르미온과 딱 마주쳤다.
페이쇼 대장의 옷에는 온통 피가 묻어 있어 오해를 살 만한 상황이었다.
“뭐야, 당신 옷에 묻은 피는?”
“뭐라구요? 아, 아니 옷에 피가?”
주변에 있던 용병들과 아르미온의 기병들도 그들의 곁으로 다가왔다.
아르미온이 경호대장인 기사 세르마에게 눈짓을 보내자 그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숀과 치크는 저 천막을 살펴봐라.”
“예, 알겠습니다.”
호명된 호위병 두 명이 용병들의 천막으로 들어가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천막은 온통 피바다였다. 놀란 호위병들은 즉시 천막 밖으로 튀어나오며 외쳤다.
“세르마 기사님, 천막 안은 용병들이 흘린 피로 가득합니다.”
“죽은 용병들이 20명이나 됩니다.”
“뭐? 너희들은 저자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포위하고 붙잡아라!”
차차창!
검을 꺼내 든 호위병들이 페이쇼 대장을 포위하자 그는 무척 당황했다.
계획했던 모든 일들이 어긋나고 자신은 범인으로 몰린 상황이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덫은 너무나 완벽했다.
페이쇼 대장은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호위병들에게 포박되었다.
하벨은 옆에 서 있는 아르미온에게 말했다.
“나는 로레인 님께 가서 이 사실을 알려야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호위병 5명과 함께 가세요.”
“그러실 필요까진 없는데…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고마워요.”
“고마운 건 접니다.”
하벨은 호위병 5명과 함께 로레인의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로레인이 테이블 옆의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하녀 베스가 깜짝 놀라 쓰러져 있는 로레인의 상체를 일으키고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도련님, 도련님!”
“이, 이게?”
로레인은 단순히 술에 취한 모습이 아니었다. 눈동자가 돌아가 있었고, 입가에는 흰 거품이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기절한 상태였다.
‘후후후… 나에게 먹이려고 했던 약을 탄 술을 네놈이 마셨으니 당연히 이렇게 돼야 정상이지. 아예 이번 기회에 뇌손상을 일으켜 바보로 만들어주마.’
로레인의 상태를 내려다보던 하벨은 놀란 표정을 보이면서 말했다.
“로레인 님이 왜 이러시지? 뭐라도 잘못 드신 건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저녁식사는 아르미온 님과 클로버 님께서도 같이 드셨지 않습니까.”
“아참, 그랬었지. 내가 잠시 로레인 님의 상태를 보마.”
“알겠습니다.”
하벨은 로레인의 뒤통수에 왼손을 붙이고 오른손은 가슴 부분에 붙였다.
파지지직.
그는 우선 왼손에 강력한 고압전력을 뇌에 불어넣어 연약한 대뇌를 자극했고 로레인은 결국 뇌손상을 일으켰다.
악마적인 마음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없는 짓이었지만 하벨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이런 짓을 한 것이다.
사람의 대뇌는 눈, 귀, 코, 혀, 피부 등의 감각기에서 들어오는 자극을 받아들이는 감각령이며 팔이나 다리의 근육과 같은 반응기에 운동명령을 내리는 운동령이다. 또한 추리, 판단, 기억, 의지 등의 복잡한 정신활동을 하는 연합령으로 이루어져 있는 아주 민감한 곳이다.
그런 뇌가 손상을 입었으니 바보가 되는 건 당연했다.
한편 가슴에 붙인 오른손으로는 치료 마법을 시전했다.
가슴 부분에 빛이 확 일어나는 걸 옆에서 호위병들과 하녀 베스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하벨의 치료 마법을 시전하는 걸 보고는 어느 정도 안심을 했다.
“끄으으… 아아악!”
로레인은 비명을 크게 지르다가 이내 편안한 얼굴로 변했다.
치료가 잘되었다고 생각한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으… 으으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오다가 그가 서서히 눈을 떴다.
“아… 정신이 드세요, 도련님?”
“로레인 님, 정신이 드십니까?”
“으우웁… 아아… 누구? 헤헤헤…….”
“아아… 클로버 님, 로레인 님께서 왜 이러시는 거죠?”
“머리에 심한 충격을 받으신 모양인데, 이거 큰일이군!”
“그럼 어떻게 되는 거죠?”
“으음… 지금으로선 하녀들이 로레인 님을 맡아 돌보면서 신속하게 이동해 목적지까지 가는 방법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아.”
“아, 알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야 하니 모두 모일 수 있도록 연락해줘.”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얼마 후 모닥불이 있는 곳에 헤럴드 상단의 마부들과 인부들, 하녀와 용병들, 아르미온과 경호대장인 기사 세르마, 호위병들이 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