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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110화 (11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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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시골 영주의 저택이었지만 나름대로 귀족의 저택이라서 그런지 실내장식이 깔끔하게 되어 있었다.

그가 피르 집사를 따라 복도를 이동해 대연회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긴 테이블에는 은촛대가 거리를 두고 세 개나 놓여 있어서 촛불 특유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한 테이블에는 반짝이는 나이프와 포크 그리고 식기가 세팅되어 있었다.

그가 잠시 자리에 앉아 있으니 피르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주님께서 오셨습니다.”

“…….”

피르 집사의 말에 하벨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이어 정장을 입은 켈터스 남작과 화이트 이브닝드레스를 입은 그의 딸 아르미온이 들어왔다.

켈터스 남작이 테이블 끝자리에 앉았고 남작의 오른쪽에는 딸인 아르미온이 앉았다. 하벨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의 초대에 응해줘서 고맙소이다. 나는 카심 드 켈터스 남작이고 이곳의 영주를 맡고 있소. 그리고 이쪽은 내 딸인 아르미온이오.”

“델리안 폰 클로버라 합니다, 영주님.”

“나의 영지에는 마법사분이 없는데, 오늘 나의 기사가 마법사를 화이트 여관에서 보았다고 하기에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자 이렇게 초대했소.”

“그러셨군요.”

“피르 집사, 식사를 해야겠어.”

“식사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으니 가져오겠습니다.”

잠시후 테이블에 고기요리가 놓이자 하벨은 고기를 조금씩 알맞게 잘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고기를 잘라 먹을 때 접시와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나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임을 잘 아는 그는 실수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또한 육류를 먹을 때는 적포도주를, 해산물이나 생선을 먹을 때는 백포도주를 먹는 것이기에 하벨은 적포도주를 조금 마셨다.

켈터스 남작과 딸 아르미온은 식사를 하면서 그의 식사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리고는 간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통적인 귀족들의 식사예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우아했다.

“클로버 경은 공국의 남부 최남단 시골 영지인 이곳까지 무슨 일로 내려온 것이오?”

“영주님, 내려온 것이 아니라 올라왔습니다.”

“올라 왔다고요? 바다를 건너서?”

“예, 그렇습니다.”

“허허… 정말 대단하시구려.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크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날아서 왔으니까요.”

‘으음… 사람이 날개가 달려 있지 않은데 바다를 날아왔다니, 능력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럴 수 있을까?’

“호호… 정말 대단한 능력이세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영주의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것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하벨이 말했다.

“영주님, 혹시 근심스러운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으음… 아니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사실 어머니께서 병환 중이시라 지금 침대에 누워 계세요.”

“그러셨군요. 오래되셨습니까?”

“평소에도 몸이 약하셨는데 6개월 전부터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만 계세요.”

“신관을 불러 치료하면 병의 차도가 있으실 텐데요?”

“그, 그게… 소용없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병이 깊으시기에… 증상이 어떠하십니까?”

“몸이 허약하셔서 그런지 눈에 자꾸만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고 하세요.”

“으음… 제가 한번 봐도 될까요?”

“예, 되고말고요. 일단 식사부터 하시고 가보도록 하죠.”

식사를 하면서 영주인 켈터스 남작과 딸인 아르미온이 번갈아가며 그에게 질문했고, 그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에 그들은 하벨이 높은 학식을 가진 마법사라는 걸 눈치 챘다.

“허허… 내 수도에서 여러 명의 학자들을 보아왔지만 클로버 경과 같은 높은 학식을 가진 자는 보지 못했소.”

“저도 마찬가지에요.”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하벨은 식사를 다 먹었기에 접시 위에 포크와 나이프를 십일자로 가지런히 놓았다.

영주인 켈터스 남작과 딸인 아르미온도 식사가 끝이 났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앞장섰고 하벨은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남작부인인 미쉘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는데,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러 하녀가 깨끗한 천으로 닦고 있었다.

번쩍.

순간 하벨의 두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클로버 경, 아내의 상태가 더 나빠진 모양인데 한번 봐주시오.”

“영주님, 궁금해서 그러는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시구려.”

“혹시 부인께 원한을 품을 만한 사람은 없습니까?”

“아마 없을 것이오.”

“그런데 어찌 저주마법이 걸려 있는 것입니까?”

“저주마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저주마법은 흑마법의 일종으로, 원한을 가진 자가 원한을 품게 만든 자의 물건이나 신체, 즉 머리카락이나 손톱 같은 것으로 저주를 겁니다. 그런데 무서운 것은 단번에 죽이는 게 아닌, 고통을 조금씩 가하면서 죽인다는 것입니다.”

“아! 그런 일이… 그런데 신관이 부인을 보았을 때에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 같소?”

“신관 정도면 단번에 저주마법을 알아보았을 텐데 그걸 발견하지 못했다면… 답은 한 가지입니다.”

“그게 무어요?”

“원한을 품은 자가 있고 그자는 부인과 가까이에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 그게 무슨?”

“신관이 왔을 때 저주마법을 걸어둔 물건을 일시적으로 치워두었다가 신관이 가고 나서 다시 가져다 놓았다는 말입니다.”

“그, 그럼 이 룸에 그 저주를 걸어둔 물건이라도 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지금도 그게 느껴지는군요.”

“흑흑… 어머니께서 저주마법에 걸려 그렇게 고통 받고 계셨다니…….”

스윽.

하벨은 검지로 침대에 누워 있는 남작부인의 머리맡의 벽을 가리키며 팔을 안으로 굽혔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손가락 정도 크기를 가진 검은 애벌레가 벽면에서 강제적으로 끌려나온 것이다.

“허억… 저게 뭐야?”

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놀랐고 하녀 아란은 도리어 얼굴이 굳어졌다.

벽에서 끌려나온 검은 애벌레는 보통의 애벌레처럼 생겼지만 두 가지가 달랐다. 몸의 색이 검은색이고 머리 부분에 뿔이 두 개 나 있는 게 특이했다.

“봉인.”

츠츠츠츠.

하벨은 투명한 막으로 애벌레를 봉인했고, 동시에 남작부인의 얼굴은 편안해졌다.

“아아악!”

아란은 비명을 지르면서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쥐었다.

“저 하녀가 범인이니 잡으십시오.”

“아란을 붙잡아라!”

하녀 아란은 도망치려다가 기사에게 붙잡히자 원독 어린 눈빛으로 하벨을 노려보았다.

“너… 너만 아니었으면 성공했을 텐데, 원통하구나.”

짜악!

“아아악!”

화가 치민 아르미온이 하녀 아란의 뺨을 때렸다.

“왜 어머니를 저주했지?”

“흥, 내 어머니를 죽게 만들었기에 나도 똑같이 복수하려 했을 뿐이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의 어머니는 이곳에서 부인의 하녀로 일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실수를 일으킨 하녀 캐리에게 부인은 화를 내셨다. 그에 캐리는 마침 심부름을 나가셨던 어머니만 꾸중을 듣지 않았다며 어머니를 때리셨다. 결국 어머니는… 시름시름 앓으시다가 돌아가셨다.”

“그럼 어머니와는 관계가 없잖아?”

“흥, 하녀 캐리도 원수지만 부인도 내겐 원수다.”

“그, 그럼 하녀 캐리가 몇 달 전에 죽은 것도……?”

“그래, 내가 죽였다. 부인도 죽일 수 있었는데 그걸 저 마법사가 방해할 줄이야…….”

“저년을 옥에 가두어라!”

“예, 영주님!”

기사는 아란을 끌고 감옥으로 향했다.

그제야 영주인 켈터스 남작과 딸인 아르미온은 하벨에게 고맙다고 인사했다.

“클로버 경, 정말 고맙소이다.”

“너무 큰 은혜를 입었어요, 클로버 님.”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일단 봉인한 마물을 죽여야만 완전하게 저주마법이 풀리니 잠시 더 지켜봐주십시오.”

츠츠츠.

잠시 후, 봉인구 속에 들어 있던 마물, 검은 애벌레가 마구 꿈틀거리더니 피부에서 손톱 두 개와 머리카락 10가닥이 나왔다. 그리고는 온몸이 갈라져 녹색 피가 흘러나오더니 퍽 하고 터져버렸다.

“에벌레가 부인의 손톱과 머리카락을 이용했지만 이제 마물이 죽었으니 저주가 풀렸습니다. 부인께서는 곧 깨어나실 겁니다.”

“정말 수고하셨소, 클로버 경.”

“정말 감사해요, 클로버 님.”

“아아… 으음…….”

잠시 후, 하벨의 말대로 남작부인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편안한 얼굴로 눈을 떴다.

“여보, 정신이 드시오?”

“어머니, 이제 정신이 드세요?”

“여보, 아르미온아, 악몽을 꾸었어… 너무 무서웠어.”

“알고 있소.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악몽을 꾸지 않을 거요.”

“정말요?”

“그래요. 이제는 괜찮을 거예요, 어머니.”

“저는 그럼 이만 숙소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영주님.”

“아니오. 여기에도 룸은 많으니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가시구려.”

“그러세요. 피르 집사, 클로버 님을 룸으로 모시도록 해요.”

“예, 영주님, 아르미온 아가씨.”

어쩔 수 없이 하벨은 피르 집사를 따라 복도를 걸어 2층의 룸으로 올라갔다.

룸 안을 둘러본 그는 실내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

‘음… 생각한 대로 깔끔하군.’

아직 잠을 자기엔 이른 시간이라 그는 한쪽에 놓인 티 테이블에 앉아 평소처럼 책을 읽기 시작했고, 얼마 후 밤이 더 깊어지자 침대에 누웠다.

아침이 되어 침대에서 일어난 하벨은 창문을 활짝 열었다.

따사로운 밝은 햇살이 얼굴과 상체를 비추니 기분이 상쾌했다.

“아… 여긴 전망이 아주 좋구나.”

똑똑.

“클로버 님, 일어나셨습니까?”

노크소리가 들리면서 피르 집사의 목소리가 들렸기에 그는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대답했다.

“예, 무슨 일입니까?”

“아침식사를 영주님께서 같이 드셨으면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옷을 입고 곧 나가죠.”

피르 집사를 따라 대연회실로 들어서자 영주인 켈터스 남작과 딸인 아르미온을 비롯해 남작부인인 미쉘까지 있었다.

“부인,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델리안 폰 클로버라 합니다.”

“남편과 아르미온에게서 어제의 일을 다 들었어요. 정말 고마워요.”

“위험 직전에 처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신관도 몰랐던 저주마법을 해결하시다니, 탁월한 능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클로버 님.”

“하하하… 오늘같이 기쁜 날 당신과 클로버 경을 위해 특식으로 준비했으니 부인께서도 많이 드셔야 합니다.”

“호호호… 알겠어요.”

어제는 미처 몰랐는데 오늘 남작부인인 미쉘의 얼굴을 보니 삼십대 후반의 나이이지만 여전히 대단한 미색(美色)을 가지고 있었다. 저주마법 때문에 침대에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다.

그런 남작부인의 미모를 이어받아서일까, 딸인 아르미온도 미녀였다.

아침식사는 맛이 있었다. 후식으로는 과일이 나왔는데, 네 명이 먹기에는 너무 많았다.

“이미 후식을 드셨지만 제가 준비한 특별후식도 한번 드셔보시렵니까?”

“클로버 경, 특별후식을요? 그럽시다.”

“호호… 저도 기대가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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