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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104화 (10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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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처음 보는 저에게 이러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난 사람 보는 눈이 좋은 편이네. 자네 같은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러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 점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같이 식사라도 하고 가지 그러나?”

“아닙니다, 저는 돌아가서 먹겠습니다. 인사할 곳도 있고요.”

“알겠네. 오늘 일을 후회하지나 말게나.”

“후회는 없습니다.”

“으음… 그럼 가보게.”

“그럼 가보겠습니다, 영주님.”

자리에서 일어난 듀크는 연회장을 걸어 나갔고 복도에 있던 하인들의 안내를 받으면서 영주성을 벗어났다.

기사 하거스는 브루노 자작에게 다가와 물었다.

“영주님, 그자를 오늘 처음 보셨을 텐데 왜 그토록 좋은 조건으로 영입하려 하셨습니까?”

“윈스톤 공작각하의 명이셨네. 듀크라는 자를 영입할 수 있나 알아보고, 할 수만 있으면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좋으니 영입하라고 하셨네.”

“윈스톤 공작각하께서요?”

“그래. 그러니 내가 어찌 긴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자네도 보았겠지만 아주 좋은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거절하는 걸 봐. 보통 고집이 아니야.”

“음… 매우 좋은 조건인데도 불구하고 그자가 거부하기에 속으로 무척 놀랐습니다.”

“그럴 거야. 일단은 그가 테이커 남작령으로 간다고 하니 그때까지 잘 감시하도록 해. 그만 나가봐.”

“예. 알겠습니다, 영주님.”

기사 하거스가 나가자 브루노 자작은 수정구로 윈스톤 공작에게 통신을 시도했다.

“윈스톤 공작각하의 통신마법사 케슨입니다.”

“나는 브루노 자작이라 하네. 즉시 공작각하께 보고드릴 일이 있네.”

“그러십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수정구에 윈스톤 공작의 얼굴이 나왔다.

“브루노 자작인가?”

“예, 공작각하. 긴급으로 지시하신 일을 처리하기 위해 듀크라는 자를 만나보았습니다.”

“그래. 어떻든가?”

“제가 제시한 기사제의를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으음… 그럴 것으로 예상은 했네. 그래서 어찌 되었나?”

“일단은 블론 상단의 저택으로 돌아갔는데, 그는 내일 테이커 남작령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왜?”

“테이커 남작령과 트로백 남작령은 열흘 전부터 영지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테이커 남작령에 전쟁용병으로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 자네가 보기에 테이커 남작령이 영지전에서 승리할 것으로 보이는가?”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테이커 남작령보다는 트로백 남작령이 훨씬 유리합니다. 대대적인 전쟁용병을 모집했기에 일방적인 승리가 예상됩니다.”

“하하하… 그것 재미있군. 당연히 패할 것으로 보이는 곳으로 지원을 했으니 무모한 자로 보이겠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공작각하.”

“자네는 그자에 대해 몰라. 난 이번 영지전에서 열세라던 테이커 남작령이 무조건 승리를 할 것으로 생각하네.”

“듀크라는 자 때문이십니까?”

“그래. 그자 혼자서 싸워도 트로백 남작령을 이길 수 있어.”

“그, 그럼 혹시 소드 마스터?”

“글쎄… 나도 직접 본 적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네만… 아마 그럴 거야.”

“공작각하께서 그리 말씀하시면 당연히 그자는 소드 마스터가 맞을 겁니다. 아닙니까? 저의 생각이 틀린 것입니까?”

“하하하… 자네의 눈치도 상당히 빨라졌군. 맞네! 듀크라는 자는 제국에 풍운을 가져올 자야. 자네도 잘 지켜보면서 그자와 친분을 맺을 수 있으면 맺어 두는 게 좋을 것이네!”

“공작각하의 말씀을 잘 새겨듣겠습니다. 이번의 크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하하하… 난 나의 우산 속에 들어 있는 것들을 아낄 줄 안다네.”

“공작각하, 제게 마침 토렌(Toren) 한 뿌리가 들어왔는데 보내드리겠습니다.”

“오오… 그런가? 안 그래도 요즘 체력이 떨어져 고민이 되었는데 고맙네.”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알았네. 혹시 듀크란 자에게서 무슨 변동 상황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공작각하.”

스스스스.

윈스톤 공작의 얼굴이 수정구에서 사라지자 브루노 자작은 집사 리노이를 불렀다.

“영주님, 부르셨습니까?”

“그래. 마법사 펠로우경에게 부탁해서 당장 윈스톤 공작의 저택으로 토렌 한 뿌리를 보내게.”

“그 귀한 걸 말입니까? 아, 알겠습니다.”

“음… 귀한 거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다시 구하면 되니까.”

브루노 자작이 말한 토렌은 영초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얼음의 땅 아이스랜드에서 자라는 것으로, 아무 장소에나 자라지 않고 꼭 노천온천이 생겨난 곳에서 자라는데, 화이트 베어가 온천에서 자라는 토렌의 열매를 따 먹고 배설한 것에 씨가 들어 있다가 싹이 나며 자라게 된다고 전해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온천수의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싹이 난 지 세 달 만에 열매를 맺는다.

또한 신비하게도 하루 만에 열매에 꽃봉오리가 생기며 다시 하루 만에 꽃이 활짝 피어나는데, 그 향기의 유혹에 이끌려 멀리 있는 화이트 베어도 찾아온다고 전해진다.

토렌의 향기를 맡고 화이트 베어가 그걸 따 먹으면 토렌은 금방 시들며 죽어버린다.

그렇기에 토렌이 열매를 맺어 꽃봉오리가 생겨 피기까지 하루의 시간만 허락된다. 따라서 토렌을 원하는 자들은 그때의 시간을 놓치지 않고 캐야 했다.

신기하게도 일단 캐내면 토렌은 생명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모습이 유지되는데, 그것은 7일간 유지되며 그 이후에는 바로 시들어버린다.

그렇기에 아주 귀하며 영초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만성피로나 과로, 정력이 약해진 사람에게 특효였다.

토렌은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없는 것이라 경매에 나오기가 무섭게 팔렸다.

귀족들이 막대한 돈을 지급하고 벌떼같이 달려들어 구입하려고 하는 것이 이 영초였다.

스너비 왕국의 왕비 올리비에는 어제부터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잠을 자도 편하지 않았고 신변에 꼭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때문에 사고가 일어날까 두려워 외출도 일절 하지 않았다.

한편 남편인 하벨 국왕은 고민거리가 있는 건지 얼굴이 굳어 있어서 그녀가 말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가 지하 연무장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본 후론 더욱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폐하, 왠지 마음이 불안해요.”

“올리비에,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랑해요, 폐하“

“나도 사랑하오, 올리비에“

닭살스러운 대화를 주고받은 후 연무장 안으로 들어간 하벨 국왕은 문을 닫았다.

왕비인 올리비에는 문 앞을 지키는 국왕친위대원들에게도 경비를 철저히 해줄 것을 명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왕비마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믿겠어요.”

올리비에는 하루에 한 번씩 연무장으로 와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보통은 빠르면 5일, 늦어도 10일을 넘지 않았고 돌아오던 그가 이번에는 15일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곧 나오겠지 하면서 기다린 지 15일이 지나고, 16일 아침이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연무장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역시나 우려한 대로 하벨 국왕은 보이지 않았다.

“친위대장, 국왕폐하는 어디에 계신 것이오?”

“허억, 국왕폐하께서 안에 계시지 않으셨습니까? 연무장 밖으로는 전혀 나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왕비마마.”

“그토록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어! 저, 저건?”

연무장의 단 옆에는 편지가 놓여 있었다.

편지를 펼친 올리비에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손은 부르르 떨렸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사랑하는 나의 왕비 올리비에, 이렇게나마 글을 남기오.

고된 시련의 운명이 내게 다가온 모양이오.

거대한 해일처럼 밀려오는 운명이라 피하지는 못할 것 같소.

왕국의 전반적인 산적해 있는 일들은 신료(臣僚)들에게 잘 지시해놓았으니 한동안은 국정운영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다만 내가 걱정되는 건 왕비 올리비에라오.

내가 없는 동안 여러 모로 힘들겠지만 잘 이겨내주구려.

내가 연무장을 벗어나 수련하는 곳은 이곳에서 멀리 떨어진 망망대해가 될 것이오.

몸속에서 내가 통제하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힘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기에 이 힘을 어떻게 하든지 소비하거나 조취를 취해야만 내가 안전할 듯싶소.

그래서 먼 곳으로 떠나는 것이오.

예상한 대로 잘 끝나면 며칠 내로 돌아올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돌발적인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나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소.

예전에 난 나의 미래를 전부 보았다오.

어떠한 어려운 시련이 있을지라도 난 죽지 않소.

그러니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마시오.

사랑하오, 나의 왕비 올리비에!

편지를 전부 읽은 올리비에의 두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피어났다.

“아… 나의 사랑, 클로버 폰 하벨 국왕폐하. 전 돌아오실 때까지 울지 않을 거예요. 이제부터는 좀 더 강한 마음으로 기다릴 거예요. 그때까지 안녕, 나의 사랑!”

다음 날.

스너비 왕국의 모든 신료들이 긴급하게 모여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이번 긴급대책회의는 실종된 하벨 국왕을 찾기 위함으로, 땅과 바다에서 대대적인 수색활동을 벌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런 중차대한 일을 이웃 왕국인 아비린 왕국과 포에니 왕국에서 알게 되면 또다시 전쟁의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대외적으로는 군사훈련이라 말하면서 수색활동을 두 달간 실시하기로 했다.

선착장에는 함포로 무장한 군용함선이 모였고, 함선은 먼 바다로 항해를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해군의 군사훈련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실종된 국왕폐하인 하벨을 찾기 위함이었다.

한 개의 함대만 동원된 것이 아니었다.

10척으로 이루어진 캐랙선 부대가 무려 10개, 함대는 그렇게 먼 바다를 향해 두 달간의 일정으로 부챗살처럼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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