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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이번에도 스테프는 켈란의 추임새를 가볍게 무시하고 마치 연극 대사를 읊듯 장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하는 나의 분신들아, 너희에게 이르노니 지금 이 순간부터는 그 누구도 중간계에 헌신하지 못한다. 이를 어길 때에 소멸을 당할 것이니 그렇게 알거라.’ 이렇게 창조주께서는 말씀 하셨다. 결국 두려움에 떨던 신들은 각자의 계로 돌아갔다. 이렇게 해서 이후부터는 천계, 마계, 정령계, 사의계의 신들은 그 누구도 중간계에 헌신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창조주께서 직접 의지를 펼치셨기에 그 어떤 신들도 중간계에 본체가 헌신을 하려고 해도 불가능해져버렸다. 99명의 신이 전부 힘을 합해도 차원의 신 창조주의 권능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이후에 소환마법에 따라 힘의 일부가 헌신하기는 했지만 본체는 아니었다.]
스테프는 목이 멘 듯 침을 꿀꺽 삼키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중간계를 책임질 종족도 직접 창조를 하셨는데, 신에 버금가는 능력을 갖춘 드래곤이었다. 99명의 분신 중에 차원의 신 창조주께서는 첫째 혼돈의 신 카오스를 가장 사랑하셨다. 카오스께서는 어떤 계에도 속하시지 않으셨는데, 거처를 창조주의 곁에 함께하기로 하셨다. 카오스께서 창조주 곁으로 가시기 전에 그분과 친했던 5명의 신을 부르셨다. 그분들이 신의 아티팩트를 창조한 신들인데,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아티팩트를 그냥 두기에는 너무 강력한 힘이라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하시다가 어둠의 마신 벨제르티스의 제안으로 중간계에 던지시고는 각자 되돌아가버리셨다. 그것이 신의 권능과 힘 일부가 들어 있는 신의 아티팩트 6개다.]
매직 스태프에게서 태초와 창세기에 대해서 전해들은 켈란은 무척 놀라워하며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좋아하며 바람의 계곡 오크 성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오전.
듀크는 블론 상단의 저택에서 걸어 나와서 시마 용병길드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귀엽게 생긴 18살 정도의 금발 아가씨가 듀크를 반갑게 맞이했다.
“용병으로 가입하고 싶어서 왔는데요.”
“아, 그러세요? 여기 용병 가입신청서를 작성하세요. 가입비는 5실버입니다.”
“여기 5실버 있습니다.”
듀크는 5실버를 금발 아가씨에게 내밀고 그녀에게서 용병 가입신청서를 받아 작성했다.
“작성 다 했습니다.”
“잠시 확인해볼게요.”
제대로 작성되었는지 확인한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용병 가입신청서는 제대로 작성하셨어요. 이제 용병의 등급을 결정하기 위해 시험을 거쳐야 해요.”
“시험은 언제 합니까?”
“옆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시험장이 있고요. 바로 시험을 볼 수 있어요. 그러기 전에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그게 뭡니까?”
“시험의 성적에 따라 용병의 등급이 매겨진 용병패를 교부받는데, 등급별로 용병패의 재료가 달라서 그것을 찾을 때는 별도의 비용을 부담하셔야 해요.”
“그럼 그렇게 하죠.”
“그럼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세요. 안에 시험관이 있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듀크는 문을 열고 시험장 안으로 들어갔고, 얼마 후에 그곳에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배가 나온 시험관이 나타났다.
“메리, 이 응시자는 B급이니 그리 알고 용병패를 교부해줘.”
“알겠어요, 벨라드.”
메리라는 금발 아가씨는 은색 직사각패를 금속 틀에 끼워 넣었다.
번쩍.
기이한 빛이 순간 번쩍이다가 사라졌고, 금발 아가씨는 금속 틀에서 패를 꺼냈다.
“여기 듀크 씨의 B급 용병패가 나왔어요. 지금 찾아 가실 거예요?”
“예. 얼마입니까?”
“2실버예요.”
“여기 2실버 있습니다.”
듀크는 용병패를 받아들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직사각형의 용병패 앞면에는 롱소드가 표면에 도드라지게 양각으로 새겨져 있었기에 반입체감이 느껴졌다. 롱소드의 밑에는 B급이라 새겨져 있었다. 또한 뒷면에는 대륙어로 듀크라는 이름과 오늘의 날짜, 대륙력 그리고 ‘시마 용병길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용병패는 마법으로 처리와 마감이 되어 있었기에 위조는 불가능할 듯했다.
‘이로써 용병패도 만들었으니 대륙을 마음대로 여행해도 되겠어.’
“용병패에 이상한 점이라도 있어요?”
“아, 아닙니다. 저…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혹시 영지전이나 전쟁이라도 일어난 곳이 있습니까?”
“그건 왜요?”
“전쟁용병으로 참여할까 하고요.”
“잠시만요… 아, 여기 있군요. 10일 전에 시마에서 남동쪽으로 28킬로미터 떨어진 테이커 남작령과 이웃 트로백 남작령 간에 영지전이 일어났는데, 긴급으로 양쪽에서 용병을 모집 중이에요. 어때요?”
“그렇습니까?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알 수는 없나요?”
“그럼 1실버의 정보료를 주셔야 해요. 다만, 두 곳 중 한곳에 전쟁용병으로 지원하신다면 정보료 없이 알려드릴 수 있어요.”
“그럼 지원을 할 테니 알려주세요.”
“좋아요. 그럼 알려드릴게요. 먼저 테이커 남작령에 대해서 설명해드릴게요.”
테이커 남작령은 12개의 마을을 소유하고 있으며, 영지민은 4천2백 명이었다. 또한 철광석 광산을 하나 개발해 지금도 철광석을 생산하고 있었다. 영지병으로는 기사 3명에 기병 120명, 보병 35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트로백 남작령과의 영지전 때문에 이번에 전쟁용병을 350명 모집했다.
트로백 남작령은 15개의 마을을 소유하고 있고, 영지민은 4천7백 명이다. 암염광산이 하나 있으며, 영지병으로는 기사 5명에 기병 2백 명, 보병 45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번에 전쟁용병으로 150명을 모집했다.
두 영지를 비교해보니 트로백 남작령이 모든 면에서 조금 더 나았다. 용병모집에서 약간 적게 모집했기에 서로 비슷한 전력이라 판단되었다.
‘으음… 서로 전력이 비슷해졌겠군. 어느 쪽에 지원할까?’
“듀크 씨, 테이커 남작령에 지원하실 거예요? 아니면 트로백 남작령으로 지원하실 거예요?”
“어느 쪽으로 지원하는 게 좋겠습니까?”
“트로백 남작령으로 지원하시는 게 나을 거예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영지전이 열흘을 넘기게 되면서 트로백 남작령에서 시마뿐만 아니라 다른 곳의 용병길드에도 의뢰해 전쟁용병들을 대거 모집한다는 소문이 있었거든요.”
“소문만 있는 겁니까?”
“호호… 듀크 씨는 정말 예리하시군요? 그래요. 오늘 시마에도 트로백 남작령에서 집사가 직접 달려와서 여관에 묵고 있어요. 내일 출발할 예정인데, 그는 벌써 전쟁용병을 80명이나 모집했어요. 내일 출발할 때쯤엔 1백 명은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영지전은 트로백 남작령의 승리로 끝나겠네요.”
“아마 그럴 거예요. 들리는 정보로는 벌써 3백 명 정도를 전쟁용병을 확보해두었다더군요. 그러니 어찌 트로백 남작령이 이기지 않겠어요?”
“음… 그럼 난 테이커 남작령으로 가겠습니다.”
“예? 뭐, 뭐라고요? 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가겠다고요?”
“예, 약자 편에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거든요.”
“호호… 듀크 씨는 위험한 생각을 하고 계시는군요?”
“테이커 남작령에서는 언제 옵니까?”
“그쪽에서도 사람이 와 있어요. 내일 오전에 출발한다고 했으니 용병길드 앞으로 가시면 될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듀크는 용병길드를 나와서는 블론 상단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의 정문 앞에는 무장한 병사 50명이 서 있었다.
이때 롱소드를 허리에 차고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말을 탄 기사가 듀크에게 다가왔다.
“혹시 이름이 듀크가 맞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신지?”
“영주님의 기사 하거스요. 영주님께서 찾으시니 같이 가셔야겠소.”
“저를요? 도시 시마에는 처음 와보는데 영주님께서 저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그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소. 따라오시오.”
‘으음… 혹시 나를 감시하던 그놈 때문인가? 일단 가보면 알겠지.’
“듀크 님, 혹시 영주님께 무례를 저지른 적 있어요?”
어느새 릴리가 듀크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는 걸어가면서 뒤돌아보며 답했다.
“이곳의 영주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난들 압니까?”
병사들과 기사 하거스의 뒤를 따라 내성 안에 있는 영주성으로 향한 그는 잘 조성된 길을 따라 성의 정문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폭 10미터 정도 되는 해자가 설치되어 있었고, 물이 채워져 있었다.
그그그긍.
쇠고리로 연결된 철로 제작된 문이 스르르 내려왔다.
다각다각.
말을 탄 기사 하거스가 앞장서자 무장한 병사들과 함께 듀크가 영주성 안으로 들어갔다.
성벽 안에는 광장이 있었고, 무장한 병사 2백 명 정도가 검이나 스피어를 들고 서로 대련하고 있었다.
기사 하거스가 말에서 내리더니 앞장을 서면서 말했다.
“이쪽이니 날 따라오시오.”
“…….”
그를 따라 안으로 걸어 들어갔더니 긴 복도가 나왔다. 이윽고 복도의 끝에 가까워지자 옆면에 문이 하나 열려 있었고, 그곳으로 기사가 들어가기에 듀크도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연회장이었는데, 긴 테이블에는 척 보기에도 귀족으로 보이는 금발의 중년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사 하거스가 말문을 열었다.
“영주님이시니 인사를 드리시오.”
“영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듀크라 합니다.”
“자네가 듀크였군. 이리로 와서 앉게나.”
“예, 영주님.”
듀크가 의자에 앉자 브루노 자작이 그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 나의 기사가 될 생각은 없나?”
“기사라니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내가 불러서 이런 말을 하니 당혹스럽겠지만, 자네의 능력을 높이 평가해서 그러니 잘 생각해보게나.”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저는 용병길드에 등록해서 용병패까지 받았습니다.”
“그런가? 그래도 용병보다는 기사가 여러모로 좋지 않겠나?”
“전 대륙을 여행해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허허… 대륙을 여행해보고 싶다라… 나의 기사가 되면 휴가를 줄 테니 그때 갔다 오면 어떻겠는가?”
“말씀은 고맙습니다만,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으음… 알았네. 그럼 이곳 시마는 언제쯤 떠날 것인가?”
“테이커 남작령으로 내일 오전에 떠날 생각입니다.”
“테이커 남작령에는 왜?”
“전쟁용병으로 자원했습니다.”
“나도 테이커 남작령과 트로백 남작령에서 영지전이 일어난 것을 알고 있네만, 왜 좀 더 유리한 트로백 남작령으로 가지 않는가?”
“약자 편에 들어가는 게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그쪽으로 자원했습니다.”
“허허허… 자네는 위험한 생각을 하는군.”
“…….”
“어쨌든 난 자네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