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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흰 드레스를 입은 제니퍼는 긴 테이블의 끝의 중앙에 앉았고, 듀크는 제니퍼의 오른쪽에 앉았다.
“그동안 제대로 대접을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오늘은 특별 식으로 저녁식사를 대접하려 하니 맛있게 드셨으면 해요.”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셔서.”
“오크들로부터 위급한 상황에서 저와 일꾼들의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이 정도는 약과지요 절대로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아닙니다. 진정으로 신경 써주시는 게 느껴집니다.”
“릴리! 식사를 내오라 해라.”
“예, 아가씨.”
듀크는 아이스랜드에서 태어나고 이때까지 살았기에 이런 제대로 된 귀족의 식사는 처음이었다. 입을 살살 녹이는 주방장 특선 요리에 모처럼만에 듀크의 입은 호강했다.
“어때요, 입에는 맞으세요?”
“예, 아주 맛있습니다. 입에서 살살 녹는군요.”
“호호… 주방장이 이 말을 들으면 아주 좋아하겠어요.”
간단하게 말을 주고받으며 마침내 두 시간의 식사가 끝났다. 제니퍼가 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차를 마시며 말했다.
“혹시 저희 블론 상단에서 일해보실 생각이 없으세요?”
“감사한 말씀입니다만, 제국과 대륙을 여행한다는 목적이 있기에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그럼 시마에는 얼마나 계실 거예요?”
“글쎄요. 용병길드에 용병으로 등록한 후 용병패를 가지고 여행을 해야 할 테니 며칠은 걸릴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 그럼 그동안은 저희 집에서 보내시면 되겠네요.”
“그렇게 해도 실례가 안 될지 모르겠습니다.”
“실례라니요.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하녀는 듀크를 2층의 한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으로 들어간 그는 양손을 머리 뒤로 교차해서 침대에 누웠다.
스스슷, 처억.
그 시각, 정원에 나무 위 갈색 로브를 입은 록시가 살짝 내려섰다. 그는 듀크가 있는 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
“흐… 블론 상단의 마차를 얻어 타고 간단하게 시마까지 들어왔구나.”
그때였다. 누워 눈을 감던 듀크가 이내 눈을 뜨면서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창문이 닫혀 있었기에 밖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그런 것이 장애가 될 수는 없었다.
“네놈이 어떻게 여기까지… 나를 추격한 건가?”
듀크의 텔레파시를 받은 록시는 흠칫 거리면서도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흐흐… 너에게 관심이 많아서 말이야.”
나직하게 말을 했기에 주위 사람이 들을 수 없을 테지만 록시를 주시하고 있던 듀크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나에게 관심을 끊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길이다.”
“흐… 제안 하나 해도 될까?”
“어디 들어나 볼까?”
“내가 모시는 분이 계시는데 만나볼 의향이 있나?”
“아니 없어. 난 내 마음대로 하고 싶거든.”
“그럼 너의 뒤를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그럼 넌 죽는다.”
“흐흐… 검술연습을 하는 걸 보았지만 날 죽이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과연 그럴까?”
퍼억.
갑자기 록시의 가슴에 격중음이 터짐과 동시에 록시의 신형은 사라져버렸다.
그 바람에 록시의 뒤쪽에 있던 나무의 잎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졌다.
“호오? 눈치 하나는 빠른 놈이군.”
듀크는 의지만으로도 살인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는데, 록시는 그것을 뒤늦게 눈치 채고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스스스스.
저택과 수백 미터 떨어진 어느 평민의 집 어두운 담벼락에 록시가 나타났다.
그는 비틀거리다가 이내 주저앉았다.
울컥.
“끄으으… 검술을 보면서 느꼈지만 정말 무서운 자군. 예전에 만났던 소드 마스터보다 강한 자인 것 같아.”
킬라스 제국에는 공식적으로 9명의 소드 마스터가 있었다. 록시는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삼십대 초반의 소드 마스터 이안(Ian)백작에게 8년 전에 도발했다가 검술도 배우지 못하고, 그가 내뻗는 무형의 의지를 담은 기운에 뒤로 날아가 피를 토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도 듀크처럼 강하지는 않았다.
그 당시 록시는 마법과 검술을 한창 배우던 때라서 지금보다 실력이 한참 모자랐다. 하지만 블링크 마법과 은신법으로 그대로 도망쳐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때 이안 백작에게 맞섰다면 그날 록시는 오러 블레이드에 몸이 두 동강이 나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소드 마스터는 두려운 존재였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면서 어쌔신의 각종 은신법과 기습 공격술을 익힌 상태였다.
또한 7서클의 대마법사에게 혹독하게 배우고 익혔기에 마법도 6서클 중급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그가 아직 정체도 파악하지 못한 자의 무형의 의지를 담은 기운에 당했고, 순간적인 판단으로 몸을 피하긴 했지만 이렇게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게 되었다. 그렇기에 록시는 듀크에게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으… 듀크라고 했던가? 정말 무서운 자라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아. 이건 솔직한 심정이야.”
우욱, 울컥.
록시는 검붉은 피를 다시 한 번 내뿜고 비틀거리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부족장인 하프오크 켈란은 렌달 부족이 있던 자리에 축성된 제2의 오크 성에서 한동안 산적한 일을 처리하느라 바쁘게 지냈다.
“취익… 믿을 수 있고 똑똑한 간부 오크들에게 모든 일을 나누어 지시했더니 알아서 일을 잘 처리하는군. 대단히 만족스러워, 취익.”
켈란은 그동안 6서클 마스터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해 7서클에 오르지 못하고 마법이 정체되어 있었다. 때문에 이번에 시간을 내서 7서클에 오르려고 수련계획을 잡았다.
그를 오크 전사들을 1천 마리씩 나누어서 부대를 편성하고 그들의 부대장을 천부장이라고 명명했는데, 그런 천부장급 오크 전사들이 26마리나 되었다.
또한 그런 부대 10개를 묶어서 군단이라고 명명하면서 군단장이라고 부르도록 했다. 군단장이 현재는 3마리, 즉 오크부대원들은 총 3만이었다.
“취익…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는 동안 너희는 내가 명령했던 일을 잘 처리하도록, 취익.”
“취익… 옛, 대부족장님, 취익.”
우우웅.
켈란이 매직 게이트의 손잡이를 잡자 기이하게도 공명음이 일었다.
문을 열자 안은 온통 칠흑같이 어두웠다. 하지만 전혀 켈란은 개의치 않고 안으로 성큼 들어간 다음 문을 닫았다.
번쩍.
문틈 사이로 환한 빛이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원거리 이동을 한 것이다.
딸각.
바람의 계곡에 있는 오크 성의 매직 게이트가 설치된 곳에 문이 열리면서 켈란이 걸어 나왔다.
“취익… 어서 오십시오, 대부족장님.”
“취익… 그래, 수고한다. 별일은 없느냐?”
“예. 없습니다, 취익.”
“취익… 좋아, 계속 수고하도록.”
대부족장실로 들어간 켈란은 그곳에서 천부장급의 오크 전사들에게서 보고를 받고 간단하게 지시를 하고 암벽의 동굴 던전으로 향했다.
동굴 던전 입구에는 정신계 마법을 걸어둔 트롤 10마리가 가디언으로서 충실하게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이 동굴의 던전은 켈란에게는 마법의 고향 같은 곳이었다. 때문에 트롤 가디언에게 이곳을 지키라고 지시했던 것이다. 또한 인근에 있는 오크 전사 1천 마리로 하여금 이중으로 철통 경비를 맡게 했다. 그것도 모자라 동굴에 있는 던전의 깊숙한 곳에 있는 광장의 입구에도 알람 마법과 결계를 쳐두었다.
켈란은 동굴광장의 둥근 단에 앉아서 마법서에서 보았던 것을 천천히 하나씩 떠올리면서 깨달음을 얻고자 수련을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타고난 머리와 마나 친화력에 후천적인 노력으로 단기간에 6서클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그런 처음과도 같은 마음으로 그는 다시 수련에 임했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련을 한 지 8개월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그 이상의 깨달음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을 하나씩 되새겼기에 어떻게 보면 어느 정도의 수련성과를 얻었다 할 수 있었다.
“취익…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 잡히지 않는구나, 취익.”
그만큼 오크 천재에게도 깨달음은 쉽게 오지 않았고, 켈란을 힘들게 했다. 켈란은 답답한 마음에 스승이라 할 수 있는 마법서를 다시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문뜩 그동안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마법서 마지막장에 힌트가 있었다. 바로 큰 그림 아래쪽에 낙서를 한 듯 보이는 작은 그림에 광장의 한 부분을 그려놓았던 것이다.
흐릿하게 여기를 누르라는 룬문자의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예전에 마법을 배웠을 때 그곳을 손가락으로 눌러보았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어서 낙서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늘 다시 보니 참으로 이상했다. 7서클의 대마법사가 이런 곳에 한가하게 낙서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법서의 그림대로 광장의 벽으로 걸어가 보았고 그곳에 마법서보다 더 희미하게 그려진 그림을 볼 수 있었다. 뚫어지게 쳐다보지 않으면 도저히 발견하지 못할 것 같은 그림이었다.
“취익… 이러니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지, 취익.”
마법서에 쓰여 있는 대로 손가락으로 그곳을 눌러보았다.
꾸욱.
몇 초가 지났지만 아무런 현상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척 실망한 켈란은 중얼거리면서 손가락을 그곳에서 거두었다.
“취익… 내가 착각했나 보군, 취익… 아, 아니 이건?”
우우우웅.
공명음이 터지면서 작은 암벽의 그림에서 빛이 일어났다. 그 빛은 한곳으로 모였다가 순간적으로 켈란의 이마를 향해 정통으로 뻗어 나와 그의 이마로 스며들었다.
“취익… 이게?”
멍한 표정이 된 켈란이지만 머릿속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마법서를 남긴 7서클의 대마법사가 남긴 기연을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얼굴은 점점 희열에 들떴고, 입에서는 침이 흘러내렸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그렇게 굳어 있던 그는 스르르 허공으로 떠올라 허공에 누운 상태가 되었고 이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두둑, 우둑.
마치 무인들의 환골탈태의 과정이 일어난 듯 몸집이 커지면서 땀구멍 속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끈적끈적한 액체가 나왔다. 또한 입고 있던 옷도 몸집이 커지면서 찢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몸에서 허물이 세 번이나 벗겨진 그는 바닥으로 스르르 내려왔다.
번쩍.
켈란의 눈이 떠지면서 안광이 1미터나 뻗어 나왔다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취익… 드디어 깨달음을 얻어서 7서클에 올랐다, 취익.”
비록 하프오크의 몸이지만 켈란의 몸이 재구성되어 오크로서는 최상의 몸이 된 것이다. 또한 사고를 당하지만 않으면 5백 년은 살 수 있게 되었다.
“취익… 몸에서 힘이 넘쳐나는구나. 이것이 진정 7서클? 취익.”
생각할수록 정말 놀라웠다. 6서클 마스터와 7서클은 한 단계의 차이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몸이 재구성되는 것만 봐도 느낄 수 있었다. 한 단계 차이긴 하지만 어떤 마법을 펼치더라도 이전과는 약 10배가량 차이가 날 것이다.
“취익… 좋구나, 좋아! 취익.”
암벽의 그림을 누르면서 보았던 환상 속에서처럼 마나를 일으키자 광장의 천장 부분에서 황금색 빛이 일어나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룬문자와 기이한 도형으로 이루어진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취익… 내가 보았던 것이 저것이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