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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붕붕붕.
모닥불 근처에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날아와서 나뭇가지에 앉았다. 딱정벌레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는데 딱정벌레는 그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수백 미터나 떨어진 나무 위에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수정구를 꺼내어 영상을 보고 있었는데, 수정구에는 가부좌를 튼 그가 비췄다.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딱정벌레에게 마법을 걸어서 딱정벌레의 붉은 눈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즉 딱정벌레가 바라보는 시선은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수정구를 통해서 바라보는 시선과 같았다.
“흐흐흐… 이렇게 하면 은밀하게 감시할 수 있지. 그런데 왜 가만히 앉아 있는 거지? 혹시 명상이라도 하는 건가?”
시간이 흘러서 새벽이 되자 활활 타오르던 모닥불도 시들해져 숯불만 남겼다. 명상을 멈춘 그는 눈을 뜨고 손짓만으로 장작을 모닥불에 더 집어넣었다.
활활활.
다시 모닥불이 크게 일어나더니 어두웠던 주위를 밝혔다.
보리스 마을의 대장간에서 구입했던 바스타드 소드를 꺼내 들고는 검술을 시전했다.
“스네이크 검법.”
쉬익, 파파팟.
그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혼자서 검술을 펼쳤다. 그 모습을 딱정벌레의 시선으로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지켜보는 것도 남자는 눈치 재치 못했다.
“허억, 저, 저건 스네이크 검법!”
스네이크 검법은 제국의 5대 기사 아카데미에서 정규과목으로 가르치는 검술 세 가지 중 한 가지로, 블루문 검법, 골드 크로스 검법과 함께 제국 3대 검법이었다.
스네이크 검법은 3백 년 전에 소드 마스터인 스네이크 백작이 뱀의 움직임을 보고 창안한 검술로 모두 18식이다. 그런데 스네이크 백작이 의문의 실종을 당하면서 후세에 전해지기에는 전6식과 중6식, 후2식 해서 14식만 알려졌다.
전6식은 아카데미에서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배울 수 있지만, 중6식은 스네이크 백작가에서만 가르치기에 그곳에 들어가서 1년간 배워야만 하는 검술이었다.
마지막으로 후6식은 오러 브레이드로 펼치는 검식인데, 후6식 중 후2식만 알려지고 나머지 후4식은 스네이크 백작이 실종되면서 같이 사라져버렸다.
어쨌든 후2식은 스네이크 백작의 동생이 검술을 알고 있었기에 그나마 책에 옮겨놓아서 전해질 수 있었다.
그런 것을 후세의 스네이크가의 가주가 직계자손들만 배울 수 있게 하려고 책에 쓰여 있는 검술을 지우고 가문의 지하 연무장의 벽면에 새겼기에 아무나 배울 수 없게 되었다. 그런 고급검술을 그가 전6식부터 차례대로 펼치더니 중6식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 후6식까지 전부를 펼쳐보였기에 갈색 로브를 입은 자가 놀란 것이다.
이제 겨우 이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키는 것만 해도 놀랄 일인데, 스네이크 검법의 후6식 전부를 펼치는걸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한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저 나이에 오러 블레이드에 스네이크 검법이라니, 이건 사기야, 사기!”
두 가지 중 한 가지도 말이 안 된다 생각했는데 두 가지를 모두 그가 펼치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그가 펼친 검법은 블루문 검법이었고, 한참 후에 그가 마지막으로 펼친 것은 골드 크로스 검법이었다. 너무나 엄청난 광경을 목격한 갈색 로브를 입은 자는 그 자리에서 몸을 덜덜덜 떨었다.
주문을 중얼거리자 수정구에서 빛이 일어나면서 로브의 후드를 쓴 자가 나왔다.
“1번 수정구로 긴급통신을 시도한 당신은?”
“윈스톤(Winston) 님께 빛나는 새벽이라는 이름을 가진 록시(Roxy)가 긴급통신을 요청한다고 전해주십시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윈스톤(Winston)이라는 자는 외부적으로는 킬라스 제국의 공작이었지만 비밀신분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세력이 큰 황금 해골단(Gold skull group)의 조직원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열 명의 마지막 5단계인 황금 해골 그랜드 마스터(Gold skull grand master)의 서열 9위였다.
황금해골단의 고위직에 있는 자였기에 통신을 연결하는 자가 놀랄 만도 했다.
“록시! 무슨 일인가?”
“윈스톤 님, 엄청난 자가 나타났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인지 자세하게 말해보게.”
“제가 실제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블루문 검법에 이어 골드 크로스 검법과 스네이크 검법까지 모두 펼칠 수 있는 자가 있습니다.”
“뭐? 삼대 검법은 아무나 익힐 수 있는 게 아닌데?”
“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자가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켜 실전되었다고 알려진 스네이크 검법의 전6식부터 중6식까지 펼치더니 스네이크가의 직계자손들만 배울 수 있다는 후2식을 포함해 나머지 후4식까지 모든 스네이크 검법의 18식을 다 펼쳐 보였다는 것입니다.”
“뭐, 뭐라? 그게 사실인가?”
“제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제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으음… 믿기 어려운 일이군.”
“그자는 이십대 초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음…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놈인 것은 분명하군. 거기가 어디인가?”
“여기는 바람의 계곡입니다.”
“바람의 계곡?”
“브루노 자작의 영주성이 있는 도시 시마(Cyma)까지는 말로 오는 데 3일이 걸릴 것입니다.”
“아… 이제야 알겠어. 제국의 북부 국경과 가까운 곳이군.”
“그렇습니다. 그자가 향하는 곳은 도시 시마입니다.”
“브루노 자작에게 내가 말해 놓겠지만 자네는 그자를 놓치면 안 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으로는 안 돼. 자네의 목을 걸도록.”
“으음… 무슨 뜻인지 잘 알겠습니다.”
“자네가 말한 대로 모든 것이 사실이라고 밝혀지면 이번 일의 공으로 자네에게는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에서 무엇이든지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겠네.”
“그런 큰 은혜를? 가, 감사합니다, 윈스톤 님.”
스너비 왕국 왕성의 외성에 있는 영빈관.
그토록 기다리던 마차 열 대가 영빈관의 입구에 도착하자 엘프 여전사 클라우디아는 얼마나 급한지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엘프들이 나왔다.
모두 50명으로 풍요의 숲에서 온 엘프들이었다.
그들은 노예로 팔릴 때만 해도 곳곳에 상처가 있었고, 잘 먹지 못해 기운이 없었다.
그러나 스너비 왕국의 상단에서 엘프들을 노예 경매장에서 사서 스너비 왕국으로 향할 때 상담 사람들이 상처를 치료해주고, 편안하게 쉬게 해주고 싱싱한 과일식사까지 챙겨주자 날로 기운을 차리고 몸도 많이 회복된 것이다.
“셀튼, 브라운 할아버지와 알프 할아버지, 조지야, 바바라, 베시야!”
“클라우디아!”
엘프들은 서로 단번에 알아보고 달려왔고, 바바라가 클라우디아를 껴안았다.
“클라우디아, 살아 있었구나!”
“이게 꿈은 아니지?”
“모두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어요. 자, 안으로 들어가요.”
풍요의 숲에서 온 엘프들은 영빈관의 그랜드 홀로 들어갔다. 연회를 하던 곳이라서 아주 넓었고, 각종 장식이 호화롭게 꾸며져 있는 곳이었다. 홀의 중앙에는 긴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곧 엘프들이 좋아할 만한 각종 과일과 마실 거리가 준비되었다. 서로 죽은 줄만 알았다가 다시 만나니 매우 반가웠고, 할 말도 많았다. 수다쟁이가 된 엘프들은 즐겁게 수다를 떨었다.
“클라우디아, 정말 이게 꿈만 같구나.”
“브라운 할아버지, 저도 그래요.”
“노예로 잡혀서 헤어졌기에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단다.”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여신님의 은총 때문이었는지 국왕폐하를 만나 생명의 은혜를 입고,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어요.”
“우리도 이곳으로 오면서 대충 얘기는 들었단다. 스너비 왕국에서 우리를 노예 경매장에서 사서 데려오는 것이라더라.”
“브라운 할아버지의 말이 맞아. 상처도 심하고 제대로 먹지 못했는데 이곳으로 오는 동안에 상처 치료도 받고 싱싱한 과일도 먹고, 무엇보다도 마음이 편안해져서 회복이 빨리 되었어.”
“우리 중에는 이제 브라운 할아버지가 가장 나이가 많으시니까 부족장이 되셔야 해요.”
“그게 무슨 소리냐? 부족장이라니!”
“이제부터 제가 하는 말을 잘 들으세요. 스너비 왕국의 국왕폐하께서는 우리 풍요의 숲에서 온 엘프들에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주셨어요.”
“그, 그게 정말이냐?”
“그래요. 정말이에요.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카르마 섬이라고 있어요. 비록 섬이지만 예전에 우리가 살았던 풍요의 숲보다도 더 크고 넓은 섬이에요. 그 섬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아… 이게 진정 꿈은 아니겠지?”
“카르마 섬은 몬스터가 없어요. 다만, 작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을 뿐이에요.”
“그럼 생존의 위협은 없겠구나.”
“예, 제가 직접 그 섬에 가봐서 잘 알아요. 오늘은 여기에서 푹 쉬고 내일쯤 그 섬에 가볼 거예요. 앞으로 카르마 섬에는 일체의 인간들이 들어올 수 없도록 왕명이 내려졌어요. 그러니 앞으로는 우리 풍요의 숲 엘프들만 살 수 있어요.”
“아아… 이런 기쁜 일이…….”
“클라우디아, 모든 것이 너의 공이구나. 그런데 국왕폐하께서 어떻게 선뜻 카르마 섬을 우리 엘프에게 내리신 것이냐?”
“이제부터 그걸 말하려고 했어요. 제가 국왕폐하로부터 위급한 상황에서 생명을 구원받았고, 왕성에서 치료를 하면서 보냈어요. 그러면서 당시 가지고 나왔던 엘프 여신의 눈물을 국왕폐하께 맡겼어요.”
“뭐? 엘프 여신의 눈물을 말이냐? 신의 힘이 들어 있는 물건이라서 잘못 사용하게 되면 소멸을 당하게 되는데?”
“예, 저도 그 점을 설명해드렸어요. 그런데 국왕폐하께서 수련하시는 중에 우연히 그것이 몸에 흡수가 되었어요. 국왕폐하 팔에 세계수 잎 문양이 문신처럼 되어 있는 걸 확인한 저는 그 말씀이 사실인 걸 알았어요.”
“진정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도 국왕폐하의 운명이겠지.”
“물건의 주인은 따로 있었구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힘으로 빼앗으시면 어쩔 수 없는 바쳐야 했던 건데 국왕폐하께서는 오히려 저에게 그 사실을 말씀하시며 용서를 구하셨어요. 그에 저는 이것도 운명이라 생각하고 혹시라도 우리 풍요의 숲의 엘프들이 노예로 잡혀갔으니 구할 수 있을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고, 이렇게 직접 노예 경매장에서 가셔서 엘프들을 데리고 온 거예요.”
“음… 그랬구나.”
“음… 하긴, 우리의 능력으로 지키기에는 무리가 있는 물건이었으니 차라리 잘되었구나.”
그날 저녁, 국왕인 하벨과 왕비인 올리비에가 영빈관에 방문해서 풍요의 숲 엘프들을 만났다. 서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서 즐거운 대화가 나누었고, 대체로 앞으로 살게 될 카르마 섬에 대해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다음 날, 엘프들은 선착장까지 국왕 하벨과 왕비인 올리비에가 엘프들의 배웅을 나왔다. 엘프들은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카르마 섬으로 배를 타고 들어갔다. 선착장과 카르마 섬까지는 1.5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어젯밤 대화에서 엘프들이 앞으로는 인간과 전혀 교류가 없는 고립된 생활을 하지 않을 것과 카르마 섬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면서 엘프들이 생산한 물품과 인간이 생산한 물품을 서로 교환하자는 제안을 해서 엘프들의 긍정적인 확답을 받았다.
이로써 풍요의 숲 엘프들은 카르마 섬 엘프로 명명되었고, 그들은 스너비 왕국민들과 교류하면서 무역도 할 것이다.
엘프들은 카르마 섬으로 들어가서 며칠 동안 섬을 정찰한 다음 섬의 가운데 부분에 마을을 형성했다. 인간들이 들어올 수 없는 섬이며 나무가 울창했기에 엘프들에게는 낙원과 같은 곳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카르마 섬에서 살게 된 엘프들은 공식적으로는 스너비 왕국령이지만 자치 섬이 되었기에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되었다.
후우웅, 슈슈슉.
1미터 정도 높이의 허공에 떠서 빠른 속도로 날아가는 그는 계곡을 거쳐 평지 위로 날아갔다. 길가에는 풀이 크게 자라고 있었지만 상관없다는 듯 속도를 늦추고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는 풀을 꺾어 입에 물고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를 쳐다보면서 여유롭게 걸었다.
쿠르르르.
마차 바퀴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그의 뒤쪽에서 들렸다. 그는 길의 중앙으로 걸어가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피하면서 걸었다. 말을 탄 용병들이 그를 지나쳤고, 그 뒤를 따르는 마차의 속도가 줄며 창문이 스르르 열렸다.
“이봐요.”
“…….”
“잠깐만요. 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