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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92화 (9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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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제법 긴 시간 동안 회상에 빠져 있다 보니 따뜻했던 목욕물이 다 식어버렸다.

목간통에서 일어나 몸에 묻은 물기를 닦아낸 그는 옷을 입고 나서 등잔불을 끄고는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편안해서 그는 잠에 금방 빠졌다.

다음 날.

정오가 다 되어서야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음… 이렇게 편안하게 잠을 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

아침식사를 한 그는 120골드를 냈다. 그리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돈을 전부 술을 사는 데 썼다.

여관을 나온 그는 마을에 상점이 세 곳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식량을 비롯해 먹을거리를 취급하는 상점과 무구와 농기구를 제작하는 대장간 겸 상점, 마지막으로 그가 화이트 베어의 가죽을 팔았던 상점이 다였다.

그는 야영을 하면서 먹을 식량과 고기를 구입하고 대장간 겸 상점에도 들러서 중등품의 롱소드와 바스타드 소드, 단검류를 구입했다.

보리스 마을은 규모가 작았다. 하지만 아이스랜드와 마주 보고 있는 곳이었기에 중계무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수십 곳에서 부족들이 잡은 화이트 베어의 가죽이나 다른 동물의 가죽, 물고기 등을 팔고, 식량 또는 칼이나 스피어 같은 각종 철제무기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보리스 마을의 상점은 매입한 상품을 한 달에 한 번 방문하는 블론(Blon)상단에 넘겼다. 블론 상단은 보리스 마을에 들어올 때 각종 물건이나 식량을 수레에 싣고 왔다.

오늘이 바로 블론 상단이 보리스 마을에 들어오는 날이었다.

쿠르르르.

소음을 일으키면서 짐수레 50대와 마차 2대, 말을 탄 용병 50명이 함께 목책의 문을 통해 들어왔다.

마을 사람들이 블론 상단의 짐수레의 뒤를 따라 우르르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상점 세 군데에 필요한 물품을 실은 짐수레 40대는 상점으로 향했지만 나머지 짐수레 10대는 광장으로 향했다.

세 곳의 상점에서 취급하지 않는 각종 물건이 짐수레에 가득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 상단은 한 달에 한 번 보리스 마을에 들어와서는 광장에서 물건을 팔았고, 그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광장으로 우르르 모여들었다.

짐수레에는 온갖 장신구를 비롯해 평민들이 입는 옷, 신발, 담배,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각종 물건으로 가득했다.

한마디로 이동 만물상이라 할 수 있었다.

그도 만물상으로 가서는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옷 몇 벌과 신발, 담요, 천막을 구입했다.

보리스 마을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목책을 벗어나 남쪽을 향해 걸었다.

목책 위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자경대원은 두 시간 정도 있으면 날이 어두워지는데 길을 떠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머리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생각에는 몬스터도 출몰할 수 밤이기에 그의 행동이 무모하게 보인 것이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태연하게 길을 걸어갔다.

숲속에 밤이 찾아오자 그는 장작을 구해서 모닥불을 피웠다.

그리고 불 위에 냄비를 올리고 수프를 끓이기 위해 상점에서 구입한 딱딱한 빵과 고기를 넣어서 끓였다.

후루룩, 쩝쩝.

“음… 내가 끓인 수프이지만 맛있어.”

식사를 마친 그는 차를 끓여 마시면서 책을 꺼내 읽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깊은 밤이 되었고 모닥불도 약해졌다.

잠잘 시간이 되었기에 그는 읽던 책을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고는 천막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모포를 두 장 펼친 후 이불을 덮고 누웠다.

스윽.

장작이 허공으로 떠오르다가 순식간에 모닥불 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불길은 다시 활활 타올랐다.

사사삭.

그때였다. 야영지 주위를 포위한 무리가 숙였던 상체를 세웠다.

근육이 잘 발달된 데다 돼지머리인 것을 보아 몬스터 중에서도 오크가 틀림없었다.

녹이 슨 칼과 이가 빠진 칼을 손에 쥐고 있는 오크들도 있었고 몽둥이나 스피어를 들고 있는 오크들도 있었다.

“취익… 연하고 맛있는 인간 먹이가 누워 있다.”

“잡아먹자, 취익.”

우르르.

오크 열 마리는 무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고 그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오크가 자신의 주위를 포위한 것을 알았지만 그대로 지켜보았던 것이다.

“귀찮은 것들, 죽어라!”

휘리릭, 서걱.

장난치는 듯한 손짓이었지만, 상점에서 구입했던 단검 한 자루가 허공을 날아 오크의 목을 잘라버린 후 되돌아갔다.

오크의 잘린 목에서 분수 같은 녹색 피가 뿜어지면서 목이 없는 오크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런 상황인데도 상황 파악을 못 한 오크들은 도망치지 않고 여전히 그에게 달려왔고 그는 손바닥을 펴서 손을 접었다가 다시 내밀었다.

마치 한 손으로 사람의 등을 미는 듯한 자세였다.

퍼억.

케에엑, 꺼울.

그런 장난 같은 손동작에 오크 4마리의 몸이 뒤로 튕기듯 나가떨어졌다.

울컥.

코와 입에서 녹색 피를 내뿜으면서 부르르 떨던 오크들은 잠잠해졌다. 무형의 강력한 기운에 당해 즉사한 것이다.

그제야 나머지 오크들은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취익… 인간 강하다. 도망쳐야 한다, 취익.”

다섯 마리의 오크는 재빨리 돌아서더니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다. 그는 달아나는 오크들을 보고도 그대로 두었다.

얼마 후 죽은 오크들의 피 냄새를 맡고 50마리의 고블린 무리가 야영지로 접근했다.

하지만 그의 20미터 앞에까지 접근한 고블린들은 몸을 부르르 떨며 공포에 젖은 표정이 되어서는 되돌아갔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죽은 오크들을 가져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3일 후 오후.

그날도 그는 야영지를 냇가에 잡고 인근에서 장작을 구해서 모닥불을 피우고, 냄비를 불 위에 올렸다.

쿠르르르.

그런데 그때, 저쪽에서 일단의 무리가 소음을 일으키면서 접근해왔다.

그들은 그가 보리스 마을을 떠나기 직전 만물상에서 물건을 구입했던 블론 상단이었다.

조금 전에 붉게 물든 석양이 졌기 때문에 곧 어둠이 몰려올 시각이라 그는 야영을 준비했고, 그 모습을 본 블론 상단도 주변에다 서둘러 야영 준비를 했다.

블론 상단은 각자 역할을 나눠서 움직였기에 순식간에 야영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한편 그는 냇가에서 냇물을 길러놓고, 장작을 구해서 모닥불도 세 군데나 피우며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그는 야영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힐끔 블론 상단을 쳐다보고 관심이 없는 듯 자신이 끓인 수프를 떠먹는 일에 열중했다.

모닥불 위에는 평평한 돌 판이 올려져 뜨겁게 달궈지고 있었다.

치이이이.

비곗덩어리를 돌 판에 올려놓고 휘저어서 기름을 발랐다. 그런 다음 두툼한 살코기에 칼집을 내고 약간의 향신료와 소금을 뿌려서 양념했다.

지글지글.

육즙이 흘러나오면서 고기가 먹음직스럽게 익기 시작했다.

그의 가까운 데서 수프를 끓이던 용병은 돌판의 고기를 보고 쳐다보고 군침을 삼켰다. 용병들이 보기에도 고기가 아주 먹음직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야영을 하면서 저렇게까지 음식을 해먹으려면 보통 열성이 필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용병들도 알고 있었다.

“허… 저 친구 대단하군. 맛있겠어.”

그는 용병들의 시선을 외면하고 고기를 구워서 맛있게 먹었고 식사를 마친 그는 이번에는 냄비에 물을 끓였다. 얼마 후 말린 찻잎을 넣고 우러난 찻물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그의 조금 특이한 외모와 행동에 용병들은 관심을 보였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일을 했다.

소화를 다 시켰는지 그는 책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고,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책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모닥불에 장작을 몇 개를 집어넣고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겼다.

블론 상단의 마차 두 대 중 한 대는 상단주의 딸인 제니퍼와 하녀 릴리가 같이 타고 있었다.

제니퍼는 보리스 마을로 상행을 간다는 것을 알고 경험을 쌓고 싶다는 이유로 자청해서 블론 상단을 따라온 것이다.

상행은 별다른 일 없이 보리스 마을에 도착해 일을 마치고 상단으로 되돌아가는 중이었고, 아직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아 순탄한 상행이었다.

제니퍼는 오늘 야영준비를 도우면서 창문 틈으로 냇가에 어떤 남자가 혼자서 야영 준비를 하는 것을 보았다.

호기심에 그를 관찰하다가 그에게서 몇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평민이나 용병들은 차를 잘 마시지 않는다. 간혹 물이 탁하거나 겨울이라서 따뜻한 물이 필요할 때 조금 끓여 먹을 정도인데, 그는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제니퍼는 그의 차 마시는 모습을 보고 심상치 않은 인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책을 꺼내 읽더니 다시 이상한 자세로 앉아서 잠을 자는지 눈을 감은 것이었다.

그의 모든 행동이 특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제니퍼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가씨, 뭘 그리 유심히 보고 계세요?”

“응… 저 남자, 참 특이해.”

“외모는 그런대로 잘 생긴 편인데 귀족은 아닌 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입은 털 코트를 보니 어쩌면 아이스랜드에서 건너온 사람일 수도 있겠어요.”

“아이스랜드?”

“예, 아가씨. 아이스랜드는 1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땅인데요, 너무 추워서 사람이 살기 어려운 곳이지만 몇십 명씩 부족 단위로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도 들어서 알고 있어. 그들이 동물을 잡아서 벗긴 가죽을 보리스 마을에 팔고, 우리 블론 상단이 다시 그것을 보리스 마을에서 구입한다는 것을 말이야.”

“게다가 제국인이라면 몬스터가 출몰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에서 혼자 야영을 하지 않거든요 그런 것으로 보아 아이스랜드 사람이 분명한 듯해요.”

“그렇구나. 그나저나 한 시간이 넘도록 저렇게 앉아 있으면 허리 아프지 않을까?”

“당연히 아프겠죠. 저는 저렇게 10분도 못 있을 거예요.”

“…….”

그는 가부좌를 튼 자세로 두 시간이나 앉아 있다가 자세를 풀고 자리에 누웠다.

“아, 아가씨, 저 사람 이제 자려나 봐요.”

“릴리, 아직 그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어?”

“궁금하잖아요, 아가씨.”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되었다.

용병들과 상단의 일꾼들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식사를 했다.

블론 상단이 야영지를 철거할 때쯤, 그도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쿠르르르.

수레가 소음을 일으키면서 블론 상단이 출발을 했다. 이동하는 마차에 타고 있는 제니퍼와 하녀 릴리는 마차의 창문으로 아침을 준비하는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블론 상단이 모두 떠난 시각, 그는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특별한 목적지는 없었지만 일단 제국의 남쪽을 향해 출발했다.

두둥실.

쉬쉬쉬쉭.

허공으로 떠오른 그는 파공성을 일으키면서 화살이 날아가듯 빠르게 하늘로 날아갔다.

오후가 되자 그는 야영을 할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파릇한 풀이 나 있는 언덕 위에 거대한 바위 세 개가 박혀 있는 곳이었는데, 그중 가장 높은 12미터 높이의 바위 위에 내려섰다.

그는 마법주머니 속에서 저녁식사 준비에 필요한 것을 꺼냈다. 그리고 금속판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 물을 부은 다음 식 자제를 꺼내어 요리를 했다.

쿠르르르.

그런데 그때, 아침에 먼저 출발했던 블론 상단이 저편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블론 상단은 그가 지금 자리 잡은 바위 언덕에서 자주 야영을 했다, 이곳이 야영을 하기 알맞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바위 언덕으로 향하는 블론 상단의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는 10명의 용병 중 바실이라는 용병이 바위 위에 있던 그를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외쳤다.

“저, 저자는?”

“왜 그래?”

바실이 손가락으로 바위 언덕을 가리키자 그것을 쳐다보던 용병들도 깜짝 놀랐다.

“헉,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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