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 Luck-91화 (9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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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권  오크 왕국

보리스 마을은 목책을 두르고 그 안에 거주하는데, 약 5백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목책 위에서 스피어를 들고 경비를 서고 있는 자경대 쪽으로 털 코트를 입은 자가 다가왔다.

자경대원이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여긴 무슨 일로 왔나?”

“아이스랜드에 살고 있는데 이번에 제국으로 가야 할 일이 생겨서 이곳에 들린 것이오.”

“그래? 팔 물건이라도 있나?”

“화이트 베어의 가죽이 몇 장 있소.”

“호오? 제법 돈이 되는 것을 가져왔군. 문을 열어줄 테니 안으로 들어오게.”

“고맙소.”

끼이이이!

목책의 문이 열리자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걸어가다 보면 오른쪽 두 번째 건물이 가죽을 매입하는 상점이니 그리로 가게.”

“그렇군. 고맙소.”

그는 자경대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가 알려준 곳으로 걸어갔다.

가죽을 취급하는 상점은 그의 말대로 찾기 쉬웠다.

상점 안으로 들어서자 배가 나온 중년의 주인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혹시 화이트 베어의 가죽을 매입합니까?”

“예, 그럼요. 상품인지 아닌지 어디 한번 볼까요?”

그는 허리에 묶어둔 마법주머니를 열어 그 속에서 화이트 베어 가죽을 한 장 꺼내어 주인 앞에 내밀었다.

그것을 꼼꼼하게 살피던 주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가죽에 흠이 없고 손질도 잘되어 있군요. 이 정도면 최상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팔려고 하는데 얼마나 받을 수 있습니까?”

“음… 이 정도의 최상품이라면 120골드까지 쳐드릴 수 있습니다. 파시겠습니까?”

그는 잠시 주인의 얼굴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습니다. 팔도록 하죠.”

그가 이렇게 선뜻 화이트 베어의 가죽을 판 것은 주인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비교적 양심적으로 장사하는 정직한 사람이라는 속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발보르 신의 권능을 가진 그라서 사람의 속마음 정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120골드가 들어 있는 작은 주머니를 주인에게 건네면서 그가 물었다.

“혹시 이 마을에 여관이 있습니까?”

“딱 한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나가서 우측으로 걸어가다 보면 출입구 옆에 말과 수레가 세워져 있는 건물이 보일 겁니다. 그곳이 바로 보리스 여관입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파실 물건이 있으시면 다음에 또 들러주십시오.”

“그러죠. 그럼.”

그는 그곳에서 나와 보리스 여관으로 향했다.

상점과는 약 6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보리스 여관이 있었다.

끼이이.

그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라 술을 마시는 사람 몇이 있을 뿐이었다. 테이블이 모두 12개였는데, 그중 2개의 테이블에 술손님 5명이 앉아서 술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술손님들은 털 코트를 입은 그가 들어오자 한 번씩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다시 술을 마셨다.

긴 나무테이블 안에는 배가 나온 사십대 초반의 남자가 금속 잔을 닦으며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룸 있습니까?”

“혼자 묵으실 건가요?”

“예, 그렇습니다.”

“지금은 2인실밖에 없는데 그거라도 드릴까요?”

“어쩔 수 없군요. 그거라도 주십시오. 아, 그리고 식사와 목욕을 했으면 하는데요.”

“목욕탕은 2인실 안에 있고요. 식사는 기본형인 빵과 수프가 나오는 게 있고, 기본형에 스테이크가 추가되는 중급형과 두 가지의 요리와 과일까지 나오는 고급형이 있는데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고급형으로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룸은 2층 205호실로 드리겠습니다. 손님의 숙식비는 5실버인데 선급으로 3실버를 받습니다.”

“골드를 선급으로 내죠.”

“알겠습니다. 여기 열쇠를 받으십시오.”

열쇠를 받은 그는 계단을 올라가서 2층 205호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등잔에 불을 붙이자 룸이 금세 환해졌다.

푹신한 침대에 누운 그는 천장을 쳐다보면서 회상에 잠겼다.

아이스랜드의 화이트 베어는 몸집이 크고 힘이 세기 때문에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몬스터가 거의 없었다.

도리어 화이트 베어를 보고 다른 몸집이 작은 몬스터들이 도망칠 정도였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아이스랜드에서도 북서쪽 해안가 근처에서 살았다.

10년 전, 그의 나이 10살 때 그는 부모와 같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사냥꾼이었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을 하면서 그와 같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냈다.

물개와 유사한 동물을 사냥해온 그의 아버지는 그날도 저녁식사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습격해온 화이트 베어!

아버지는 얼음집이 부서지도록 화이트 베어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보통 화이트 베어라는 놈은 혼자서 살아가는 몬스터인데, 그날은 다섯 마리가 함께 습격해온 것이다.

다섯 마리 중에 네 마리는 비슷한 몸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독 한 마리는 두 배나 큰 놈으로 이마에는 사선으로 베인 상처가 있었다.

그놈이 대장 화이트 베어인 모양이었다.

노련한 사냥꾼이라고 해도 한 마리를 잡는다는 보장이 없는데 5마리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들은 미리 뚫어놓은 동굴이 3개나 되었기에 그중 한곳으로 도망칠 수 있었다. 하지만 며칠간 굶주림에 시달린 화이트 베어라 인간의 냄새를 귀신같이 맡고 추격해왔다.

한 시간 정도를 도주했지만 화이트 베어는 끝까지 추격해왔고, 더 이상 도망치지 못했다. 그들 앞에는 눈에 묻힌 계곡이나 빙하의 갈라진 틈이라 알려진 크레바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활을 쏘아 화이트 베어를 공격했지만 작은 생체기를 내는데 그쳤다. 가죽이 질기고 두꺼웠기에 화살이 박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군데군데가 이가 빠지고 투박한 검을 들고 화이트 베어와 맞섰다.

그러나 화이트 베어가 협공을 했기에 그의 아버지는 목과 옆구리를 물렸고 결국 피를 많이 흘리며 쓰러졌다.

저항할 힘이 없는 그의 어머니 또한 화이트 베어에 물려 쓰러졌다.

혼자 남은 그는 잡아먹히기보다는 그냥 크레바스에 뛰어내리는 것을 택했고, 결국 화이트 베어의 대장을 노려보며 그대로 뛰어내렸다.

눈에 묻힌 계곡은 매우 깊었다. 그대로 수천 미터의 바닥까지 떨어졌으면 시체조차 찾기 어려웠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운이 좋아 그는 한쪽 벽이 툭 튀어나온 곳에 떨어졌다.

눈이 많이 덮여 있어서 충격을 많이 받지 않았기에 다행히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한참을 기절해 있다가 깨어난 그는 앞에 얼음동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상태로 추운 곳에 몇 시간 있다가는 얼어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얼음동굴로 들어갔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자 투명한 막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막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힘을 주어 막을 밀자 막은 다행히도 뚫렸다.

투명한 막 안은 밖과는 온도 차이가 많이 났다.

밖이 영하의 매서운 추위라면, 안은 영상 10도 정도로 전혀 춥지 않았다. 신기한 마음에 그는 안으로 더 들어갔다.

“손님, 식사 가져 왔습니다.”

“…….”

회상에서 깨어난 그는 문을 열어주었다.

테이블에 식사를 내려놓은 소년은 뜨거운 물을 가져와서 목간통(沐間桶)에 채웠다.

소년이 물을 붓는 동안 그는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요리를 먹었다.

소년이 방을 나가자 그는 옷을 벗고 목간통에 들어갔다.

맛있는 요리를 배부르게 먹은 후 따뜻한 물속에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지는 것 같았다. 그의 회상이 다시 이어졌다.

그가 얼음동굴 속으로 계속 들어가자 수직으로 돼 있는 얼음벽이 나오면서 동굴 끝에 도착했다.

얼음벽에 등을 기대고 앉자 시체 한 구가 눈에 들어왔다.

시체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마치 곤한 잠에 빠진 듯한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시체의 생김새는 왠지 모르게 자신과 많이 닮은 듯했고 비교적 잘생긴 편이었다.

또한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그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런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재질이 아주 얇아서 얼어 죽기 알맞은 옷이었다.

아이스랜드는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추운 날씨가 이어졌다. 그래서 모두 털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었는데,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죽은 이 사람은 왜 이런 옷차림인가.

그는 죽은 사람의 가슴의 앞부분이 조금 튀어나온 것을 느끼고는 상의를 조금 잡아당겨다.

그러자 툭 하고 손바닥만 한 보석함이 옆으로 떨어졌다.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 보니 금괴 하나와 보석이 박힌 반지와 목걸이가 들어 있었다.

그것을 손에 든 그는 이것들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더 없나?”

시체의 품속을 뒤지니 그곳에는 운명과도 같은 눈과 얼음의 신 발보르(Valbor)의 권능과 힘의 일부가 들어 있는, 미스릴로 만들어진 대거(Dagger) 자히르(Zahir)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을 단순한 대거(단검)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검집에 새겨진 눈의 결정을 보고 검을 뽑아 살펴보다가 살짝 스치고 말았다. 살이 베이면서 그의 피가 칼날에 묻어났다.

그로 인해 잠자고 있던 대거 자히르가 깨어났다.

그의 생각을 읽은 자히르는 그에게 힘을 주겠다고 말하면서 그 조건으로 자신을 데리고 대륙으로 나가 1만 명의 피를 먹게 해달라고 말했다.

대륙으로 나간 그는 자히르의 칼날에 피를 듬뿍 먹여주었고, 그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무려 10년간 잠에 빠져 있다가 6개월 전에 깨어난 것이다.

하룻밤 정도 잠을 잔 것 같았는데 무려 10년이 지났다고 자히르가 말하니 황당했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잠에 빠져 있는 동안, 자히르는 주위의 냉기를 끌어당겨 그의 몸속에 주입해주었다.

그로 인해 그는 성장하여 신장이 2미터나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먹은 것이 없었기에 몸은 상대적으로 비쩍 말라 있었다.

이것은 외형적이었고, 그의 내면에도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자히르를 소유했던 옛 주인들이 가지고 있던 지식과 생각 등 모든 것이 그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또한 텔레파시와 염력, 눈과 얼음의 신 발보르의 권능과 힘을 100분의 1 정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사용해보기 위해 그리고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크레바스에서 나온 그는 부모님을 죽인 원수인 화이트 베어를 찾아다녔다.

마침내 약 4개월 만에 50명이 모여 사는 부족을 습격하고 죽은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고 있는 대장 화이트 베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마에 상처가 있고, 몸집이 다른 놈들보다 두 배나 큰 대장 화이트 베어를 똑똑히 기억하는 그는 부하 화이트 베어가 20마리가 모여 있는 것을 보았다.

화이트 베어들은 자신의 무리로 걸어오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는 예전의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자히르와 계약하면서 눈과 얼음의 신 발보르의 권능과 힘의 일부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또한 텔레파시와 염력, 상대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독심술까지 펼칠 수 있었기에 부하 화이트 베어는 그의 상대가 못 되었다.

간단하게 대장 화이트 베어와 부하 화이트 베어 20마리를 물리친 그는 그들의 가죽을 벗겨냈다. 그리고 전멸한 부족의 얼음집을 뒤져 쓸 만한 각종 물건을 찾았다.

부족장의 얼음집에서는 마법주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수레 두 대 분량의 물건을 집어넣을 수 있는 마법주머니였기에 아주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날 이후 그는 대륙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고, 지금 킬라스 제국령의 최북단이며 국경마을인 보리스(Boris)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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