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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군마라고는 하지만 좀 더 오랫동안 먹으려면 훈제나 육포로 만들어 먹어도 돼.”
“아… 알겠습니다. 당장 그렇게 명해놓겠습니다, 국왕폐하.”
이렇게 해서 난데없이 성안에 있던 요리사들이 대거 차출되었다.
병사들이 수레에 죽은 군마를 실어 성안으로 옮겨놓자, 그 군마를 본 주방장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국왕폐하의 특명으로 요리사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던 식칼을 들고서는 군마를 부위별로 잘 썰어 나누고는 칼집을 넣거나 향신료를 듬뿍 넣어서 각종 요리를 만들었다.
제논성의 죽은 병사들과 적 병사들에게서 수거한 무기류는 모두 성안에 있는 대장간으로 가져갔다.
그것들을 뜨거운 용광로에서 다시 녹여 새로운 무기로 거듭날 것이다.
또한 죽은 병사들의 시신은 운반해서 잘 쌓았다.
“시신이 잘 타도록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라.”
“예, 알겠습니다.”
“서둘러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고 있다.”
횃불을 손에든 병사가 불을 붙였다.
화르르…활활.
기름을 부어서인지 시신에 순식간에 불이 붙어 잘도 불길이 치솟았다. 연기와 시신에서 나오는 노린내가 진동했다. 워낙 많은 시신을 화장하느라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불길은 줄어들지 않고 잘도 타올랐다.
그날 밤, 병사들에게는 따끈한 빵과 스프를 비롯해 과일과 군마 요리가 나와 풍성한 저녁식사가 되었다.
또한 국왕인 하벨이 지휘관들과 병사들에게 그동안의 공을 치하(致賀)하면서 병사 한 명 당 10골드의 하사금을 내림과 동시에 술 한 병씩도 같이 내렸다.
그리고 다음 날 오후.
제5군단의 6, 7, 8사단 3만 명을 비롯해 클로버 상단에서도 식량과 생필품을 가득 실은 짐수레 3천대를 이끌고 제논성으로 들어왔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건설기술자들과 인력 8천 명이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제논성을 보수하는 데 투입될 것이다.
이틀을 더 제논성에 머문 하벨은 제논성의 일을 첼리쉬 시장에게 맡기고는 이동마법진을 이용해 국왕친위대 3백 명과 함께 왕성으로 돌아갔다.
한편, 마법스크롤로 이동했던 다크 실버문들은 헐리슨 남작의 저택에서 불과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야산으로 이동했다.
7서클 대마법사가 만든 아티팩트가 아닌 4서클 마법사가 만든 마법물품이기에 이동거리가 매우 짧았다. 그리고 이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남기로 했다.
다크 실버문은 공식적으로 아직까지 한 번도 맡은 임무를 실패해본 적이 없기로 유명했다. 그것이 모두 다크 스타들의 탁월한 능력이 뒷받침 되었기에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다크 실버문 대원 한 명이 은신법으로 헐리슨 남작의 저택이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접근해 살펴보았다.
그들은 죽은 병사들을 옮겨 신속하게 정리했으며, 또한 저택 정문을 비롯해 정원 곳곳에 피해를 입었던 것들을 수리한다고 기술자들과 인력이 동원되었다.
레드 폭스 기사단은 죽은 기사들을 실고 되돌아가 버렸으며, 또한 석궁병들도 50명만 남고 나머지는 시신을 수레에 실어 돌아가 버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지금 저택에는 사병 40여 명과 석궁병 50명이 전부였기에 채 1백 명이 안 되는 적은 수였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그들이 아니었다.
정찰을 나갔던 다크 실버문 대원이 돌아와 다크 스타와 하이거에게 그 사실을 보고하자 그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흐흐흐… 여기에서 기다린 보람이 있군. 안 그렇습니까?”
“그렇군. 좋은 기회인 것 같군.”
“늦은 밤에 저택을 다시 기습공격할 테니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하도록 한다.”
“옛, 알겠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 자정이 넘어갈 시각이 되자 그들은 헐리슨 남작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스윽.
다크 스타의 수신호를 받은 다크 실버문 대원 7명이 부챗살처럼 퍼지면서 저택의 담을 가볍게 넘어 정원을 가로질러갔다.
다크 스타와 하이거는 플라이 마법으로 허공으로 떠올라 날아서 담벼락과 정원을 넘어 땅에 내려섰다. 그리고 저택의 벽으로 올라가 2층의 테라스로 침투했다.
2명이 조를 이루면서 3개 조로 나뉘어 흩어진 그들은 복도를 소리 없이 스며들어 곳곳에 경비를 서고 있는 사병들을 확인했다.
스으…스스슷.
그들은 은신법을 이용해 사병들의 등 뒤에 나타나 한손으로는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는 목을 그어 일체 소리를 내지 않고 사병들을 죽였다.
이러한 암사링 다크 실버문의 특기였다.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2층에 배치되어있던 사병 20명은 모두 제거가 되었다.
다크 스타와 하이거가 2층에 있는 헐리슨 남작의 룸으로 스며들자 다크 실버문 대원들도 뒤따랐다.
헐리슨 남작은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낮의 전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치열하게 전개되어 사병들의 피해가 많았었지만 석궁병들과 레드 폭스 기사단이 적시에 지원을 해주었기에 그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안도한 마음에 피곤이 일시에 몰려와 깊은 잠에 든 것이다.
하지만 소드 익스퍼트 상급 경지에 오른 헐리슨 남작은 감각이 보통사람들보다 수 배나 발달되어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침입자의 기척을 느끼면서 두 눈을 떴다.
누운 채로 눈동자만 움직여 순간적으로 룸 안을 파악한 그는 상체를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롱소드가 들려져 있었는데 어느새 검집이 벗겨져 있었다.
“허엇, 너희들은?”
“음… 감각 하나는 뛰어나군.”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서 그런지 정말 대단해. 하지만 거기까지가 너의 한계야. 홀드 퍼슨(Hold person).”
헐리슨 남작의 몸에 빛이 순간 번뜩였다 사라졌다.
마법사 하이거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흐흐… 이제 넌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과연 그럴까?”
슈가가각.
대답한 헐리슨 남작은 코앞까지 접근한 다크 실버문 대원 두 명을 향해 롱소드를 사선으로 휘두르면서 베어버렸다.
“커억, 크아악.”
털썩.
다크 실버문 대원 두 명이 너무나 허무하게 쓰러져 버렸다.
그것을 본 다크 스타와 하이거는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이… 이런 일이.”
“어… 어떻게 홀드 퍼슨 마법에서 벗어났지?”
헐리슨 남작이 왼손가락에 끼고 있는 반지를 보여주었다.
“어엇, 저… 저건 디스펠 매직이 새겨져 있는 아티팩트?”
“으음… 그런 것까지 끼고 있었다니…….”
그랬다. 그는 적의 마법공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마법 무효화가 새겨져 있는 아티팩트 반지를 끼고 있었으니 당연히 홀드 퍼슨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얏!”
기합을 넣은 다크 스타는 즉시 롱소드를 휘둘렀다.
채채챙, 파팍!
이미 낮에 한 번 싸운 경험이 있었기에 남작은 즉시 방어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낮과 같은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 제압해야겠군. 스트렝스(Strengh).”
하이거가 다크 실버문 대원 5명에게 동시에 파워를 두 배나 늘려주는 마법을 걸어주자 그들도 즉시 협공하여 공격했다.
헐리슨 남작이 비록 소드 익스퍼트 상급이라고는 하지만 다크 스타는 어쌔신의 검술실력이라고는 믿기 힘들게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은 되는 것 같았고, 나머지 다크 실버문 대원 5명도 나름대로는 검술실력이 어느 정도는 있는 자들이라 6명을 동시에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결국 헐리슨 남작은 뒤로 밀리게 되었다.
채채챙, 파팍! 슈가가각!
“끄으으… 내 팔!”
남작은 다크 실버문 대원 5명의 협공에 밀리다가 기회를 노린 다크 스타가 휘두른 롱소드에 그만 오른쪽 손목이 잘려나갔다.
그가 비틀거리자 그들은 즉시 헐리슨 남작을 제압했다.
하이거는 헐리슨 남작의 반지 아티팩트를 손가락에서 빼고는 치료마법을 시전했다.
“리스토레이션(Restoration).”
츠츠츠츳.
힐보다 강한 치료 마법을 시전하자 분수같이 쏟아지던 상처에서 빛이 확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었다.
더 이상 피는 쏟아지지 않았지만 이미 많은 피를 흘렀기에 남작의 얼굴은 창백했다.
“이놈들! 어서 죽여라!”
“흐흐… 헐리슨 남작, 우리가 원하는 물건 하나만 주면 우린 너를 살려주고 즉시 돌아갈 것이다. 어떠냐?”
“원하는 물건이 뭐냐?”
“며칠 전에 네가 구입했던 보석을 기억할 테지?”
“켓츠 블루라는 보석 말인가?”
“그렇다. 순순히 그것을 우리에게 넘겨라. 어서.”
“그…그것은 나에게는 없다.”
“무슨 소리, 우린 네가 그걸 구입한걸 알고 있다.”
“물론 내가 구입한건 사실이지만 오늘 오전에 이미 다른 사람에게 그걸 넘겼다.”
그 말에 다크 스타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그건 말해줄 수 없다.”
“흐흐흐… 네놈의 기억을 스캔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츠으…츠츠츠.
하이거는 즉시 헐리슨 남작의 머리에 손바닥을 붙이고는 기이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얼마 후 그의 머리에서 빛이 확 일어나더니 하이거의 손바닥으로 이동해 사라졌다.
헐리슨 남작은 마법의 영향으로 기절해버렸다.
“왕성에서 나온 올슨 시종장이 그걸 가지고 이미 왕성으로 떠났군.”
“이…이런 제기랄, 한발 늦었군요.”
“아직은 아니네. 수도인 스너비까지는 마차로 가도 2일이 걸리는 거리이니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가능하지.”
“아… 그렇군요. 아직 시종장이 왕성에 들어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군.”
“뭐가 말입니까?”
“어떻게 왕성에서 생활하는 시종장이 켓츠 블루라는 보석에 대해서 알고 있으며, 또한 이곳 옐로우 캐슬까지 직접 와서 그것을 가져간단 말인가?”
“저도 그게 좀 의문스럽군요.”
“음… 헐리슨 남작의 기억을 살펴본 바로는 하벨 국왕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건네었다는군.”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먼저 마법스크롤을 사용해 길목을 지키도록 하죠.”
“하긴 일이 먼저이니 즉시 이동하도록 하세나.”
“이동하기 전에 헐리슨 남작은 죽이고 가죠.”
“기절에서 깨어나 올슨 시종장에게 알려주기라도 한다면 큰일이니 그게 좋겠네.”
“일이 좀 더 번거롭게 되었지만 어쩔 수 없죠. 헐리슨 남작을 죽여라.”
“알겠습니다.”
슈가가각!
다크 실버문 대원이 휘두른 칼에 기절해 있던 헐리슨 남작의 목은 허무하게 잘리면서 바닥을 굴러갔다.
그런 후 대원들이 한곳에 모이자 하이거가 품속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내어 찢었다.
번쩍!
남작의 침실에 환하게 빛이 순간적으로 일어나 소멸되었고, 그들도 빛과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