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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포탄이 모두 떨어졌기 때문에 대포를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지만 아직 우리에게는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이 남아 있다. 그들을 출병시켜라.”
“예, 국왕폐하.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은 즉시 출병하라!”
제논성의 외성 중 남문에서 한창 적들과 한창 전투가 일어나고 있었는데, 갑자기 조용하던 서문이 열리면서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두두두두!
그들은 흙먼지와 말발굽 소리를 일으키면서 무서운 속도로 니코 자작의 본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중장기병들과 50미터 정도 떨어진 후미에서도 기병들이 뒤따랐다.
“저… 저게 뭐냐?”
“이… 이런 큰일 났습니다! 제논성의 중장기병들입니다!”
“이러다가는 측면이 무너지겠어. 우리도 중장기병들을 보내 저들을 막아라.”
“저희들의 중장기병은 5백 명이 남아 저들을 전부 막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뭐야? 그럼 무엇으로 저들을 막는단 말인가!”
“일단 급한 대로 보병들을 배치해 막아보겠습니다.”
“알았다. 일단 보병들로 막아라.”
5천 명의 중장기병들을 향해 방패병들이 선두에 서고 그 뒤를 무장한 보병들이 도열했다. 그러나 그들이 중장기병들을 막기에는 사실상 역부족이었다.
콰지직, 와르르르.
“아아악, 크억!”
무지막지한 중장기병들의 돌파력에 방패병과 그들의 방패가 함께 찌그러지고 그들의 뒷열에 서 있던 보병들도 말발굽에 깔렸다.
중장기병들의 뒤에서 달려오던 기병 일만 명도 스피어를 앞세우고 밀고 들어와 적 진영을 마음껏 휘저으면서 유린했다.
그렇게 니코 자작의 본진은 제논성에서 튀어나온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에 의해 편제가 무너졌다. 또한 길쭉한 형태의 편제가 두 동강 나면서 사기가 급격하게 꺾이면서 전선도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논성벽 앞에서 공격하던 병사들도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들의 등 뒤에서 공격하는 기병들과 중장기병들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니코 자작은 전선이 이미 저들로 인해 기울었다는 것을 인정하고는 즉시 후퇴의 고동소리를 울렸다.
뿌우우우우.
고동소리가 길게 울려 퍼지면서 적 병사들은 신속하게 후퇴하기 시작했다. 등을 보이면서 후퇴하는 병사들이라 그 피해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광격을 바라보는 니코 자작은 참담한 표정을 지었다.
“크으으… 또다시 대패를 하다니…….”
“이번 전투로 인해 약 5만 정도의 피해를 입었고, 남은 병사는 겨우 3만이 조금 넘을 정도에 불과합니다.”
“이젠 병력이 얼마 되지 않아서 더 이상 전투를 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구나.”
“사령관님, 제논성 놈들이 준비를 너무 철저히 했기에 그걸 무너뜨리는 것조차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전쟁에서 패했으니 폐하는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을 거다.”
“설마 죽이시기야 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젠장 사실상 이번 전쟁으로 인해 우리 가문은 끝장나 버렸어.”
“그러나 몰락은 아닙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야? 폐하께서 우리 가문의 재산을 모두 몰수하실 텐데?”
“제가 제논성으로 출발할 때 이미 누님께 이런 상황이 될지도 모르니까 저택과 알려진 재산은 그대로 두고 보석과 비밀리에 준비해둔 자금을 대부분 정리해두라 해놓았습니다.”
“저… 정말 그랬나?”
“예, 어제 마법통신으로 통화했는데 이미 모든 것들을 정리해두었고, 조용한 곳에 거처까지 마련해두었다고 하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으음… 역시 처남이군.”
“돌아가더라도 때를 기다리다가 여의치 않으면 스너비 왕국으로 이민을 가서 다시 가문을 일으켜도 됩니다.”
“뭐? 스너비 왕국으로 이민을?”
“뭐 그까짓 걸 가지고 놀라고 그러십니까? 이미 날개가 꺾였는데 가문을 다시 일으키기가 쉽겠습니까? 그것보다는 적당한 때를 보아서 스너비 왕국으로 건너가 다시 시작하는 게 훨씬 빠릅니다.”
코파쵸의 말에 니코 자작은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으음… 듣고 보니 처남의 말이 맞아. 어차피 우리 가문은 전쟁에 패하면 재산몰수와 작위강등, 겨우 목숨이 보존되는 걸로 끝날 거야. 그럼 우리 가문은 몰락할거니 더 이상 포에니 왕국에서는 희망이 없어. 그럴 바에야 적당한 때를 봐서 스너비 왕국으로 이민 가 다시 시작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겠어.’
슈슈슈슉.
102명의 흑의인들이 빠르게 나는 듯 움직였다. 물론 일체 소음은 일지 않았다. 또한 은신법을 사용했기에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을 발견한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들은 다크 실버문의 대원들로 이미 이른 아침에 은신법을 사용해 국경을 간단하게 넘어 스며들었다.
또 신도시 옐로우 캐슬까지 이동해오는 동안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들키지 않고 넘었다.
신도시 옐로우 캐슬은 이름과는 다르게 성벽 없이 넓은 평지에 마차 열 대가 동시에 달려도 될 정도로 넓은 대로가 바둑판처럼 잘 정비되어 있었다.
또한 길가에는 각종 상점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며 공업단지와 상업단지, 주거단지 등으로 나뉘어져 각 건물이 계획적으로 잘 신축되어 있었다.
상주민이 6만에 하루 유동인구만도 3만이나 되는 도시이며, 활기찬 곳이었다.
다크 실버문 대원들은 곧장 도시로 들어가지 않고 외곽을 빙 돌아서 이동해 목적지인 헐리슨 남작의 저택이 내려다보이는 언덕까지 접근했다. 언덕 주위에는 온통 녹색의 풀밭이었으며 그 너머에는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풀밭에 1백여 마리의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었으며, 두 대의 수레 위에는 마른풀이 가득 실어져 있었다.
이십대 후반의 젊은 목동 두 명이 양 떼와 가까이 있었으며, 오십대의 노인이 수레에 앉아 있었다.
다크 실버문 대원 한 명이 노인의 곁으로 이동했지만 은신법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다크 아이(Dark eye).”
나직한 말소리가 노인의 등 뒤에서 들렸으나,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도 돌리지 않고 양 떼를 바라보면서 혼자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다크 실버문.”
“그렇소. 정보를 주시오.”
“헐리슨 남작의 저택은 며칠 전부터 특이한 것은 없었지만 오늘 오전부터 약간의 움직임이 있었소.”
“어떤 움직임이오?”
“오전에 귀족마차 한 대가 들어갔다가 나왔으며, 오전에 두 차례나 무장한 병력이 순찰을 돌았소.”
“그것 말고는 없소?”
“그렇소.”
“저택에는 사병이 얼마나 있소.”
“일전에 알려준 대로 2백 명의 사병이 전부요.”
“수고했소. 그럼 이만.”
다크 실버문의 대원이 사라졌고, 노인의 엉덩이 옆에는 돈주머니가 하나 놓여 있었다. 노인은 돈주머니 속을 열어 보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 후 품속에 집어넣었다.
다크 실버문 대원은 즉시 동료들에게로 돌아왔다.
그는 다크 스타에게 노인에게서 들었던 정보를 전했고, 그들은 곧 신속하게 언덕을 넘어 실개천을 건너 헐리슨 남작 저택으로 나는 듯 달려갔다.
저택 정문에는 스피어를 쥔 병사 두 명이 보초를 서고 있었는데, 다크 실버문 대원이 그들의 등 뒤로 소리 없이 나타나 한손으로 입을 막은 채 대거로 목을 그어 버렸다.
“끄으으…커억.”
다크 실버문 대원들은 죽은 보초의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어 질질 끌면서 한쪽에 눕혔다.
그런 후 수신호를 보내자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앞선 이들이 손가락을 깍지 낀 양손을 앞으로 내밀자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다른 대원들은 가볍게 담을 넘어 저택으로 쳐들어갔다.
이제 은신법은 더 이상 필요가 없었기에 해제한 상태였다.
한데 이상하게도 정원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으며, 저택의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다크 스타가 직접 수신호를 보내자 등 뒤에 있던 다크 실버문 대원들이 흩어지면서 저택을 포위했다.
“으음… 뭔가 이상해.”
정오였기에 정원을 손질하는 자나 하녀들이 보여야 하는데 그런 이들이 일체 보이지 않았으며, 정적만이 감돌았다.
스윽.
다크 스타가 한손을 앞으로 내뻗자 다크 실버문 대원 열 명이 저택의 정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때였다. 정문 바로 앞에까지 다크 실버문 대원이 달려간 순간, 갑자기 정문과 창문이 열리면서 퀘럴이 날아왔다.
퍼퍼퍼퍽.
“끄으으…커억.”
털썩.
열 명의 다크 실버문 대원들은 기습적인 퀘럴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고꾸라졌다.
“이… 이런, 함정이다!”
“쏴라!”
슈슈슈슈슝.
일반적인 화살공격이 아니라 강력한 위력을 자랑하는 석궁에서 발사된 퀘럴 공격이었다.
다크 실버문 대원들은 예측하지 못한 기습적인 공격에 순간적이지만 주춤거렸고, 강력한 퀘럴 공격을 받아 쓰러졌다.
“석궁이다. 흩어져!”
정문과 창문에서 석궁병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퀘럴공격을 퍼부었다. 보통 석궁을 한발 쏘게 되면 다시 장전하는데 1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석궁병들은 열 명이 한 조로 편성되어 일단 1조가 퀘럴을 쏜 후 즉시 앉으면서 장전할 때 2조가 조준해 쏘고, 3조, 4조가 뒤를 잇는다.
이런 식으로 5조가 쏠 때 즈음에는 1조의 장전이 모두 이루어져 마치 연사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력이 제법 뛰어난 다크 실버문이었지만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석궁에는 접근하지도 못한 채 퀘럴에 맞아 쓰러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은 이들은 재빨리 등에 부착해둔 원형 손방패를 꺼내 착용해 날아오는 퀘럴을 막았다.
티티티팅!
합금에다가 미스릴 코팅으로 주조된 방패인지라 퀘럴도 뚫지 못했다.
헐리슨 남작은 이를 지켜보다가 외쳤다.
“저놈들을 죽여라!”
“와아아아!”
헐리슨의 사병 2백 명이 검을 꺼내들고 돌격해 맞붙었다.
채채챙!
다크 실버문 대원들과 사병들의 검이 서로 부딪치면서 쇳소리가 울렸다.
개개인의 전투력에서는 다크 실버문이 조금 우세했지만 수적인 열세인지라 한 명에 서너 명씩이 달려들었기에 점차 다크 실버문 대원들이 검에 베이거나 찔리면서 쓰러지는 것이 빈번해졌다.
그러자 뒤쪽에 하이거가 양손을 앞으로 내뻗으면서 외쳤다.
“파이어 볼.”
불덩이가 생성되어 포물선을 그리면서 사병들에게 떨어졌다.
콰쾅!
“크아악!”
“커억!”
사병 7명이 순식간에 파이어 볼을 맞고는 쓰러졌다.
“마법사다! 저자를 공격하라!”
슈슈슝!
퀘럴이 하이거에게로 날아오자 그는 즉시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마법을 영창했다.
“실드, 실드, 실드.”
티티티팅!
연속 3회나 방어막을 형성했기에 강력한 퀘럴도 충분하게 막을 수 있었다. 퀘럴은 다크 스타에게도 날아왔고, 그는 직접 롱소드를 꺼내들고는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