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0 / 0156 ----------------------------------------------
제3권 다크 실버문
“악몽 같은 뜨거운 밤을 보여주마. 파이어(Fire).”
치이이이.
1백 개나 되는 포탄의 심지에 불이 동시에 ‘확’ 하고 붙더니 지상을 향해 떨어졌다. 그때까지도 아무도 포탄을 발견하지 못했다.
콰콰콰콰쾅!
심지에 불이 붙은 포탄이 군막이나 병사들이 모여 있는 곳에 떨어져 폭발하자 구덩이가 생겨났으며, 또한 군막에 불이 붙거나 무너졌다.
여기저기에서 중화상을 입어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병사들의 절규가 꼭 아비규환 지옥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층층마다 잘 쌓인 포탄 심지에 불이 붙어 지상을 향해 계속 떨어졌기 때문이다. 1천 개나 되는 포탄이 모두 폭발할 때까지는 계속 이렇게 포격이 될 것이다.
포탄으로 인해서 니코 자작의 본진은 온통 불바다였다.
군막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니코 자작은 화들짝 놀라면서 찻잔을 떨어뜨렸다.
“이… 이게 무슨 소란이냐?”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어서 나가서 알아봐.”
“예, 사령관님.”
참모인 코파쵸 남작은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고는 즉시 군막 밖으로 튀어나갔다.
“자… 이제 마지막으로 나에게는 멋지지만 너희들에게는 악몽인 마법을 보여주지. 파이어 레인(Fire rain).”
화르르… 후두두둑.
화염의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본 병사들은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면서 소리쳤다.
“으아…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진다!”
“피해라! 피해!”
“옷에 불이 붙었다. 꺼줘!”
“군막에 붙은 불을 꺼라, 어서.”
“당황하지 마라. 물통을 가져와 불을 꺼라.”
병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를 피해보고자 이리저리 피하려고 했지만 피할 곳이 없었다.
백부장이나 천부장들이 병사들에게 지시를 했지만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는 지휘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사령관님,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말해봐.”
“갑자기 주위가 온통 화염에 휩싸였으며, 또한 하늘에서 불덩이의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뭐… 뭐야?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하게 말해봐!”
“하늘에서 엄청난 마법 공격을 퍼붓던 마법사는 사라지고 없습니다만, 밖이 온통 화염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으음… 내가 나가서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야겠군.”
“안 됩니다. 사령관님의 군막은 실드마법진과 수계마법진이 새겨져 있어서 불에 타지 않습니다만 밖은 아직 위험하니 조금만 더 계시다가 나가십시오. 차를 한 잔 더 올리겠습니다.”
“으음… 알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8서클 마법을 익힌 하벨은 그야말로 무적에 가까웠다.
그 혼자 시전한 화염계 마법 한방과 포탄공격에 니코 자작의 본진은 3만이 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해 더욱 어두운 밤.
일단의 무리들이 구릉에 있는 숲속을 이동하고 있었다.
모두 검은 옷에 복면까지 하고 있었는데 52명이나 되었다.
그들은 모두 손이나 허리, 등 뒤에 검을 매고 있었으며, 동작이 민첩하고 가볍게 움직이는 자들이었다.
스윽.
선두에서 이동하던 자가 한손을 어깨 위로 치켜들면서 멈추자 뒤에서 따라오던 자들도 수신호를 보고는 즉시 자세를 낮추면서 그 자리에 멈추었다.
이들이 있는 곳은 숲이 거의 끝나는 지점이었는데 전방에는 녹색의 풀밭이 수백 미터나 펼쳐져 있었으며, 풀밭의 중앙에는 백색의 고성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곳곳에 기름등이 설치되어 성을 밝히고 있었으며, 스피어를 들고 가죽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잠시 성을 바라보면서 경비병들의 배치상황을 확인했다.
스윽.
선두에 있던 자가 양손을 들어 수신호로 지시하자 무리는 좌우로 각 15명씩 뭉쳐 조를 이루었다.
스르륵.
조를 이루기가 무섭게 그들의 몸이 땅으로 빨려들듯 사라졌다. 이들의 장기인 은신(Conceal)이었다.
30명이 일체의 소리도 내지 않고 사라진 후 10분 정도가 흐르자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던 자가 다시 손짓을 했고, 그의 등 뒤에 서있던 21명이 앞으로 나는 듯 달려 나갔는데 역시 은신술을 펼쳤기에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수하들을 모두 보낸 그의 눈이 번뜩였다.
“흐흐흐… 오늘밤 스트릭 자작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우리 다크 실버문에 의해…….”
스스스슷.
혼자 중얼거리던 그도 사라졌다.
그리고 잠시 후, 스피어를 손에 쥔 병사 두 명이 서로 잡담을 하면서 계단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돌로 된 벽에서 갑자기 손과 대거가 튀어나와 병사의 입을 막음과 동시에 목을 베어버렸다.
또한 맞은편 벽에서도 손과 롱소드의 날이 튀어나와 병사의 입을 막고 등을 찔렀다.
털썩.
두 명의 병사를 가볍게 제거한 흑의인들은 으슥한 장소에 죽은 병사들을 숨긴 후 사라졌다. 뒤이어 성의 곳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이 소리 없이 죽어나갔다.
수십 명의 병사들을 죽였지만 일체 소음이 일지 않았다.
스트릭 자작은 러셀 왕국의 귀족으로 자신의 집무실에서 밀린 서류를 처리하느라 바쁘게 보였으며, 과로한 듯 무척 피곤해 보였다.
그는 서류에 직인을 찍고 서류를 내려놓은 후, 식어버린 차를 들어 목을 축이다가 갑자기 찻잔을 앞으로 던졌다.
“웬 놈이냐!”
찻잔이 문에 부딪쳐 잔해가 찻물과 함께 사방으로 튀었다.
슈슈슝.
뒤이어 한 뼘 정도 크기의 화살 세 발이 날아왔다. 촉이 검은 것으로 보아 독이 묻어 있는 모양이다.
“허엇, 이놈들이!”
자작은 몸을 튕겨 뒤로 주루룩 물러나면서 상체를 뒤로 젖혀 공중제비를 멋들어지게 펼치면서 장식장 한쪽 위에 걸어두었던 자신의 롱소드를 집어 들었다.
타악!
그가 손바닥으로 검집을 흩뿌리듯 쳐내자 검집이 허공에 일직선을 그리면서 날아가 벽에 부딪쳤다.
“크으…….”
은신이 깨어지면서 흑의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검집에 맞은 충격에 상체를 숙이면서 나직한 신음을 흘렸다.
슈가가각.
어느새 다가온 자작은 롱소드를 휘둘러 흑의인의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사선으로 길게 베어버렸다.
“끄으으으…….”
털썩.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흑의인은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죽은 흑의인을 가만히 쳐다보던 스트릭 자작은 다음 순간 손목을 꺾어 자신의 옆구리 사이로 롱소드 날을 찔러 넣었다.
“끄으… 눈치… 챘었구나…….”
털썩.
또 한 명의 흑의인이 은신수법으로 스트릭 자작의 등 뒤로 소리 없이 접근해 칼로 내리치려는 순간, 그가 먼저 그것을 눈치 채고는 롱소드를 찔렀던 것이다.
짝짝짝짝.
박수소리가 난데없이 터져 나오자 스트릭 자작은 고개를 돌려 창가를 쳐다보았다. 창문이 열려 있었으며 흑의인 한 명이 이미 들어와 서 있었다.
“으음… 보통 놈이 아니군.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나를 죽이려는 너는 누구냐?”
“다크 실버문(Dark silvermoon).”
“그곳에서 왜 나를?”
“그건 의뢰이니 알려줄 수 없다.”
흑의인의 가슴부분에는 은색의 초승달(Crescent)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검은 별이 조그맣게 하나 초승달 속에 찍혀 있었다.
“너… 너는 다크 스타(Dark star)?”
“흐흐흐… 나의 정체를 알아보다니 대단하군.”
본부가 어디인지 알려지지 않은 다크 실버문은 대륙의 어쌔신 길드 중에서도 해골단과 함께 가장 유명하며, 실력이 좋은 곳이라 알려져 있다.
다크 실버문의 심벌은 은색의 초승달 문양이었으며, 흑의를 입고 활동하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다크 실버문에서도 실력이 출중한 자들은 따로 있었다.
그들은 초승달 문양 안에 검은 별을 새겨 넣은 자들로 그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들을 사람들은 ‘다크 스타’라 불렀다.
날이 약간 휘어진 대거를 꺼내든 다크 스타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극한의 속도로 스트릭 자작에게로 다가와 대거를 휘둘렀다.
채채챙!
하지만 스트릭 자작도 소드 익스퍼트 중급의 실력자인지라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상대의 대거를 자신의 롱소드로 막으면서 반격까지 시도했다.
쉬쉬쉬쉭, 파파팟!
하지만 흑의인이 엄청난 빠르기로 대거를 휘둘러 공격하자 점차 스트릭 자작이 뒤로 밀렸다.
“음… 정말 무섭게 빠른 검술이구나.”
“이제 끝내야겠어.”
슈슈슝!
흑의인이 갑자기 뒤로 회전하면서 물러나는 것과 동시에 그가 손목에 차고 있던 금속에서 마법화살(Magic arrow)이 세 발 쏘아졌다. 그가 차고 있던 것은 아티팩트였다.
“허엇!”
깜짝 놀란 스트릭 자작은 상체를 뒤로 젖혔지만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발사된 마법화살이라 피하지 못하고 가슴과 어깨에 격중되었다.
퍼퍼퍽!
“크으으으… 이런 비겁한…….”
슈가가각.
비틀거리는 스트릭 자작을 향해 다가온 흑의인 다크 스타는 대거를 휘둘러 그의 목을 베어버렸다.
자작의 시체를 내려다보던 그는 중얼거렸다.
“흐흐흐… 난 기사가 아닌 어쌔신이니 당연히 이런 암수를 생각했어야지.”
스스스스.
그때 다크 스타의 등 뒤로 다크 실버문 대원이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성안에 있는 병사 127명은 모두 죽였습니다. 자작의 부인과 딸을 비롯해 집사와 하인, 하녀와 노예 34명은 어떻게 할까요?”
“그들도 모두 죽여라. 그런 후 이곳을 떠날 것이다.”
“예, 아… 알겠습니다.”
보고를 끝마친 다크 실버문 대원이 집무실을 떠나자 그는 허리에 묶어 놓았던 검은 천으로 된 자루 속에서 상자를 꺼내 잘린 스트릭 자작의 머리와 그가 손가락에 끼고 있던 문장이 새겨진 반지를 빼서 같이 집어넣고는 뒤돌아섰다.
그러던 그가 문득 한쪽 벽을 쳐다보았다.
“음… 벽에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지다니 조사해봐야겠어.”
그가 벽에 새겨진 마법진을 살펴보고는 바로 해제하자, 작은 철제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뭔가 귀중한 것인가 보군.’
그가 막 그것을 열어보려는데 다크 실버문 대원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다크 스타는 일단 철제상자를 마법자루 속에 집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