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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스윽.
그가 가볍게 손짓하자 검의 형상을 한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하벨의 의지대로 날아가 대리석으로 된 벽에 흠집을 냈다.
“후후후… 오러 블레이드라면 무엇이든지 잘라버릴 수 있겠군. 정말 위력적이야.”
스스스슷.
하벨이 마나를 멈추자 오러 블레이드가 소멸되어버렸다.
“이번에 제논으로 오면서부터 나에게 여러 가지로 좋은 일들만 있구나. 마법은 8서클에 올랐으며, 검사들의 꿈의 경지인 소드 마스터에도 올라 오러 블레이드를 시전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가장 중요한 운명적인 엘프 여인도 만났으니 최고의 나날이군. 예지력으로 이미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기분이 좋아. 이제는 그 물건만 받으면 되는 건가? 후후후.”
자리에서 일어난 하벨은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제논의 아름다운 풍경이 한눈에 다 들어왔다.
순간 그의 눈빛이 번뜩였다.
무엇인가를 발견한 하벨이 중얼거렸다.
“마침 클라우디아가 정원을 산책 중이군. 내가 가봐야겠어. 밖에 누구 있느냐?”
“예, 국왕폐하. 신 살바코프, 대기해 있사옵니다.”
“이제 이곳을 나가야 하니 옷을 가져오라.”
“예, 국왕폐하.”
명을 내린 하벨은 그제야 방 안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을 깨닫고 마법을 시전했다.
“음… 여기가 너무 오염되었군. 마법으로 간단하게 정화시켜야겠어. 클린 업(Clean up).”
츠으… 츠츠츠츠.
그러자 순식간에 방이 예전처럼 아주 깨끗하게 변했다.
똑똑.
노크소리가 들리고는 뒤이어 살바코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국왕폐하, 의복을 가져온 시녀를 들여보내겠사옵니다.”
시녀 세 명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에게 가져온 의복을 바쳤다. 하벨은 속옷을 먼저 입고 흰색 실크 셔츠와 바지를 입은 후 시녀가 잡고 있는 전신거울 앞에 섰다.
“어떠냐? 보기에 괜찮으냐?”
그가 묻자, 시녀들이 저마다 앞 다투어 고했다.
“아름다우십니다, 국왕폐하.”
“며칠 전보다 더 좋아 보이십니다, 국왕폐하.”
“하하하… 고맙구나.”
정원의 꽃밭에서 활짝 핀 꽃의 향기를 맡은 클라우디아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고,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아… 국왕폐하이시군요.”
“오랜만입니다, 클라우디아.”
“며칠 전보다 많이 달라진 것을 보니까 수련의 성취가 있으셨던 모양이에요.”
“하하, 그걸 알아보다니 대단한데요?”
“저…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래요? 무슨…….”
“그동안 곰곰이 생각해보았는데 국왕폐하께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부족에 전해내려 온 물건 말입니까?”
“예, 제가 보관하고 있는 것보다 안전할 것 같으니 국왕폐하께서 보관해주세요. 부탁이에요.”
“음… 좋습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야 하니 절 따라오시죠.”
“예, 고맙습니다.”
탑의 꼭대기 룸으로 다시 올라온 하벨은 친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나의 명이 있기 전에는 그 누구라고 할지라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
“예, 국왕폐하!”
확실하게 명령한 하벨은 엘프 여전사 클라우디아를 데리고 룸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창가에는 검고 두꺼운 커튼을 친 후, 그것도 안심이 안 되어 마법의 결계까지 쳐서 아무도 안을 살펴보지 못하게 조치했다.
“자… 이제 되었으니 그것을 꺼내어도 됩니다.”
“…….”
고개를 끄덕인 클라우디아는 자신의 로브 속 마법공간에서 녹색 천으로 싼 것을 꺼내어 카펫이 깔린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았다.
“풀어보세요.”
“…….”
그러자 하벨이 긴장한 기색으로 녹색 천을 벗겼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성인 손바닥만 한 크기의 초록색 돌로 된 정사각형 모양의 보석함이었다.
특이한 것은 표면에 온통 룬문자가 새겨져 있으며 뚜껑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강렬한 황금색 빛이 내뿜어지고 있었다. 마치 자동차의 방향지시등처럼 노란 불빛이 속에서 깜빡거렸다.
“음… 특이하면서도 강력한 기운이 느껴지는군요.”
“정확하게 보신 거예요. 이것을 우리 풍요의 숲 부족은 엘프 여신의 눈물이라고 부릅니다.”
“엘프 여신의 눈물? 유례를 알 수 있을까요?”
“예, 이 엘프 여신의 눈물은 저희 풍요의 숲 엘프 부족이 처음 숲에 정착할 때인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초대 부족장이신 소니아 샤샤 님께서 가지고 계셨던 것인데 그분께서는 이 물건의 힘 일부를 흡수해 강력한 결계를 숲에 설치하실 수 있었다 전해집니다. 세월이 3천 년이나 흐르는 동안에 네 분의 부족장님만 이 물건을 보관해오고 있었으며, 신의 힘이 담긴 이것은 오직 숲의 결계가 약해질 때 보충하는 정도로만 사용했습니다.”
“신의 힘이 담긴 것인데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군요.”
“예, 너무 강력한 힘이라 마음먹은 대로 통제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몇몇 엘프가 욕심을 부려 잘못 힘을 흡수하다가 소멸당한 적도 있었어요. 그 후부터는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죠.”
“음… 그렇기 때문에 부족장이 보관하면서 통제했군요.”
“그래요. 어느 정도의 유래와 일부 힘의 일부는 알려졌지만 이것의 비밀은 아직 몰라요. 대대로 부족장님들도 겨우 힘의 일부만 사용할 수 있었을 뿐이니까요.”
“그런 대단한 물건을 나에게 맡겨도 되겠습니까?”
“국왕폐하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드리는 거예요.”
‘으음… 신의 힘이 들어 있는 물건이니 어쩌면 이것의 비밀만 내가 풀 수 있다면 굳이 드래곤을 만날 필요가 없겠어. 나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 생각해 포기했는데, 작은 희망이 생겼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음… 그럼 제가 엘프 여신의 눈물을 보관하도록 하죠.”
“감사해요.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뭡니까? 말해보세요.”
“노예로 붙잡혀간 풍요의 숲 부족들을 구해주세요.”
“좋습니다. 그들이 어디로 붙잡혀 갔는지 알아보고 구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구해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그녀의 눈가가 젖어들었다.
“정말 고마워요.”
“그동안은 저와 함께 있도록 하죠.”
“그럴게요. 정말 고맙습니다.”
하벨은 엘프 여신의 눈물을 다시 보자기에 싸서 허리에 묶어두었던 마법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제논의 첼리쉬 시장 집무실.
국왕인 하벨과 첼리쉬 시장, 이글 기병대장인 칼미안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칼미안은 국왕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처음이라 무척 긴장하고 있었다.
“칼미안 대장.”
“예, 국왕폐하.”
“자네의 이글 기병대는 오늘부터 내가 지정해주는 장소에서 대기하면서 대원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시켜야 할 거야.”
“예? 그… 그게 무슨…….”
“조만간 내가 다시 지시할 테지만 그때까지는 실제 전투에 준하는 상황이라 생각하고 훈련에 임해주도록.”
“예, 알겠사옵니다, 국왕폐하.”
“훈련에 필요한 것은 모두 첼리쉬 시장이 지원해줄 걸세. 이상이야.”
“…….”
칼미안은 궁금한 게 많았지만 국왕폐하에게 먼저 물을 수는 없었기에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첼리쉬 시장.”
“예, 국왕폐하.”
“제6군단의 2, 3, 4, 8사단과 이글 기병대, 콘돌 기병대, 베라 기병대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네는 무슨 일인지 조금은 알아야겠지.”
“…….”
“석 달 안에 포에니 왕국군이 이곳으로 쳐들어올 거야.”
“예? 포에니 왕국에서요?”
“그래. 그래서 병사들을 혹독하게 훈련시켜 전력을 높이려고 하는 거야. 자네는 군량과 무기를 병사들에게 지원하도록 하고, 제논 주민들이 먹을 식량 확보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폐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미 내가 수도인 스너비에 말해놓았으니 자네는 군량과 무기를 확보한 것을 잘 보관하면 되네. 각 창고는 무장한 병력이 철통같이 지킬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내일부터는 자네도 무척 바쁘게 일해야 할 테니 오늘은 일찍 쉬도록.”
“예, 폐하.”
첼리쉬 시장이 문을 열고 나가자 하벨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려다보면서 생각에 젖어 들었다.
제논에 전쟁의 피바람이 서서히 불어오고 있었다.
스너비 왕국의 국경도시인 제논과 국경을 이루는 곳은 포에니 왕국의 동남부인데 이곳은 니코 자작이 다스리는 영지였다.
니코 자작령은 기병 4천에 보병 1만2천 명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스너비 왕국이 개국하면서 국경이 됨으로 인해서 국경수비대가 창설되어 현재는 중장기병 3천 명에 기병 9천 명. 보병 2만3천 명으로 총병력이 3만5천 명으로 늘었다.
니코 자작은 포에니 국왕의 명으로 국경도시 제논에 첩자를 파견해 살펴보도록 명령했고, 첩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제논이 발전하고 있다 알려왔다.
포에니 국왕과 니코 자작은 스너비의 하벨 국왕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심각하게 생각했다.
대대적인 성곽 공사를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지금은 모두 완성되어 있었으며, 외성과 내성에 있는 2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주거지와 각종 상점들도 대부분 완성단계에 와 있다고 알려왔다.
거기에다가 병사들도 일만 명이나 주둔 중이었기에 그리 만만하게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의 병력 3만5천에 비한다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제논에 4만이 넘는 막대한 병력이 이동해 와서는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 했다.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느낀 니코 자작은 즉시 왕궁에 마법통신을 시도하려고 마법사의 사무실로 들어섰다.
니코 자작령에는 마법사가 11명이나 주둔해 있었는데, 언제든 전투에 투입할 수 있는 마법사들이었다.
“영주님, 어쩐 일이십니까?”
“아… 마스터 켄트미안, 즉시 폐하께 통신을 부탁하오.”
“무슨 일이십니까?”
“긴급하게 폐하께 보고를 드려야 할 일이 생겼소.”
“그렇습니까? 알겠습니다.”
마스터 켄트미안의 눈짓을 받은 마법사는 수정구를 꺼내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수정구에서 빛이 일어나면서 로브를 입은 마법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니코 자작령의 마법사 게르치요. 자작님께서 폐하께 보고를 올리신다 하오.”
“그렇습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잠시 후 수정구에 오십대의 인물이 나타났는데 그가 바로 포에니 국왕이었다.
니코 자작은 즉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말했다.
“폐하, 신 니코 자작이옵니다.”
“오… 니코 자작, 그래 무슨 일인가.”
“폐하, 제논이 심상치 않습니다.”
“제논이? 그 무슨 일인지 자세하게 말해봐라.”
“첩자들의 보고로는 얼마 전부터 갑자기 제논에 4만이 넘는 막대한 병력이 이동해 와서는 혹독한 군사훈련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 4만이나 되는 병력이 들어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