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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74화 (7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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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슈아아아!

그 즈음, 파공성을 일으키면서 3미터 정도의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인영이 있었다. 그는 하벨의 병사들에게 당해 겨우 몸을 피했던 가면인이었다.

“크으으… 다 잡은 걸 빼앗기다니… 중장기병들을 동원한 것을 보니 백작급은 되는 고위귀족 같았어. 두고 보자, 이놈.”

원한이 담긴 말을 중얼거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던 그의 눈이 두 배로 커졌다.

퍼억!

“크아아악!”

미처 피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날아든 거대한 나무방망이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으면서 그는 최후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머리가 박살나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면서 추락했다.

스윽.

나무 뒤에서 모습을 보인 것은 오우거였다.

쿠워어어어!

오우거는 포효하고는 나무방망이를 허리에 꽂더니 죽은 가면인의 곁으로 다가왔다. 가면인은 너무나 어이없게도 오우거에게 당해 생을 마감한 것이다.

찌이익.

오우거는 죽은 가면인의 가죽 갑옷을 벗기고는 다리를 잡아 찢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점을 맛있게 뜯어 먹기 시작했다. 모처럼 별미인 인간고기를 먹을 수 있었기에 기분이 좋아진 오우거였다.

얼마 되지 않아서 고기를 다 먹어치운 오우거는 코를 킁킁거리면서 맛있는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 이동했다.

숲을 벗어나 구릉으로 나온 오우거는 이미 오크와 트롤, 고블린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있는 걸 보았다. 여기저기 땅이 파헤쳐져 있었는데 구덩이 속마다 죽은 추격자들이 들어 있었다. 하벨의 군대가 매장한 시체들이었다.

쿠워어어어!

포효를 내지른 오우거가 몬스터 무리를 향해 달려가자 화들짝 놀란 몬스터들이 재빨리 자리를 비켜주었다.

워낙 먹을 것이 풍부하다 보니 서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오우거도 굳이 싸우기보다는 맛있는 인간고기를 먹는 게 더 좋았기에 시체 하나를 잡아들고 먹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눈치를 보던 오크들이 불안감을 느끼고 가장 먼저 그곳을 떠나버렸다. 오크 무리가 떠나자 머리 좋은 고블린들도 슬슬 눈치를 보다가 시신 몇 구를 가지고 떠났으며, 트롤도 이내 슬금슬금 사라져버렸다.

구릉에 혼자 남은 오우거는 밤이 깊도록 혼자만의 만찬을 즐길 수 있었다.

두두두두

대로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리는 무리들이 있었다.

은색의 체인메일을 착용한 기병들로 수는 3천이나 되었다. 선두의 두 명은 깃대를 잡고 있었는데 하나는 에스자의 스너비 왕국 문장이며, 또 하나는 독수리 형상을 한 이글 기병대의 문장이었다.

이글 기병대장인 칼미안의 말 곁으로 부관이 다가왔다.

“대장님, 3시간 정도만 더 달리면 왕국의 북동쪽 국경도시인 제논(Zenon)입니다.”

“벌써 다 와가는군.”

“국왕폐하께서 왜 우리 이글 기병대를 제논으로 부르신 걸까요?”

“난들 아나? 왕명인데 무조건 가야지. 안 그래?”

“그… 그야 그렇죠. 그래도 이유를 알면 좋지 않습니까?”

“하하하! 자네는 국왕폐하의 명에 토를 달 수 있나?”

“아… 아니요. 어떻게…….”

“그럼 잔말 말고 그냥 달려.”

“옙, 알겠습니다, 대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제가 알기로는 제논으로 우리 이글 기병대뿐만 아니라 콘돌 기병대, 베라 기병대까지 온다던데요.”

“그래? 콘돌 기병대는 우리보다 많은 4천 명이고, 베라 기병대는 5천 명이니 우리 이글 기병대까지 합한다면 1만2천 명이나 되는데 그 많은 기병대를 왜 호출했을까?”

“그제 전부가 아닙니다, 대장님.”

“뭐, 그럼 더 있어?”

“예, 제6군단의 2, 3, 4사단의 3만 명도 내일 중으로 제논으로 들어올 거라 합니다.”

그 말에 칼미안은 생각에 잠겼다.

“음… 제논에는 8사단의 1만이 주둔 중인데도 이렇게 막대한 병력이 호출되는 걸로 보아서는 큰일이 일어난 모양인데.”

“저도 그렇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가보면 알게 되겠지. 속도를 좀 더 높여야겠어.”

“알겠습니다. 속도를 높여라!”

두두두두!

이글 기병대원들이 말 옆구리를 찍자 속도가 더 높아졌다.

이들이 향하는 곳은 국경도시인 제논으로, 스너비 왕국이 개국하기 전에는 츄이 자작의 영지인 딕케이에서도 외곽인 영지 경계지점에 있는 마을로 상업이 제법 발달한 곳이었다.

지금은 포에니 왕국령과 개천을 사이에 두고 대치해 있었다.

제논이 장차 전략적인 위치에 놓이게 될 곳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던 하벨 국왕은 왕국을 개국하기 전부터 대대적인 성곽공사를 시작했으며, 또한 일개 마을이었던 제논을 백 배나 큰 왕국의 국경 도시로 당당하게 만들었다.

20미터나 되는 높은 외성의 성곽과 20만 명이 거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거주 지역 그리고 제논을 다스리는 시장이 거주하는 내성까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창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제논의 외성 밖에 대규모의 군대가 주둔하기 위한 공사가 새로 착공되어 인부들의 손을 더욱 필요로 하고 있었다.

제논 외성 밖 검문소.

감시탑과 목조 건물 5동이 신축되어 있었으며, 운동장에는 웃통을 벗어던진 병사들 2백 명이 줄을 맞추어 구보를 하고 있었다.

대로와 주변에는 목책이 쳐져 있고, 스피어나 소드를 허리에 착용한 병사들이 부릅뜬 눈으로 경비를 철저하게 서고 있었다.

두두두두.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이글 기병대가 꼬리를 물고 대로를 달려 제논 외성 밖 검문소로 들어섰다.

검문소 앞에 서 있던 병사들 중에서 헤미트 조장이 외쳤다.

“멈추시오! 어디서 오는 병사들이오?”

“이들은 이글 기병대이며 나는 이글 기병대장인 칼미안이다.”

“아, 그렇습니까? 안 그래도 오늘 중으로 도착하실 거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일단 이글 기병대원들은 안쪽에 마련된 곳에 대기하시고, 대장님과 참모부들은 외성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십시오. 저희가 안내하겠습니다.”

“알았다. 콘돌 기병대와 베라 기병대는 도착했나?”

“아직은 도착하지 않았지만 내일까지는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음… 알겠네. 부관은 들은 대로 대원들을 대기시키도록.”

“옛, 알겠습니다.”

칼미안은 참모부와 함께 외성으로 향했고, 이글 기병대원들은 검문소 병사들의 안내를 받아서 임시 마련된 장소에 군막을 설치하면서 대기했다.

제논의 내성에서 거주하고 있는 첼리쉬 시장과 가족들을 포함해 집사와 모든 하녀들까지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숨소리도 크게 내쉬지 못하면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것은 5일 전에 도착한 인물 때문이었는데, 바로 하벨 국왕이 이곳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제논성에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을 이끌고 들어온 하벨은 첼리쉬 시장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엘프 클라우디아의 상처를 돌보아 주도록 지시했다. 그런 후 성의 중앙 탑의 꼭대기로 올라가더니 하루가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국왕친위대의 기사 3백 명이 광장에 마련되어 있는 이동마법진을 통해 찾아와 즉시 탑을 비롯해 중요지점 곳곳에 포진해 경계를 서기 시작했다.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국왕친뒤대의 기사들은 검술이 뛰어나며 학식까지 갖추었기 때문에 왕국의 귀족 처자들이라면 모두 선호하는 엘리트들이었다.

그리고 엘프 여전사 클라우디아도 신선한 과일로 식사를 하면서 신관들과 의사들이 상처를 돌보아주자 이내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치가 되었다.

“아… 어제부터 보이지 않으시는구나.”

아름다운 내성의 꽃밭과 정원을 산책하던 클라우디아는 문득 하벨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생명의 은인에 대한 고마움이 어느새 가슴 두근거리는 감정으로 변해버리고 만 그녀였다.

하벨은 비록 왕국의 국왕이지만 인간이고, 자신은 숲을 사랑하고 가꾸는 종족인 엘프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자신의 마음이 그에게 빠져드는 걸 느끼고 있었다.

한편, 하벨은 탑의 꼭대기 작은 방에서 옷을 모두 벗은 채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하고 있었다.

스르르륵.

그러자 하벨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피부 표면에 있는 모공(毛孔)에서 안개 같은 기운이 몸 밖으로 내뿜어졌다.

점점 탁한 안개가 뿜어져 나와 방 안을 가득 채워 하벨의 신형이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2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하벨의 모공에서 이번엔 너무 맑아서 투명하기까지 한 청정한 기운이 뿜어지면서 탁한 안개의 기운을 정화했다.

방 안에 있는 탁한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청정한 기운으로 대체되자 하벨은 그 기운을 코로 모두 빨아들였다.

허공에 뜬 상태에서 가부좌를 틀었던 그의 몸이 곧게 펴지면서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하벨의 몸이 뒤틀리더니 모공에서 끈적거리고 탁한 액체가 스르르 빠져나왔다.

한동안 나오던 탁한 액체가 더 이상 나오지 않자 이번에는 그의 머리카락이 전부 빠져버리더니 이빨과 손, 발톱까지도 전부 빠졌다.

그런 후 전신의 피부가 가뭄이 든 땅처럼 쩌억 심하게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몸의 허물이 벗겨졌다. 몸의 허물을 벗는 데는 무려 30분이 소요되었으며, 모든 것이 끝나자 그의 신장이 조금 더 커진 것 같았다.

기이한 현상은 그가 허물을 무려 세 번이나 벗고서야 끝이 났다.

선인들이 말하는 전형적인 환골탈태(換骨奪胎) 현상이었다.

인간으로서 최상의 신체로 탈바꿈한 것이다.

번쩍.

하벨이 눈을 뜨자 그의 안광이 뻗어 나와 천장에 부딪혔는데 기운이 얼마나 강했던지 천장의 나무 표면이 순간적으로 타서 가루가 되어 떨어질 정도였다.

그가 눈을 몇 번 껌벅 거리자 안광이 사라졌다.

“후후후… 환골탈태 과정을 드디어 나도 겪었어. 그동안 노력한 결실을 이제야 보게 되었군. 심장 곁에서 휘돌고 있는 마나 고리도 어느덧 8개이니 8서클인가?”

그는 자신의 몸을 한번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피부는 희고 여성보다도 더 매끄럽고 광택이 났다. 겉모습뿐만이 아니라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최상이라는 것을 느낀 하벨은 씩 미소를 지었다.

8서클에 오른 기쁨에 그는 시험 삼아 마법을 시전해보기로 하고는 어떤 게 적당한 마법인지 떠올려보았다.

“아… 그래. 헬 파이어(Hell fire)가 있었지?”

화르르르.

대상이 완전히 전소할 때까지 태워버린다는 지옥의 불길이 하벨의 손바닥 위에 작게 생성되었다.

그가 방바닥에 떨어져 있는 자신의 허물을 의지만으로 들어 올려 헬 파이어에 가져다 대자 불길이 일어나면서 순식간에 완전히 전소가 되어버렸다.

“으하하하… 정말 마음에 드는군.”

츠파파팟.

소임을 다한 헬 파이어는 소멸되었다.

“이 정도면 마법은 되었고, 어디 이번에는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이라는 오러 블레이드를 한번 시전해봐야겠군.”

츠으… 츠츠츠.

칼을 손에 쥐고 있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초록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손에서 검처럼 생성되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이런 것이군. 아름다운 강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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