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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도망치다가 이곳에서 넘어졌다. 지치고 부상을 입은 몸이라 곧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야. 추격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 서둘러라.”
추격자들이 서둘러 앞으로 달려가자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가면인도 움직였다.
숲에서 벗어나자 풀로 뒤덮인 구릉이 나왔다.
엘프는 부상당한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등 뒤에서 추격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저쪽이야, 저쪽!”
“앗, 엘프가 저기 있다! 잡아라!”
추격자들의 선두가 구릉에 나타나자 엘프는 잠시 멈춰 마법의 보우 아티팩트인 체이스를 꺼내들고는 줄을 튕겼다.
그러자 수박만 한 크기의 이글거리는 불덩이가 하나 생성되어 추격자들에게로 날아갔다.
“으아… 불덩이가 날아온다! 조심해!”
“어… 엎드려.”
콰쾅!
“크아아악!”
불덩이가 풀밭에 떨어져 폭발하자 주위에 있던 추격자들이 사방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구릉에 제법 큰 구덩이도 생겼다.
위력적인 공격 앞에 추격자들은 주춤거리면서 함부로 나서지 못한 채 기회만 살폈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약 1백 미터 정도였다.
추격자들은 점점 수가 늘어나고 있지만 겁을 먹었기 때문에 선뜻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그러자 가면인이 앞으로 나서면서 팔찌를 착용한 우수를 가슴 높이로 들어올렸다.
촤르르륵!
순식간에 팔찌가 손가락 쪽으로 이동하더니 이내 앙증맞은 크로스 보우로 변화했다.
슈슈슈슝!
크로스 보우에서 빛의 화살이 10발이나 쏘아졌다.
다급해진 엘프는 몸을 날려 그것을 피했지만 워낙 빠른 공격이라 전부는 피하지 못하고 어깨와 옆구리 쪽에 화살 한 방씩이 스쳤다.
그러나 일반적인 화살이 아닌 마법으로 생성된 빛의 화살이라서 그런지 스친 곳의 피부가 찢어지면서 피가 튀었다.
“부상을 입었다. 사로잡아라. 어서.”
“예, 알겠습니다.”
수십 명이 자신을 사로잡으려고 몰려오자 엘프는 즉시 보우의 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
슈슈슈슈슝!
파공성이 일어났지만 눈에 보이는 건 없었다.
그렇지만 그게 더 무섭다는 것을 추격자들은 잘 알고 있었기에 파동이 느껴지자 그들은 즉시 몸을 날려 엎드렸다.
“아아악!”
“커억!”
조금 동작이 늦은 자들은 어김없이 피와 살점이 허공에 튀면서 절명했다. 연이어 눈에 보이지 않는 공격이 이어졌다.
“이이… 끝까지 피해를 입히는군.”
가면인은 수하들의 피해가 늘어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직접 공격에 나섰다.
슈슈슈슝!
가면인의 아티팩트에서 연속으로 빛의 탄환이 쏘아지자 엘프는 재빨리 몸을 날려 공중제비를 하면서 피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부상을 당한지라 그의 공격을 완전하게 피하지 못해 어깨에 한 발을 맞고 쓰러졌다.
마법의 보우 아티팩트인 체이스도 그만 놓쳐버렸다.
“아… 체이스를 놓치다니 이젠 끝장이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어.”
그녀가 강력한 무기를 놓친 것을 알게 된 추격자들은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화르르륵!
“어엇, 조심해!”
“아악… 뜨거워! 불 좀 꺼줘!”
그런데 갑자기 엘프와 추격자들 사이에 높이 5미터는 될 것 같은 불의 벽이 세워졌고, 방심한 한 명의 옷에 불이 붙으면서 활활 타기 시작했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던 그자는 곧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은 겁을 집어먹었다. 또한 불의 벽에서 피어오르는 열기로 인해 더 이상 엘프에게 접근하는 것도 어려웠다.
슈슈슝!
하지만 가면인은 불의 벽으로 시야가 가려졌음에도 엘프가 있는 방향을 향해 빛의 탄환을 쏘았다.
그때 활활 타올랐던 불의 벽이 그 힘을 다하고 스르륵 기운이 떨어지더니 곧 소멸되었다.
“저기입니다, 저기.”
추격자 한 명이 무언가 발견한 듯 소리치자 가면인도 그곳을 쳐다보았다.
엘프가 있던 자리에서 왼쪽으로 50미터쯤 떨어진 곳에 검은 망토를 걸친 자가 그녀를 품에 안아 든 채 서 있었다.
슈슈슝!
가면인이 3발의 빛의 화살을 쏘았다. 그것이 망토를 걸친 자의 등에 모두 명중될 찰나, 그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10미터 옆에 다시 모습을 보였다.
두두두두.
그러자 묵직한 말발굽 소리를 일으키면서 풀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중장기병들이 튀어나와 추격자들에게로 달려오면서 화살을 쏘았다.
쏴아아아!
허공에서 소낙비가 오듯 그렇게 수백 발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면서 추격자들에게로 날아왔다.
“으억… 중장기병들이다!”
“화살이 날아온다! 피해라!”
“아악!”
“커억…….”
빠르게 달려온 중장기병들은 조금도 사정을 봐주지 않고 그대로 말을 거세게 몰아 말발굽으로 그들을 짓밟았다.
여기저기에서 추격자들이 비명을 질렀고, 가면인은 빛의 화살을 중장기병들에게 쏘았다.
슈슈슝… 티티팅!
하지만 중장기병의 금속갑옷엔 대방어마법진이 새겨져 있었기에 빛의 화살은 그냥 튕겨버렸고, 그들이 자신을 향해 전력질주로 달려오자 당황한 가면인은 욕설을 중얼거렸다.
가면인은 이를 깨물더니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더니만 다시 밑으로 내려오지 않고 더 높이 떠올랐다. 플라이 마법을 시전한 모양이었다.
공격마법을 펼치지 위해 마법을 영창하는 그 순간에 녹색 빛을 머금은 창이 하나 날아왔다. 그것을 발견한 그는 피하기에는 늦었다는 것을 알고는 순간 몸을 뒤틀어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다.
“이… 이런! 늦었군.”
퍼억.
“크아아악!”
격중음에 비명이 이어지더니 관통당한 그의 어깨에서는 피가 분수같이 뿜어졌다. 그는 기적적으로 땅에 부딪히기 전에 물 찬 제비같이 날아올라 저편으로 도망쳤다.
“으… 두고 보자.”
가면인은 마법을 이용해 겨우 몸을 피할 수 있었지만 수하들은 모두 중장기병들의 말에 짓밟혔다.
그리고 10분도 채 안 되어서 어디에서 나타난 자들인지 소속을 알 수 없는 중장기병들에게 모두 당해버렸다.
적들을 섬멸한 중장기병들이 망토를 입은 자 곁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짐수레 20여 대와 말을 탄 기병 1백 명이 모습을 보였다.
“시신을 한곳으로 모으고 무기는 수거해라.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서둘러라!”
기병 부대장의 명령에 신속하게 움직인 그들은 현장을 신속하게 처리했다.
망토를 입은 자는 한쪽에 세워져 있는 고급 마차 안으로 엘프를 안고 들어갔고, 마차는 곧 출발했다. 중장기병들이 철저하게 그 마차를 호위했다.
얼마 후 짐수레와 기병들도 모든 것을 마무리한 후 그곳을 떠났다.
엘프는 부상이 심한 데다 피를 많이 흘려서 기절한 상태였다. 망토를 입은 자는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와 망토를 벗어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는 스너비 왕국의 국왕인 하벨이었다.
하벨은 엘프의 상처를 살펴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상처가 더 심하군. 일단 포션으로 상처를 치료해야겠어.”
먼저 갈색 로브를 벗기자 속에 티셔츠와 짧은 가죽 핫팬츠를 입은 엘프의 눈부신 몸매와 미모가 드러났다. 덕분에 하벨은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상처를 치료하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하벨은 일단 상처에 포션을 조금씩 부어 치료했다.
상의에도 온통 피가 묻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기고 상처에 포션을 발라 치료했다. 특히 허벅지 쪽의 상처가 가장 심했는데, 그가 포션을 붓자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모든 외상을 치료한 후 하벨은 얇은 담요로 그녀의 몸을 덮어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가 눈을 떴다.
“이제 정신이 듭니까?”
“음… 당신이 절 구했나요?”
“그렇소.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다행입니다.”
“절 위기에서 구해주셔서 고맙습니다만 여긴 어디죠?”
“스너비 왕국의 북동쪽 국경부근입니다.”
“스너비 왕국이라니… 언제 그런 왕국이 생겼죠?”
엘프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어보자 하벨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스너비 왕국이 개국한 지는 불과 두 달이니 잘 모르실 만도 하지요.”
“아… 어쩐지 처음 들어본다고 했어요.”
“이름이 뭡니까?”
“클라우디아라고 해요. 당신은요?”
“클로버 폰 하벨이라 합니다.”
“귀족이신가요?”
“얼마 전까지는 귀족이었는데 지금은 아닙니다.”
귀족이 아닌데 이런 호화로운 마차를 쓰나 싶어 클라우디아는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었다.
“그럼 지금은요?”
“스너비 왕국의 국왕입니다.”
“예? 국왕이시라구요?”
“어찌하다보니 왕국을 개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로 그놈들에게 공격을 받게 된 겁니까?”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제가 속한 부족인 풍요의 숲에 그들이 일주일 전에 쳐들어왔거든요.”
“얼마나 이끌고 왔기에 그들을 막지 못한 겁니까?”
“2천 명이나 기습적으로 공격해왔기에 도저히 막을 수 없었어요. 그들에게 전사 대부분이 죽었고, 나머지는 전부 노예로 잡혀갔어요. 저만 겨우 도망쳤지만 추격조가 편성되어 절 이곳까지 쫓아온 거예요.”
“부족이 얼마나 되었습니까?”
“저희 마을의 전사는 150명 정도이고, 성인식도 치르지 못한 어린아이와 노인을 포함하면 8백 명 정도가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요.”
“한 명이 도망쳤다고 일주일을 추격해 온다는 것은 어딘지 이상한데요?”
“그… 그건 저…….”
그녀의 당황하는 모습에 하벨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말하기 곤란한 모양이군요. 그럼 안 해도 됩니다.”
“…아니에요. 왠지 말씀 드리고 싶군요. 저희 부족은 3천 년 정도를 풍요의 숲에서 정착해 지금까지 생활해오고 있으며, 또한 그 긴 역사만큼이나 중요한 유물도 있어요.”
“3천 년씩이나 한 곳에서 정착해 살았다니 정말 대단하군요. 당연히 중요한 물건이 있었을 거라 생각되는군요. 그 물건을 당신이 가지고 도망친 겁니까?”
“그래요. 그런 상황이니 그들이 나를 끝까지 추격해온 거라 생각해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걸 볼 수 있을까요?”
“그건 좀…….”
“알겠습니다. 제가 무리한 부탁을 드린 것 같군요.”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피곤해서 그런데 눈 좀 붙일게요.”
“아… 그래요. 제논성에 도착하면 깨워줄게요.”
제논성은 하벨의 명에 따라 얼마 전에 신축된 성이다.
“고맙습니다, 정말.”
긴장이 풀렸는지 클라우디아는 싶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잠시 내려다보던 하벨은 고개를 돌려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