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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 Luck-72화 (7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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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허헉헉… 헉헉.”

턱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내뱉으면서 빠르게 숲을 가로질러가는 한 인영이 있었다.

그자는 갈색 로브를 입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호리한 체형으로, 길도 제대로 없이 나무가 빽빽하게 나 있는 숲속을 전력질주하고 있었다.

대담하게도 검은 가죽 소재로 만든 핫팬츠 차림이었는데 그 아래로 드러난 희고 가는 다리로 보아서는 여성으로 보였다.

게다가 사뿐사뿐 내딛는 듯한 걸음으로 믿기 힘들게도 한 발씩 내디딜 때마다 4미터가 넘는 거리를 순간적으로 이동했다. 그것은 기사들도 감히 흉내도 못내는 일이다.

그녀는 빠르게 숲속을 질주하면서도 순간순간 사방을 살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슈슈슝!

그때였다. 파공성을 일으키면서 보통 화살의 절반 크기에 불과한 작은 화살 6발이 날아왔다.

너무나 빠르게 이동하는지라 석궁을 겨냥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쏜 것인지 화살은 정확한 타이밍으로 날아왔다.

하지만 그녀도 보통은 아니었다.

파앗!

그녀는 가볍게 땅을 박차고 3미터 정도 허공으로 도약하면서 화살을 모두 피하고는 나무의 측면을 발로 차면서 더 높은 허공으로 도약해 나는 듯 나아갔다.

퍼퍼퍽! 부르르.

덕분에 화살은 그대로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 나무에 깃털 부분만 남긴 채 깊숙이 박혀버렸다. 한 방만 맞았더라면 치명적인 부상을 당할 만한 위력이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쏘아진 화살같이 빠르게 달리던 그녀의 전방에서 땅에서 솟아오르듯 백 명이 넘는 무장한 자들이 나타나 석궁을 쏘았다.

놀란 듯 멈추어 선 여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어엇, 제기랄!”

말은 거친 데 비해 목소리는 맑고 가늘며 아름다웠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는 몸을 비틀어 회전해 날아오는 화살 중 두 발을 피하면서 연속적으로 공중제비를 시전해 수십 발의 화살을 모두 피했다.

그리고 재빨리 몸을 틀어 우측 방향으로 도주했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 4자루의 단검을 쥐고 있었으며, 도망치면서도 그것을 적들을 향해 던졌다.

슈슈슈슉!

파공성을 일으키면서 쏘아진 단검 4자루는 과도 정도의 크기였으며, 손잡이도 없고 얇은 칼날만 있는 무척 날카로운 단검이었다. 날이 얇은 데다 은색이라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서 피하기가 무척 까다로웠다.

퍼퍼퍽!

세 명의 비명은 터져 나왔다. 한 자루는 피한 모양이다.

쓰러진 자들은 모두 가죽 갑옷을 입고 있었는데 검은색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녀와 같은 무리로 보였다. 하지만 문양이나 특이한 것이 없었기에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저쪽이다! 추격하라!”

스스스슷.

일행은 죽은 동료들은 그대로 놓아두고는 추격에만 모두 열중했다.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는 수백 명이 한 명을 추격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추격하는 자들보다 도주하는 여자 한 명의 무력이 더 뛰어났다. 그녀는 잡힐 듯하면서도 언제나 한발 앞서서 잘도 도망치면서도 반격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어떻게 하든지 승부를 보아야 했다. 게다가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숲속이라서 자신이 있기도 했다.

파악!

달리던 그녀가 갑자기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해 나무의 옆면을 채차 발로 차서는 더 높은 나뭇가지에 내려섰는데 25미터의 높이는 되어 보였다.

스윽.

그녀는 로브의 안쪽 주머니 속에서 앙증맞은 은색 보우를 꺼냈다. 병사들이 사용하는 보우의 3분의 1 정도 크기였는데 갑자기 보우의 양쪽 끝이 늘어나면서 변신하더니 보통 보우와 같은 크기가 되었다.

보우의 곳곳에는 마법의 문자인 룬문자가 빼곡하게 새겨져 있었다. 여자는 보우에 화살도 걸지 않고 그냥 줄만 잡아당겨 한 곳을 겨누더니 놓았다.

투웅!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약한 파공성이 일어났다.

퍼억!

하지만 동시에 15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를 추격하던 자들 중 한 명의 등에서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튀며 그가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크으으…….”

잠시 부르르 떨던 그는 곧 잠잠해졌다.

“주변에 엘프가 숨어 있는 것 같다. 조심해라.”

추격자들의 분대장이 경고하자 쓰러진 자의 옆에서 움직이던 자들은 눈이 두 배로 커지면서 놀라더니 상체를 더욱 숙이면서 주위를 경계했다.

“흥, 그런다고 체이스(Chase, 사냥꾼)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으냐.”

입가에 미소를 짓던 그녀는 기이한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다시 줄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갑자기 대장간의 화로 속에서 붉게 달아오른 금속창 같은 거대한 것이 한 발 생성되어 추격자들에게 날아갔다.

“허엇, 스피어다! 조심해!”

창은 제법 빠르게 날아왔지만 추격자들이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가볍게 모두 옆으로 피했다. 하지만 이내 믿을 수 없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크아악!”

“커억!”

“말도 안 돼.”

“크으… 이게…….”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성을 터뜨리면서 10명의 추격자들이 고꾸라졌다.

추격자들의 전방 10미터 정도 앞에서 날아오던 창 같은 것이 갑자기 쪼개지듯이 10발로 분리되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어 추격자들의 심장에 박힌 것이다.

투투투퉁!

그녀는 또 한 번 줄을 잡아당기다가 놓았는데 이번에 쏘아진 것은 빛을 머금은 마법화살인 매직 애로우 30발이었다.

“마법화살이다! 모두 엎드려!”

추격자들은 이번에는 당하지 않겠다는 듯 신속하게 땅에 엎드렸다. 그런데 잘 날아오던 30발의 매직 애로우가 사라져버렸다.

매직 애로우를 바라보던 추격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진 순간.

퍼퍼퍼퍼퍽!

“커억!”

“아아아악!”

여기저기에 엎드려 있던 추격자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녀가 쏜 매직 애로우는 투명화가 된 데다가 유도기능까지 있어 아무리 땅에 엎드린다고 해도 명중될 때까지는 끝까지 목표를 찾아 뒤따르는 무서운 것이었다.

투웅.

그녀가 다시 잡아당긴 줄을 놓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묵직한 파공성이 일어나면서 빛나는 매직 애로우 한 발이 날아왔는데 이것은 먼젓번 것과는 또 달라 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추격자들은 그냥 그대로 땅에 엎드려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러나 그건 더욱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콰앙!

“케에엑!”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면서 날아온 매직 애로우가 땅에 떨어져 폭발한 것이다. 폭음이 크게 일어나면서 큰 구덩이가 생겨났으며 흙먼지가 사방으로 튀었다.

폭발력에 휘말린 추격자들은 순식간에 40명이 넘게 죽어버렸다. 이제 남은 추격자들은 겨우 10명 정도였다.

“호호… 이제 저들만 처리하면 되겠군.”

콰아아아!

그녀는 이번에도 역시나 주문을 중얼거리면서 줄을 잡아당겼다 놓았다. 그러자 지름이 1미터 정도 되는 녹색 빛을 머금은 마법의 원반이 생성되어 날아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추격자들 쪽에서도 반격을 해왔다.

그냥 순순히 당할 수만 없다는 생각에 그들은 가지고 있던 보우를 쏘았다. 화살이 날아오자 나뭇가지 위에 있던 그녀는 뛰어내리면서 공중 3회전을 한 후 땅에 내려섰다.

그녀는 가볍게 화살을 피했지만 추격자들은 시선을 미처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날아오는 빛의 원반을 피하지 못해 그대로 쓰러졌다.

“크아악!”

노린 추격자의 목숨을 빼앗은 마법의 원반은 소멸되지 않고 계속 되돌아 날아와서는 마지막 한 명까지 공격했다.

마법의 원반이 날아오는 속도는 추격자들이 피하는 동작보다 수십 배나 빨라 그들은 허무하게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졌다.

추격자들이 모두 쓰러진 후에서야 원반은 소멸되었다.

“휴… 이제야 모두 처리했으니 잠시 쉬었다 움직여야겠어.”

나무에 등을 기댄 그녀는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금발에 눈같이 흰 살과 꽃 같은 얼굴이 설부화용(雪膚花容)의 미녀를 보는 듯했지만 귀가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크면서도 뾰족했다.

인간 같지 않은 아름다움과 뾰족한 귀를 가진 종족, 대륙인들은 이들을 ‘엘프’라 불렀다.

한데 그녀가 잠시 방심한 사이, 무언가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코앞까지 날아왔다.

“허엇!”

그녀는 거의 본능적인 반사 신경으로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그것을 피했지만 살짝 스친 모양이었다. 그녀의 턱을 타고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화살촉 모양의 빛 덩어리가 무려 다섯 개나 날아왔지만 소리는 일체 일어나지 않았다. 미모의 엘프는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이 없이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아아아악!”

그러나 다행히 세 발은 피했지만 두 발을 허벅지와 종아리에 맞았고, 그녀는 결국 화살에 맞은 새처럼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재차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고통을 꾹 참고 즉시 움직여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내 위험을 느끼고는 즉시 고개를 옆으로 젖혔다.

빛나는 화살촉은 나무를 뚫고 엘프의 목을 스치면서 날아가더니 앞쪽에 있는 나무도 가볍게 구멍을 뚫어버렸다.

“아… 엄청나게 위력적인 마법무구였어.”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죽을 것 같아서 그녀는 즉시 나무를 박차고 빠르게 도망쳤다.

스윽.

그러자 엘프가 있던 곳에서 90미터 정도 떨어진 나무 뒤쪽에서 한 인영이 모습을 보였다.

그는 조금 전까지 엘프를 공격한 자였다. 검은 가죽 갑옷에 망토까지 검은색 일색이었는데 얼굴에는 은색의 금속가면을 쓰고 있었다.

입은 노출되지만 눈과 코를 비롯한 뺨의 일부를 가리는 가면이었다. 그것 때문에 얼굴생김은 알 수 없었다.

가면인은 허리에 검을 한 자루 차고 있었으며, 엘프를 공격한 무기는 보우로 아직 손에 쥐고 있었다.

스르르… 처척.

보우의 크기가 순식간에 줄어들더니 팔찌로 변했고, 그것이 스르르 움직여 팔목에 자리를 잡았다. 좀처럼 보기 힘든 고위 마법사의 팔찌(Bracelet)인 아티팩트였다.

그가 한 팔을 들어 앞으로 내젓자 검은 갑옷을 입은 추격자들이 개미 떼처럼 나타나 도망친 엘프의 뒤를 추격했다.

어림잡아도 2백 명은 넘어 보이는 인원이었다.

“크크크… 부상을 입었으니 멀리 도망치지는 못한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그는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해 엘프의 추격에 나섰다. 숲은 다시 정적에 휩싸였지만 곧이어 엘프가 흘린 핏자국에 이끌린 무엇인가 나타났다.

크르르르.

4미터나 되는 신장을 가진 숲의 포식자인 오우거였다.

오우거는 엘프의 피 냄새를 맡으며 킁킁거리더니 이윽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숲속을 질주하는 엘프의 속도는 많이 떨어져 있었다. 허벅지와 종아리의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원인이었다.

“헉헉…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너무 어지러워.”

털썩.

그녀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스스스슥.

하지만 풀을 헤치며 뒤쪽에서 추격자들이 몰려오는 것을 느낀 엘프는 바들바들 떨면서 다시 일어나 앞으로 걸었다.

“으… 조금만 더 가면 숲을 벗어나게 되는데… 어쩌지?”

지치고 부상까지 입은 상태라 얼마 버티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걱정이 앞섰지만 힘이 닿는 한 도망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엘프가 사라지고 난 후 곧바로 추격자들이 나타났다. 가면을 쓴 자가 엘프가 넘어졌던 곳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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