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 Luck-71화 (7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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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아비린 왕국의 수도 크라운 외성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언덕에 1백 명의 무장한 기사들이 모여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중앙에는 귀족의 마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다.

다각다각.

말발굽 소리가 들리면서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기사 50명이 한 대의 귀족 마차를 호위한 채 다가와 멈추었다.

덜컹.

마차의 문이 열리면서 사십대 초반의 금발머리를 가진 귀족이 내리더니 먼저 자리를 잡고 있는 마차 곁으로 걸어왔다.

마차를 호위하던 기사들도 그 귀족의 신분을 잘 알고 있는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기사 한 명이 재빠르게 말에서 내려 마차의 문을 열어주었다.

중년 귀족이 마차에 타자 기사들은 일제히 마치에서 멀어져 주변을 경계했다.

마차 안에는 검은 로브를 입은 자가 앉아 있었는데 중년 귀족이 들어오자 앉으라는 듯 손짓을 했다.

중년 귀족은 자리에 앉자마자 품에서 미스릴로 주조된 신분패를 꺼내어 내밀었다. 그러자 검은 로브를 입은 자도 같은 신분패를 꺼내었다. 신분패를 확인한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 귀족의 신분패는 3단계 422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이는 4단계 계급 99위의 지위에 있는 자였다.

로브를 입은 자가 품속에서 수정구를 꺼내더니 주문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수정구에서 빛이 일어났다. 그 빛은 사방으로 퍼져 나가더니 투명한 막이 형성되었다.

그제야 검은 로브의 사내가 말문을 열었다.

“결계를 쳤으니 이젠 안심하고 말해도 되네.”

“음… 97위님께서 나오시지 않고 99위님께서 나오셨군요.”

“97위님께서는 급한 임무가 있어서 내가 대신 나오게 되었으니 나와 의논하면 되네. 그래, 무슨 일인가?”

“단장님의 명령이셨던 파에이슨 국왕과 파비스 왕세자를 제거하는 일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걸 보고 드리겠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잘해주었어. 나도 그 소식을 듣고는 있었네.”

“조금 힘들었지만 루비듐을 사용해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루비듐을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자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임무였어. 정말 잘 처리해주었네.”

“감사합니다. 보고 드릴 일은 그것 말고도 또 있으니 말씀 드리겠습니다. 헤스페 공작이 도이란 2왕자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중도파의 수장인 포에니 공작의 힘을 빌리는 밀약을 채결했습니다.”

“으음… 포에니 공작과 헤스페 공작의 밀약이라… 자네는 그 내용을 알고 있겠지?”

“예, 잘 알고 있습니다. 두 공작이 서로 힘을 모아 스너비 영지로 도망친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을 제거하기 위해 30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했지만 한 달이 넘어가도록 승기를 잡지 못하고 피해만 입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휴전협상을 했습니다.”

“허허… 나도 그 소식을 들었네. 하벨 백작이라는 자의 능력이 대단하다더군.”

“그렇습니다. 우리 조직에서 그를 포섭하지 못하면 아주 위협적인 적이 될 자입니다.”

“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니 윗분들이 어련히 알아서들 하실까… 그건 걱정하지 말고 계속해보게.”

“예, 어쨌든 두 공작의 밀약내용은 이렇습니다. 헤스페 공작이 도이란 왕자, 아니 이제는 국왕이 되었으니 도이란 국왕이 즉위하는 조건으로 포에니 공작과 중도파 귀족들의 영지를 분리독립하는 걸 허락했습니다.”

“뭐? 그… 그럼 아비린 왕국에서 분리독립하여 포에니 공작이 왕국을 건립한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문제는 스너비 영지쪽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이는 정황으로 보아서는 그곳도 분리독립을 하려는 모양입니다.”

422위의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99위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으음… 그럼 아비린 왕국이 쪼개져 세 개의 왕국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모두가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으니 빠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으음… 정말 긴급한 내용이군. 알았네. 즉시 상부에 보고해 지시를 받겠네. 더는 없나?”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게 뭔가?”

“제가 운영하는 길드에 최근 이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는데 아무래도 그들은 은십자가 클럽의 인물인 것 같습니다.”

“뭐? 그… 그게 사실인가?”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하다 생각됩니다.”

“음… 은십자가 클럽이라 이거 골치 아프게 되었군. 자네가 좀 더 부하들을 동원해 확실하게 알아보도록 하게.”

“안 그래도 그러는 중입니다. 조만간 제가 쳐놓은 그물에 걸릴 것 같으니 기대해주십시오.”

422위의 말에 99위는 흐뭇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흐흐흐… 자네의 보고를 듣고 보니 확실하게 능력이 뛰어나군. 일단 보고해준 것만 해도 아마 자네는 이번에 있을 회의에서 420위로 2위나 승진이 될 거야. 미리 축하하네.”

“가… 감사합니다, 99위님!”

“자네가 만약 은십자가 클럽의 흔적을 확실하게 잡는다면 2위 정도가 아니라 300단위로까지 수직상승할 거야. 이건 내가 장담하지.”

“최… 최선을 다해 놈들을 파헤쳐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은십자가 클럽의 꼬리를 잡아야 하네.”

“알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십시오.”

그리고 드디어 아비린 왕국의 귀족들이라면 이미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었던 왕국분리독립이 선포되었다.

모든 행정적인 절차까지 마무리가 되었고, 결국 포에니 공작은 포에니 왕국을 개국하게 되었다.

국왕파가 몰락하고 중도파의 귀족들이 모두 빠져나가버리자 그 자리를 귀족파의 귀족들이 나누어 가졌는데 그 바람에 신흥귀족들도 대거 탄생하게 되었다.

이미 아비린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에 이 소식이 퍼져 나간 탓에 세 명만 모이면 이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자네들 소식 들었나? 포에니 공작령이 분리독립한다는군.”

“그게 정말이야?”

“그럼! 그것 때문에 왕국이 온통 난리인걸.”

특히 대륙의 모든 귀족들도 이 소식을 듣고는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더욱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스너비 영지가 분리독립을 선언하고 왕국령을 선포한 것이다.

도이란 국왕과 왕국의 전 귀족들이 모두 반대했지만 이미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스너비 영지를 사실상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이렇게 아비린 왕국은 세 개의 왕국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아비린 왕국은 왕국 전체의 60퍼센트를 가져 가장 넓은 땅을 가진 왕국이고 포에니 공작의 영지와 중도파 귀족들의 영지를 합한 포에니 왕국령이 35퍼센트를, 나머지 5퍼센트는 하벨 백작의 스너비 왕국령이 되었다.

하벨의 영지는 영지전으로 획득한 헤이즌 자작의 포이던 영지와 이제는 장인이 된 츄이 자작의 영지인 딕케이, 이웃 영지인 코리 영지까지 포함했기에 제법 넓은 땅을 보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비린 왕국과 포에니 왕국은 스너비 왕국의 왕위에 브린츠 왕자가 아니라 하벨 백작이 올랐다는 사실에 모두들 충격을 받고 놀라워했다.

국왕에 즉위한 하벨은 장인인 츄이 자작의 작위를 후작으로 임명하고, 조르단 행정관을 비롯해 빈센트 집사, 기사 스탈, 잉스, 베룬, 리차드, 렉스, 리오에게 모두 백작의 작위를 내렸다.

그러나 영지는 하사하지 않았다.

스너비는 국법으로 작위를 가진 귀족들에게는 하사품과 격려금과 무구를 내릴 수는 있지만 영지는 하사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스너비 왕국의 귀족들은 오직 1대에만 자신의 노력으로 명예로운 작위를 받을 수 있을 뿐, 그 자식들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귀족가의 자식들은 부모의 지원을 받아 적성에 맞는 곳을 선택해 교육을 받아서 작위를 받아야만 했다.

모든 왕국민들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고, 본인의 노력만 있으면 누구든 작위를 받을 수 있었다.

빰빠라빰빰!

경쾌한 팡파레가 영주성, 아니 이제는 국왕의 왕성이 된 곳에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스너비 왕국령이 선포된 것을 기념해 시가행진이 있는 날이었다. 국왕인 하벨과 왕비인 올리비에를 비롯해 왕국의 모든 귀족들이 참석해 시가행진을 바라보며 감격에 젖었다.

정복을 잘 차려입은 스너비 기사단을 비롯해 20여 개의 기사단이 저마다의 제복을 입고 먼저 출발했으며, 국왕의 마차와 귀족들의 마차들도 그 뒤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길가에는 왕국민들이 환호성을 지르면서 열렬하게 환영했다.

“국왕폐하 만세!”

“국왕폐하 만세!”

왕성을 출발해 시가지의 곳곳을 행진하는 시가행진이 스너비 왕국에서 가장 발달된 플로렌스까지 이어졌고 스너비 왕국은 온통 축제분위기였다.

스너비 왕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축제가 펼쳐지면서 왕국령이 선포된 것을 자축했다.

영지민이던 사람들도 이제는 왕국민이 된 것을 기뻐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축제도 어느덧 막을 내렸다.

스너비 왕국의 미래는 밝았으며, 이제부터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 그 첫문을 연 것이 바로 국왕이 선포한 각종 공사였다.

이미 스너비와 포이던의 공사는 거의 완공되었지만 적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곳곳의 거점이나 왕국의 국경에 성을 쌓기 시작했다.

뚝딱뚝딱.

여기저기에서 망치질 소리가 들리고, 수레에 돌이나 흙을 가득 싣고 이동하는 등 수만 명의 인력이 바쁘게 움직이며 각종 소음과 흙먼지가 일어났다.

“야야… 거기 빨리 움직여.”

“예예, 갑니다, 가요.”

“흙더미를 실은 수레는 이쪽이고, 돌덩이는 저쪽이야.”

작업반장들의 공사독려가 이루어지고 인력들은 그들의 지시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총 10개의 성을 쌓는 공사지만 막대한 인력과 마법사들을 동원해서 하루가 다르게 공사가 진척되었다.

보통 한 개의 성을 쌓는 데 2, 3년 정도는 걸리는데 땅을 고르는 작업이나 무거운 돌을 이동시키는 데는 마법사들을 동원했으며, 인력도 대거 투입했다. 그래서인지 성 하나를 쌓는 데 걸리는 기간이 고작 6개월 정도였다.

또한 딕케이와 코리도 대로공사에 이어 이제껏 미루어두었던 여러 공사를 시작했다. 이 두 곳에는 대대적인 인력을 투입해 공장들이나 상점들이 들어서도록 조치했고, 그 결과로 하루가 다르게 신축된 건물이 완공되거나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밖에 소소한 각종공사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또한 왕국민들도 딕케이와 코리로 대거 이주하면서 신흥 상업단지와 주거단지가 지정되어 통나무집이나 흙을 발라 지은 집들도 많이 신축되었다.

하벨은 스너비 왕국이 유지되는 데 더 중요한 것은 경제력뿐만 아니라 군사력이라는 것을 두 번의 전쟁을 통해서 느꼈다.

그렇기에 모든 군단의 병사들에게 군사훈련을 지시했으며, 또한 성벽을 쌓고 대포를 생산해 실전배치를 서둘렀다.

사단 규모의 부대가 있는 곳이라면 신병이나 기존의 병사들도 혹독하게 훈련을 받았다. 평소의 훈련이 실전에서는 목숨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교관들이나 조교들도 공을 들였다.

특히 최근에는 모든 사단부대에 대포 50기가 실전배치 되고 있었다. 사단장들과 장교들은 대포의 화력시범을 참관해보았기에 얼마만큼 위력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포 중대만 있어도 중장기병들이 두렵지 않을 정도인데 이제는 예전처럼 전투가 일어난다면 대포로 먼저 기선을 제압할 수 있어 아주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또한 보병들에게도 수류탄이라는 무기가 지급되었다.

이전까지의 전투상황 속에서는 기병들이나 중장기병들에게는 보병들이 칼받이 정도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수류탄을 보유한 보병들은 파이어 볼 정도의 위력을 갖추었기에 수류탄 한 방이면 중장기병도 상대할 수 있었다.

이제는 보병들이 전투에서 핵심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그렇기에 보병들에게 많은 신경을 쓰면서 혹독하게 훈련을 시켜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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