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행운 Luck-70화 (7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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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어서들 오시오. 편하게들 자리에 앉으시오.”

“예, 고맙습니다.”

“내가 하벨 백작인데,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저희들의 총사령관이신 뉴얼 백작님께서 휴전을 원하십니다.”

그러자 하벨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

“후후후… 휴전이라…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영지를 기습 공격해 오다가 불리해지니 휴전한다? 정말 편한 생각이라 느껴지지 않소?”

“그, 그건…….”

“이왕 이렇게 오셨으니 협상안이나 들어보죠.”

“양측 모두 피해를 많이 보았으니 여기에서 휴전하자는 전언이십니다.”

“그래요?”

“예, 양측 모두 1킬로미터 뒤로 병력을 물린 후 또한 전쟁배상금도 각자 부담하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좋소. 서로 간에 피해를 입었으니 이쯤에서 휴전하는 것도 좋겠지.”

“정말 잘 생각하신 겁니다. 저는 그렇게 알고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럼.”

클라시스 남작과 협상단은 협상결과를 가지고 되돌아갔다.

뉴얼 백작은 되돌아온 클라시스 남작에게 물었다.

“클라시스, 간 일은 어찌 되었나?”

“협상안대로 하자는 하벨 백작의 결정이 있었습니다.”

“으음… 잘 처리가 되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군.”

“그렇습니다. 제가 그들의 진영으로 들어가 살펴본 바로는 우리 병사들과는 확연하게 달라 보였습니다.”

“뭐? 어떻게 달라 보였는지 말해보게.”

“예, 우선 병사들은 아주 잘 먹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살이 올라 있었으며, 또한 병사들의 사기도 무척 높았습니다.”

“음… 하긴 하벨 백작은 자금이 많다 보니 당연히 병사들의 군량에 힘썼겠군.”

“그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병사들 하나하나가 거의 기사들과 맞먹는 무구를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으음… 그 정도였다니… 휴전한 게 그나마 우리에게는 아주 다행이었군.”

“그렇습니다. 안 그랬으면 결과는 뻔했을 겁니다.”

“으음… 역시 하벨 백작은 대단한 자야.”

“저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하벨의 스너비 영지병들과 연합군들은 휴전협상안대로 뒤로 1킬로미터씩 물러나 진영을 구축했다. 본격적으로 휴전에 들어간 것이다.

연합군들이 물러나자 스너비 영지병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렇게 한 달이 넘도록 치열했던 내전은 휴전으로 일단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벨의 영주성 대회의실.

벽면에까지 아름다운 조각이 되어 있으며, 테이블과 의자도 하나같이 값비싼 것들로 배치되어 있었다. 또한 천장에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매달려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영주인 하벨을 비롯해 올리비에,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 조르단 행정관과 빈센트 집사 그리고 스탈 경과 잉스 경, 베룬 경과 리차드 경, 렉스 경과 리오 경을 포함해 모두 12명이 그곳에 모여 앉아 있었다.

물론 다들 밝은 표정들이었다.

“모두들 잘해주었기에 다행히도 우리가 패하지 않고 휴전을 할 수 있었다.”

“이 모두가 영주님의 준비 덕분입니다.”

빈센트 집사가 대표로 대답했다.

“어쨌든 앞으로도 우리 스너비 영지가 살아남으려면 더욱 대비를 잘해야만 된다.”

“잘 알고 있습니다, 영주님. 다행히 영지 경계지점에서 전투가 이루어졌기에 일부 피해를 입었지만 다른 곳은 피해가 없어서 신속하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건 빈센트 집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뉴얼 백작이 물러났지만 언제 또다시 그들이 쳐들어올지 모른다.”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정규군이라 자부하던 저들인데 우리에게 승리하지 못했으니 가만있겠습니까?”

“오늘 모두들 모이라고 한 것은 휴전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지만 자네들에게 지시할 것이 있어서야.”

“저희들도 예상하고 있으니 지시를 내려주십시오, 영주님.”

“그럼 일단 조르단 행정관은 영지전에서 포로로 잡은 2만의 병사들에게 모두 족쇄를 채우도록.”

조르단 행정관은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죄인들의 발목에 채우는 족쇄를 말입니까?”

“그래야 도주하지 못하지. 일단 포로들을 스너비 영지의 필요한 공사현장에 투입하도록.”

“알겠습니다, 영주님.”

“다음으로 스탈 경은 신병을 대대적으로 모집해 철저하게 훈련시키도록.”

“알겠습니다, 영주님. 그런데 이제 남는 유민들이 별로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럼 왕국 곳곳에 유민을 모집한다고 각종 길드에 의뢰해 모집하도록.”

“알겠습니다, 영주님.”

“빈센트 집사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영주성을 책임지고 잘 관리하도록 하고 또한 이번 내전에서 마법사들의 활약이 아주 컸으니 하사금을 두 배로 지급해주도록.”

“예, 영주님.”

“마법사들에게 말해 마탑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마법사들이 있나 알아보고, 그들을 영입할 수 있으면 하라고 전해줘. 마법사의 양성에 좀 더 힘을 써야겠어.”

“돈이 많이 들어갈 테니 그 점을 신경 써주십시오, 영주님.”

“자금은 걱정하시지 않아도 돼. 넘치는 게 자금이니 얼마든지 필요하다면 가져다 쓰도록 해.”

“그렇다면야 마법사의 대량 양성도 가능합니다.”

“빈센트 집사님, 어디 마법사들뿐이겠습니까? 병사들도 대량으로 모집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병사들이 그리 많이는 필요하지 않은 듯 보이지만 머지않아서 다시 병사들의 힘이 필요하게 될 것이니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돼.”

“알겠습니다, 영주님.”

“렉스 경과 리오 경은 그때를 대비해 대대적인 병사도 모집하고 그에 필요한 각종 무기와 군량까지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거야.”

“으음… 하긴 자금이 넘치는데 못할 것도 없겠지요.”

“영주님,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밖으로 나간 후에도 하벨과 올리비에,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브린츠 왕자님과 베다 후작님.”

“말해보시오, 하벨 백작.”

“두 분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어려운 말인 듯 하벨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말문을 열었다.

“조만간 이 아비린 왕국은 세 곳으로 분열될 것입니다.”

“뭐라?”

“그… 그게 무슨 말이오, 하벨 백작!”

“먼저 도이란 2왕자님이 왕위에 올랐지만 중도파의 수장인 포에니 공작의 힘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건 예상들 하고 계셨지요?”

“크흠… 그렇소, 하벨 백작.”

베다 후작의 말에 브린츠 왕자의 얼굴은 더 굳어졌지만 하벨의 말이 이어졌다.

“헤스페 공작이 포에니 공작과 손을 잡았기에 도이란 2왕자님이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헤스페 공작이 포에니 공작과 손을 잡으면서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요?”

“그건 바로 중도파에게 분리 독립을 허락했다는 겁니다.”

“뭐요? 그… 그럼 중도파가 왕국을 세우는 걸 귀족파가 허락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두 달 이내에 포에니 공작은 아비린 왕국에서 독립하여 포에니 왕국령을 선포할 겁니다. 그럼 아비린 왕국은 두 개의 왕국이 됩니다만 저는 그 기회에 스너비 영지도 왕국령으로 선포할 겁니다.”

“으음… 그럼 아비린 왕국이 세 곳의 왕국으로 분리가 된다는 말이군.”

“정말 그런 것이오, 하벨 백작?”

“그렇습니다.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포에니 공작과 헤스페 공작은 서로 의견일치를 보았으며, 현재는 비밀리에 분리독립을 준비하는 중이랍니다.”

“으음… 왕자님, 그럼 정말 큰일입니다.”

“하벨 백작, 그 말이 정말입니까? 막을 방도는 없습니까?”

“그렇습니다, 왕자님. 그래서 저는 스너비 영지를 왕국으로 독립할 겁니다. 또한 제가 국왕으로 즉위할 겁니다. 브린츠 왕자님과 베다 후작님은 앞으로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뭐요? 하벨 백작이 국왕에 즉위한다고요?”

“이… 이건 말도 안 되오!”

“그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일이 그렇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럼 하벨 백작의 말은 브린츠 왕자님을 제외하고 직접 국왕에 오른다는 말인데, 이건 배신이오!”

“결과적으로 말한다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만 실질적으로 브린츠 왕자님과 베다 후작님께서는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으음… 하벨 백작이 이럴 줄은 정말…….”

분노에 떠는 베다 후작을 바라보던 브린츠 왕자가 말문을 열었다.

“하벨 백작이 왕위에 욕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데, 왜 왕위에 오르는지 이유를 듣고 싶으니 말해주시오.”

“지금의 아비린 왕국 체제 속에서는 스너비 영지의 평화를 장담하지 못합니다. 스너비 영지민들은 저를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 기회에 스너비 왕국으로 독립한 후에 빠른 속도로 왕국을 발전시킬 겁니다.”

“그것은 나도 이해할 수 있소만 그것만으로는 이유가 부족한 것 같군요.”

“저는 누누이 브린츠 왕자님께 위험성을 알려드렸지만 그걸 등한시하셨기에 지금의 이런 위기가 닥친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스너비 영지가 왕국으로 거듭나게 되면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왕국으로 거듭날 것이며, 왕국민들이 헐벗고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신분제를 철폐하여 평민들이 득세하도록 할 것입니다.”

베다 후작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고, 브린츠 왕자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하하하… 하벨 백작, 신분철폐라니, 그것이 가능하다고 봅니까?”

“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까지 이 대륙의 모든 왕국과 제국도 못한 일이었지만 저라면 가능합니다. 그동안은 평민들에게 교육의 혜택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렇지 귀족들보다 못한 것은 없습니다. 난 그들에게 가능한 모든 것을 이루도록 해줄 겁니다. 그런 생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내가 국왕에 즉위하려는 겁니다.”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들에게 너무나 냉혹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비린 왕국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그들이었지만 국왕과 황태자가 같은 날에 죽어버림으로 인해서 순식간에 국왕파가 몰락해버렸으며, 겨우 목숨만 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지금의 브린츠 왕자에게는 베다 후작과 1백 명도 안 되는 병사들이 전부이니 자신의 신세가 비참하게 느껴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래, 어쩌면 더 잘되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어찌 하벨 백작의 잘못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내가 방심한 결과인걸…….”

“어찌 그렇게 자책을 하시는 것입니까, 왕자님.”

“하벨 백작이라면 나보다 훨씬 더 백성들을 위해줄 테니 나도 조용하게 살고 싶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하벨 백작.”

“크으으… 왕자님.”

“그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조용한 곳에 불편이 없이 생활하시도록 저택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브린츠 왕자와 베다 후작은 후들거리는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걸 바라보던 올리비에가 하벨 곁으로 다가왔다.

“이 모든 게 사실이에요?”

“그렇소. 앞으로는 더한 시련이 닥쳐올 테니 잘 대비를 해야 해요, 올리비에.”

“난 당신을 믿으니 걱정하지 않아요.”

“고맙소, 날 이해해줘서.”

“국왕에 즉위한다는 말에 놀랐어요.”

“나도 처음에는 브린츠 왕자에게 왕위를 넘기려고 했지만 그러면 스너비는 얼마 가지 못하고 멸망하게 돼요. 그러니 내가 왕위에 오를 수밖에요.”

“정말 포에니 공작이 왕국을 분리독립해요?”

“사실이오, 올리비에. 곧 그 소문이 퍼질 것이오. 우리 스너비도 왕국령으로 거듭나지 위해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소.”

“아… 하벨, 난 두려워요.”

“걱정하지 마시오, 올리비에. 내가 있으니 말이오.”

하벨은 올리비에를 품에 안았다.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올리비에도 하벨의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석양이 다른 날들보다 더욱 붉게 타오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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