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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다크 실버문
“파이어 볼.”
“블레이즈(Blades).”
마법사들은 각 조별로 한 명씩 순차적으로 마법을 영창해 공격마법을 시전했다.
거대한 불덩이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스너비 영지병의 진영으로 떨어졌고, 또한 회전하는 칼날도 생성되어 날아왔다.
폭음이 터지면서 병사들의 몸에 불이 붙거나 쓰러졌다.
회전하는 칼날은 앞을 가로막는 병사들을 몸이나 사지를 자르면서 지나갔기에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진군해오는 탑을 불태워라!”
슈우우우.
퍼펑! 피시시시.
파이어 볼이 목탑에 격중했다. 목탑에 일부 파손이 생기긴 했지만 불타지는 않았다. 가죽에 충분하게 물을 먹여두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저 탑들을 박살내야 한다! 어서!”
“거스트 오브 윈드(Gust of wind).”
후아아앙!
돌풍을 일으키는 마법에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이번 공격은 제법 피해가 있을 것으로 보였지만 목탑의 무게가 엄청나기에 약간 흔들거리고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피해를 입었을 뿐 목탑은 아직 이동하는 데 지장이 없었다.
“체인 라이트닝(Chain lightning).”
그때 허공에서 여러 개의 번개사슬이 생성되어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보병들에게 떨어졌다.
파지지직!
부르르 몸을 떨어대던 병사들이 수십 명씩 쓰러졌다. 하벨의 스너비 영지병 진영에서도 마법사들이 나선 것이다.
클라시스 남작은 또 한 번 절망했다.
이번에는 마법사들까지 동원된 공격이었기에 승기를 잡았지만 스너비 진영에서 탑을 이용한 공격과 마법사들까지 추가적으로 지원공격이 이루어지자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으… 이번에도 또 물러서야만 한단 말인가? 도, 도대체 저놈들은 어떻게 저런 무기를 준비했지?”
“남작님, 전선이 밀리고 있습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이것저것 안 써본 방법이 없는데 이젠 어쩔 수 없다. 총공격을 할 수밖에…….”
“알겠습니다. 즉시 총공격 고동소리를 울리겠습니다.”
뿌우우… 뿌우!
고동소리가 크게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러자 대기해 있던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보병들이 총공격을 감행해왔다.
그러나 무조건 밀어 붙인다고 되는 전투가 아니었다.
이번 작전으로 인해 그는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하벨이 직접 대포중대를 동원하여 전장에 나선 것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저들이 무식하게 인해전술로 몰려오자 더 이상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한 하벨 자신이 직접 나서게 된 것이었다.
“대포를 발사하라!”
“대포발사!”
파파파파팡!
굉음이 일어나면서 백여 대의 대포가 포신에서 불을 내뿜었고, 포탄은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 적들의 진영에 떨어져 폭발했다.
“아아악!”
“크윽!”
털썩.
포탄의 위력에 짚단이 쓰러지듯 병사들이 쓰러졌다. 1분도 안 되어서 수천 명이 쓰러지자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은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벨은 멈추지 않고 계속 대포를 발사하도록 명령했다.
너무나 막강한 대포의 위력에 적들은 일방적인 학살을 당했다. 플레이트 아머를 장착했든 가죽갑옷을 입었든, 아님 방패를 들어 막아도 모두 소용없는 짓에 불과했다.
화살도 뚫지 못하는 방어구가 눈으로 보고서도 믿지 못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파괴력을 가진 포탄에 모두 관통해버리니 겁을 집어먹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으아… 도망쳐!”
“살려줘… 아악!”
하벨은 포탄이 모두 소비될 때까지 계속 대포를 발사했기 때문에 적들의 피해는 만 명이 넘었다.
“총공격하라! 공격!”
둥둥둥둥!
“와아아아!”
사기가 치솟은 스너비 영지병들이 등을 보이면서 도망치는 적들을 향해 총공격을 감행했다.
궁기병들을 앞세운 공격에 적들은 등을 보이면서 달아나다가 등에 화살을 맞고는 우수수 쓰러졌다. 마법사들도 무시무시한 공격마법을 영창해 날렸다.
“파이어 볼.”
슈아아앙.
화염구가 파공성을 일으키며 허공에 포물선을 길게 그렸다.
콰쾅!
“으아… 피해라!”
“사… 살려줘! 아아악!”
위력적인 화염계 마법은 적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겼다.
적들은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무조건적으로 도망만 쳤고, 그 피해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뉴얼 백작 본진이 있는 곳까지 밀어 붙였으며, 이미 연합군은 사기가 크게 꺾인 상태이기에 본진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달리 수가 없었다.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부대가 하벨의 스너비 영지병들에게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후퇴한 것은 뉴얼 백작의 본진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계속 전선을 뒤로 물렸다.
뉴얼 백작은 긴급 대책회의를 주제했다.
백작의 군막 속에는 굳은 얼굴을 한 일선 천인대장들부터 상위의 지휘관들까지가 모두 앉아 있었다.
뉴얼 백작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음… 여기에서 우리가 밀리게 되면 전쟁이 우리의 참패로 끝이 날 텐데, 어디 좋은 의견 있으면 말들 해보라.”
“총사령관님, 저 트리슨이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라.”
“저뿐만 아니라 여기 계시는 분들은 다 알고들 계실 겁니다. 30만이던 병력이 이제는 19만으로, 피해가 11만이나 됩니다. 그에 반해 스너비 놈들은 4만 정도의 약소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이제는 적들과 우리의 병력이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도저히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뉴얼 백작은 버럭 화를 내었다.
“그 무슨 허약해빠진 소리인가!”
“죄송합니다. 병사들의 수와 그 사기에서도 밀리는데 획기적인 대안 없이는 필패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회의를 하는 게 아닌가.”
“전투를 멈추는 게 좋겠습니다.”
“이보시오, 트리슨 남작! 그 무슨 망발이시오!”
흥분한 지휘관들의 언성이 높아졌지만 무시하고 트리슨 남작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만약 이 상태에서 멈추지 않는다면 피해만 더 입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벨 백작 측에서 도리어 수도로 기습공격을 해 올지도 모릅니다.”
“뭐요? 그… 그럴 리가…….”
“백작님, 트리슨 남작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으음… 그렇군. 그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
“그렇습니다. 우리가 계속 스너비 놈들에게 밀리면 국왕폐하의 신변까지 위험해질 것입니다.”
“여기에서 병사들의 수가 더 줄어들면 이들을 막는 것은 고사하고 방어하는 데에도 힘들어질 것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미 내전은 한 달이 넘었지만 승기를 잡기는커녕 도리어 막대한 피해만 본 상황이기 때문이다.
“으음… 그럼 어떤 방법이 좋겠는가. 말해보라.”
“모든 면에서 놈들에게 이길 수 없다면 차라리 체면이 좀 깎이겠지만 휴전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겠습니다.”
“저놈들이 순순히 들어줄까?”
“우리가 공격하지 않고 방어만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으음… 이왕 휴전하기로 정해진 이상 공작각하께 보고를 먼저 해봐야겠어.”
“이미 전선의 상황을 어느 정도는 짐작하시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휴전에 동의해주실 것입니다.”
“으음… 그럼 보고를 올린 후에 다시 회의를 하기로 하지.”
헤스페 공작도 더 이상 내전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병사들의 피해와 전쟁비용이 엄청나게 불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휴전협상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래서 뉴얼 백작은 다시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공작각하께서 휴전협상을 하라고 지시하셨으니 너무 무리가 안 되는 선으로 해결해봐야겠지. 누가 협상단으로 가볼 텐가?”
“총사령관님, 저 클라시스가 가겠습니다. 그토록 저를 믿어주셨는데 제대로 전공을 올리지 못했으니 이 일이라도 잘 처리해보겠습니다.”
“음… 좋네, 직접 가서 잘 처리해보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클라시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막사를 나가자 남은 이들은 나머지 사안을 가지고 회의를 계속했다.
백기를 내건 10여 명의 기병들이 스너비 진영으로 접근해왔다. 그중에는 협상단으로 클라시스 남작의 모습도 보였다. 부관을 비롯해 실무자들이 따라온 것이다.
“여긴 무슨 일로 왔느냐?”
“나는 클라시스 남작이고, 우린 뉴얼 총사령관님의 명으로 이곳으로 왔다. 즉시 하벨 백작께 우리를 안내해다오.”
“우선 몸수색부터 할 테니 의심스러운 행동은 하지 마시오.”
말에서 내린 클라시스 남작과 그 일행은 소지하고 있던 모든 무기들을 맡겨놓고서는 하벨의 막사로 이동되었다.
막사까지는 제법 거리가 되었기에 걸어가는 와중에 그들은 주위에 흩어져 휴식을 취하고 있는 스너비 영지병들의 모습을 살펴보고는 속으로 무척 놀랐다.
‘군기가 흐트러진 듯 보이지만 그만큼 여유가 있는 거구나.’
‘가지고 있는 무기들도 모두 상태가 양호하고, 잘 먹어서 그런지 혈색도 좋군. 이러니 우리가 당할 수가 있나?’
한참 후 다른 막사보다 10배나 큰 막사가 보였다.
온통 무장한 병력들이 밀집되어 철저하게 지키는 곳이었다.
‘으음… 하나같이 뛰어나 보이는 병사들이군. 여기가 하벨 백작의 막사인 모양이군.’
막사 앞에는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눈빛이 날카로운 기사들이 1백여 명이나 서 있었는데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손을 들어 접근하는 사람들을 세웠다.
“출입허가증을 보여라.”
“필립 호위대장님, 적들의 전령들이라 합니다.”
“그래? 잠시만 기다리거라.”
필립 호위대장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더니 잠시 후 다시 나왔다.
“영주님께서 만나본다고 하시니까 몸수색을 하고 들여보내주겠소.”
“아니, 이미 몸수색을 당했는데 또 그런단 말이오?”
“흥, 내가 당신들을 어떻게 믿어? 두 번이 아니라 열 번이라도 한다면 하는 거지 말들이 많아. 싫으면 돌아가시오.”
“으음… 여기에 계신 분은 클라시스 남작님이시오. 귀족이신데 너무 무례한 것 아니오?”
“난 그런 것 모르오. 다만 나의 임무에 충실할 뿐.”
“이 무례는 잊지 않겠소!”
클라시스 남작을 비롯해 협상단으로 따라온 자들은 분노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전부 입고 있던 플레이트 아머를 벗고, 정밀하게 몸수색을 당해야만 했다. 필립은 쇠붙이 등 무기가 될 수 있는 작은 물건도 가지고 들어가지 못했다.
“허어… 이렇게까지 지독하게 몸수색을 하다니…….”
하벨의 막사 안은 영주성처럼 호화롭게 꾸며져 있었다. 그리고 막사 안에도 무장한 호위병들이 무려 50명이나 병풍처럼 서 있다.
이십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테이블 건너편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한눈에 그가 하벨 백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으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군.’
‘저렇게 젊은 자였다니!’
협상단으로 온자들은 하벨 백작을 대면하고는 내심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