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8 / 0156 ----------------------------------------------
제3권 다크 실버문
포에니 공작은 5일간 고심하다가 헤스페 공작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중도파의 귀족들이 보유한 병사들을 전부 합하면 15만 정도는 되지만 지금은 한 치 앞도 내다보이지 않는 혼란한 시기다.
이틀 전에 도이란 2왕자가 대관식을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왕위에 올랐다고는 하지만 브린츠 왕자가 살아 있는 한 언제든 내전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의 저택과 인근에 5만의 병사를 언제든 출동할 수 있도록 조치해두었으며, 한편으로는 10만의 병사들을 이번 스너비 영지로 피신한 브린츠 왕자를 끝장내기 위해서 파병을 결정한 것이다.
귀족파의 수장인 헤스페 공작도 수도 크라운의 안전을 위해 10만의 병사를 무장시켜 준비해두고 남은 20만의 병력과 포에니 공작의 10만을 포함해 모두 30만의 대병을 이끌고는 스너비 영지로 출병했다.
그리고 열흘 후, 스너비 영지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30만의 병사들이 도착해 전열을 정비했다. 그땐 이미 스너비 영지병들도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전투를 앞두고 있었다.
작은 개울을 사이에 두고 두 진영이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
스너비 측은 영주인 하벨의 특별지시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참호라는 것을 만들어 그 속에 궁병들이 대거 들어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또 궁병들의 안전을 위해서 대형방패를 든 방패병이 한 명씩 배치되었다는 게 특이한 점이었다.
참호는 5미터의 거리를 두고 하나 더 만들었는데 그곳에는 석궁병들이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밖에는 기존의 전투대형과 특별히 다른 것이 없어 보였다.
연합군의 선봉대장인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병사 3만 중에서 중장기병 2천 명을 비롯해 8천 명의 기병, 각종 무기를 소지한 보병들이 열을 맞추고 편제를 이루었다.
수십 개의 각종 깃발을 든 기병들이 부대별로 모여 있는 모습이 장엄했다.
뿌우우… 뿌우!
고동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지자 선봉대장인 클라시스 남작의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오더니 속력을 높였다.
두두두두!
스너비 영지병들도 모든 준비가 끝이 난 상태였고, 공격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둥! 둥! 둥! 둥!
드디어 스너비 영지병 측에서도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적들이 달려오는 상황에서도 빨리 공격명령이 내려지지 않아서 초조해하던 병사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공격명령이 내려졌다! 궁병들은 화살을 쏘아라!”
그와 동시에 수천 발의 화살이 허공으로 날아올라 포물선을 길게 그리면서 진군해오는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에게 떨어졌다.
이 정도의 화살공격은 예상하고 있었기에 연합군은 손방패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화살을 막았다.
그러자 스너비 영지병 측 갈리슨 만인대장의 손이 다시 올라갔다. 순간 한쪽에서 대기해 있던 마법사 30명이 일제히 마법을 영창했다.
“파이어 볼트(Fire bolt)!”
그다지 위력적이지 않는 작은 불덩이 30개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달려오고 있는 적들의 앞에 떨어졌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공격이었다. 달려오던 중장기병과 기병들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금방 알게 되었다.
화르르르!
갑자기 파이어 볼트가 떨어진 곳에서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미리 짚단에 기름을 부어 길게 깔아둔 그곳에 불덩이가 떨어지니 순식간에 불이 타오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히히힝!
뜨거운 열기와 불길이 활활 타오르면서 그 연기에 군마가 멈칫거리자 대열이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이때다! 궁병들과 석궁병들은 화살을 쏘아라!”
투투투퉁!
수천 발의 화살이 일제히 쏘아지자 허공은 온통 화살로 뒤덮였다.
플레이트 아머를 착용한 중장기병들은 화살에 맞아도 튕겨 나가기에 상관이 없었지만 가벼운 경갑옷만 착용한 기병들은 화살공격에 우수수 말에서 떨어졌다.
이미 불길로 인해서 빠른 돌파력으로 승부하는 중장기병들과 기병들이 전혀 이점을 살리지 못하게 되자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이런 제기랄.”
“말머리를 돌려라! 즉시 후퇴해야 한다!”
선봉을 맡고 있던 클라시스 남작은 이를 깨물었다.
“중장기병들과 기병들로 놈들의 예봉을 꺾어보려 했는데 실패하다니… 어쩔 수 없지. 보병들을 진군시켜라! 다 쓸어버리겠다!”
뿌우우우!
또다시 고동소리가 울려 퍼지자 중무장한 보병들이 일제히 진군을 시작했다.
수천 명의 무장한 병사들이 움직이자 땅이 흔들리면서 묵직한 발소리가 일어났다.
갈리슨 만인대장이 옆에 있는 마법부대장에게 말했다.
“마법부대는 즉시 공격마법을 적들에게 퍼부어주시오.”
“알겠습니다. 공격마법을 퍼부어라!”
“파이어 볼(Fire ball)!”
30명의 마법사들 중에서 20명의 마법사들이 일제히 거대한 불공을 생성해 적들에게 날렸다. 나머지 10명의 마법사들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화염계 마법을 시전했다.
“파이어 버스트(Fire burst)!”
강력한 불꽃의 구가 폭발하면서 주위에 타격을 주는 마법이었다.
콰콰콰쾅!
진군해 오는 보병들의 여기저기에서 폭발이 일어나면서 불덩이가 튀어 갑옷에 불이 붙거나 쓰러졌다.
“아악, 옷에 불이 붙었다! 꺼줘!”
“으악, 뜨거워! 살려줘!”
그리고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추가공격이 이어졌다.
“화살을 쏘아라!”
“다 죽여 버려라! 쏴라!”
수백 명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지만 그나마도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병사들이 50미터 앞에까지 다가오자 갈리슨 만인대장이 또 다른 명령을 내렸다.
“이때다! 참호 속에 있는 석궁병들과 궁병들은 적 보병들의 다리를 공격하라!”
투투투퉁!
참호 속 병사들이 진군해 오는 적 보병들의 다리 부분을 중점적으로 노리면서 석궁과 활을 쏘자 적 보병들이 고꾸라졌다.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보병들 대열이 순식간에 흐트러진 것이다.
“하하하… 이때다. 보병들을 즉시 진군시켜라1”
“와아아아!”
함성을 크게 지른 스너비 영지병들이 검을 꺼내 들거나 창을 가슴 앞으로 내밀면서 달려 나갔다. 그렇게 양측의 병사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수천 명이 서로 뒤섞이면서 싸우다보니 대단한 혼전이었다.
스너비 영지병들도 제법 쓰러졌지만 그보다는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병사들의 피해가 훨씬 많았다.
승기도 잡지 못하면서 병사들의 희생만 늘어가자 그는 어쩔 수 없이 입술을 깨물면서 후퇴명령을 내렸다.
뿌우… 뿌우우!
“후퇴하라, 후퇴!”
“어서 후퇴하라! 어서!”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대가 후퇴를 시작하자 스너비 영지병들은 승리의 함성을 질렀다.
“적들이 도망친다!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
병사들은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들면서 좋아했다.
이렇게 첫날의 전투는 스너비 영지병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하지만 그 이후 전투는 그야말로 소모전 양상으로 변했다.
그런 식으로 전투가 한 달을 넘기면서 초조해진 건 포에니 공작과 헤스페 공작이었다.
꽝!
테이블을 세게 내리친 연합군의 총사령관인 뉴얼 백작은 양쪽에 앉아 있는 지휘관들을 둘러보면서 눈을 부라렸다.
선봉대장이었던 클라시스 남작을 비롯해 각 부대장들은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있다.
“말들 해보게!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도 왜 스너비 영지의 진입조차 못한 건가!”
서로 눈치를 보던 그들은 아무도 나서지 않아 어쩔수 없이 대표로 클라시스 남작이 말문을 열었다.
“저… 그것이, 스너비 영지병들이 처음 보는 작전으로 대응해오다 보니 진군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자세하게 말해보라.”
“첫날의 전투에는 중장기병과 기병으로 거세게 밀어 붙이려고 했으나 놈들은 우리의 작전을 예상이라도 한듯 짚단에 기름을 먹여 땅에 깔아 두었고, 그걸 몰랐던 터라 전속력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마법사들이 화염계 마법을 날려 거센 불길이 일어나 돌파를 할 수 없었습니다.”
뉴얼 백작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납득한 모습이었다.
“으음… 하긴 불이 거세게 일었다면 아무리 훈련이 잘된 군마라고 해도 주춤거리겠군.”
“그렇습니다, 총사령관님. 또한 놈들의 화살과 석궁으로 기병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후퇴했습니다.”
“…….”
“그 이후의 전투에서도 번번이 공격이 저지되었으며 수세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으음… 그럼 오늘의 전투에서는 놈들의 마법사들부터 막아야 전투가 유리하겠어. 안 그래도 우리도 마법사들을 초빙했는데 3서클부터 5서클 마스터급까지 총 50명이다.”
클라시스 남작은 기쁜 기색으로 되물었다.
“저,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오늘의 선봉은 클라시스 남작이 맡아서 해보도록.”
“가, 감사합니다, 총사령관님. 오늘은 반드시 전투에서 승리해서 스너비 영지로 진입해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그렇게 해야 될 거야. 각 부대장들은 똑똑히 들어라. 지금의 전투를 왕국의 귀족들이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스너비 영지에 진입조차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의 체면이 뭐가 되겠는가? 반드시 오늘의 전투로 플로렌스까지 점령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와아아아!”
채채챙, 파팍!
가죽갑옷을 입은 무장한 병사들이 서로 뒤섞여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들은 하벨의 스너비 영지병들과 클라시스 남작의 선봉 병사들이었다.
쿠르르르!
그때 갑자기 하벨의 영지병 진영에서 15미터 높이에 수레바퀴가 장착된 목탑 20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수십 톤은 나갈 것 같은 대형 목탑의 뒷부분을 근육이 크고 힘이 센 병사들이 밀었기에 목탑은 굉음을 내면서 앞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목탑은 5층으로, 궁병들이나 석궁병들이 1층부터 5층까지 각 1백 명씩 모두 5백 명이 들어가 있었으며, 전면에는 얇은 철판을 부착했기에 적들의 화살 공격이나 그 밖의 어지간한 공격에는 뚫리지 않을 터였다.
목탑인지라 주자재가 나무이다 보니 불에 탈 우려가 있어서 가죽을 덧대어 물을 충분하게 적셔두기도 했다.
그런 목탑이 무려 20기나 곳곳에서 진군하면서 목탑 안에서는 궁병이나 석궁병들이 화살을 쏘자 파사스 남작의 선봉 보병들은 속절없이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당황한 보병들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신무기로 인해 고전이 예상되었다.
“저 목탑은 아주 위력적이군.”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다가 일시에 목탑으로 인해 뒤로 밀리게 된 클라시스 남작은 입술을 깨물면서 손짓했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부관이 붉은색 깃발을 머리 위로 들어 휘저었다.
선봉군대장의 공격명령이 떨어지자 회색 로브를 입은 자들이 5인 1조로 20개조 1백 명이나 각 작전지역으로 순식간에 이동하더니 마법을 영창했다.